10화(5,290자)

네 시까지

이세계 편의점 야간 알바는 시급이 금화다 · 채온유

“⁠뜯으시든 말든 회장님 집이잖아요⁠.⁠”

다율은 대차를 문턱 안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판자 위에 선 바르텐의 장화를 보지 않았다⁠. 세 시 오십구 분이었다⁠. “⁠저는 네 시 전에 가요⁠. 그게 저희 가게 규칙이라서⁠.⁠”

다율은 철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기 직전⁠, 바르텐이 장화를 판자에서 떼는 것이 보였다⁠.

다음 날 밤 이 방의 판자는 뜯겨 있지 않았다⁠. 대신 곡괭이 소리가 났던 자리에 쇠판 한 장이 박혀 있었다⁠. 못 여덟 개가 쇠판 둘레를 따라 박혔고⁠, 이 위에 바르텐의 의자가 놓였다⁠. 바르텐은 이 의자에 앉아 술을 마셨다⁠. 이 밤 쇠창살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다율은 컵라면 하나도 팔지 못했다⁠.

새벽에 빵집 할머니가 쇠창살 밖에 서서 손짓으로 다율에게 알렸다⁠. 손가락 둘을 옆으로 비스듬히 그었다⁠. 드워프가 옆으로 길을 다시 내고 있었다⁠.

*

장날 밤 열 시⁠, 밤새마트 신림삼거리점은 평소처럼 불이 켜져 있었다⁠. 안에서 하는 일만 평소와 달랐다⁠.

도팔석은 창고에서 소화기 두 대를 꺼내 계산대 밑에 눕혔다⁠. 안전핀을 한 번 뽑아 봤다가 도로 꽂았다⁠. 다솔은 집에 가라는 말을 세 번 듣고 세 번 안 갔다⁠. 주방세제 열두 통을 음료 진열대 앞 통로 바닥 가까이에 늘어놓고⁠, 비닐우산 묶음을 풀어 계산대 옆에 세웠다⁠. 우산 손잡이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사천 원⁠.

“⁠언니⁠, 이거 진짜 다 써도 돼⁠?⁠”

“⁠점장님이 계산하실 거야⁠.⁠”

“⁠내가⁠?⁠” 도팔석이 소화기 옆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 내가 하지⁠. 지방 손님 접대비로⁠.⁠”

다율은 계산대 뒤 벽의 전원판을 열어 자동문 스위치를 확인했다⁠. 「⁠자동⁠」과 「⁠수동⁠」과 「⁠잠금⁠」 다율은 손가락을 「⁠잠금⁠」 위에 올렸다가 내렸다⁠. 아직이었다⁠.

열한 시 반⁠, 골목 앞에 일 톤 용달이 섰다⁠. 운전석에 낯선 중년 기사가 앉아 있었고⁠, 조수석에서 철구가 내렸다⁠. 철구는 앞문 유리 너머로 다율을 봤다⁠. 손을 들지도 않고⁠, 들어오지도 않았다⁠. 용달 짐칸 문을 열어 놓고 이 옆 전봇대에 기대섰다⁠.

*

자정에 다율이 철문을 열자 바르텐의 방은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서른이었다⁠. 털모자들과 짐꾼들⁠. 짐꾼마다 상자를 하나씩 안고 있었고⁠, 털모자들은 허리에 짧은 칼을 찼다⁠. 방 안의 난로가 이들의 숨으로 더 뜨거웠다⁠. 지난밤 삼각김밥을 먹은 스무 살짜리 짐꾼이 맨 뒤에 서 있었다⁠. 짐꾼은 다율과 눈이 마주치자 상자 모서리로 시선을 내렸다⁠.

바르텐은 쇠판 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세 시 종이 치면 들어가겠소⁠.⁠” 바르텐이 말했다⁠. “⁠그때까지는 손님을 받으시오⁠. 오늘은 장날이니⁠.⁠”

쇠창살이 열렸다⁠. 쥐꼬리 골목에서 장날 손님들이 하나씩 방을 지나 문턱을 넘어왔다⁠. 성채 병사 둘이 진통제를⁠, 대장장이가 핫팩을⁠, 양초 장수 아낙이 바나나우유를 샀다⁠. 아낙은 계산을 마치고 다율에게 몸을 숙였다⁠. 굴은 빵집 광에서 동쪽으로 꺾어서 판다고⁠, 방 구석 상자 더미 밑으로 나온다고⁠.

세 시⁠.

하르펜 성탑의 종소리가 문턱을 넘어 매장까지 들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바르텐이 일어섰다⁠. 상자를 든 짐꾼들보다 먼저 문턱으로 걸어왔다⁠. 털가죽 외투 자락이 판자에서 타일로 넘어왔다⁠. 문턱을 넘는 순간 잠깐 걸음을 멈췄다⁠. 형광등 빛에 눈을 가늘게 떴다⁠. 신림동 창고의 박스 더미와 초록 철문과 문에 붙은 점장의 종이를 차례로 봤다⁠.

“⁠들어오너라⁠.⁠” 바르텐이 뒤를 보지 않고 말했다⁠.

서른이 들어왔다⁠. 상자를 안고⁠, 한 줄로⁠. 창고를 지나 매장으로⁠, 라면 매대와 음료 진열대 사이 통로로⁠. 바르텐은 이들 앞에 서서 매장을 걸었다⁠. 계산대 앞을 지나 앞문 유리 앞에 섰다⁠. 유리 너머에 신림동이 있었다⁠. 새벽 세 시의 삼거리⁠. 신호등이 노란 불을 깜빡였고⁠, 24시 해장국집 간판이 붉게 빛났고⁠, 택시 한 대가 물웅덩이를 튀기며 지나갔다⁠. 바르텐은 이 앞에서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그사이 맨 앞의 짐꾼이 앞문에 닿았다⁠. 유리 너머에서 철구가 전봇대에서 몸을 떼고 문 쪽으로 걸어왔다⁠. 다율은 계산대 뒤 전원판의 스위치를 「⁠잠금⁠」으로 내렸다⁠.

자동문이 짐꾼 앞에서 열리다 말고 멈췄다⁠. 철구가 바깥에서 유리를 밀었다⁠. 꿈쩍도 안 했다⁠.

*

“⁠문을 여시오⁠.⁠”

바르텐은 다율을 돌아보지 않았다⁠. 유리문 너머의 철구를 보고 있었다⁠.

“⁠고장 났어요⁠.⁠” 다율이 말했다⁠. “⁠새벽엔 가끔 그래요⁠. 본사에 수리 요청 넣을게요⁠. 보통 사흘 걸려요⁠.⁠”

털모자 셋이 계산대로 몰려왔다⁠. 하나가 칼을 반쯤 뽑았다⁠. 다솔이 비명을 지르며 비닐우산을 이 얼굴 앞에서 펼쳤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투명한 비닐이 털모자의 코앞을 막았다⁠. 털모자는 접혀 있던 것이 갑자기 방패가 되자 뒷걸음질 치다 진열대에 부딪혔다⁠. 과자 봉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전원판이 거기 있군⁠.⁠” 다른 털모자가 계산대를 넘으려 했다⁠. 도팔석이 소화기 안전핀을 뽑았다⁠. 하얀 가루가 계산대 위로 구름처럼 터졌다⁠. 털모자가 기침을 하며 눈을 감싸 쥐었다⁠. 매장 안이 순식간에 뿌옇게 됐다⁠. 바르텐의 사람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가루 속에서 엉켰다⁠.

“⁠통로요⁠!⁠” 다율이 외쳤다⁠.

다솔이 주방세제 뚜껑을 차례로 따서 통로 바닥에 부었다⁠. 상자를 안은 짐꾼들이 앞문 쪽으로 밀려오다가 세제 위에서 미끄러졌다⁠. 하나가 넘어지자 뒤의 셋이 걸렸다⁠. 상자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뚜껑이 벗겨졌다⁠. 보랏빛 돌이 세제 거품 위로 굴러 나와 웅웅 울었다⁠. 단내가 소화기 가루 냄새와 섞였다⁠.

다율은 이 돌을 집으려는 짐꾼의 손등을 대걸레 자루로 눌렀다⁠. 스무 살짜리 짐꾼이었다⁠. 이 사람은 손을 빼지 않았다⁠. 대신 다율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짐꾼은 돌을 집지 않았다⁠. 자루를 들자 도팔석은 손을 거두어 뒤로 물러났다⁠.

유리문 밖에서 용달 기사가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이거 뭐야⁠, 영화 찍어⁠? 철구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기사는 창문을 올리고 시동을 걸었다⁠. 용달은 짐칸 문을 열어 놓은 채로 삼거리를 빠져나갔다⁠. 철구는 빈 도로를 잠깐 보다가 유리문으로 돌아와 두 손바닥을 유리에 댔다⁠.

*

같은 시각⁠, 바르텐의 방 구석 상자 더미가 무너졌다⁠.

판자 밑에서 흙투성이 손이 올라왔다⁠. 다음에 붉은 수염이⁠, 다음에 곡괭이가⁠. 그롬바였다⁠. 그롬바는 굴 입구에서 몸을 빼내자마자 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늙은 짐꾼이 올라왔다⁠. 뒤이어 아랫시장 짐꾼들이 하나씩⁠. 다섯⁠, 열⁠, 열다섯⁠. 마지막으로 빵집 할머니가 밀대를 들고 올라왔다⁠. 방에 남아 있던 털모자 둘이 이것을 보고 칼을 뽑았지만⁠, 열다섯 쌍의 지게 진 어깨를 보고 쇠창살 쪽으로 물러섰다⁠. 늙은 짐꾼이 쇠창살 문을 바깥에서 닫았다⁠. 바르텐의 열쇠가 아니라 짐꾼들의 지게 막대로 빗장을 질렀다⁠.

창살 너머 쥐꼬리 골목에 횃불이 몰려왔다⁠. 상회에서 달려온 털모자 열 남짓이었다⁠. 이들은 창살을 붙잡고 흔들었고⁠, 하나가 도끼로 빗장 막대를 내리쳤다⁠. 지게 막대에 금이 갔다⁠. 짐꾼들이 창살 안쪽에서 어깨를 붙이고 버텼다⁠. 할머니가 밀대로 창살 사이로 들어온 손을 하나씩 때렸다⁠.

두 번째 도끼질이 막대를 쪼갤 때⁠, 골목 입구에서 쇠 장화 소리가 났다⁠. 뛰는 소리였다⁠. 카샨이 맨 앞에 있었다⁠. 투구도 쓰지 않았고 숨이 턱까지 차 있었다⁠. 뒤로 경비병 열둘이 창을 들고 따랐다⁠. 성탑의 세 시 종이 친 지 반 각이었다⁠. 칠 분 사십 초⁠.

“⁠이 골목은 하르펜의 길이다⁠.⁠” 카샨이 창을 골목 한가운데 돌 틈에 박았다⁠. 숨을 고르느라 말이 끊겼다⁠. “⁠길에서 도끼를 드는 건 경비대가 잡는다⁠. 상회든 아니든⁠.⁠”

도끼를 든 털모자가 카샨을 돌아봤다⁠. 은화는 끊겼다고⁠, 회장님이 그랬다고 소리쳤다⁠. 카샨은 대답 대신 창을 고쳐 잡았다⁠. 카샨의 뒤에서 스무 살짜리 경비병이 장화 목의 핫팩을 꺼내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창을 들었다⁠.

그리고 뒤에서⁠, 굴 입구로 쇠사슬 갑옷이 올라왔다⁠.

실레아는 흙과 땀에 젖어 있었다⁠. 성채 기사의 회색 망토 대신 짐꾼의 누더기를 걸쳤다⁠. 방을 한 번 둘러보고⁠, 열린 철문 너머 하얀 가루 구름을 보고⁠, 칼을 뽑으며 문턱을 넘었다⁠.

매장 통로에서 털모자 하나가 다율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소화기 가루 때문에 눈을 반쯤 감은 채 마구 휘두른 칼이었다⁠. 다율은 대걸레를 들어 막으려 했다⁠. 대걸레 자루가 반으로 잘렸다⁠. 칼날이 그대로 내려왔다⁠.

쇠와 쇠가 부딪는 소리가 형광등을 흔들었다⁠.

실레아의 칼이 털모자의 칼을 받았다⁠. 받아 낸 칼날이 미끄러지며 실레아의 왼팔을 긁고 지나갔다⁠. 갑옷이 없는 팔꿈치 안쪽이었다⁠. 피가 세제 거품 위로 떨어져 분홍빛으로 번졌다⁠. 실레아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칼자루로 털모자의 손목을 내리쳤다⁠. 칼이 바닥에 떨어져 미끄러졌다⁠.

“⁠기사님⁠!⁠”

“⁠그대는 그대 일을 하시오⁠.⁠” 실레아가 이를 악문 채 말했다⁠. 피가 손가락 끝으로 떨어졌다⁠. “⁠나는 내 일을 하겠소⁠.⁠”

다율은 계산대 밑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손이 떨려 거즈 포장을 두 번 놓쳤다⁠. 세 번째에 뜯었다⁠. 실레아의 팔을 잡아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았다⁠. 피가 붕대 위로 번졌다⁠. 한 겹을 더 감았다⁠. 실레아가 진통제 하나만 달라고 했다⁠. 다율은 상비약 칸을 열었다⁠. 한 통 남아 있었다⁠. 바코드도 찍지 않고 두 알을 꺼내 실레아의 입에 넣었다⁠.

*

네 시 십 분 전⁠.

바르텐이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바르텐의 목소리는 낮은데도 매장 끝까지 닿았다⁠. “⁠돌아간다⁠. 상자는 두고⁠.⁠”

털모자와 짐꾼들이 창고 쪽으로 몰려갔다⁠. 철문 너머 바르텐의 방에서 그롬바와 짐꾼들이 이들을 맞았다⁠. 밀고⁠, 밀리고⁠, 지게 막대와 칼집이 부딪쳤다⁠. 바르텐의 사람들이 하나씩 문턱을 넘어 방으로 돌아갔다⁠. 열여덟⁠, 열아홉⁠. 방 안에서 그롬바가 소리쳤다⁠. 다율⁠, 네 시야⁠!

바르텐은 앞문 유리 앞에서 마지막으로 돌아섰다⁠. 창고 쪽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늙은 짐꾼과 빵집 할머니가 철문을 하르펜 쪽에서 밀어 닫기 시작했다⁠. 털모자 하나가 이 틈에 어깨를 끼웠다⁠. 할머니의 밀대가 이 어깨를 쳤다⁠. 문이 다시 밀렸다⁠.

“⁠닫아⁠!⁠” 다율이 외쳤다⁠.

철문이 닫혔다⁠.

성탑의 종이 문 너머에서 울리는 것을 다율은 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째 종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철문 밖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났다⁠.

매장 안은 조용했다⁠. 소화기 가루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세제 거품이 꺼지는 소리가 났다⁠. 통로에 상자 열두 개가 흩어져 보랏빛으로 울었고⁠, 이 사이에 털모자와 짐꾼 열하나가 서 있었다⁠. 칼을 쥔 채로⁠, 하얗게 가루를 뒤집어쓴 채로⁠.

그리고 이들 맨 앞⁠, 앞문 유리 앞에 바르텐이 서 있었다⁠. 털가죽 외투 어깨에 소화기 가루가 눈처럼 앉아 있었다⁠. 다율을 봤다⁠. 다율의 손에는 반으로 잘린 대걸레 자루가 들려 있었다⁠. 계산대 밑에서는 다솔이 쪼그려 앉아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 귀퉁이에서 녹화 중을 알리는 빨간 점이 깜빡였다⁠.

“⁠자정까지 스무 시간이 남았군⁠.⁠” 바르텐이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그대 도시의 손님이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네 시까지 · 이세계 편의점 야간 알바는 시급이 금화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