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291자)
장날 전야
이세계 편의점 야간 알바는 시급이 금화다 · 채온유
도팔석은 이날부터 자정마다 창고 철문 옆에 접이식 의자를 놓고 앉았다. 머리에는 자기 이름이 적힌 헤드랜턴을 썼고, 무릎에는 대걸레를 눕혔다. 다율이 문밖으로 나가면 문을 반쯤 열어 둔 채 거기 앉아 있었다. 네 시 십오 분 전이 되면 휴대폰 알람을 두 개 맞춰 놓고 이 둘이 다 울릴 때까지 문 쪽을 봤다.
“점장님, 주무셔도 돼요.”
“지방 손님 오시는데 점장이 자면 안 되지.” 도팔석은 여전히 지방이라고 했다. 다만 이제는 이 말을 할 때 웃었다.
담뱃갑의 금화 마흔한 닢은 대차 손잡이에 매단 천 주머니로 옮겨 갔다. 그롬바의 수염과 점장의 헤드랜턴 사이였다. 주머니가 대차가 덜컹일 때마다 짤랑거렸다. 다율은 이 소리를 들으며 쥐꼬리 골목을 빠져나갔다. 골목 양쪽 벽에 털모자 둘이 붙어 서서 지나가는 것을 셌다. 이들에게 핫팩 하나씩을 던져 주었다. 하나는 받았고, 하나는 발로 찼다.
*
장날 이틀 전의 아랫시장은 들떠 있었다. 고개를 넘어올 큰 대상이 장날에 맞춰 짐을 푼다고 했다. 천막을 새로 치는 망치 소리와 장작 패는 소리 사이로 다율은 그롬바의 새 좌판을 찾아갔다. 부서진 자리 대신, 빵집 할머니네 가게 처마 밑이었다. 할머니가 자릿세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처마 밑은 상회 땅이 아니었다.
다율은 계산대에서 배운 방식으로 사람을 모았다. 사겠다는 사람에게 먼저 묻는다. 무엇이 필요한지.
늙은 짐꾼에게 필요한 것은 손등에 바를 연고였다. 다율은 상비약 칸에서 가져온 연고를 그롬바의 갈라진 손등에 짜 주었다. 짐꾼은 이 하얀 것을 의심스럽게 냄새 맡다가, 바르고 나서 손을 쥐었다 폈다. 그롬바는 지게를 내려놓고 짐꾼들을 부르러 갔다. 아랫시장 짐꾼은 쉰 명 남짓이었다. 검은 저울 상회는 짐 하나에 동전 두 닢을 주고, 짐 주인에게서는 동전 다섯 닢을 받았다.
“장날 밤에 무슨 일을 하면 되오?” 짐꾼이 쉰 명을 등 뒤에 세우고 물었다.
“쥐꼬리 골목에 서 계시기만 하면 돼요. 상자 든 사람들이 지나가는 걸 보기만요.”
“보기만?”
“바르텐 회장님 사람들은 지금까지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일했잖아요. 쉰 명이 보고 있으면 걸음이 달라져요.” 다율은 대차에서 핫팩 상자를 내렸다. “그리고 이건 그날 밤 서 계실 때 품으세요. 돈 안 받아요.”
짐꾼은 핫팩 상자를 받지 않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하얀 종이 그릇이었다. 컵라면 용기. 안쪽이 깨끗이 씻겨 있었고, 가장자리에 끈을 꿰어 허리에 찰 수 있게 해 놓았다.
“마누라가 이걸로 물을 마시오.” 짐꾼은 그릇을 쥐고 엄지로 가장자리를 쓸었다. “그날 밤 가져간 국물을 둘이 나눠 먹고, 그릇은 안 버렸소. 가볍고, 안 깨지고, 따뜻한 걸 담아도 손이 안 데인다고. 마누라는 저 문 너머 사람들이 이런 그릇을 매일 버린다는 걸 믿지 않소.”
다율은 이 그릇을 봤다. 편의점 분리수거함에 하룻밤에도 수십 개가 들어가는 용기였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핫팩 상자를 짐꾼의 지게 위에 얹었다. 짐꾼은 이번에는 받았다.
빵집 할머니에게는 물을 것이 없었다. 할머니가 먼저 말했다. 우리 집 지하 광은 쥐꼬리 골목 창고하고 벽 하나를 같이 써. 장날 밤에 필요하면 열어 줄게. 다율은 다율이 돌려주려는 표준 추를 받지 않았다. 그건 자네 거라고, 우리 영감이 바른 저울을 쓸 사람한테 줬을 거라고.
*
양초 장수 아낙은 달랐다.
“자네 물건 때문에 내 양초가 안 팔려.”
아낙은 좌판 위의 양초 다발을 손바닥으로 쳤다. 손때 묻은 밀랍 냄새가 났다. 사흘 전 그롬바의 좌판에서 건전지로 켜는 작은 랜턴이 팔리기 시작했다. 다율이 대차에 실어 온 랜턴이었다. 성채 병사 몇이 이걸 샀고, 경비병 몇이 이걸 샀고, 다음 날부터 양초 다발이 반밖에 안 나갔다.
“바람에 안 꺼지는 불을 은화 셋에 팔면, 내 양초는 누가 사나?” 아낙은 바나나우유를 마시던 이날 밤의 얼굴이 아니었다. “자네가 쉰 명을 모은다면, 그 쉰 명 중에 양초 사던 사람이 몇인지 세어 봤나?”
다율은 세어 보지 않았다. 대차에 남은 랜턴 상자를 내려다봤다. 아홉 개가 남아 있었다. 그롬바가 옆에서 수염을 쥐고 헛기침을 했다. 동업자의 손해를 보는 드워프의 얼굴이었다.
“랜턴, 이제 안 가져올게요.” 다율이 말했다.
그롬바의 헛기침이 멎었다.
“대신.” 다율은 양초 다발 하나를 집어 코에 댔다. 밀랍 냄새 밑에 무언가 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말린 박하였다. “이거, 서울에서 팔게요. 손으로 만든 향초라고요. 서울 사람들은 이런 거 비싸게 사요. 불 켜는 데 쓰는 게 아니라 냄새 맡으려고.”
“냄새 맡으려고 양초를 사?”
“네. 그리고 랜턴은 안 쓰면서 랜턴 같은 걸 사요. 저쪽 사람들은 좀 이상해요.”
아낙은 한참 다율을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끝에 양초 다발 셋을 다율의 대차에 던졌다. 값은 은화로 하자고, 서울에서 얼마 받는지 알면 다음 다발 값을 올리겠다고.
그롬바가 다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랜턴 아홉 개는 성채 병사들한테 넘기면 아낙은 모를 거라고. 다율은 그롬바의 수염을 잡아당겼다.
*
실레아는 새벽 한 시에 왔다. 갑옷 위에 여행용 망토를 둘렀고, 등에는 짐 꾸러미를 멨다. 늘 하던 대로 금화 한 닢을 내밀었다. 오늘 밤의 한 통이었다.
“성채로 돌아가오. 오늘 밤에.” 실레아가 말했다. “사령관께서 성 밖 소란을 들으셨소. 기사가 시장 바닥에서 경비대장 앞에 칼을 반쯤 뽑았다고. 장날이 끝날 때까지 성채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명이오.”
“장날 밤에 못 오세요?”
“못 오오.” 실레아는 진통제 통을 짐 꾸러미에 넣었다. 꾸러미 안에서 다른 통들이 부딪는 소리가 났다. 일곱 통이었다. “그리고 사령관께서 그대를 아시오. 서울 상인의 문이라고. 검은 저울이 그 문을 원한다는 것도. 내게 그 문이 어디 있냐고 물으셨소.”
“말했어요?”
“모른다고 했소.” 엘프 기사는 이 말을 하며 다율의 눈을 피했다. “기사가 상관에게 거짓을 고한 건, 서쪽 숲 기사단 삼백 년에 내가 처음일 거요.”
실레아는 허리에서 단검 하나를 풀어 다율의 대차 손잡이에 꽂았다. 수염과 헤드랜턴과 금화 주머니 옆이었다. 손잡이가 점점 무거워졌다.
“칼 말고 금화로 달라고 했잖아요.”
“이건 값이 아니오. 빌려주는 거요.” 실레아는 망토 깃을 올렸다. “장날 밤에 내가 없으니.”
*
카샨은 초소 화로 앞에 앉아 있었다. 다율이 대차를 세우자 화로에 장작을 하나 넣었다. 마정석이 아니라 장작이었다. 바르텐이 은화를 끊은 뒤로 경비대에 들어오는 마정석도 끊겼다.
“장날 밤에 이 초소, 비워 주세요.” 다율은 화로 건너편에 앉았다. 화로에서 튄 불티가 패딩에 구멍을 냈다. “그리고 경비대가 쥐꼬리 골목 입구만 지켜 주세요. 상자 든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요.”
“장날 밤에 나는 성문에 있다.” 카샨이 말했다. “큰 대상이 들어온다. 성문을 비우는 경비대장은 없다. 바르텐 말이 맞다.”
“그럼 쉰 명이요. 짐꾼들이 골목에 설 거예요.”
“짐꾼은 짐꾼이다. 상회 사람 서른이 칼을 차고 오면 쉰 명은 벽에 붙는다.” 카샨은 장갑 낀 손으로 화로의 장작을 뒤집었다. “너는 금화 마흔한 닢으로 내 마흔을 한 달 샀다. 고맙다. 그런데 한 달 뒤에는? 그 점장 담뱃갑이 또 차나?”
다율에게는 내놓을 대답이 없었다.
“장날 밤에 나는 성문에 있다.” 카샨은 같은 말을 한 번 더 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성문에서 쥐꼬리 골목까지는 걸어서 이 각이다. 내가 뛰면 반 각이고.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다.”
“반 각이 얼마예요?”
카샨은 다율을 이상하다는 듯 봤다. 그러고는 화로 옆 모래시계를 엎었다. 모래가 흘러내리는 동안 다율은 휴대폰 타이머를 켰다. 모래가 다 떨어졌을 때 화면에는 칠 분 사십 초가 찍혀 있었다.
*
다음 날 낮, 다율은 서울에서 양초를 팔았다. 다솔이 밤새마트 계산대 옆에 「강원도 수제 향초」라는 종이를 붙이고 세 개를 진열했다. 오후 세 시까지 둘이 팔렸다. 산 사람은 둘 다 냄새를 맡고 나서 샀다.
세 번째 향초를 집어 든 건 철구였다. 철구는 퀵 조끼 차림으로 계산대 앞에 서서 향초를 코에 대고 킁킁거리다가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다율은 바코드 없는 향초를 손으로 계산했다. 만이천 원. 하르펜에서는 은화 하나를 주고 산 양초였다.
“이게 만이천 원이야?” 철구가 카드를 꽂으며 웃었다. “너도 장사꾼 다 됐다.”
“이건 사는 사람이 냄새 맡고 골라요. 쥐고 웃다가 손 떨리는 거 아니고요.”
철구의 웃음이 멈췄다. 철구는 영수증을 받지 않고 향초를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계산대에 팔꿈치를 올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장날 밤에 용달 한 대 빌렸어. 일 톤. 골목 앞에 댈 거야.” 철구는 자기 말을 자기도 확인하듯 천천히 말했다. “서른이 상자 들고 들어오면, 나랑 용달 기사가 앞문으로 받아서 싣는 거야. 네 시 전에 다 싣고 빠지면 끝이야. 상자 하나에 금화 하나. 회장님이 그렇게 셈하셨어.”
“그걸 왜 저한테 말해요?”
“모르고 당하면 억울하잖아.” 철구는 계산대에서 팔꿈치를 뗐다. “그리고 너 알면, 뭔가 할 거잖아. 나는 뭐라도 하는 사람 옆에서 일해 보고 싶었어. 근데 그 사람이 회장님밖에 없더라.”
철구는 향초 값이 비싸다고 한 번 더 투덜거리고 나갔다. 다솔이 이 뒷모습을 보다가, 철구 오빠 손 떤다고 했다. 다율은 못 봤다. 다솔은 그런 걸 다율보다 먼저 봤다.
이날 자정, 다율은 대차를 끌고 철문 앞에 섰다. 도팔석이 의자에 앉아 헤드랜턴을 켰다. 노크는 오지 않았다. 다율은 자정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손잡이를 당겼다.
문밖은 쥐꼬리 골목이 아니었다.
방이었다. 먼지와 쥐똥 냄새가 나던 낡은 창고는 사라지고 없었다. 바닥에 새 판자가 깔렸고, 벽에는 난로 세 개가 박혀 마정석이 보랏빛으로 타고 있었다. 방 안이 초여름처럼 더웠다. 창고의 골목 쪽 출입구가 있던 자리에는 쇠창살 문이 새로 달려 있었다. 창살 너머로 쥐꼬리 골목의 횃불이 보였다. 이 앞에 털모자 넷이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긴 탁자가 놓였다. 탁자 끝에 바르텐이 앉아 있었다. 이 앞에 붉은 술잔과 작은 천칭이 놓여 있었다. 천칭 한쪽 접시에 금화 한 닢이, 다른 쪽 접시에 열쇠 하나가 올라가 있었다. 두 접시는 수평이었다.
“어서 오시오.” 바르텐이 일어나지 않고 말했다. “오늘 아침에 이 창고를 샀소. 주인이 왕도에 사는 상인이라 값을 묻지도 않더군.” 바르텐은 천칭 위의 열쇠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이제 이 문의 저쪽은 내 집이오. 하르펜에서 그대의 가게로 오려면, 누구든 내 집을 지나야 하오.”
도팔석이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다율의 등 뒤에서 들렸다. 대걸레 자루가 타일에 부딪혔다.
바르텐은 술잔을 들어 문턱 너머의 다율에게 내밀었다.
“앉으시오. 내 집에 온 손님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