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77자)

강원도 쪽 손님

이세계 편의점 야간 알바는 시급이 금화다 · 채온유

“⁠넘긴다는 게 무슨 말인데요⁠?⁠”

다율은 패딩도 벗지 않고 계산대 앞에 섰다⁠. 계산대 위 형광등 빛이 금괴 위에서 누렇게 번졌다⁠. 철구는 팔짱을 낀 채 진열대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셋 사이로 온장고의 웅웅 소리가 지나갔다⁠.

“⁠가게 이름은 그대로야⁠. 명의도 나야⁠.⁠” 도팔석은 금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밤만 철구가 해⁠. 열 시부터 여섯 시까지⁠. 나는 낮만 보고⁠, 밤에 뭐가 들어오고 뭐가 나가는지는 안 물어⁠. 그 대신 이거⁠.⁠”

“⁠그거 받으면 밤엔 보라색 상자가 나가요⁠.⁠”

“⁠알아⁠.⁠”

“⁠알면서요⁠?⁠”

도팔석은 계산대 서랍을 열어 종이 뭉치를 꺼냈다⁠. 본사에서 온 우편물이었다⁠. 이것을 펼치지도 않고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봉투마다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다⁠.

“⁠가맹 계약 중도 해지하면 위약금이 사천⁠. 월세 석 달 밀린 게 천오백⁠. 가게 차릴 때 받은 대출이 팔천 조금 넘어⁠. 명퇴금 다 넣고 아파트 담보 잡혀서 차린 가게야⁠.⁠” 점장은 숫자를 말하는 동안 다율을 보지 않았다⁠. “⁠다 합치면 일억 사천⁠. 저거 하나면 끝나⁠.⁠”

철구가 진열대에서 등을 뗐다⁠. “⁠회장님은 셈이 정확해요⁠, 점장님⁠. 저거 무게 달아서 보내셨어요⁠. 일억 사천에 조금 남게⁠.⁠”

다율은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 포스기 화면을 손가락으로 넘겨 매출 조회를 날짜별로 띄웠다⁠. 출근한 첫날부터 어젯밤까지 엿새였다⁠. 화면을 도팔석 쪽으로 돌렸다⁠.

“⁠제가 오기 전 야간 매출⁠, 하루 평균 오십팔만 원이었어요⁠. 지난 엿새는 하루 평균 백사십만 원이에요⁠.⁠” 다율은 숫자를 손톱으로 짚었다⁠. “⁠지방 손님 물건⁠, 제가 다 제 카드로 이 포스에 찍었어요⁠. 그거 다 이 가게 매출이에요⁠. 두 배 반이요⁠. 이 속도면 월세 밀릴 일 없어요⁠. 가게가 안 망하면 위약금 낼 일도 없고요⁠.⁠”

도팔석은 화면을 오래 봤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따라 그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돈 얘기가 아니야⁠.⁠”

“⁠그럼요⁠?⁠”

“⁠문 얘기야⁠.⁠” 도팔석은 금괴를 놓았다⁠. 금괴가 계산대 상판에 둔하게 앉았다⁠. 도팔석은 계산대 밑으로 몸을 숙여 한참을 뒤적이더니 빈 담뱃갑 하나를 꺼냈다⁠. 은색 비닐이 다 닳아 있었다⁠. 도팔석은 이것을 거꾸로 들어 흔들었다⁠. 금화가 계산대 위로 쏟아졌다⁠. 탑이 위를 보거나 아래를 보며⁠, 하나씩⁠, 계속⁠.

다율은 세지 않았는데도 이게 몇 닢인지 알 것 같았다⁠. 철구도 그랬는지 팔짱을 풀었다⁠.

“⁠마흔한 닢⁠.⁠” 도팔석이 말했다⁠. “⁠세 해 동안⁠. 하나도 안 바꿨어⁠.⁠”

*

“⁠세 해 전 겨울에 처음 노크가 왔어⁠.⁠” 점장은 금화를 한 닢씩 줄을 세우며 말했다⁠. 진열대 컵라면을 세우는 손놀림과 같았다⁠. “⁠할아버지였어⁠. 너보다 키가 작고⁠, 수염이 하얗고⁠, 털모자를 쓰고⁠. 소주 한 병하고 단팥빵 두 개를 샀어⁠. 할머니가 아파서 밥을 못 먹는데 단 걸 먹이고 싶다고⁠. 금화를 놓고 갔어⁠. 나는 그게 진짜 금인 줄도 몰랐어⁠. 그냥 강원도 어디 기념주화인 줄 알았지⁠.⁠”

점장은 줄을 세우던 손을 멈췄다⁠.

“⁠다음 날 밤에 할아버지가 안 왔어⁠. 할머니가 왔어⁠. 아프다던 할머니가⁠. 영감이 어젯밤 빵을 들고 돌아가다가 골목에서 얼어 죽었다고⁠. 그 빵 맛있었다고⁠, 영감이 마지막에 먹은 게 그거라고⁠, 고맙다고⁠. 그러고 또 금화를 하나 놓고 갔어⁠. 단팥빵 하나 값으로⁠.⁠”

다율은 입을 열지 않았다⁠. 철구는 진열대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었다⁠.

“⁠그때 알았어⁠. 저 문 너머에서는 내가 파는 빵 하나 때문에 사람이 죽고⁠, 그 사람 마누라가 고맙다고 금을 줘⁠.⁠” 도팔석이 손바닥으로 쓸자 금화 줄이 흐트러졌다⁠.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마흔일곱에 명퇴한 사람이야⁠. 그래서 강원도라고 했어⁠. 지방 손님이면 그냥 손님이야⁠. 빵 팔고 돈 받으면 끝이야⁠. 이세계면⁠, 내가 거기 뭘 팔아야 하고 뭘 팔면 안 되는지 정해야 돼⁠. 나는 그거 못 해⁠. 철구도 못 했고⁠.⁠”

철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그만둔 거예요⁠.⁠”

“⁠그래서 넘기려는 거야⁠.⁠” 도팔석은 처음으로 다율을 똑바로 봤다⁠. “⁠다율 씨는 정하잖아⁠. 그 경비병들 먹이겠다고 다율 씨 카드로 이백팔십 개 긁은 거 나 알아⁠. 나는 그렇게 못 해⁠. 그러니까 밤은 철구한테 주고⁠, 나는 낮에 그냥 편의점 하고⁠, 다율 씨는 그만두고 돈 받아⁠. 이거 반 줄게⁠.⁠”

다율은 흐트러진 금화를 내려다봤다⁠. 마흔한 닢⁠. 금은방에 한 주 세 닢씩이면 열네 주였다⁠. 이 셈을 끝냈고⁠, 다음 셈을 했다⁠. 경비병 마흔 명⁠, 서른 날⁠, 컵라면 하나에 핫팩 둘⁠.

“⁠그 금화⁠, 저 주세요⁠.⁠” 다율이 말했다⁠.

도팔석이 눈을 깜빡였다⁠.

“⁠반 말고⁠, 금괴 말고⁠, 그 담뱃갑에서 나온 거요⁠. 마흔한 닢⁠. 그걸로 하르펜 경비대 마흔 명 한 달 먹여요⁠. 그러면 바르텐이 은화를 끊어도 그 사람들이 바르텐 편 안 들어요⁠. 그리고 그 금괴는⁠.⁠” 다율은 금괴를 손끝으로 밀어 도팔석 앞에 놓았다⁠. “⁠점장님이 직접 돌려주세요⁠. 강원도 손님한테요⁠. 점장님이 정하시는 거예요⁠. 이거 하나는⁠.⁠”

철구가 웃었다⁠. 비웃는 웃음은 아니었다⁠. 헬멧을 집어 들었다⁠. 다율이 이 앞을 막았다⁠.

“⁠철구 씨는요⁠? 이거 안 되면 철구 씨는 어떻게 돼요⁠?⁠”

“⁠나⁠?⁠” 철구는 헬멧 턱끈을 만지작거렸다⁠. “⁠사채 사무실에 오토바이 열쇠 맡겼어⁠. 이번 주 안에 이자 못 넣으면 오토바이 가져간대⁠. 오토바이 없으면 퀵 못 해⁠. 퀵 못 하면 고시원 방 빼야 돼⁠.⁠” 철구는 숫자를 세듯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회장님이 밤 점장 시켜 주면 그거 다 해결해 준대⁠. 금화로⁠. 금화는 또 못 바꾸지만⁠.⁠”

“⁠그럼 그거 하지 마요⁠.⁠”

“⁠너는 그 말을 할 수 있지⁠.⁠” 철구는 다율 어깨 너머 담뱃갑을 봤다⁠. “⁠너한테는 점장님이 금화 마흔한 닢을 주잖아⁠. 나한테는 회장님이 줘⁠. 우리 둘이 하는 일이 그렇게 달라⁠?⁠”

다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철구는 이 침묵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율을 비켜 자동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이 열리기 전에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회장님 자정에 오세요⁠. 답 들으러⁠.⁠”

*

도팔석은 쉰둘 평생 금괴를 처음 쥐어 봤다⁠. 손바닥에서 무게가 자꾸 아래로 흘렀다⁠. 이 무게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가⁠, 주머니가 처지는 게 보기 싫어 다시 꺼내 손에 쥐었다⁠.

자정 오 분 전⁠. 도팔석은 창고 철문 앞에 섰다⁠. 다율이 뒤에 있었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팔석은 문에 붙은 자기 글씨를 봤다⁠. 세 해 전에 이 종이를 붙이면서 이 문을 다시는 직접 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철구가 열었고⁠, 이제는 다율이 열었다⁠.

한 번⁠, 오래 쉬고⁠, 한 번⁠. 노크가 왔다⁠.

도팔석이 손잡이를 잡았다⁠. 손바닥이 땀에 미끄러졌다⁠. 앞치마에 손을 닦고 다시 잡아 문을 열었다⁠.

눈이 들이쳤다⁠. 신림동의 눈과 같은 눈인데 냄새가 달랐다⁠. 장작 연기⁠, 양고기 기름⁠, 그리고 무언가 단 것이 타는 냄새⁠. 돌길 위에 털가죽 외투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허리춤에 작은 천칭이 매달려 있었다⁠. 횃불을 든 짐꾼 둘이 뒤에 있었다⁠. 짐꾼들 너머로 마정석 등잔들이 보랏빛으로 줄지어 탔다⁠. 쥐꼬리 골목이었다⁠. 도팔석은 이 골목 이름을 몰랐다⁠. 아는 건 이 골목에서 세 해 전 한 노인이 단팥빵을 쥐고 얼어 죽었다는 것뿐이었다⁠.

“⁠이 가게의 주인이시오⁠?⁠” 바르텐이 물었다⁠.

“⁠점장이요⁠. 주인은 본사고⁠.⁠” 도팔석은 자기 목소리가 생각보다 덜 떨린다는 데 놀랐다⁠. “⁠어서 오세요⁠. 아니⁠, 오신 건 아니지⁠. 거기 계세요⁠.⁠”

바르텐의 눈이 금괴를 쥔 도팔석의 손으로 내려갔다⁠.

“⁠답을 가져오셨군⁠.⁠”

“⁠네⁠.⁠” 도팔석은 금괴를 내밀었다⁠. 팔을 쭉 뻗어⁠, 문턱 바로 위로⁠. 도팔석은 이 문턱 너머로 무언가를 건네는 것도 세 해 만에 처음이었다⁠. “⁠이거 도로 가져가세요⁠. 우리 가게는 현금⁠, 카드⁠, 지방 화폐만 받아요⁠. 금괴는 거스름돈이 안 나와서⁠.⁠”

바르텐은 금괴를 받지 않았다⁠. 도팔석의 얼굴을 오래 봤다⁠. 이 눈길이 사람을 다는 눈길이라는 걸 도팔석은 알았다⁠. 명퇴 면담 때 인사팀장이 그런 눈으로 도팔석을 봤다⁠.

“⁠그대의 빚은 일억 사천이라 들었소⁠. 이건 그 무게요⁠.⁠”

“⁠알아요⁠. 들어 보니까 무겁더라고요⁠.⁠” 도팔석은 팔을 거두지 않았다⁠. 금괴를 쥔 손이 무게를 못 이기고 공중에서 조금씩 내려갔다⁠. “⁠근데 손님⁠. 세 해 전에 이 골목에서 영감님 한 분이 얼어 돌아가셨어요⁠. 우리 가게 단팥빵 들고⁠. 그 할머니가 고맙다고 금화를 놓고 갔어요⁠. 나는 그 금화 하나도 못 썼어요⁠. 이건 그보다 무거워서⁠, 더 못 써요⁠.⁠”

바르텐의 얼굴에 처음으로 무언가가 스쳤다⁠. 도팔석은 이것이 무엇인지 끝내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손을 뻗어 금괴를 받았다⁠. 손바닥 위에서 한 번 위아래로 흔들어 무게를 달았다⁠. 그리고 이것을 짐꾼에게 넘겼다⁠.

“⁠세 해 전 겨울이라면⁠.⁠” 바르텐이 말했다⁠. “⁠그 노인은 내 상회 짐꾼이었소⁠. 그 겨울 녹봉을 마정석으로 받았는데⁠, 땔감 값이 올라 그 돌로 빵을 못 샀지⁠. 그래서 이 문까지 왔던 거요⁠.⁠”

도팔석의 입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도팔석은 겨우 한마디를 물었다⁠. “⁠…⁠…그럼 그 할머니는요⁠?⁠”

“⁠봄에 갔소⁠. 관은 내 상회가 샀소⁠.⁠” 바르텐은 이 말을 장사 이야기처럼 했다⁠. “⁠관 값은 그 할멈이 남긴 금화 한 닢으로 치렀지⁠. 그대 가게에서 나간 그 금화요⁠.⁠”

“⁠그러니 그대와 나는 같은 사람에게 물건을 팔았소⁠. 그대는 빵을⁠, 나는 돌을⁠.⁠” 바르텐은 천칭을 허리에서 풀어 손에 들었다⁠. 빈 접시 둘이 서로 높이를 바꾸며 흔들렸다⁠. “⁠값을 받지 않겠다면⁠, 값 없이 쓰겠소⁠. 사흘 뒤가 하르펜 장날이오⁠. 장날 밤⁠, 내 사람 서른이 상자를 들고 이 문을 지나갈 거요⁠.⁠”

“⁠우리 가게는 지방 손님이 앞문으로 못 나가요⁠.⁠” 도팔석이 말했다⁠. 말하고 나서 자기가 처음으로 이 말을 법처럼 말했다는 걸 알았다⁠.

“⁠알고 있소⁠. 그래서 그쪽 거리에 내 일꾼이 수레를 댈 거요⁠. 내 사람들은 상자를 들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오⁠. 들고 나가는 건 그쪽 사람 손이오⁠.⁠” 바르텐은 다율을 봤다⁠. 다율이 도팔석의 어깨 뒤에 서 있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시오⁠. 서른이오⁠. 아가씨의 국물로 산 마흔은 그날 밤 성문을 지켜야 할 거요⁠. 장날 밤에 성문을 비우는 경비대장은 없소⁠.⁠”

바르텐은 천칭을 허리에 도로 걸었다⁠. 짐꾼이 횃불을 들어 길을 비췄다⁠.

도팔석은 문을 닫지 않았다⁠. 문턱 위에 선 채로⁠, 처음으로 이 문밖을 향해 한 걸음을 내밀었다⁠. 슬리퍼 앞코가 하르펜의 차가운 눈에 닿았다⁠. 발을 거두지 않았다⁠.

“⁠손님⁠.⁠” 도팔석이 바르텐의 등에 대고 말했다⁠. “⁠장날 밤에 오시면⁠, 우리 가게는 문 열어 놓고 기다릴게요⁠. 손님이 서른이면 계산대도 두 개 열고⁠.⁠”

바르텐이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바르텐의 어깨 위로 눈이 쌓이는 사이⁠, 쥐꼬리 골목 저 끝에서 횃불 서너 개가 새로 켜지는 것이 보였다⁠. 사흘을 기다리지 않는 횃불이었다⁠. 털모자들이 골목 양쪽 벽에 붙어 서서⁠, 이쪽 문을 세고 있었다⁠. 등 뒤에서 다율이 작게 횃불을 세는 소리가 들렸다⁠. 넷⁠, 다섯⁠, 여섯⁠. 일곱에서 소리가 멈추고⁠, 누군가 바르텐의 앞치마 끈을 잡아당겼다⁠. 도팔석은 슬리퍼를 문턱 너머에 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7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