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27자)
남문 문지기
삼류 여포두 · 설묵향
항주 지부는 저녁에는 게 대신 홍시를 먹었다. 대청 상 위에 홍시 열 개가 접시에 담겨 있었고, 지부는 은 숟가락으로 홍시 꼭지를 따고 속을 떠먹었다. 달고 무른 냄새가 대청 안을 채웠다. 숟가락이 접시를 긁는 소리가 미향이 서 있는 섬돌 아래까지 내려왔다. 대청 기둥 옆에는 쥐수염 송사꾼이 부채를 쥐고 서 있었다. 오늘은 부치지 않았다.
“조 포두.” 지부가 홍시 하나를 비웠다. “현령이 판결을 썼더군. 사건을 부로 올린다고. 그건 잘했어. 사람 죽인 죄는 부가 보는 게 맞지.”
“그렇습니다, 영감.”
“그런데 현령이 부의 포두를 빌려 썼다는 말을 들었네. 내 허락 없이.” 지부가 다음 홍시를 집었다. “부의 포두는 부의 일을 해야지. 오늘부터 이 사건에서 손을 떼게. 부 법정에는 부 관아의 다른 포두가 나설 걸세.”
“영감, 증인들이 저를 믿고 나섰습니다. 세미 아가씨는 비파 목이 잘린 밤에도…….”
“그러니까 더 손을 떼야지. 증인이 포두를 믿고 나서면 그건 포두의 증인이지 관아의 증인이 아니야.” 지부가 송사꾼 쪽을 흘끗 보았다. 송사꾼이 고개를 숙였다. 이 말을 누가 지부의 입에 넣어 주었는지 미향은 알았다. “그리고 여준결은 오늘 밤 집에 돌아가네. 다섯 세가가 함께 보증을 섰어. 세가 장남이 도망칠 리도 없고, 부 관아 옥에 무인을 넣어 두면 옥지기가 밤마다 겁을 먹을 테니.”
“영감, 피고를 집으로 돌려보내면 그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무슨 일이 생기겠나? 아버지가 아들을 지키겠지.” 지부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에 묻은 홍시를 하인이 내미는 수건에 닦았다. “부 법정은 한 달 뒤에 여네. 서류를 다시 살피고, 증인들을 다시 부르고, 시신도 이제 그만 땅에 묻게 하고. 아비가 안 묻겠다 하면 관아가 묻어 주지.”
한 달. 함두봉의 말이 떠올랐다. 멍은 이레, 뼈의 혹은 한 달. 미향은 섬돌 위의 지부를 올려다보았다. 지부의 입가에 홍시 속살이 붉게 묻어 있었다.
“영감, 한 달이면 여 공자 손등의 혹이 빠집니다.”
대청이 조용해졌다. 서리가 붓을 멈췄다. 지부는 처음으로 미향을 오래 보았다.
“자네, 지금 부의 지부가 날짜를 그 혹에 맞췄다고 말하는 건가?”
“혹이 날짜에 맞춰 빠진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송사꾼의 부채 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지부가 웃었다. 소리를 내서 웃었다.
“조 포두, 자네 아버지는 말을 아꼈네. 자네는 아버지한테서 쇠사슬만 받고 입은 안 받았군.” 지부가 손을 들었다. “남문으로 가게. 오늘부터 한 달 동안 남문 경비를 맡게. 문을 지키는 일이니 패는 두고 가지 않아도 되네. 성문 문지기는 나리도 아니고 아씨도 아니니, 사람들이 자네를 부르기도 편하겠군.”
서리 하나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었다. 웃음을 참는 것이었다. 미향은 허리를 숙였다.
“예, 영감. 남문으로 가겠습니다.”
*
남문은 항주 성에서 가장 시끄러운 문이었다. 전당강 나루에서 올라오는 짐수레와 소금 지게, 남쪽 고을에서 오는 장꾼, 절에 가는 아낙들, 집 나간 개를 찾는 아이들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이 문을 드나들었다. 성문 문지기는 수레에 실린 짐을 들추고, 낯선 얼굴에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묻고, 해가 지면 문을 닫았다. 문 옆 초소에는 낡은 의자 하나와 물 항아리 하나, 쥐가 갉아 먹은 흔적이 있는 이불 한 채가 있었다.
첫날 미향은 소금 수레 밑에 숨겨 들여오던 게 두 바구니를 찾아냈다. 수레꾼이 바구니를 끌어안고 울었다.
“문지기 나리, 아니, 아씨, 이건 소금이 아니라 게입니다요. 게는 세금이 없지 않습니까?”
“게는 세금이 없지. 그런데 왜 숨겼나?”
“지부 영감 댁 부엌에 들어가는 게라서, 다른 사람이 보면 달라고 할까 봐…….”
미향은 게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노란 장이 가득 찬 서호 게가 집게발을 허우적거렸다. 바구니를 도로 덮어 주었다.
“지부 영감께서 내일 아침에 맛있게 드시겠군. 가게.”
두 번째 날부터 남문 초소에 사람들이 들렀다. 처음에는 국수집 아낙이 국수 한 그릇을 들고 왔다. 공판 날 골목에서 국수를 팔던 이 아낙이었다. 아낙은 국수를 내려놓고 목소리를 낮췄다.
“포두 아씨, 들은 게 있어서요. 그 외눈 객경 말이오, 육씨 집에서 나왔대요. 비무 다음 날 바로. 지금 전당강 나루 노름판에서 산다고, 우리 집 국수 먹으러 오는 뱃사람이 그럽디다.”
세 번째 날에는 청파루 사공 노인이 왔다. 이 사람은 초소 앞을 그냥 지나가는 척하다가 돌아와서, 의자에 앉은 미향을 보지 않고 말했다.
“부 법정이 열리면 부르시오. 노만 본 게 아니오.”
그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네 번째 날에는 서당 훈장이 와서 율 책 한 권을 놓고 갔다. 사람 죽인 사건을 부에서 다룰 때 피고를 집에 두는 것이 율에 맞는지 밤새 찾아보았는데 아직 못 찾았다고, 찾으면 다시 오겠다고 했다. 다섯 번째 날에는 남문을 드나드는 장꾼 가운데 세 사람이 이날 밤 서호 물가에서 놀잇배 등롱이 갑자기 꺼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갔다. 미향은 이 말을 다 기억했다. 하루 해가 질 때마다 초소 앞에 서 있다 가는 사람이 늘었다. 남문 문지기들 사이에서 말이 돌았다. 남문 초소에 가면 법정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문지기 하나가 미향에게 물었다.
“조 포두, 여기가 성문입니까, 관아입니까?”
“문이지. 문은 원래 사람이 지나가는 데야.”
*
이 주에 관아는 아영을 땅에 묻기로 했다. 공치삼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 굴의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고 함두봉이 공치삼의 손을 잡고 말한 날이었다. 함두봉은 이 말을 공치삼이 아니라 공치삼의 손에 대고 했다.
장례 행렬은 남문으로 나갔다. 성안 사람을 성 밖 공동 묘지에 묻으려면 이 문밖에 없었다. 미향은 초소 앞에 서서 행렬이 오는 것을 보았다. 행렬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공치삼이 손수레를 끌었고, 손수레 위에 얇은 소나무 관 하나가 실려 있었다. 관 위에 붕어 새긴 노가 없었다. 노는 부 관아 증물 창고에 있었다. 대신 아영이 쓰던 그물 한 자락이 덮여 있었다. 함두봉이 수레 뒤를 밀었고, 너울을 쓴 세미가 목 부러진 비파를 안고 따랐다. 뒤에 붕어골 사람 몇이 걸어왔다. 많지 않았다.
수레가 성문 앞에서 멈췄다. 공치삼이 이마의 땀을 소매로 닦고 미향을 보았다.
“문지기. 문을 지나려면 이름과 갈 곳을 대야 한다면서요.”
미향은 대답을 하려다 목이 막혔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대 주시오.”
“붕어골 공아영. 스물. 남문 밖 산으로 가오. 짐은 그물 한 자락.” 공치삼이 수레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문지기는 못 따라오지요?”
“해 지기 전에는 문을 떠날 수 없소.”
“그럼 여기서 보시오. 여기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요.”
수레가 문을 지나갔다. 바퀴가 성문 문턱 돌을 넘을 때 덜컹 하고 관이 한 번 들썩였다. 미향은 손을 뻗을 뻔했다. 행렬이 길을 따라 작아질 때까지 성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장꾼 하나가 수레를 몰고 들어오려다 미향을 보고 멈춰 기다렸다. 뒤의 소금 지게꾼도, 절에 가는 아낙도 기다렸다. 아무도 비키라고 말하지 않았다. 행렬이 산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미향은 문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러고는 소매로 눈을 문지르고, 장꾼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
여섯 번째 날 오후, 남문 안쪽 길에서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사냥 차림의 사내 열 남짓이 말을 몰고 왔다. 맨 앞에 흰 말을 탄 여준결이 있었다. 허리에 활을 찼고, 오른손에는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뒤따르는 무리 가운데 상관씨 가주가 있었다. 이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성문을 지키던 문지기들이 길을 비키려고 했다.
미향이 초소에서 나와 성문 한가운데 섰다.
말들이 한꺼번에 앞발을 들고 멈췄다. 흙먼지가 미향의 얼굴을 덮었다. 미향은 눈을 감지 않았다. 여준결이 고삐를 당겨 흰 말을 돌리며 미향을 내려다보았다.
“포두 아씨, 여기서 뭐 하시오?”
“남문을 지키오. 지부 영감 명이오.” 미향이 말했다. “성문을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려 이름과 갈 곳을 대야 하오. 짐이 있으면 짐을 보여야 하고.”
상관씨 가주가 말 위에서 웃었다.
“세가 사람들한테도? 서호 세가가 남문을 지날 때 말에서 내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소?”
“오늘 처음이 되겠지요.”
상관씨 가주가 말채찍을 들었다. 여준결이 손을 들어 이것을 막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말에서 내렸다. 가죽 장갑 낀 손으로 고삐를 쥐고 미향 앞에 섰다.
“여씨 세가 여준결. 전당강 건너 산으로 사냥 가오. 짐은 활 하나와 화살 서른 대.” 여준결이 웃었다. “됐소?”
“장갑을 벗어 주시오. 손에 짐이 있는지 봐야겠소.”
여준결의 웃음이 멈췄다. 뒤의 사내들이 웅성거렸다. 여준결은 한동안 미향을 내려다보다가 장갑을 벗었다. 오른손 손등의 혹이 아직 만져질 만큼 남아 있었다. 이 손을 미향 눈앞에 들어 보였다.
“스무 날이면 다 빠질 거라더군. 아버지가 부르신 의원이 그럽디다.” 여준결이 장갑을 다시 끼었다. “포두 아씨, 내가 왜 말에서 내렸는지 아시오?”
“규칙이라서요?”
“아니. 아씨가 문 한가운데 서 있어서요. 말이 아씨를 밟을까 봐.” 여준결이 다시 말에 올랐다. “그 노는 지금 부 관아 증물 창고에 있소. 창고 열쇠는 추관이 갖고 있고, 추관은 오늘 아침 우리 아버지와 차를 마셨소. 한 달은 기오, 포두 아씨.”
말들이 미향 곁을 지나 성문을 빠져나갔다. 흙먼지가 다시 일었다. 미향은 먼지 속에서 여준결의 마지막 말을 오래 붙들고 서 있었다.
*
해 질 녘 옥담이 초소로 왔다. 얼굴 왼쪽이 시퍼렇게 부어 있었고, 입술이 터져 있었다.
“포두, 증물 창고에 가 봤는데요, 추관 영감이 들여보내 주질 않아서 창고 뒤로 돌아가 봤는데요, 거기서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는…….” 옥담이 부은 뺨을 손으로 감쌌다. “노는 아직 거기 있어요. 창살 사이로 봤어요. 붕어 새긴 거. 맞기 전에 봤어요.”
미향은 물 항아리에 수건을 적셔 옥담의 얼굴에 대 주었다. 옥담이 아파서 몸을 비틀다가 말했다.
“그런데 포두, 맞으면서 생각해 봤는데요, 이제 포두 나리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씨 밑에서 맞았다고 하면 너무 창피하잖아요.”
“나리 밑에서 맞았다고 하면 안 창피한가?”
“그럼 좀 덜 창피하죠.”
미향은 웃으려다가 말았다. 성문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웅성거림이었고, 이 소리가 점점 커졌다. 초소 밖으로 나갔다.
남문 밖 길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서른, 마흔, 쉰. 등에 빈 광주리를 진 사람, 그물을 어깨에 걸친 사람, 아이를 안은 여자. 붕어골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광주리에서 생선 비린내가 났다. 팔지 못한 생선이었다. 맨 앞에 선 늙은 어부가 미향을 보고 소리쳤다.
“포두 아씨! 오늘 아침부터 서호 세가 다섯 집 부엌에서 우리 생선을 안 받소! 하나도! 성안 생선 도매상들도 세가 눈치 보느라 안 받소! 이게 다 누구 때문이오?”
뒤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미향은 성문 한가운데 서서 이 소리들을 다 맞았다. 공치삼은 이 무리 안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