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01자)

생선 값

삼류 여포두 · 설묵향

두 번째로 법정이 열리는 아침⁠, 현 관아 앞 골목은 이레 전보다 세 배로 붐볐다⁠.

미향은 사람들 머리 위로 지붕들을 보았다⁠. 이웃 집 기와 위에도 사람이 앉아 있었다⁠. 누가 사다리를 놓고 돈을 받고 있었다⁠. 사다리 한 번 오르는 데 다섯 문이었다⁠. 골목 입구에서는 국수집 아낙이 솥을 내다 걸고 국수를 말았고⁠, 이 옆에서 군밤 장수가 밤을 튀겼다⁠. 탁탁 튀는 밤 껍질 소리와 국수 육수의 멸치 냄새가 골목을 메웠다⁠. 사람들은 국수 그릇을 들고 서서 관아 대문을 보며 말했다⁠.

“⁠공 영감이 은자를 받았다며⁠?⁠”

“⁠삼백 냥이래⁠, 삼백 냥⁠. 나 같아도 받지⁠.⁠”

“⁠그럼 오늘 법정은 왜 열어⁠?⁠”

“⁠세가 송사꾼이 화해 끝났다고 도장 받으러 오는 거지⁠.⁠”

미향은 대문 앞 돌계단에 서서 이 말들을 다 들었다⁠. 세미가 미향 옆에 서 있었다⁠. 미향이 준 회색 너울을 쓰고 있었는데⁠, 너울 끝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미향의 반대쪽에 함두봉이 상자를 안고 섰다⁠. 두 사람 다 미향보다 반걸음 뒤에 서 있었다⁠.

“⁠포두님⁠, 공 영감님이 정말 받으셨을까요⁠?⁠”

“⁠받으셨겠지⁠.⁠” 미향이 말했다⁠. “⁠여문태 가주가 손수 내려놓고 간 상자를 문밖에 두면⁠, 붕어골 사람들이 그 상자 하나 때문에 밤새 싸웠을 거요⁠.⁠”

골목 저쪽에서 웃음 섞인 웅성거림이 일었다⁠. 사람들이 갈라졌다⁠. 공치삼이 오고 있었다⁠. 등에 지게를 졌고⁠, 지게 위에 검은 칠을 한 상자가 얹혀 있었다⁠. 여씨 세가의 은자 상자였다⁠. 한 손에 거적으로 둘둘 만 긴 물건을 들고 있었다⁠. 지게 무게에 허리가 굽었는데도 걸음이 빨랐다⁠.

“⁠영감⁠, 그거 지고 어디 가오⁠?⁠”

“⁠법정 가오⁠.⁠” 공치삼이 대답했다⁠. “⁠물건은 들고 가야 값을 매기지⁠.⁠”

*

현령은 오늘도 국화를 법대에 올려놓았다⁠. 이번에는 흰 국화였다⁠. 마당은 담장 위까지 사람으로 찼고⁠, 대청 문 앞에는 세가 무사 서른이 칼을 차고 서 있었다⁠. 여준결은 고소인 자리 맞은편에 섰다⁠. 오른손의 비단은 그대로였다⁠.

쥐수염 송사꾼이 먼저 부채를 폈다⁠.

“⁠사또⁠, 오늘 법정은 짧게 끝날 겁니다⁠. 고소인 공치삼은 엊그제 밤 여씨 세가 가주께서 손수 건네신 피값 삼백 냥을 받아 제 집에 들였습니다⁠. 붕어골 사람 스무 명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강호에서 피값을 받는 것은 원한을 내려놓는다는 뜻입니다⁠. 고소인이 원한을 내려놓았으니 고소도 내려놓은 것으로 보아 주십시오⁠. 법정을 닫으시면 됩니다⁠.⁠”

현령이 공치삼을 보았다⁠. 공치삼은 지게를 대청 바닥에 내려놓고 증언대 자리에 섰다⁠.

“⁠공치삼⁠, 송사꾼의 말이 맞소⁠? 피값을 받았소⁠?⁠”

“⁠받았소⁠, 사또⁠.⁠”

마당에서 탄식과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송사꾼이 부채를 접었다⁠. 현령이 경당목을 들었다⁠. 공치삼이 손바닥을 내밀어 이것을 막았다⁠.

“⁠사또⁠, 그런데 하나 여쭙겠소⁠. 고소를 무르면 얼마요⁠?⁠”

“⁠무엇이 얼마란 말이오⁠?⁠”

“⁠북 친 값 말이오⁠. 내가 북을 쳤으니 관아에서 북 값을 받을 거 아니오⁠. 무르면 그 값을 돌려주는 거요⁠, 아니면 관아가 먹는 거요⁠?⁠”

현령이 눈을 껌벅였다⁠. “⁠북 치는 데 값은 없소⁠.⁠”

“⁠값이 없소⁠? 그럼 법정 여는 데는⁠?⁠”

“⁠그것도 없소⁠.⁠”

“⁠사또 국화는⁠?⁠”

“⁠그건 내 거요⁠.⁠”

마당이 웃음으로 무너졌다⁠. 지붕 위에서 누군가 박수를 쳤다⁠. 현령이 귀까지 붉어져 경당목을 쳤다⁠. 공치삼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값이 없는 걸 무를 수는 없소⁠. 붕어도 안 산 놈이 물리자고 하면 내가 웃지⁠.⁠” 공치삼은 지게 위의 상자를 내렸다⁠. 뚜껑을 열었다⁠. 은자가 가득했다⁠. 그리고 공치삼은 상자를 두 손으로 들어 거꾸로 뒤집었다⁠.

삼백 냥이 대청 바닥에 쏟아졌다⁠. 은덩이들이 돌바닥을 때리며 사방으로 굴렀다⁠. 이 소리가 마당까지 퍼지는 동안 아무도 웃지 않았다⁠. 굴러간 은덩이 하나가 여준결의 신 앞에서 멈췄다⁠.

“⁠세어 보시오⁠. 삼백 냥이오⁠. 하나도 안 썼소⁠. 받았소⁠. 받아서 이 바닥에 붓고 싶어서 받았소⁠.⁠” 공치삼이 숨을 골랐다⁠. “⁠여씨 가주가 우리 집 마당에 이걸 내려놓고 갔을 때⁠, 우리 마을 사람들이 밤새 내 집 앞에 서 있었소⁠. 받으라고⁠. 붕어골이 겨울을 나려면 받으라고⁠. 그래서 받았소⁠. 여기 가지고 오려고⁠. 이 돈이 우리 아영이 값이라고 하니⁠, 그 값을 사또 앞에서 한번 보시라고⁠.⁠”

공치삼이 거적에 만 물건을 풀었다⁠. 노였다⁠. 사람 키보다 조금 짧은 작은 노⁠. 손잡이 끝에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붕어 한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비늘을 하나하나 칼끝으로 쪼아 낸 서툰 붕어였다⁠. 이 붕어의 배 부분이 갈라져 있었다⁠. 손잡이를 따라 금이 길게 나 있었고⁠, 금 사이에 검붉은 것이 말라붙어 있었다⁠.

“⁠이건 아영이 노요⁠. 손잡이 붕어는 아영이가 열여섯 살 때 새겼소⁠. 이 노가 그날 밤 물에 떠내려갔는데⁠, 청파루 사공 영감이 건져서 며칠 동안 제 뱃바닥 밑에 숨겨 두었다가 엊그제 밤 내 집에 가지고 왔소⁠. 미안하다면서⁠.⁠” 공치삼이 노를 현령의 법대 앞에 세웠다⁠. “⁠사또⁠, 이 은자 삼백 냥하고 이 노 한 자루하고 어느 게 비싸오⁠? 나는 이 노요⁠. 이건 안 파오⁠.⁠”

마당 어딘가에서 국수 그릇이 떨어져 깨졌다⁠. 아무도 그쪽을 보지 않았다⁠.

*

세미가 너울을 벗고 증언대에 섰을 때⁠, 송사꾼은 세미를 오래 쳐다보고 나서 웃었다⁠.

“⁠청파루의 탁세미 아가씨지요⁠. 빚이 이백 냥⁠. 지난 이레 동안 포두 집에서 먹고 잤고⁠. 포두가 먹여 주고 재워 준 증인이 포두가 바라는 말을 하는 것을 사또께서는 증언이라 부르시겠습니까⁠?⁠”

세미의 손이 치맛자락을 쥐었다⁠. 미향은 세미의 손을 보았다⁠. 비파 줄을 고르는 손가락 모양이었다⁠. 세미는 이 손을 천천히 펴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송사꾼이 아니라 현령을 보며 말했다⁠.

“⁠사또⁠, 저는 그날 밤 갑판 끝에서 비파를 탔습니다⁠. 비무는 육씨 세가 객경의 칼끝이 여 공자의 왼 소매를 길게 가르면서 끝났습니다⁠. 객경은 칼을 거두고 고개를 숙이고⁠, 난간을 넘어 제 배로 뛰어내려 저어 갔습니다⁠. 아무도 손뼉을 치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 여 공자가 아영이 배로 내려섰고⁠, 아영이가 노 손잡이로 그 손을 밀어냈고⁠, 여 공자가 허리까지 물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웃었습니다⁠. 저도 웃었습니다⁠. 그리고 여 공자가 다시 아영이 배 위로 올라와 아영이 앞에 섰습니다⁠. 한 걸음도 안 되는 데에⁠.⁠”

송사꾼이 부채를 펼쳤다가 접었다⁠.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세미가 덧붙였다⁠.

“⁠비무가 끝나고 나서였습니다⁠. 객경의 배는 벌써 등롱 빛 밖으로 나갔습니다⁠.⁠”

*

미향이 법대 앞으로 나섰다⁠.

“⁠사또⁠, 이제 여 공자의 손을 보아야겠습니다⁠. 고소인이 노를 내놓았습니다⁠. 노가 친 손을 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송사꾼이 지난번과 같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현령이 먼저 경당목을 쳤다⁠. 바닥에 흩어진 은덩이를 보고⁠, 법대 앞에 선 노를 보고⁠, 마당을 가득 메운 얼굴들을 보았다⁠.

“⁠여 공자⁠, 비단을 푸시오⁠.⁠”

여준결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왼손으로 비단 끝을 잡아 천천히 풀었다⁠. 한 바퀴⁠, 두 바퀴⁠. 마지막 겹이 떨어지자 손등이 드러났다⁠. 멍은 거의 빠져 있었다⁠. 손가락 뼈가 시작하는 자리에 누르스름한 얼룩이 엷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멍이 없소⁠.⁠” 송사꾼이 즉시 말했다⁠. “⁠손을 다쳤다는 것도 비무에서 다친 것이오⁠.⁠”

“⁠함 오작⁠.⁠” 미향이 불렀다⁠.

함두봉이 나왔다⁠. 산 사람의 손이었다⁠. 이것도 세가 장남의 손이었다⁠. 함두봉은 여준결 앞에 서자마자 혀가 굳었다⁠. 미향이 함두봉의 귀에 대고 말했다⁠.

“⁠손만 보게⁠. 손은 말을 안 하네⁠.⁠”

함두봉이 여준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준결에게 허락을 구하는 눈길을 보냈다⁠. 여준결이 놀랍게도 손을 함두봉에게 내밀었다⁠. 함두봉은 이 손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그러고는 손등에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손아⁠, 너 아팠구나⁠. 셋째 손가락 뼈⁠, 여기 손등 한가운데 뼈에 혹이 났네⁠. 금이 갔다가 붙는 자리에 이렇게 뼈가 덧자라⁠. 멍은 빠져도 이건 한 달은 가⁠. 혹 모양이 길쭉한 걸 보니 둥근 것에 맞은 게 아니라 모난 것에 가로로 맞았구나⁠. 노 손잡이 같은 것에⁠.⁠” 함두봉이 엄지로 혹을 짚었다⁠. 여준결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프지⁠? 미안하다⁠. 그리고 손아⁠, 너한테서 오늘도 약술 냄새가 나는구나⁠. 다친 손에 약술을 바르면 덧나는데⁠, 버릇이 무섭다⁠.⁠”

여준결이 손을 놓고 물러섰다⁠. 미향이 여준결을 보았다⁠.

“⁠여 공자⁠, 이 혹은 비무에서 생긴 것이오⁠, 아니면 노에 맞아 생긴 것이오⁠?⁠”

여준결이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여준결의 눈이 대문 쪽으로 갔다⁠. 대문 밖 어딘가에 여문태가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미향을 보았다⁠. 담장 위에서처럼 웃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소⁠.⁠”

“⁠거짓말이 싫다 하지 않았소⁠?⁠”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요⁠.⁠”

송사꾼이 놀란 얼굴로 여준결을 돌아보았다⁠. 마당이 술렁였다⁠. 송사꾼은 금방 얼굴을 고치고 부채를 다시 폈다⁠.

“⁠사또⁠, 여 공자가 말을 아끼시니 제가 대신 여쭙니다⁠. 그 혹이 노에 맞아 생긴 것이라 칩시다⁠. 그러면 먼저 손을 댄 쪽은 그 아가씨입니다⁠. 강호의 셈으로는 무인의 몸에 먼저 손을 올린 쪽이 되받는 것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맞받아친 것을 살인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율에서는 그것을 맞받아쳤다 하지 않소⁠.⁠” 미향이 말했다⁠. “⁠배에 올라타려는 손을 노 손잡이로 밀어낸 사공에게⁠, 장법 쓰는 무인이 가슴 한가운데 손바닥을 꽂는 것을⁠. 그리고 여 공자는 맞은 그 자리에서 친 것도 아니오⁠. 허리까지 물에 빠졌다가 난간을 잡고 올라와서⁠, 웃음소리를 다 듣고⁠, 다시 그 배로 내려서서⁠, 한 걸음 안에 다가가 쳤소⁠. 그사이에 숨을 몇 번 쉬었는지는 여 공자가 제일 잘 알 거요⁠.⁠”

여준결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다⁠.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현령은 오래 국화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관모를 고쳐 쓰고 경당목을 들었다⁠.

“⁠여준결이 비무가 끝난 뒤 공아영과 마주 서서 손바닥으로 가슴을 쳐 죽게 했다고 이 법정은 보오⁠. 비무 중의 사고라는 말은 받지 않소⁠.⁠” 현령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끊기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을 죽인 죄는 목숨으로 묻는 죄라⁠, 현에서 끝낼 수 없소⁠. 율에 따라 이 사건을 항주부로 올리오⁠. 부의 법정에서 다시 보고 판결을 내릴 것이오⁠.⁠”

경당목이 떨어졌다⁠. 마당이 터질 듯이 들끓었다⁠. 공치삼이 바닥에 주저앉아 은덩이 사이에서 노를 끌어안았다⁠.

이때 대문 쪽에서 징 소리가 울렸다⁠.

검은 관복을 입은 부 관아의 아전들이 마당으로 들어왔다⁠. 맨 앞에 추관 영감이 있었다⁠. 추관 영감은 미향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현령 앞에 섰다⁠.

“⁠지부 영감의 명이오⁠. 사건이 부로 올라왔으니 피고와 증물과 시신을 오늘 부 관아로 옮기라 하시오⁠. 그리고 조 포두는 지금 바로 지부 영감 앞으로 오라 하시오⁠.⁠”

여준결이 비단을 다시 감지 않은 손으로 미향 곁을 지나갔다⁠. 부 관아 아전들이 여준결을 둘러쌌다⁠. 아무도 여준결을 포승으로 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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