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91자)

감나무 집

삼류 여포두 · 설묵향

아침에 옥담이 죽 세 그릇을 들고 감나무 집 대문을 들어서다가 마루에 앉은 세미를 보고 그대로 굳었다⁠. 세미는 미향의 낡은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소매가 손등을 덮을 만큼 길어서 이것을 두 번 접어 올리고 있었다⁠. 이 손목이 가늘었다⁠.

“⁠포⁠, 포두⁠…⁠… 이분이⁠…⁠…⁠”

“⁠청파루 세미 아가씨일세⁠. 오늘부터 며칠 여기 계실 거야⁠.⁠”

“⁠여⁠, 여기요⁠? 포두 댁에요⁠? 그럼 저는 어디서⁠…⁠…⁠.⁠”

“⁠자네는 원래 여기서 안 자잖나⁠.⁠”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계속 안 자면 되는 거지요⁠?⁠” 옥담이 죽 그릇을 마루에 내려놓고 세미에게 꾸벅 절을 했다⁠. 그러고는 미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포두 나리 아씨⁠, 기루 아가씨를 포두 댁에 들이시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동네 아주머니들은 내가 시집 못 간 지 열 해째라고 이미 다 떠드셨네⁠. 하나 더 보태도 괜찮아⁠.⁠”

세미가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웃고 나서 깜짝 놀란 듯 입을 막았다⁠. 어젯밤 대문 앞에서 웃음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었다⁠. 미향은 이 손을 못 본 척하고 죽 그릇 하나를 세미 앞으로 밀었다⁠.

*

함두봉은 해가 중천에 왔을 때 검시 상자를 지고 들어왔다⁠. 마루의 세미를 보자마자 대문 안쪽에서 멈춰 섰다⁠. 산 사람이었다⁠. 이것도 젊은 여자였다⁠.

“⁠아⁠, 아⁠, 안⁠, 안녕⁠…⁠…⁠”

“⁠함 오작⁠, 세미 아가씨 말고 이걸 보게⁠.⁠”

미향이 마루 끝에 놓아둔 비파를 가리켰다⁠. 함두봉의 얼굴이 펴졌다⁠. 함두봉은 상자를 내려놓고 비파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세미가 놀라서 숟가락을 떨어뜨릴 만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파야⁠, 너도 다쳤구나⁠. 목이 잘렸네⁠. 어디 보자⁠.⁠” 함두봉은 부러진 목의 단면을 손끝으로 쓸었다⁠. “⁠매끄럽구먼⁠. 한 번에 갔어⁠. 장법으로 친 거면 나무가 터지듯 갈라지고 결이 일어나는데⁠, 너는 결이 하나도 안 일어났구나⁠. 칼이야⁠. 가는 칼⁠. 칼날이 얇아서 오동나무를 두부처럼 갈랐어⁠.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 쳤구나⁠. 칼끝이 위쪽에 살짝 걸렸다 빠진 자리가 있네⁠.⁠” 함두봉이 코를 대었다⁠. “⁠기름 냄새⁠. 칼에 바르는 동백기름이야⁠. 약술 냄새는 없구나⁠.⁠”

미향이 마루에 쪼그려 앉았다⁠.

“⁠여준결이 아니란 말이오⁠?⁠”

함두봉이 비파에게 대답했다⁠.

“⁠비파야⁠, 포두께 전해라⁠. 이건 장법 쓰는 손이 아니라 가는 칼 쓰는 손이라고⁠. 그리고 올려 베는 버릇이 있는 손이라고⁠.⁠”

세미가 숟가락을 다시 쥐었다⁠. 처음으로 함두봉에게 말을 걸었다⁠.

“⁠오작 어르신⁠, 저한테도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함두봉이 세미를 돌아보았다⁠. 입이 열리고⁠, 혀가 굳고⁠, 얼굴이 붉어졌다⁠. 다시 비파 쪽으로 몸을 틀었다⁠.

“⁠비⁠, 비파야⁠. 네 주인 아가씨가 나한테 말을 거는구나⁠. 나는 산 사람한테는 말이 잘 안 나온다고 네가 좀 전해 다오⁠.⁠”

세미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이번에는 입을 막지 않았다⁠.

*

점심나절 미향은 관아에 불려 갔다⁠. 부 관아 포청 마당에는 포졸 열댓이 모여 있었는데⁠, 미향이 들어서자 모두 입을 다물고 흩어졌다⁠. 흩어지는 손에서 동전 꾸러미가 짤랑거렸다⁠. 미향은 그중 하나의 뒷덜미를 잡았다⁠.

“⁠무슨 내기인가⁠?⁠”

“⁠아⁠, 아닙니다⁠, 포두 나리⁠.⁠”

“⁠나리에 걸었나⁠?⁠”

포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옆에서 다른 포졸이 투덜거렸다⁠. “⁠아씨에 건 사람이 더 많습니다⁠. 기루 아가씨를 집에 들이셨으니 이제 나리는 아니라고들⁠…⁠…⁠.⁠”

“⁠그럼 내일부터는 아씨 쪽이 이기겠네⁠. 나는 내일도 포승을 들고 나올 거니까⁠, 그때 다시 걸게⁠.⁠”

추관 영감은 포청 대청에서 미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은 미향이 섬돌에 올라서기도 전에 소리부터 질렀다⁠.

“⁠조 포두⁠! 기루 계집을 집에 들였다며⁠? 포두 집에 기루 계집이라니⁠, 성안에 소문이 다 났어⁠!⁠”

“⁠증인입니다⁠, 영감⁠. 어젯밤 누가 칼로 그 사람 비파 목을 잘랐습니다⁠. 다음은 그 사람 목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청파루로 돌려보내란 말이야⁠. 청파루 행수가 오늘 아침 지부 영감께 하소연을 했어⁠. 빚 이백 냥 진 아이를 포두가 빼돌렸다고⁠.⁠” 추관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조 포두⁠, 이건 내가 자네 아버지 얼굴을 봐서 하는 말일세⁠. 지부 영감께서 이 사건을 현에서 부로 가져오실 궁리를 하고 계셔⁠. 현령이 법정을 열었으니 끝을 내야 하는데⁠, 현령 손에 맡겨 두면 무슨 판결이 나올지 모른다고⁠. 부로 오면 자네 손에서는 떠나는 거야⁠.⁠”

미향은 대청 마루의 결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서른 해 동안 무릎 꿇었던 자리였다⁠. 마루 한쪽이 거기만 조금 패어 있었다⁠.

“⁠영감⁠, 이레 동안은 현령의 법정입니다⁠.⁠”

“⁠이레 지나면⁠?⁠”

“⁠그때 다시 오겠습니다⁠.⁠”

추관이 혀를 차고 손을 내저었다⁠. 미향이 대청을 나서자 마당의 포졸들이 다시 모여 동전 꾸러미를 흔들었다⁠. 누군가 외쳤다⁠. “⁠나리에 다섯 문 더⁠!⁠”

*

오후 늦게 공치삼이 왔다⁠. 붕어 두 마리를 짚으로 꿰어 들고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서 마루의 세미를 보고는 한참 서 있었다⁠. 세미도 일어섰다⁠.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사이였다⁠. 아영이 둘 사이에 있었을 때는 서로 이름만 알았다⁠.

“⁠청파루 비파 아가씨요⁠?⁠”

“⁠예⁠. 세미예요⁠.⁠”

“⁠우리 아영이 붕어를 사 주던 아가씨요⁠?⁠”

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었다⁠. 마루 위에서⁠, 공치삼을 향해⁠.

“⁠어르신⁠, 저 그날 밤 웃었어요⁠. 아영이 노에 맞은 도련님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다들 웃으니까 저도 따라 웃었어요⁠. 그 웃음소리 듣고 그 사람이⁠…⁠…⁠.⁠”

공치삼은 대답하지 않았다⁠. 짚에 꿴 붕어를 들어 올려 들여다보았다⁠. 아가미가 아직 붉었다⁠.

“⁠아가씨⁠, 아영이가 그 도련님을 노로 쳤소⁠?⁠”

“⁠예⁠.⁠”

“⁠세게 쳤소⁠?⁠”

“⁠딱 소리가 났어요⁠.⁠”

공치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향이 이후로도 오래 기억하게 될 얼굴로 웃었다⁠.

“⁠잘 쳤구먼⁠. 허리로 쳤겠지⁠. 내가 그렇게 가르쳤소⁠.⁠” 공치삼이 붕어를 세미 앞에 내려놓았다⁠. “⁠웃은 건 아가씨 잘못이 아니오⁠. 우스웠으니 웃었지⁠. 세가 도련님이 계집애 노에 맞고 물에 빠졌는데 안 웃으면 그게 이상한 거요⁠. 아영이도 웃었을 거요⁠. 나라도 웃었소⁠.⁠” 공치삼은 쪼그려 앉아 세미와 눈을 맞췄다⁠. “⁠붕어 두 마리요⁠. 아영이가 아가씨한테 팔던 값으로 치면 서른 문인데⁠, 오늘은 덤으로 드리오⁠. 덤은 파는 쪽이 주는 거요⁠.⁠”

세미가 붕어를 받아 들었다⁠. 비린내가 세미의 소매에 배었다⁠. 이 냄새를 맡으며 오래 울었다⁠. 소리를 내서 울었다⁠. 공치삼은 이 울음이 그칠 때까지 마루 끝에 앉아 감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감 하나가 툭 떨어져 마당에서 터졌다⁠. 옥담이 이것을 주워 소매로 닦아 먹었다⁠.

“⁠포두⁠, 공판 날 나 이 아가씨랑 같이 법정에 가겠소⁠.⁠” 공치삼이 말했다⁠. “⁠아가씨⁠, 같이 가 주겠소⁠?⁠”

세미가 붕어를 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

밤이 깊었을 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 번⁠, 정중하게⁠.

미향은 대문을 열기 전에 세미를 안방에 들여보내고⁠, 쇠사슬을 손에 감았다⁠. 문밖에 여문태가 혼자 서 있었다⁠. 호위도⁠, 하인도⁠, 등롱도 없었다⁠. 회색 도포 자락에 밤이슬이 앉아 있었다⁠.

“⁠들어가도 되겠소⁠, 조미향⁠.⁠”

“⁠마당까지만 들어오시오⁠.⁠”

여문태는 마당 한가운데 감나무 아래까지 걸어와 섰다⁠.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조 포두가 이 나무를 심던 해를 기억하오⁠. 자네가 태어난 해였지⁠. 딸이 생겼다고 관아 사람들에게 술을 샀소⁠. 나도 한 잔 얻어 마셨소⁠.⁠”

미향은 이 말을 처음 들었다⁠. 아버지는 감나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사슬을 쥔 손을 내리지 않았다⁠.

“⁠용건을 말씀하시오⁠, 가주⁠.⁠”

“⁠어젯밤 청파루에서 비파를 자른 자는 상관씨 집 무사요⁠. 상관씨 가주가 제 마음대로 보냈소⁠. 내가 오늘 그 무사의 손가락 둘을 받았소⁠.⁠” 여문태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 아가씨는 이제 아무도 건드리지 않소⁠. 내 이름으로 약조하오⁠. 청파루 빚 이백 냥도 내가 갚겠소⁠. 세미 아가씨는 원하는 데로 가서 비파를 타면 되오⁠.⁠”

“⁠그 값으로 무엇을 원하시오⁠?⁠”

“⁠법정에서 내려오시오⁠.⁠” 여문태가 미향을 보았다⁠. “⁠그 대신 준결이는 내가 벌하겠소⁠. 세가 다섯 가주를 모아 강호의 자리를 열고⁠, 장남 자리를 거두고⁠, 세 해 동안 서호를 떠나게 하겠소⁠. 강호에서는 그것이 목을 내놓는 것 다음으로 무거운 벌이오⁠. 공치삼에게는 붕어골 배를 다 새로 지어 주겠소⁠. 그 아이 무덤은 서호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쓰겠소⁠.⁠”

미향은 감나무 그림자 속에 선 여문태를 보았다⁠. 여문태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이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대답이 더 무거웠다⁠.

“⁠가주⁠. 아드님을 벌하는 사람이 가주이고⁠, 벌을 정하는 자리가 가주의 집이고⁠, 벌을 받았는지 지켜보는 눈이 가주의 친구들이면⁠, 그건 벌이 아니라 집안일이오⁠. 공치삼은 집안일을 보러 북을 친 게 아니오⁠.⁠”

“⁠그럼 무엇을 보러 쳤소⁠?⁠”

“⁠딸을 죽인 사람이 남의 자리에서⁠, 남의 눈 앞에서⁠, 남이 정한 대가를 받는 것을 보러 쳤소⁠.⁠”

여문태가 오래 말이 없었다⁠. 바람이 감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익은 감 하나가 여문태의 발치에 떨어져 터졌다⁠. 이것을 내려다보았다⁠.

“⁠조 포두도 스물두 해 전 이 마당에서 똑같은 말을 했소⁠. 남의 자리⁠, 남의 눈⁠. 나는 그 말을 믿었소⁠.⁠” 여문태가 미향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남의 자리가 내 동생의 목을 잘랐소⁠. 은자 몇백 냥에⁠.⁠”

미향의 손에서 사슬이 한 고리 미끄러졌다⁠. 납 추가 마당 흙에 떨어졌다⁠.

“⁠무슨 말씀이오⁠?⁠”

“⁠자네 아버지에게 물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시오⁠.⁠” 여문태가 대문 쪽으로 걸었다⁠. 문 앞에서 여문태는 한 번 멈췄다⁠. “⁠조미향⁠, 경고 하나만 하겠소⁠. 이 길로 가면 붕어골은 이번 겨울을 못 나오⁠. 세가들은 내가 막는다 해도 붕어골 생선을 사지 않을 거요⁠. 그건 내가 시키는 게 아니라⁠, 체면이 시키는 거요⁠. 그 마을 사람들이 굶을 때 그대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소⁠?⁠”

여문태는 대답을 듣지 않고 나갔다⁠. 대문이 닫혔다⁠. 안방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이 틈으로 세미의 눈이 보였다⁠.

“⁠포두님⁠, 아버님 이야기는 처음 들으신 거예요⁠?⁠”

“⁠감나무 이야기도 처음이오⁠.⁠” 미향은 마당에 떨어진 납 추를 주워 사슬을 다시 손에 감았다⁠. 고리 마흔아홉 개가 차례로 손바닥을 지나갔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분이었소⁠. 이 사슬을 내게 줄 때도 던지는 법만 가르치고⁠, 누구에게 던졌는지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소⁠.⁠”

세미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턱에 앉아⁠, 미향이 사슬을 다 감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

새벽⁠, 감나무 집 대문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주먹으로 쾅쾅⁠. 옥담이었다⁠.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포두⁠! 붕어골에서 사람이 왔는데요⁠, 공 영감이⁠, 공 영감이 어젯밤에 여씨 집 은자 상자를 받았답니다⁠. 여씨 가주가 붕어골까지 가서 손수 내려놓고 갔는데⁠, 영감이 그걸 집 안에 들였대요⁠. 마을 사람들이 다 봤대요⁠.⁠”

미향은 대문 기둥을 짚었다⁠. 기둥이 밤이슬에 젖어 차가웠다⁠. 마루 위에 어제 공치삼이 놓고 간 붕어 두 마리가 짚에 꿰인 채 놓여 있었다⁠. 세미가 이것을 소금에 절여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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