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14자)

비파 줄

삼류 여포두 · 설묵향

청파루의 차는 한 잔에 서른 문이었다⁠.

행수 해란은 이 값을 차를 따르기 전에 말했다⁠. 마흔 줄의 여자였고⁠, 눈가에 분을 두껍게 바르지 않아 잔주름이 그대로 보였다⁠. 서호 북쪽 물가에 기둥을 박아 물 위로 내지은 기루였다⁠. 아래층 마루 틈으로 물빛이 어른거렸고⁠, 기둥에 부딪는 잔물결 소리가 찻잔 받침 밑에서 올라왔다⁠. 위층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와 술잔 부딪는 소리가 내려왔다⁠. 해 질 녘이라 서호 위의 하늘이 감 껍질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포두 아씨⁠, 여기는 관아가 아니라 기루예요⁠. 기루에서는 무엇을 물어도 다 값이 있어요⁠.⁠” 해란이 찻주전자를 기울였다⁠. “⁠물음 하나에 차 한 잔⁠. 대답이 마음에 안 드셔도 찻값은 받아요⁠.⁠”

“⁠그럼 따르시오⁠.⁠”

해란이 따랐다⁠. 미향은 마시지 않았다⁠.

“⁠탁세미를 만나러 왔소⁠.⁠”

“⁠세미는 앓아누웠어요⁠. 그날 밤 물바람을 쐬고 고뿔이 들었지요⁠.⁠” 해란이 두 번째 잔을 따랐다⁠. “⁠두 잔이요⁠.⁠”

“⁠그날 밤 놀잇배에 청파루 아가씨가 몇이 탔소⁠?⁠”

“⁠넷이요⁠. 세 잔⁠.⁠”

“⁠그 넷 가운데 세미가 있었소⁠?⁠”

“⁠비파 타는 아이가 세미 하나니 있었겠지요⁠. 네 잔⁠.⁠”

옆에 앉은 옥담이 잔을 하나씩 비우고 있었다⁠. 미향이 안 마시는 잔을 다 받아 마셨다⁠. 다섯 잔째를 비우고 나서 해란에게 물었다⁠.

“⁠행수 아주머니⁠, 이건 물음 아니고 그냥 하는 말인데요⁠, 차가 참 좋네요⁠.⁠”

“⁠그것도 한 잔이에요⁠, 포졸 나리⁠.⁠”

옥담이 잔을 내려놓고 미향을 보았다⁠. 미향은 소매에서 동전 꾸러미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백오십 문⁠. 사흘 동안 먹을 밥값이었다⁠.

“⁠행수⁠, 세가 손님을 잃는 게 두려운 줄 아오⁠. 세가 다섯이 청파루에 쓰는 돈이 한 해에 얼마인지 나는 모르오⁠. 다만 하나는 아오⁠. 그날 밤 청파루 배를 저으러 나간 아이가 가슴에 손자국을 달고 갈대밭에 떠올랐소⁠. 그 아이 노 젓는 일을 세미가 물어다 주었다지요⁠. 세미는 그 아이 친구였소⁠.⁠”

해란의 손이 찻주전자 손잡이에서 잠깐 멈췄다⁠. 분 바르지 않은 눈가 주름이 한 번 깊어졌다가 펴졌다⁠.

“⁠포두 아씨⁠. 기루 여자가 세가 장남을 걸고 법정에 서면⁠, 그다음 날부터 그 여자는 이 서호에서 비파를 못 타요⁠. 다른 데 가서도 못 타요⁠. 세미는 이 집에 빚이 이백 냥이 넘어요⁠. 비파를 못 타면 그 빚을 무엇으로 갚겠어요⁠? 몸으로 갚으라고 할까요⁠?⁠”

미향은 대답하지 못했다⁠. 위층에서 비파 소리가 났다⁠. 줄을 고르는 소리였다⁠. 둥⁠, 둥⁠, 둥 하고 한 줄씩 짚어 가다가 세 번째 줄에서 멈칫했다⁠. 해란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미향보다 먼저 일어섰다⁠.

“⁠고뿔이 나았나 보네요⁠.⁠”

*

다락방은 물 쪽으로 창이 뚫려 있었다⁠. 창 너머로 서호가 저물고 있었고⁠, 멀리 호안가 세가 저택들의 등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방 안에는 술상이 하나 차려져 있었다⁠. 술상 앞에 여준결이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고⁠, 이 맞은편 창가에 비파를 안은 여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스물넷쯤⁠, 마른 얼굴에 눈이 컸다⁠. 해란은 비파 세 번째 줄을 손톱으로 짚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포두 아씨⁠.⁠” 여준결이 술잔을 들었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비단이 감겨 있었다⁠. 술잔은 왼손으로 들었다⁠. “⁠여기서 또 뵙소⁠. 아씨는 내가 가는 데마다 오시는구려⁠.⁠”

“⁠세미를 만나러 왔소⁠.⁠”

“⁠나도 세미를 만나러 왔소⁠. 이 집 비파가 서호에서 제일이라서⁠.⁠” 여준결이 턱으로 창가를 가리켰다⁠. “⁠세미 아가씨⁠, 한 곡 더 타 주시오⁠. 포두 아씨도 들으시게⁠.⁠”

탁세미가 비파를 고쳐 안았다⁠. 손가락이 줄 위에서 미끄러졌다⁠. 첫 소리가 엇나갔다⁠. 줄을 고르는 척하며 줄감개를 돌렸다⁠. 한 번⁠, 또 한 번⁠. 이미 맞은 줄이었다⁠.

“⁠그만 타시오⁠.⁠” 미향이 말했다⁠.

“⁠왜 그러시오⁠?⁠” 여준결이 웃었다⁠. “⁠비파 소리가 싫으시오⁠?⁠”

“⁠비파가 싫은 게 아니라⁠, 비파 타는 사람 손이 떨려서 그러오⁠.⁠”

여준결의 웃음이 잠깐 멈췄다⁠. 여준결은 술잔을 내려놓고 세미를 보았다⁠. 세미는 줄감개를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향은 방 안으로 들어가 세미와 여준결 사이에 섰다⁠. 술상과 창 사이였다⁠.

“⁠세미 아가씨⁠. 항주부 관아 포두 조미향이오⁠. 붕어골 아영이 일로 왔소⁠. 그날 밤 놀잇배에서 무엇을 보았소⁠?⁠”

세미가 고개를 들었다⁠. 미향이 아니라 미향의 어깨 너머 여준결을 보았다⁠. 미향은 몸을 조금 옮겨 이 시선을 막았다⁠. 그러자 해란이 다락 문 앞에서 기침을 했다⁠. 세미의 눈이 이번에는 문 쪽으로 갔다⁠.

“⁠말해 보시오⁠, 세미 아가씨⁠.⁠” 여준결이 말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본 대로⁠.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오⁠. 아가씨도 알지요⁠?⁠”

세미는 비파를 가슴께로 당겨 안았다⁠. 비파 뒤판이 세미의 가슴을 가렸다⁠.

“⁠저는⁠…⁠…⁠.⁠” 세미가 말했다⁠.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비파만 봤습니다⁠. 비파 타는 사람은 줄만 봅니다⁠.⁠”

미향의 가슴 안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미향은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여준결이 왼손으로 무릎을 쳤다⁠.

“⁠들으셨소⁠, 포두 아씨⁠. 비파만 봤다 하오⁠.⁠” 여준결이 일어섰다⁠. 키가 미향보다 한 뼘 컸다⁠. 여준결이 한 걸음 다가서자 이 손의 약술 냄새가 미향의 코에 닿았다⁠. “⁠이레 중에 하루가 갔소⁠. 남은 엿새 동안 서호를 다 뒤져 보시오⁠. 그날 밤 배 위에 있던 사람은 다 줄만 보고⁠, 노만 보고⁠, 술잔만 봤을 거요⁠.⁠”

“⁠여 공자는 무엇을 보았소⁠?⁠”

“⁠나는 비무 상대를 봤지⁠.⁠”

“⁠그 상대가 어디로 갔소⁠?⁠”

여준결의 왼손이 비단 감은 오른손을 덮었다⁠. 두 번째였다⁠. 미향은 이 손을 보았고⁠, 여준결은 보는 것을 보았다⁠. 웃음을 다시 입에 올렸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올리지 못했다⁠.

“⁠그건 법정에서 물으시오⁠.⁠”

여준결은 술값을 술상 위에 던지고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없었다⁠. 해란이 동전을 집어 세어 보고는 미향을 돌아보았다⁠.

“⁠포두 아씨⁠, 다락에 올라오신 건 계단 값이 따로 있어요⁠.⁠”

*

청파루 아래 선창에는 놀잇배가 묶여 있었다⁠. 미향은 이 배를 보러 내려갔다⁠. 물 위에 떠 있는 배는 생각보다 컸다⁠. 갑판에 비단 휘장을 걸던 기둥 넷이 서 있고⁠, 뱃전에는 붉은 칠이 벗겨진 자리가 군데군데 있었다⁠. 배 꼬리에서 늙은 사공 하나가 쭈그려 앉아 뱃바닥 틈에 삼 부스러기를 메우고 있었다⁠. 일흔은 넘어 보였다⁠. 손등 핏줄이 노끈처럼 불거져 있었고⁠, 이 손에서 역청과 물때 냄새가 났다⁠.

“⁠어르신⁠, 이 배 사공이시오⁠?⁠”

“⁠마흔 해째요⁠.⁠”

“⁠엿새 전 밤에도 이 배를 저으셨소⁠?⁠”

사공은 삼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꾹꾹 밀어 넣었다⁠. 대답은 한참 뒤에 왔다⁠.

“⁠노 젓는 놈은 물만 보오⁠.⁠”

“⁠물에 무엇이 떨어지는지는 보셨겠지요⁠.⁠”

사공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 사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옥담이 미향 뒤에서 다리를 꼬고 몸을 비틀었다⁠. 차를 일곱 잔 마신 몸이었다⁠.

“⁠포⁠, 포두⁠, 저 잠깐 물가에⁠…⁠…⁠.⁠”

“⁠여기서는 안 되네⁠.⁠”

“⁠그럼 어디서⁠…⁠…⁠.⁠”

“⁠관아까지 참게⁠.⁠”

사공이 처음으로 웃었다⁠. 이 빠진 웃음이었다⁠. 이 사람은 다시 뱃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포두⁠, 붕어골 공가 영감 아시오⁠? 그 영감한테 전해 주시오⁠. 미안하다고⁠. 그 말만⁠.⁠”

이 사람은 이후로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날 밤⁠, 세미는 방 안에서 등잔을 끄고 비파를 안고 앉아 있었다⁠.

엿새 전 이 밤에도 이렇게 비파를 안고 있었다⁠. 청파루 놀잇배는 호안가 여씨 저택 앞 물에 닻을 내렸고⁠, 갑판 위에 비단 휘장을 친 자리에서 세가 도련님들이 술을 마셨다⁠. 여준결과 육씨 세가의 객경이 갑판 한가운데서 비무를 했다⁠. 객경은 한쪽 눈에 검은 헝겊을 댄 사내였는데⁠, 장법과 칼을 섞어 썼다⁠. 세미는 갑판 끝에서 비파를 타면서 줄만 보려고 했다⁠. 그런데 비파 줄은 등롱 빛을 받아 거울처럼 번쩍였고⁠, 이 줄 위로 갑판의 모든 것이 비쳤다⁠.

객경의 칼끝이 여준결의 왼 소매를 길게 갈랐다⁠. 피는 나지 않았다⁠. 객경은 칼을 거두고 고개를 한 번 숙이더니⁠, 갑판 난간을 넘어 제 배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저어 갔다⁠. 도련님들이 아무도 손뼉을 치지 않았다⁠. 여준결이 난간으로 달려갔다⁠. 놀잇배 옆에 붙어 있던 작은 배⁠, 청파루 손님을 실어 나르는 이 배에 아영이 노를 쥐고 앉아 있었다⁠.

“⁠저 배를 쫓아라⁠.⁠”

“⁠안 돼요⁠, 도련님⁠. 이 배는 청파루 손님 배예요⁠. 손님 내려 드리기 전에는 못 가요⁠.⁠”

여준결이 난간을 넘어 작은 배에 한 발을 디뎠다⁠. 배가 기울었다⁠. 아영이 노 손잡이로 여준결의 손등을 밀어냈다⁠. 밀어낸 것인지 친 것인지 세미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딱⁠, 하는 소리가 났고⁠, 여준결이 중심을 잃고 물에 빠졌다⁠. 허리까지⁠. 놀잇배 난간을 붙잡고 물에서 올라오는 동안 갑판의 기녀들이 웃었다⁠. 도련님들도 웃었다⁠. 세미도 웃었다⁠. 비파를 타다 말고⁠, 소리 내어⁠.

이 웃음이 그치기 전에 여준결이 작은 배 위로 올라섰고⁠, 아영 앞에 섰고⁠, 손을 뻗었다⁠.

세미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비파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웃음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세미의 웃음소리가 이 안에 섞여 있었다⁠.

문밖에서 바닥 널이 삐걱 소리를 냈다⁠.

세미는 숨을 멈췄다⁠.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그러고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오래 기다렸다⁠. 등잔을 켜지 않은 채 일어나 문을 조금 열었다⁠. 복도에 아무도 없었다⁠. 다시 방 안으로 돌아섰을 때⁠, 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앉아 있던 자리를 비추었다⁠.

비파가 거기 있었다⁠. 세미가 문으로 가느라 내려놓은 자리에⁠. 목이 부러져 있었다⁠. 네 줄이 전부 끊어져 뱀 허물처럼 바닥에 늘어져 있었고⁠, 부러진 목 단면이 칼로 자른 것처럼 매끄러웠다⁠. 소리는 나지 않았었다⁠. 세미가 문을 연 이 짧은 동안⁠, 누군가 방 안에 들어와 비파 목을 소리 없이 잘라 놓고 창으로 나갔다⁠.

세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부러진 비파를 주워 가슴에 안고⁠, 신을 신지 않은 채 창으로 나갔다⁠. 아래층 처마를 밟고 물가 돌계단으로 내려갔다⁠.

*

미향의 집은 관아 뒤 골목 끝에 있었다⁠. 아버지가 지은 기와집이었고⁠,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감이 주황으로 익어 가지가 처졌다⁠. 미향은 마루에서 쇠사슬 고리를 하나하나 기름 먹인 천으로 닦고 있었다⁠. 새로 이은 스물두 번째 고리는 다른 고리보다 거무스름했다⁠. 기름을 먹여도 빛이 안 났다⁠.

밤 삼경⁠, 성안 북이 세 번째로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두드려졌다⁠. 세게가 아니라 약하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미향은 사슬을 손에 감은 채 대문을 열었다⁠. 달빛 아래 맨발의 여자가 서 있었다⁠. 발등이 돌에 긁혀 피가 배어 있었고⁠, 치맛자락이 젖어 무거웠다⁠. 가슴에 목 부러진 비파를 안고 있었다⁠.

“⁠포두님⁠.⁠” 세미가 말했다⁠. 이가 딱딱 부딪쳤다⁠. “⁠저 웃었어요⁠. 그날 밤에⁠. 아영이가 그 사람 손을 쳤을 때⁠, 그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저도 웃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아영이한테 간 거예요⁠.⁠”

미향은 세미를 대문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았다⁠. 빗장을 지르는 손이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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