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59자)

시신이 대신 말한다

삼류 여포두 · 설묵향

함두봉은 법정 문턱을 넘는 순간 숨 쉬는 법을 잊었다⁠.

전당현 법정은 넓지 않았다⁠. 대청 안쪽 높은 단에 현령의 법대가 있고⁠, 이 아래 돌바닥에 고소하는 사람과 불려 온 사람이 마주 서는 자리가 있었으며⁠, 대청 문은 활짝 열려 마당까지 내다보였다⁠. 이 마당에 사람이 가득했다⁠. 담장 위에도 올라앉았고⁠, 대문 밖 골목까지 머리가 이어졌다⁠. 사람이 많으면 냄새도 많았다⁠. 땀과 마늘과 생선과 기름 먹인 머리카락 냄새가 대청 안으로 밀려들어 함두봉의 코를 막았다⁠. 함두봉은 시신 냄새라면 백 가지를 가려냈지만⁠, 산 사람이 백 명 넘게 모여 내는 냄새는 하나도 가려내지 못했다⁠.

그래서 함두봉은 아영만 보았다⁠.

아영은 법정 한쪽 벽 아래 널판 위에 흰 천을 덮고 누워 있었다⁠. 얼음 굴에서 올라온 지 한 각이 채 안 되어⁠, 천 밑에서 찬 기운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함두봉은 아영 곁에 서서 검시 상자를 두 팔로 꽉 안았다⁠. 상자 모서리가 갈비뼈를 찔렀다⁠. 이 아픔이 오히려 숨을 쉬게 해 주었다⁠.

맞은편에 여준결이 서 있었다⁠. 오른손에 감은 흰 비단이 손목에서 손가락 마디까지 덮고 있었다⁠. 함두봉은 시신의 상처를 볼 때처럼 이 비단을 보았다⁠. 감은 방향이 엄지 쪽에서 새끼손가락 쪽으로 돌아갔고⁠, 손등 한가운데서만 세 겹이 겹쳐 있었다⁠. 상처를 덮는 사람은 상처 위에 천을 더 감는다⁠. 이것을 미향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미향은 법대 앞에 서 있었고⁠, 이 사이에 산 사람이 너무 많았다⁠.

현령이 법대 위에 국화 화분 하나를 올려놓고 앉았다⁠. 노란 국화였다⁠. 마당의 구경꾼 몇이 킥킥거렸다⁠. 현령은 못 들은 척 손바닥만 한 나무토막⁠, 경당목으로 법대를 두 번 쳤다⁠.

*

세가의 송사꾼은 쥐수염을 손가락으로 꼬면서 말했다⁠. 목소리가 가늘고 길어서⁠, 말 한 마디가 대청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끝났다⁠.

“⁠사또⁠, 이 일은 슬픈 일입니다⁠. 슬픈 일이지 죄가 아닙니다⁠. 그날 밤 청파루 놀잇배 위에서 여 공자는 육씨 세가에 몸을 붙인 떠돌이 무사⁠, 객경과 비무를 하고 계셨습니다⁠. 강호에서는 두 무인이 합의하고 겨루는 것을 비무라 하고⁠, 비무에서 다친 것은 서로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비무 자리 바로 아래로 작은 배 한 척이 들어왔습니다⁠. 여 공자의 연파장⁠, 여씨 세가의 장법이 상대를 향해 뻗어 나갈 때 그 끝자락이 배 위의 아가씨에게 닿았습니다⁠. 바람에 기왓장이 떨어져 지나가던 사람이 맞은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기왓장을 법정에 세우시겠습니까⁠?⁠”

구경꾼들 사이에서 웃음 반⁠, 탄식 반이 새어 나왔다⁠. 현령이 미향을 보았다⁠.

“⁠조 포두⁠.⁠”

“⁠사또⁠, 그 기왓장이 손바닥 모양으로 떨어졌는지 검시한 사람에게 물어 주십시오⁠. 관아 오작 함두봉입니다⁠.⁠”

함두봉의 다리가 굳었다⁠. 미향이 함두봉을 돌아보았다⁠. 함두봉은 상자를 안은 채 한 걸음⁠, 두 걸음⁠, 법대 앞으로 나갔다⁠. 마당의 백 개 넘는 얼굴이 한꺼번에 함두봉을 향했다⁠. 이 얼굴들이 전부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오⁠, 오⁠, 오작⁠…⁠… 함⁠, 함두⁠…⁠…⁠”

“⁠함두⁠?⁠” 송사꾼이 부채를 접었다⁠. “⁠사또⁠, 제 이름도 다 대지 못하는 사람의 검시를 믿으라는 말씀입니까⁠?⁠”

마당에서 웃음이 터졌다⁠. 함두봉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함두봉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혀가 입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스물두 해 전에도 이랬다⁠. 당시에는 더듬지 않았는데도 아무도 믿지 않았고⁠, 이후로 산 사람 앞에서 말을 하려고 하면 혀가 먼저 겁을 먹었다⁠.

미향이 법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사또⁠. 함 오작은 시신 앞에서는 말이 막히지 않습니다⁠. 시신을 향해 서서 말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시신을 향해서⁠?⁠” 현령이 눈을 껌벅였다⁠. 현령은 국화 화분을 한 번 보고⁠, 널판 위의 흰 천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의외로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오⁠. 나도 국화 앞에서는 말이 잘 나오오⁠.⁠”

함두봉은 돌아섰다⁠. 백 개의 얼굴이 함두봉의 등 뒤로 갔다⁠. 함두봉의 앞에는 흰 천과⁠, 천 밑에서 새어 나오는 찬 기운만 남았다⁠. 무릎을 꿇고 천의 한쪽 끝을 조금 걷었다⁠. 그리고 숨을 쉬었다⁠.

“⁠아가씨⁠, 또 왔소⁠. 사람이 많아 미안하오⁠. 오늘은 아가씨가 하실 말을 내가 대신 사또께 전하러 왔소⁠.⁠” 함두봉의 목소리가 대청 안을 고르게 채웠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아가씨 가슴 복장뼈 위에 손바닥 자국이 하나 있소⁠. 손바닥 둥근 자리가 제일 진하고 손가락 다섯이 부챗살처럼 벌어졌소⁠. 장풍의 끝자락에 스쳤다면 자국이 한쪽으로 쏠리고 손가락 자리가 뭉개지는데⁠, 아가씨 것은 다섯 손가락 마디까지 똑똑히 찍혔소⁠. 손바닥이 아가씨 몸에 붙었다가 떨어진 거요⁠. 그리고 똑바로 앞에서 들어왔소⁠. 왼쪽 넷째 갈비⁠, 다섯째 갈비가 안으로 꺾였는데⁠, 꺾인 방향이 등 쪽으로 곧소⁠. 위에서 아래로 내리친 것도 아니고 옆에서 스친 것도 아니오⁠. 아가씨는 그 사람과 마주 서 있었소⁠. 배 아래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대청에 함두봉의 목소리만 있었다⁠. 송사꾼의 부채가 멈춰 있었다⁠.

“⁠아가씨는 숨이 붙은 채 물에 들어갔소⁠. 입과 코에 물풀 가루가 있고 배에 물이 찼소⁠. 그리고 아가씨⁠, 가슴 자국의 살갗 주름에서 약술 냄새가 났소⁠. 홍화와 몰약을 술에 담가 손바닥에 바르는 그 약이오⁠. 바람은 냄새를 묻히지 않소⁠. 손이 묻히오⁠.⁠”

함두봉은 천을 도로 덮고⁠, 이 위에 손바닥을 한 번 얹었다가 일어났다⁠. 일어나서 법대 쪽으로 돌아서자 다시 혀가 굳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허리를 숙였다⁠. 마당 어딘가에서 누군가 코를 훌쩍였다⁠.

*

송사꾼이 부채를 펼쳤다⁠. 펼치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사또⁠, 오작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시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의 말이라 귀신 이야기처럼 들리긴 합니다만⁠.⁠” 마당에서 몇이 웃다가 금방 그쳤다⁠. 송사꾼이 여준결을 돌아보았다⁠. “⁠여 공자⁠, 연파장의 끝자락이 무엇을 남기는지 보여 드리시지요⁠.⁠”

여준결이 앞으로 나섰다⁠. 무사 둘이 마당에서 사람 키만 한 나무판 하나를 들고 들어와 대청 기둥에 기대 세웠다⁠. 소나무 판이었고⁠, 두께가 손가락 세 마디는 되었다⁠. 여준결은 판에서 다섯 걸음 떨어져 섰다⁠. 비단 감은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을 들었다⁠.

“⁠오른손은 다쳐서 왼손으로 하겠소⁠. 왼손은 서툴러서 끝자락만 나갈 거요⁠.⁠”

여준결은 왼손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가 밀었다⁠. 대청 안의 공기가 한 번 뒤로 빨려 들어갔다가 앞으로 쏟아졌다⁠. 국화 꽃잎 세 장이 떨어졌다⁠. 판이 쿵 소리를 내며 기둥에 부딪쳤다⁠. 무사들이 판을 돌려 보이자 마당에서 탄성이 터졌다⁠. 소나무 판 한가운데 손바닥 모양의 움푹한 자국이 찍혀 있었다⁠. 손가락 다섯까지⁠.

“⁠보셨습니까⁠, 사또⁠.⁠” 송사꾼이 부채로 판을 가리켰다⁠. “⁠다섯 걸음 밖에서⁠, 그것도 서툰 왼손으로⁠. 손이 닿지 않아도 손바닥은 찍힙니다⁠.⁠”

미향은 판 앞으로 갔다⁠. 자국을 들여다보았다⁠. 손가락 다섯이 찍혀 있긴 했지만⁠, 끝마디가 뭉개져 있었고 자국 전체가 오른쪽으로 조금 밀려 있었다⁠. 함두봉을 불렀다⁠. 함두봉은 판 앞에 서자 혀가 풀렸다⁠. 판도 산 사람은 아니었다⁠.

“⁠소나무야⁠, 너는 맞기만 했구나⁠. 끝마디가 뭉개졌고 한쪽으로 밀렸네⁠. 그리고 너한테선 송진 냄새만 나는구나⁠.⁠” 함두봉이 코를 박았다가 떼고 미향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판을 보며 말했다⁠. “⁠약술 냄새가 없소⁠, 포두⁠.⁠”

미향이 법대를 올려다보았다⁠.

“⁠사또⁠, 다섯 걸음 밖의 장풍은 손가락 끝을 뭉개고 한쪽으로 밀립니다⁠. 그리고 냄새를 남기지 못합니다⁠. 아영의 가슴에는 끝마디까지 찍혔고⁠, 약술 냄새가 남았습니다⁠.⁠”

“⁠약술 냄새요⁠?⁠” 송사꾼이 웃었다⁠. 긴 웃음이었다⁠. “⁠사또⁠, 항주 무관 마흔 곳 가운데 서른 곳이 홍화와 몰약으로 손을 단련합니다⁠. 그 냄새가 나는 손은 항주에 천 개는 됩니다⁠. 그 천 개 가운데 그날 밤 그 배 위에 있던 손은 하나뿐이고⁠, 그 손의 주인은 비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냄새가 무엇을 말해 줍니까⁠? 그 아가씨가 무관 근처를 지나갔다는 것밖에⁠.⁠”

“⁠우리 무관은 홍화 안 쓰오⁠! 생강하고 마늘 쓰오⁠!⁠”

마당에서 누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소매를 걷어붙인 털보 사내였다⁠. 이 옆 사람이 사내의 손을 끌어내리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니까 자네 무관 앞을 지나가면 순대국 냄새가 나는 거야⁠.⁠” 마당 전체가 웃음으로 출렁였고⁠, 현령이 경당목을 세 번 쳐서야 가라앉았다⁠. 송사꾼은 웃음이 그칠 때까지 부채를 부치며 기다렸다⁠. 이 얼굴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웃음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냄새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기억할 것이었고⁠, 송사꾼은 이것을 알고 있었다⁠.

현령이 국화 꽃잎을 손으로 쓸어 모았다⁠. 판을 보고⁠, 흰 천을 보고⁠, 송사꾼을 보았다⁠.

“⁠조 포두⁠, 오작의 말은 잘 들었소⁠. 그러나 아영이 그 사람과 마주 서 있었다는 것을 본 사람이 있소⁠?⁠”

“⁠있습니다⁠. 아직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미향은 여준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또⁠, 그 전에 여 공자의 오른손을 보고 싶습니다⁠. 비단을 풀어 주십시오⁠.⁠”

여준결의 왼손이 오른손 위로 덮였다⁠. 송사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사또⁠, 여 공자는 비무에서 손을 다쳤습니다⁠. 무인의 손은 무인의 목숨입니다⁠. 상처를 법정 마당 백 사람 앞에 드러내라는 것은 장수에게 갑옷을 벗고 성 밖에 서라는 것과 같습니다⁠. 고소인은 여 공자의 손을 묻지 않았습니다⁠. 묻지 않은 것을 포두가 따로 들춰서는 안 됩니다⁠.⁠”

현령이 미향을 보았다⁠. 미향은 현령의 눈 속에서 망설임을 읽었다⁠. 뒤에 서른 명의 검은 옷이 서 있었다⁠. 현령의 손가락이 국화 화분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풀지 않아도 되오⁠, 여 공자⁠.⁠” 현령이 말했다⁠. “⁠조 포두⁠, 본 사람을 데려오시오⁠. 이레를 주겠소⁠. 이레 뒤 아침에 다시 열겠소⁠.⁠”

경당목이 법대를 쳤다⁠.

*

사람들이 마당을 빠져나가는 동안 미향은 대청 기둥 옆에 남아 있었다⁠. 여준결이 무사들을 거느리고 미향 앞을 지나갔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고개만 조금 돌려 말했다⁠.

“⁠포두 아씨⁠, 오작은 좋은 사람이오⁠. 나도 저 아가씨한테 할 말이 있으면 저 사람한테 부탁하겠소⁠.⁠”

미향은 여준결의 오른손을 보았다⁠. 비단이 감긴 손등이 걸을 때마다 허리께에서 흔들렸다⁠. 여준결은 이 손을 한 번도 쥐지 않았다⁠.

여준결이 나간 뒤 함두봉이 미향 곁에 와서 섰다⁠. 미향 쪽을 보지 않고⁠, 벽 아래 흰 천을 보면서 말했다⁠.

“⁠아가씨⁠, 손등 멍은 이레면 누렇게 빠지고⁠, 열흘이면 거의 안 보이오⁠. 포두께 그렇게 전해 주시오⁠.⁠”

미향은 대답 대신 법정 문밖을 보았다⁠. 마당 구석에 공치삼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법정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딸이 흰 천을 덮고 누워 있는 것을 백 사람 앞에서 볼 수 없다고 했었다⁠. 미향이 공치삼에게 갔다⁠.

“⁠어르신⁠. 그날 밤 놀잇배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 아는 것이 있소⁠?⁠”

공치삼이 고개를 들었다⁠.

“⁠세가 도련님들하고⁠, 청파루 계집애들이 탔겠지⁠. 아영이가 그 배 노를 맡은 건 청파루 비파 타는 아가씨가 일을 물어다 줘서였소⁠. 그 아가씨가 우리 아영이 붕어를 늘 샀소⁠. 비린내 나는 걸 좋아한다고⁠, 이상한 아가씨라고 아영이가 웃었소⁠.⁠”

“⁠그 아가씨 이름이 무엇이오⁠?⁠”

“⁠세미라 했던 것 같소⁠.⁠” 공치삼이 손바닥의 헝겊을 풀었다가 다시 감았다⁠. “⁠포두⁠, 이레요⁠. 붕어로 치면 그물 두 번 걷을 날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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