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706자)

북이 울린 날

삼류 여포두 · 설묵향

전당현 현령은 국화 화분을 마흔 개 길렀다⁠. 관아 뒤뜰 화단에 노란 것⁠, 흰 것⁠, 자줏빛 도는 것을 줄 맞춰 놓고⁠, 아침저녁으로 손수 물을 주며 시든 꽃잎을 손톱으로 땄다⁠. 북소리가 울린 다음 날 아침에도 현령은 물뿌리개를 든 채 뒤뜰에 서 있었고⁠, 미향과 공치삼은 화단 사이 좁은 길에 서서 흰 국화 한 송이의 진딧물을 다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젖은 흙냄새와 국화의 쌉쌀한 향이 뒤섞여 코끝이 시원했다⁠.

“⁠포두⁠…⁠…⁠.⁠” 현령이 진딧물을 손가락으로 튕겨 내고 미향을 보았다⁠. 그러고는 한참 말을 고르는 얼굴이 되었다⁠. “⁠부에서 오신 포두 아씨⁠…⁠… 낭자⁠…⁠… 나리는⁠, 어찌 부르면 좋겠소⁠?⁠”

“⁠조 포두라 하시면 됩니다⁠, 사또⁠.⁠”

“⁠조 포두⁠.⁠” 현령이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어제 북소리를 나도 들었소⁠. 저녁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떨어뜨렸지⁠. 서른 해 동안 그 북은 개가 오줌 누는 기둥이었는데⁠.⁠”

공치삼이 앞으로 나섰다⁠. 손바닥에 감은 헝겊에 피가 배어 있었다⁠.

“⁠사또⁠, 받아 주시는 거요⁠, 안 받아 주시는 거요⁠? 붕어골까지 걸어가려면 해가 짧소⁠.⁠”

현령이 공치삼의 손을 보았다⁠. 물뿌리개 주둥이에서 물이 똑똑 흘러 신발 코를 적셨다⁠.

“⁠북이 울리면 그날 안에 친 사람을 불러 들어야 하오⁠. 어제 내 아전이 영감 말을 다 들었소⁠. 그런데 영감⁠, 여씨 집이오⁠. 그 집 가주 앞에서는 지부 영감도 술잔을 두 손으로 받으시오⁠.⁠”

“⁠그래서 안 받으시겠다는 거요⁠?⁠”

“⁠받겠소⁠.⁠” 현령이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손이 조금 떨렸다⁠. 현령은 떨리는 손을 소매 안에 넣었다⁠. “⁠나도 무섭소⁠, 영감⁠. 그래도 쉰 사람이 북소리를 들었고⁠, 그 쉰 사람이 오늘 아침 장에 나가서 다들 떠들었을 거요⁠. 듣지 않으면 이 고을 사람들이 앞으로 저 북을 무엇으로 알겠소⁠. 사흘 뒤 아침에 현 법정을 열겠소⁠.⁠”

현령이 뒤뜰 끝에 걸린 관복을 내려 입었다⁠. 관모를 쓰자 비로소 현령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미향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조 포두⁠, 소환패를 들고 여씨 집 대문을 두드릴 아전이 내 관아에는 없소⁠. 다들 오늘 아침에 배탈이 났다고 하오⁠. 다섯이 한꺼번에⁠.⁠”

“⁠제가 가겠습니다⁠.⁠”

“⁠부의 포두를 현이 빌려 쓰는 셈이 되오⁠. 지부 영감이 아시면⁠…⁠…⁠.⁠”

“⁠아시게 되겠지요⁠.⁠”

현령은 책상 서랍에서 손바닥만 한 나무패를 꺼냈다⁠. 앞면에 전당현의 인이 불로 지져져 있고⁠, 뒷면에 소환할 사람의 이름이 새겨질 자리가 매끈하게 비어 있었다⁠. 현령은 칼끝으로 이 자리에 여준결의 이름 석 자를 한 획씩 새겼다⁠. 국화 가지를 칠 때처럼 조심스러운 손이었다⁠.

*

호안가 여씨 저택의 대문은 미향이 두드리기 전에 열렸다⁠. 문 안쪽에 어제 갈대밭에 왔던 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주께서 연무장으로 모시랍니다⁠, 포두⁠…⁠… 나리⁠.⁠”

“⁠오늘은 나리요⁠?⁠”

“⁠어제 그렇게 부르니 별말씀이 없으셔서요⁠.⁠”

옥담이 뒤에서 미향의 소매를 당겼다⁠. 저택 담장 안으로 한 발을 들이자마자 몽둥이를 허리춤에서 빼 등 뒤에 숨겼다⁠. 들고 들어가면 시비가 될 것 같았고⁠, 빈손으로 들어가자니 겁이 났다⁠.

연무장은 저택 한가운데 있었다⁠. 바닥에 고운 모래를 깔고 사방에 나무 기둥을 박은 마당이었는데⁠, 모래에서 아침 이슬과 땀이 섞인 냄새가 났다⁠. 마당 북쪽 처마 아래 의자 다섯 개가 반달 모양으로 놓여 있었고⁠, 의자마다 가주가 하나씩 앉아 있었다⁠. 서호 다섯 세가였다⁠. 가운데 여문태⁠, 이 왼쪽으로 흰 수염을 배꼽까지 기른 육씨 가주⁠, 볶은 땅콩을 한 줌 쥐고 계속 까먹는 살찐 하씨 가주⁠, 오른쪽으로 머리를 은비녀로 틀어 올린 단씨 가주와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상관씨 가주였다⁠.

미향은 마당 한가운데까지 걸어가서 멈췄다⁠. 다섯 사람의 눈이 한꺼번에 미향을 짚었다⁠. 무게가 있는 눈들이었다⁠. 이 사람은 허리에 감긴 사슬 고리 중 새로 이은 스물두 번째 고리를 엄지로 한 번 눌렀다⁠. 대장장이가 이어 붙인 자리가 아직 거칠었다⁠.

“⁠전당현 현령께서 여씨 장남 여준결을 사흘 뒤 아침 현 법정으로 부르셨소⁠.⁠” 미향은 소환패를 두 손으로 들어 보였다⁠. “⁠붕어골 어부 공치삼의 딸 공아영의 죽음을 묻는 자리요⁠.⁠”

하씨 가주가 땅콩 껍질을 바닥에 뱉었다⁠.

“⁠들었소⁠, 여 형⁠? 현이 세가 장남을 부른다오⁠. 서른 해 만이오⁠, 서른 해⁠.⁠”

“⁠서른 해 전에는 불렀던가⁠?⁠” 육씨 가주가 수염을 쓸었다⁠.

“⁠그때도 안 불렀지⁠. 그러니 처음이라는 거요⁠.⁠”

여문태가 손을 조금 들었다⁠. 두 가주가 입을 다물었다⁠.

“⁠조미향⁠.⁠” 여문태가 말했다⁠. “⁠그 패를 내게 주시오⁠.⁠”

“⁠여 공자에게 드려야 하는 패입니다⁠.⁠”

“⁠아들은 아직 자고 있소⁠. 어젯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하오⁠.⁠” 여문태가 손을 내민 채 기다렸다⁠. 미향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당에 바람이 한 번 지나가며 모래를 쓸었다⁠.

상관씨 가주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키가 크고 허리가 가늘었으며⁠, 손가락마다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여 형⁠, 이 여자가 세가 다섯 앞에서 패를 쥐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체면이 다 깎였소⁠. 관아 사람이 한 번 담장을 넘으면 두 번째부터는 문을 두드리지도 않을 거요⁠. 오늘 이 연무장에서 이 여자가 넘어져서 다리 하나를 다쳤다 한들 누가 보겠소⁠?⁠”

옥담이 등 뒤에 숨긴 몽둥이를 떨어뜨렸다⁠. 모래 위라 소리가 나지 않았다⁠. 미향은 상관씨 가주를 보지 않고 여문태만 보았다⁠.

“⁠가주⁠. 어제 관아 마당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오⁠. 강호가 관아에 매이는 날을 막으시겠다고⁠. 여기서 관아 사람 다리를 꺾으면 거꾸로 관아가 강호에 매이는 날이 오오⁠. 가주께서 막으시려는 문이 그 문이라면⁠, 지금 상관씨 가주를 앉히셔야 하오⁠.⁠”

마당이 고요했다⁠. 하씨 가주가 땅콩 까던 손을 멈췄다⁠. 여문태가 천천히 상관씨 가주를 돌아보았다⁠.

“⁠앉게⁠.⁠”

“⁠여 형⁠!⁠”

“⁠관아 사람 몸에 손대는 집은 내가 서호에서 내보내겠네⁠.⁠” 여문태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건 강호의 법이 아니라 칼잡이의 버릇이야⁠. 우리가 관아를 밀어내는 까닭이 관아보다 나아서여야지⁠, 관아보다 세서여서는 안 되네⁠.⁠”

상관씨 가주가 이를 물고 앉았다⁠. 단씨 가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고 맑았다⁠.

“⁠포두⁠, 그 패를 받으면 장남은 법정에 서오⁠. 서면 무엇이 달라지오⁠? 아이는 살아오지 않소⁠. 어부는 은자를 받지 못하고⁠, 세가들은 붕어골 생선을 더는 사지 않을 거요⁠. 그대는 그 마을을 굶기러 온 거요⁠.⁠”

미향은 이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단씨 가주의 말에는 거짓이 한 마디도 없었다⁠. 소환패를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 마을 사람 하나가 어제 제 손으로 북을 쳤습니다⁠, 가주⁠. 손바닥 가죽이 벗겨지도록 쳤습니다⁠. 굶을지 말지는 그 사람들이 고를 일입니다⁠. 저는 북소리를 들은 사람으로 왔습니다⁠.⁠”

이때 연무장 동쪽 회랑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그 패⁠, 나한테 주시오⁠, 포두 아씨⁠.⁠”

여준결이 회랑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머리를 풀어 헤친 채였고⁠, 겉옷 앞섶이 반쯤 열려 있었다⁠. 자고 있다던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여준결은 맨발로 모래를 밟고 걸어와 미향 앞에 섰다⁠. 술 냄새와 함께 쌉쌀하고 달큰한 약 냄새가 여준결의 손에서 났다⁠. 갈대밭 시신의 가슴에서 맡았던 이 냄새였다⁠. 미향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여준결은 소환패를 받아 들고 제 이름이 새겨진 자리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글씨를 잘 새겼네⁠. 현령 영감 솜씨요⁠?⁠”

“⁠그렇소⁠.⁠”

“⁠국화 가지 치는 솜씨라더니⁠.⁠” 여준결이 패를 허리띠에 꽂았다⁠. “⁠가겠소⁠. 사흘 뒤에⁠. 내 발로⁠.⁠”

“⁠준결아⁠.⁠” 여문태가 불렀다⁠.

“⁠아버지⁠, 가서 말하고 오겠습니다⁠. 강호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 여준결이 미향을 내려다보았다⁠. “⁠포두 아씨 쇠사슬은 고쳤소⁠?⁠”

“⁠고쳤소⁠.⁠”

“⁠다음엔 굵은 놈으로 하시오⁠.⁠”

*

미향과 옥담이 연무장을 나간 뒤⁠, 여문태는 가주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아들과 단둘이 남았다⁠. 모래 위에 해가 높이 올라 그림자가 짧아졌다⁠.

“⁠법정에서 무엇을 말할 거냐⁠?⁠”

“⁠그날 밤 일을 말하겠습니다⁠. 그 아이가 노로 제 손을 쳤고⁠, 제가 그 아이를 쳤습니다⁠.⁠”

여문태가 아들의 오른손을 잡아 뒤집었다⁠. 손등 한가운데⁠, 손가락 뼈가 시작하는 자리에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멍이 퍼렇게 들어 있었다⁠. 멍 가장자리가 벌써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 손을 법정에서 펴 보일 셈이냐⁠? 어부의 딸이 노로 친 손이라고⁠? 그 말이 서호 세가들 귀에 들어가면⁠, 노 젓는 계집애한테 맞고 칼을 뽑은 장남이 된다⁠. 그것도 비무에 진 날 밤에⁠.⁠”

여준결의 손이 아버지 손 안에서 굳었다⁠.

“⁠아무도 졌다는 말을 안 하던데요⁠.⁠”

“⁠아무도 안 하게 내가 막았으니까⁠.⁠” 여문태가 아들의 손을 놓았다⁠. “⁠장풍이 빗나갔다고 해라⁠. 비무 중에 배가 너무 가까이 들어왔다고⁠.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강호에서 그런 일은 다 그렇게 부른다⁠.⁠”

“⁠아버지가 부르시는 이름이겠지요⁠.⁠”

“⁠그래⁠. 내가 부르는 이름이다⁠.⁠” 여문태가 돌아섰다⁠. “⁠남의 송사를 돈 받고 대신 말해 주는 송사꾼 가운데⁠, 항주에서 제일 말 잘하는 자를 부르겠다⁠. 사흘 동안 그 손에 비단을 감고 다녀라⁠.⁠”

*

공판 전날 밤⁠, 미향은 검시청 지하 얼음 굴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져 숨이 하얗게 나왔고⁠, 겨울에 서호에서 떠다 쌓아 둔 얼음 덩이들이 짚 아래에서 축축한 냄새를 풍겼다⁠. 아영은 이 얼음 사이 널판에 누워 있었다⁠. 이 앞에 함두봉이 등을 돌리고 서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 사또께 아룁니다⁠. 시신의 가슴에⁠…⁠… 아니⁠, 아니야⁠.⁠” 함두봉은 고개를 젓더니 널판 옆에 놓인 배추 한 통을 집어 들어 제 앞 선반에 올려놓았다⁠. “⁠사또⁠, 사또는 배추요⁠. 배추한테는 말할 수 있소⁠. 사또께 아룁니다⁠, 시신의 가슴에 손바닥 자국이⁠…⁠… 시⁠, 시⁠, 시⁠…⁠…⁠.⁠”

배추 앞에서도 혀가 묶였다⁠. 미향은 계단 중간에 서서 웃음을 삼켰다⁠.

“⁠함 오작⁠. 그 배추는 어디서 났소⁠?⁠”

함두봉이 화들짝 놀라 배추를 떨어뜨렸다⁠. 배추가 얼음 위를 굴러 아영의 널판 밑으로 들어갔다⁠. 무릎을 꿇고 배추를 꺼내며 널판 위 아영에게 말했다⁠.

“⁠미안하오⁠, 아가씨⁠. 내가 내일 아가씨 이야기를 사또께 해야 하는데⁠, 산 사람 얼굴만 보면 말이 안 나오오⁠. 배추 얼굴도 안 되는구먼⁠. 아가씨⁠, 내일 내 곁에 좀 계셔 주시오⁠.⁠”

미향은 웃음을 거두었다⁠. 계단을 다 내려와 함두봉 옆에 쪼그려 앉았다⁠.

“⁠내일 아영이를 법정에 모시고 가세⁠. 현령께 내가 여쭙겠네⁠.⁠”

*

공판 날 아침⁠, 전당현 관아 앞 골목에는 해가 뜨기 전부터 사람들이 모였다⁠. 북소리 소문이 성안을 한 바퀴 돌고 붕어골까지 갔다 온 뒤였다⁠. 미향은 관아 대문 앞 돌계단 위에 서서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국수집 아낙⁠, 장작 장수⁠, 붕어골 어부 열댓⁠, 서당 훈장⁠, 그리고 이유도 모르고 사람 많은 데를 따라온 아이를 업은 젊은 아비까지⁠, 백 명은 넘어 보였다⁠. 함두봉이 미향 뒤에서 검시 상자를 안고 이를 딱딱 마주쳤다⁠.

“⁠포⁠, 포⁠, 포두⁠. 사⁠, 사람이 너⁠, 너무⁠…⁠…⁠.⁠”

“⁠시신만 보게⁠. 오늘은 시신만⁠.⁠”

골목 저쪽 끝에서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여준결이 걸어오고 있었다⁠. 흰 겉옷을 새로 갈아입었고⁠, 오른손에는 하얀 비단이 손목까지 감겨 있었다⁠. 뒤로 여씨 세가의 검은 옷 무사들이 두 줄로 따랐다⁠. 미향은 세었다⁠. 열⁠, 스물⁠, 서른⁠. 무사들 맨 뒤에서 쥐수염을 기른 깡마른 늙은이 하나가 부채를 부치며 걸어왔다⁠. 항주에서 제일 말 잘하는 송사꾼이었다⁠.

여준결은 관아 돌계단 아래에서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왔소⁠, 포두 아씨⁠. 내 발로⁠.⁠”

여준결이 허리띠에서 소환패를 뽑아 미향에게 던졌다⁠. 미향은 한 손으로 받았다⁠. 나무패가 여준결의 체온으로 미지근했다⁠. 골목의 백 명이 한꺼번에 숨을 죽였고⁠, 무사 서른의 칼집이 일제히 한 번 덜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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