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293자)

아들이 일어선다

삼류 여포두 · 설묵향

여문태는 상관씨 저택 선창 창고 문 앞에서 첫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창고 안은 젖은 그물과 썩은 밧줄 냄새로 가득했다⁠. 등잔 하나가 기둥에 걸려 있었고⁠, 이 아래 기둥에 외눈 객경이 묶여 있었다⁠. 눈가리개가 없었다⁠. 두 눈 다 부어 있었다⁠. 입가에 피가 말라붙었고⁠, 왼손 손가락 마디가 몇 개 엉뚱한 쪽으로 꺾여 있었다⁠. 칼 쥐는 손이 아니라 노름하는 손이었다⁠. 칼 쥐는 오른손은 멀쩡했다⁠. 법정에 서서 말할 수는 있게⁠, 다시는 판을 짚지 못하게⁠.

여문태는 이 손을 보고 한동안 서 있었다⁠. 그러고는 소매에서 작은 칼을 꺼내 밧줄을 끊었다⁠.

“⁠여 형⁠.⁠”

상관씨 가주가 창고 문간에 서 있었다⁠. 잠옷 위에 겉옷을 걸쳤고⁠,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뒤에 오른손 손가락 둘이 없는 무사가 섰다⁠. 여문태는 돌아보지 않고 객경의 팔을 제 어깨에 걸었다⁠.

“⁠이 사람은 데려가겠네⁠.⁠”

“⁠여 형⁠, 그 사람이 법정에 서면 준결이 목이 날아가오⁠. 내가 여 형 대신 손을 더럽혔는데⁠…⁠…⁠.⁠”

“⁠자네가 손을 더럽힌 건 나 때문이 아니야⁠.⁠” 여문태가 그제야 돌아섰다⁠. 등잔 불빛이 여문태의 얼굴 반쪽을 비췄다⁠. “⁠며칠 전 사당 앞에서 자네를 한 시간 세워 두었지⁠. 그때 내가 무엇을 물으려 했는지 자네는 알았을 걸세⁠. 그래서 오늘 이러는 거고⁠. 자네 선친이 스물두 해 전 비단 가게에서 무슨 칼을 썼는지⁠, 이 사람 입이 열리고 세가들 사이에 법정이 한 번 서면 그 일도 언젠가 누군가 물을 테니까⁠.⁠”

상관씨 가주의 얼굴이 하얘졌다⁠. 무사의 왼손이 칼자루로 갔다⁠. 여문태는 이 손을 보았다⁠. 이것뿐이었다⁠. 무사의 손이 칼자루에서 떨어졌다⁠.

“⁠자네 일은 강호의 자리에서 따로 묻겠네⁠. 관아에서가 아니라⁠.⁠” 여문태가 객경을 부축해 문으로 걸었다⁠. 상관씨 가주가 비켜서지 않았다⁠. 여문태가 가주의 앞에 멈췄다⁠. 상관씨 가주가 이를 물고 말했다⁠.

“⁠늦었소⁠, 여 형⁠. 나는 사흘 전에 강호의 문파와 세가를 한데 묶은 무림맹으로 사람을 보냈소⁠. 항주 관아가 무림 세가 장남의 목을 베려 한다고⁠. 서호 세가들이 관아 밑으로 줄줄이 끌려간다고⁠. 맹은 가만있지 않을 거요⁠. 여 형이 아들을 지키지 않으면 맹이 지킬 거요⁠. 그다음엔 여 형 대신 맹이 서호를 쥐겠지⁠.⁠”

여문태는 이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상관씨 가주의 가슴팍을 툭 밀었다⁠. 서른도 안 된 가주가 문설주에 부딪혀 주저앉았다⁠. 여문태는 이 옆을 지나 선창으로 나갔다⁠. 물 위에 안개가 깔려 있었다⁠.

선창 끝에 작은 배 하나와 사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파루의 늙은 사공이었다⁠. 여문태가 어젯밤 청파루에 가서 직접 청한 사람이었다⁠. 노인은 객경을 배에 받아 누이고 여문태를 쳐다보았다⁠.

“⁠붕어골로 데려가시오⁠.⁠” 여문태가 말했다⁠. “⁠거기서 법정으로 가는 길을 붕어골 사람들이 알 거요⁠. 내 집 사람이 데려가면 아무도 이 사람 말을 안 믿을 테니⁠.⁠”

배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객경이 배 바닥에 누운 채 부은 눈으로 여문태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여문태가 먼저 말했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거짓말을 시키려고 꺼낸 게 아니야⁠.⁠”

*

부 법정 두 번째 날 아침⁠, 미향은 관아 대문 앞 돌사자 옆에서 큰길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천 명이 갈라지는 소리는 파도 같았다⁠. 사람들이 양쪽으로 밀려나며 길 한가운데가 열렸다⁠. 이 길로 붕어골 어부 넷이 문짝 하나를 메고 걸어왔다⁠. 문짝 위에 외눈 객경이 누워 있었다⁠. 맨 앞 모서리를 멘 사람이 촌장이었다⁠. 일흔 넘은 노인이 지팡이를 허리춤에 꽂고 문짝 모서리를 어깨에 얹고 있었다⁠. 뒤 모서리를 생선을 던졌던 늙은 어부가 메고 있었다⁠. 공치삼은 문짝 옆에서 걸었다⁠.

촌장이 돌사자 앞에서 멈추고 미향을 보았다⁠. 숨을 몰아쉬었다⁠.

“⁠새벽에 청파루 사공 영감이 이 사람을 우리 선창에 내려놓고 갔소⁠. 법정 가는 길을 붕어골 사람이 안다고⁠. 그래서 메고 왔소⁠.⁠” 촌장이 어깨를 주물렀다⁠. “⁠이것도 공짜요⁠. 공짜인데 무겁소⁠.⁠”

“⁠어르신⁠, 박수 치러 오신 거요⁠?⁠”

“⁠아니⁠. 메러 왔소⁠. 박수는 손이 비어야 치지⁠.⁠”

미향은 웃었다⁠. 어깨의 꿰맨 자리가 당겼다⁠.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옥담이 달려와 촌장 허리춤의 지팡이를 받아 들고⁠, 문짝 모서리를 대신 메겠다며 어깨를 들이밀었다⁠.

*

외눈 객경은 증인석에 서지 못하고 의자에 앉았다⁠. 왼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지부가 객경을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방청석 맨 뒤에서 판관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송사꾼은 흰 부채와 검은 부채 가운데 무엇을 펼쳐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서리가 붓을 들고 물었다⁠. “⁠증인의 이름은⁠?⁠”

“⁠외눈이오⁠.⁠”

“⁠눈이 둘 다 있지 않소⁠?⁠”

“⁠오늘은 둘 다 부어서 외눈 노릇도 못 하오⁠. 그냥 외눈이라 적으시오⁠.⁠”

마당에서 웃음이 터졌다⁠. 송사꾼이 이 틈을 잡았다⁠. “⁠영감⁠, 이 증인은 밤사이 누구에게 얻어맞고 왔습니다⁠. 맞은 사람의 말에는 원한이 섞이기 마련입니다⁠.⁠” 객경이 부은 눈을 송사꾼에게 돌렸다⁠. “⁠나를 팬 건 상관씨 집 사람이오⁠. 여씨 집 사람이 아니고⁠. 원한을 품어도 나는 엉뚱한 집에 품은 거요⁠. 여 공자한테 품을 원한은 없소⁠. 나는 그 사람한테 이겼으니까⁠.⁠” 웃음이 한 번 더 일었고⁠, 이번에는 송사꾼도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육씨 세가 객경⁠, 그날 밤 비무는 언제 끝났소⁠?⁠” 미향이 물었다⁠.

“⁠내가 칼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을 때요⁠.⁠” 객경의 목소리가 쉬어 있었지만 대청 끝까지 들렸다⁠. “⁠강호에서 비무를 닫는 법은 그거 하나요⁠. 이긴 쪽이 칼을 거두고 고개를 숙이면 끝이오⁠. 진 쪽이 받아들여야 끝난다고 누가 그럽디까⁠? 그럼 진 놈이 평생 안 받아들이면 그 비무는 평생 열려 있는 거요⁠? 그런 법은 강호에 없소⁠. 그런 법이 있으면 강호는 진 놈들 천하가 되오⁠.⁠”

마당에서 무관 털보가 크게 웃었다⁠. 제자들도 따라 웃었다⁠.

“⁠나는 이겼소⁠. 소매를 가른 다음 이긴 사람이 할 일을 다 했소⁠. 칼을 칼집에 넣었고⁠, 상대에게 머리를 숙였고⁠, 그 배를 떠났소⁠. 떠나는 내 등에 웃음이 와서 닿았고⁠, 이어서 물이 무겁게 갈라지는 소리가 왔소⁠. 그래도 고개를 안 돌렸소⁠.⁠” 객경이 부은 눈을 감았다⁠. “⁠그날 비무는 내가 고개를 숙일 때 닫혔소⁠. 그 뒤에 그 배 아래에서 일어난 일은 비무가 아니오⁠.⁠”

송사꾼이 검은 부채를 펼쳤다가 그대로 들고 서 있었다⁠. 할 말을 찾지 못했다⁠.

*

이때 방청석 맨 앞줄에서 여문태가 일어섰다⁠.

“⁠지부 영감⁠. 나도 증언대에 서겠소⁠.⁠”

법정이 술렁였다⁠. 지부가 경당목을 들었다가 놓았다⁠. 세가 가주가 증언대에 선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여문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증언대에 섰다⁠. 지부를 보지 않았다⁠. 마당의 천 명을 보았다⁠.

“⁠객경의 말이 맞소⁠. 비무는 끝났소⁠. 내 아들이 졌소⁠.⁠” 여문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뒤에 어부의 딸이 노로 내 아들의 손을 쳤소⁠. 강호에서는 무인을 먼저 친 사람이 되돌아오는 손을 피하지 못하오⁠. 내 아들은 그 대가를 치르게 했소⁠. 강호의 법으로는 그렇소⁠. 나는 그 법을 지키려고 여기 섰소⁠.⁠” 여문태가 손을 들어 마당을 가리켰다⁠. “⁠여러분 가운데 스물두 해 전 가을⁠, 저자거리에서 목이 잘린 무림인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소⁠? 내 동생이오⁠. 이 관아 법정이 그 목을 잘랐소⁠. 동생은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그때 검시한 오작이 그렇게 말했는데⁠, 은자 몇백 냥을 받은 그때의 지부가 듣지 않았소⁠. 그 뒤로 이 고을의 강호 사람들은 관아에 일을 맡기지 않았소⁠. 맡기면 돈 많은 쪽이 이기니까⁠.⁠”

마당이 웅성거렸다⁠. 미향은 사람들의 얼굴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증언대 앞으로 나섰다⁠.

“⁠가주⁠. 그때의 지부에게 은자를 준 집은 어디였소⁠?⁠”

여문태가 미향을 보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관아 법정이 가주의 동생을 죽인 게 아니오⁠. 돈 받은 지부가 죽였고⁠, 그 돈은 강호의 집에서 나왔소⁠. 관아가 강호를 법정에 세우지 못하니⁠, 강호는 관아를 돈으로 샀소⁠. 가주께서는 그 일을 막으려고 법정 문을 닫으셨지만⁠, 문이 닫혀 있는 동안 그 돈을 낸 집은 스물두 해 동안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서호에 앉아 있었소⁠.⁠” 미향이 숨을 골랐다⁠. “⁠오늘 이 법정에는 천 명이 있소⁠. 저 천 명 앞에서 은자 몇백 냥으로 판결을 사기는 어렵소⁠. 법정 문을 닫아서 막는 게 아니라⁠, 열어서 막는 거요⁠.⁠”

여문태는 오랫동안 미향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아버지⁠, 그만하십시오⁠.⁠”

여준결이 일어서 있었다⁠.

*

여준결은 오른손의 헝겊을 풀었다⁠. 손등의 혹이 터진 자리에 딱지가 앉아 있었다⁠. 여준결은 이 손을 법대를 향해 들어 보였다⁠.

“⁠이 손이 그 아이를 쳤소⁠. 비무에 지고⁠, 물에 빠지고⁠, 다들 웃는 소리를 듣고⁠, 다시 그 배로 내려가서 쳤소⁠. 그 아이가 웃지 않고 나를 봐서⁠. 그게 다요⁠.⁠” 여준결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아버지 말씀처럼 강호의 법으로 치면 그 아이는 내 손을 먼저 쳤소⁠. 그런데 나는 그 법을 핑계로 친 게 아니오⁠. 그때 나는 강호의 법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소⁠. 진 게 창피했고⁠, 그 아이 눈이 싫었소⁠. 그래서 쳤소⁠.⁠”

여문태가 아들을 돌아보았다⁠. 이 얼굴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을 미향은 보았다⁠. 소리 없이⁠, 기와가 미끄러지듯⁠.

“⁠준결아⁠.⁠”

“⁠아버지는 작은아버지 일로 관아를 미워하셨지요⁠. 저는 그 이야기를 며칠 전에야 들었습니다⁠. 작은아버지는 하지 않은 일로 목이 잘리셨습니다⁠. 저는 한 일로 여기 섰습니다⁠.⁠” 여준결이 아버지에게 허리를 숙였다⁠. “⁠아버지⁠, 저 대신 강호의 법을 말하지 마십시오⁠. 강호의 법은 저 같은 놈을 감싸라고 있는 게 아닐 겁니다⁠.⁠”

여준결은 미향을 보았다⁠. 담장 위에서 처음 마주친 날 밤처럼⁠, 그러나 웃지 않고⁠.

“⁠포두 아씨⁠, 이제 됐소⁠?⁠”

“⁠아직이오⁠.⁠” 미향이 말했다⁠. “⁠판결이 남았소⁠.⁠”

법정이 터질 듯 들끓었다⁠. 마당의 천 명이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 공치삼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공치삼의 어깨가 떨렸다⁠. 세미가 이 옆에서 공치삼의 손을 잡았다⁠. 지부는 경당목을 세 번⁠, 네 번 쳤다⁠. 공치삼의 눈이 방청석 맨 뒤 판관에게 갔다⁠. 판관은 움직이지 않았다⁠.

“⁠판결은⁠…⁠… 판결은 내일 아침에 내리겠네⁠.⁠” 지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피고는 오늘 밤 부 관아 옥에 머문다⁠. 파하라⁠.⁠”

*

사람들이 흩어진 대청에서 여문태가 마지막으로 나왔다⁠. 미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얼굴이 하룻밤 사이에 열 해는 늙어 있었다⁠.

“⁠조미향⁠. 내일 판결이 나면⁠, 그다음은 관아 일이 아니게 될 거요⁠.⁠” 여문태가 서쪽 하늘을 보았다⁠. 해가 담장에 걸려 있었다⁠. “⁠상관씨가 무림맹에 사람을 보냈소⁠. 사흘 전에⁠. 맹의 사자는 빠르오⁠.⁠”

여문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관아 대문을 나갔다⁠. 아무도 여문태를 부축하지 않았다⁠. 미향은 허리의 쇠사슬을 오른손으로 쥐었다⁠. 마흔아홉 고리가 손바닥 안에서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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