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379자)
법정 문
삼류 여포두 · 설묵향
부 관아 옥은 땅 밑으로 반쯤 파고 들어간 돌방이었다. 창이 머리 위 높은 데 손바닥만 하게 뚫려 있어서, 새벽빛이 그리로 한 줄기 내려와 바닥 짚 위에 네모를 그렸다. 습기와 오줌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벽돌 틈마다 배어 있었다. 미향은 옥지기에게 동전 열 문을 쥐여 주고 창살 앞에 섰다. 옥지기는 동전을 세어 보더니 미향을 포두 나리라고 불렀다. 열 문이면 나리라고 했다.
여준결은 이 네모난 빛 옆에 앉아 있었다. 흰 옷이 하룻밤 사이에 회색이 되어 있었다. 오른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손등의 딱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포두 아씨, 해도 뜨기 전에 오셨소.” 여준결이 고개를 들었다. 어시장에서 처음 말을 걸어오던 이 말투였는데, 웃음이 붙지 않았다. “판결을 미리 알려 주러 오셨소?”
“판결은 나도 모르오.”
“지부가 무엇을 읽든 저 판관이 다시 보겠지요.” 여준결이 손등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밤새 생각해 봤소. 목이 잘리면 어떤 기분일지. 작은아버지는 하지 않은 일로 그걸 겪으셨고. 나는 한 일로 겪으면 조금 덜 억울하려나.”
미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준결은 대답을 바라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밤새 사당에 계셨을 거요. 작은아버지 위패 앞에.” 여준결이 짚 하나를 뽑아 손가락에 감았다. “포두 아씨, 하나만 물읍시다. 그 아이 이름이 아영이었지요. 법정에서 다들 그 아이라고만 불러서, 어젯밤에야 이름이 생각났소. 그 아이가 무엇을 하려고 그 배 노를 저었는지 아시오?”
“제 배를 짓고 있었소. 갈대밭 안쪽에서. 쇠못 살 돈이 모자라서 밤에 노를 저었소.”
여준결이 짚을 감던 손가락을 멈췄다. 창으로 들어온 빛 네모가 조금 옆으로 옮겨 가 있었다.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짚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쇠못.” 여준결이 말했다. “그날 내가 던진 은자 한 덩이면 그 배에 못을 다 박고도 남았겠군.”
*
아침이 되자 부 관아 앞 큰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관아 대문 쪽에서 큰길 네거리까지는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이 메우고 있었다. 이천은 된다고 옥담이 말했다. 이번에는 세다가 포기하지 않고 처음부터 대충 불렀다. 이 맞은편, 네거리 건너에서 회색 옷과 쪽빛 옷과 붉은 띠의 무사들이 줄을 맞춰 다가오고 있었다. 육씨, 하씨, 단씨, 상관씨. 서호 네 세가의 무사들이었다. 백은 넘었다. 여씨 세가의 검은 옷은 이 안에 없었다. 맨 앞에서 상관씨 가주가 말을 타고 있었다.
무사들이 네거리에서 멈췄다. 사람들이 한 걸음씩 물러났다. 관아 대문 앞에 빈 땅이 생겼다. 미향은 이 빈 땅 한가운데로 나가 섰다. 왼팔은 아직 목에 걸려 있었다. 오른손에 쇠사슬을 두 바퀴 감았다.
상관씨 가주가 말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포두. 아니, 문지기였지. 여씨 장남을 판결 전에 내놓으시오. 세가 장남은 강호의 자리에서 강호의 벌을 받소. 오늘 아침 무림맹 사자가 항주에 들어왔소. 맹이 그 아이를 데려갈 거요. 그전에 우리가 데려가겠소.”
“판결 전에 피고를 내줄 수는 없소.”
“그럼 비키지 마시오. 밟고 지나가겠소.”
이때 큰길 뒤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위로 나무 삐걱거리는 소리와 발 맞추는 소리가 겹쳐 왔다. 이천 명이 다시 갈라졌다. 붕어골 사람들이 무엇을 어깨에 메고 걸어오고 있었다. 열두 명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멘 것은 배였다.
작은 배였다. 아영의 배였다. 용골과 갈빗대 위에 새 판자가 붙어 있었고, 판자마다 쇠못 머리가 반짝였다. 송진을 아직 다 먹이지 못해 나무 냄새가 생생했다. 뱃머리에 서툰 칼솜씨로 붕어 한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노 손잡이의 이 붕어와 같은 모양이었다. 촌장이 뱃머리 아래 모서리를 메고 앞장섰고, 공치삼이 뱃꼬리를 메고 있었다.
이들은 관아 대문 앞 빈 땅에, 미향의 등 뒤에, 이 배를 가로로 내려놓았다. 배가 대문 앞을 가로막는 담이 되었다. 촌장이 숨을 몰아쉬며 미향 옆에 섰다.
“어젯밤 밤새 박았소. 갈대밭에서. 등잔 열 개 켜 놓고.” 촌장이 지팡이로 배 옆구리를 두드렸다. 통통 소리가 났다. “쇠못 값은 그 도련님이 우리 생선 사 준 돈으로 냈소. 다들 조금씩 냈소. 던진 놈들이 더 많이 냈소.”
생선을 던졌던 늙은 어부가 배 뒤에서 헛기침을 했다.
공치삼은 뱃꼬리 옆에 서서 배를 보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판자 하나를 쓸었다. 못 머리가 손바닥에 걸렸다. 미향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아영이가 셈한 거보다 못이 서른 개 더 들었소. 그 아이는 셈을 나한테 배워서 늘 모자라게 셌소.”
공치삼이 웃었다. 마른 눈이 아니었다.
상관씨 가주가 말 위에서 이 배를 내려다보았다. 무사들이 칼자루를 쥐었다. 붕어골 사람들이 노를 들었다. 국수집 아낙이 국자를 들었다. 무관 털보의 제자들이 소매를 걷었다. 생강 냄새가 퍼졌다. 상관씨 가주가 이를 물었다. 그러다 고삐를 당겼다.
“맹이 오면 보자. 맹은 배 한 척에 안 막히오.”
무사들이 네거리 건너로 물러났다. 물러나기만 했다. 돌아가지는 않았다.
옥담이 배 안으로 기어 들어가 가운데 가로대에 걸터앉았다. 몽둥이를 무릎에 가로놓고 사방을 노려보았다. 미향이 쳐다보자 옥담이 어깨를 폈다.
“배를 지키는 포졸입니다. 이런 자리는 관아에 처음 생긴 거니까, 제가 첫 번째예요.”
“배 안에서 멀미는 안 하나?”
“땅 위 배라서 괜찮아요. 아마도요.”
이때 여문태가 왔다. 혼자였다. 네거리 쪽이 아니라 관아 옆 골목에서 걸어 나왔다. 회색 도포가 밤이슬에 젖어 무거워 보였다. 상관씨 무사들 쪽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아영의 배 앞까지 와서 멈췄다. 뱃머리의 붕어를 내려다보았다.
“이 배를 내 아들이 산 생선 값으로 박았다 들었소.”
“촌장 어르신이 그러셨소.”
여문태가 손을 뻗어 뱃머리의 붕어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서툰 칼자국이 여문태의 손끝에 걸렸다. 손을 거두고 미향을 보았다.
“조미향. 무림맹 사자는 내가 부른 게 아니오. 그러나 그가 오면 나는 막지 않을 거요. 아들이 강호의 자리로 가면 목은 붙어 있을 테니까. 그건 아비로서 하는 셈이오.”
“막아 달라고 하지 않겠소, 가주.”
“그럴 줄 알았소.” 여문태가 대청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멈췄다. “조 포두에게 그날 밤 감나무 아래에서 했던 말을 나는 스물두 해 동안 원망했소. 오늘은 그 말이 맞는지 끝까지 보겠소. 방청석에서.”
여문태는 배를 돌아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옥담이 배 안에서 이 뒷모습을 보다가 미향을 돌아보았다.
“포두, 저 어르신 지금 우리 편이에요, 저쪽 편이에요?”
“둘 다야.”
“그런 편도 있어요?”
“오늘은 있네.”
*
법정 안에서 판관은 오늘 방청석 맨 뒤가 아니라 법대 바로 아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부는 법대 위에서 판결문을 펼쳐 들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서리 넷이 붓을 들었고, 대청 문은 활짝 열려 마당의 사람들이 다 보였다. 이 마당 너머 대문 앞에 아영의 배가 가로놓여 있었다.
공치삼이 법대 앞으로 나와 노를 세웠다. 미향이 새벽에 증물 창고에서 꺼내 온 붕어 새긴 노였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함두봉이 이 옆에 섰고, 세미가 줄을 새로 맨 비파를 안고 섰다. 부목을 댄 비파 목이 조금 기울어 있었다. 외눈 객경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청파루 사공 노인은 맨발로 기둥 옆에 서 있었다. 여문태는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밤새 사당에 있었다는 얼굴이었다.
여준결이 옥에서 끌려 나와 피고 자리에 섰다. 포승은 없었다. 노를 보았다. 노 손잡이의 붕어를 오래 보았다.
지부가 헛기침을 했다. 판관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항주부는 전당현에서 올라온 사건, 붕어골 공치삼이 딸 아영의 죽음을 두고 낸 고소를 다시 살폈다. 여씨 세가 장남 여준결은 구월 열이틀 밤 청파루 놀잇배 아래에서, 비무가 이미 끝난 뒤, 노를 쥐고 선 공아영과 마주 서서 손바닥으로 그 가슴을 쳐 물에 빠져 죽게 하였다. 이는 비무 중의 과실이 아니며…….”
마당에서 숨소리가 멎었다. 이천 명이 한꺼번에 숨을 참으면 대청 기둥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미향은 쇠사슬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공치삼의 어깨가 앞으로 기울었다.
“…… 그러므로 여준결의 죄는…….”
쿵.
법정 문이 울렸다. 대청 양쪽 문짝이 밖에서 밀려 안쪽 벽에 부딪혔다. 문틀의 먼지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마당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다. 대문 앞에 가로놓였던 아영의 배는 그대로 있었다. 배를 넘어서 온 것이었다.
흰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대청 문턱에 섰다. 마흔 줄, 수염이 없었고, 허리에 칼 대신 손바닥만 한 검은 쇠패를 차고 있었다. 쇠패에 무림맹의 표지가 새겨져 있었다. 뒤로 같은 흰 옷의 무사 열이 문 양쪽으로 갈라 섰다. 발소리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마당 저쪽 네거리에서 물러나 있던 세가 무사들이 뒤를 따라 큰길로 다시 밀려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무림맹 사자다.” 흰 옷의 사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높지 않았는데 대청 안의 모든 귀에 닿았다. “강호 사람의 일은 강호가 정한다. 백 년 동안 그래 왔다. 항주부의 판결은 여기서 멈춘다. 여씨 세가의 여준결은 무림맹이 데려가 강호의 자리에서 묻겠다.”
지부의 손에서 판결문이 미끄러졌다. 판관이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방청석 맨 앞줄에서 여문태가 고개를 들었다. 여문태의 얼굴에 떠오른 것이 안도인지 무엇인지 미향은 읽을 수 없었다.
사자가 대청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피고 자리의 여준결을 향해.
미향이 이 앞으로 나섰다. 법대와 문 사이, 노가 세워진 자리 바로 앞이었다. 왼팔은 목에 걸려 있었다. 오른손에서 쇠사슬이 풀려 내려갔다. 고리가 하나씩 손가락 사이를 지나가며 차르륵 울었다. 마흔아홉 번째 고리 끝의 납 추가 검은 벽돌 바닥에 닿아 탁 소리를 냈다.
사자가 걸음을 멈췄다. 미향의 목에 걸린 팔과, 손에 든 낡은 쇠사슬과, 뒤에 선 노를 차례로 보았다.
“그대는 누구인가?”
“항주부 관아 포두 조미향이오.” 미향이 말했다. “판결이 아직 다 읽히지 않았소. 다 읽힐 때까지 이 법정 안의 사람은 아무도 데려가지 못하오.”
“포두 하나가 무림맹을 막겠다는 건가?”
“막을 수 있는지는 모르오. 나는 무공이 삼류요.” 미향은 사슬을 오른손에 한 바퀴 감았다. 납 추가 손목 밑에서 낮게 흔들렸다. “그래도 이 사슬은 던지겠소. 아버지가 무거워야 한다고 한 사슬이오.”
사자의 눈이 처음으로 가늘어졌다. 이 사람의 뒤에서 흰 옷의 무사 열이 한꺼번에 손을 들었다. 대청 밖 마당에서 이천 명이 한 걸음 앞으로 밀려들었다. 세미가 비파를 가슴에 끌어안았고, 함두봉이 노 옆에 붙어 섰다. 피고 자리의 여준결이 처음으로 미향의 등을 보았다.
그리고 판관이 법대 아래에서 입을 열었다.
“양절로 제형사 판관이오. 무림맹 사자, 그대가 지금 밀고 들어온 것은 항주부의 문이 아니라 나라 법정의 문이오.”
사자가 판관을 돌아보았다. 미향은 사슬을 거두지 않았다. 납 추가 미향의 손 아래에서 아주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