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237자)

천 명의 눈

삼류 여포두 · 설묵향

부 관아 앞 큰길이 사람으로 막혔다⁠.

미향은 왼팔을 헝겊으로 목에 걸고 관아 대문 옆 돌사자 곁에 서서 이 길을 내려다보았다⁠. 전당현 골목의 백 명⁠, 다음 공판의 삼백 명은 골목 하나를 채웠지만⁠, 오늘은 큰길 두 개가 만나는 네거리까지 머리가 이어졌다⁠. 지붕 위⁠, 담장 위⁠, 길가 회화나무 가지 위에도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천 명은 넘는다고 옥담이 말했다⁠. 옥담은 세다가 포기했다⁠. 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숨을 쉬니 가을 아침인데도 공기가 후끈했다⁠. 군밤 냄새⁠, 국수 냄새⁠, 누가 들고 온 엿 냄새⁠, 그리고 땀 냄새⁠.

이 사람들 사이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국수집 아낙은 오늘 솥을 두 개 걸었다⁠. 서당 훈장은 율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고⁠, 무관 털보는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생강 냄새를 풍겼다⁠. 남문을 드나들던 장꾼들이 지게를 내려놓고 서 있었다⁠. 그리고 큰길 한쪽에 붕어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열넷 집에서 거의 다 나온 듯했다⁠. 촌장이 지팡이를 짚고 맨 앞에 서 있었다⁠.

미향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촌장에게 갔다⁠.

“⁠어르신⁠. 오셨소⁠.⁠”

“⁠구경 왔소⁠.⁠” 촌장이 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구경은 공짜잖소⁠. 우리가 요즘 공짜 아닌 건 하나도 못 하오⁠.⁠” 촌장이 미향의 어깨를 흘끗 보았다⁠. “⁠그건 생선 맞은 자리요⁠?⁠”

“⁠칼 맞은 자리요⁠.⁠”

촌장이 혀를 찼다⁠. 그러고는 뒤에 선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며 크게 말했다⁠.

“⁠들었지⁠? 칼이란다⁠. 생선 아니고⁠. 생선 던진 놈들 오늘 크게 박수 쳐⁠.⁠”

마을 사람 몇이 고개를 숙였다⁠. 생선을 던졌던 늙은 어부가 맨 뒤에서 헛기침을 했다⁠.

*

부 법정은 현 법정보다 세 배 넓었다⁠. 대청 바닥이 검은 벽돌로 깔려 있었고⁠, 법대는 사람 키만큼 높은 단 위에 있었다⁠. 지부가 이 위에 앉았다⁠. 오늘은 상 위에 게도 홍시도 없었다⁠. 법대 옆에 서리 넷이 붓을 들고 앉았고⁠, 아래 오른쪽에 부 관아의 늙은 포두가 졸린 얼굴로 섰다⁠. 사건을 미향에게서 넘겨받은 포두였다⁠. 법정이 열리기 전에 미향에게 와서 귓속말을 했다⁠. 자기는 서 있기만 하겠다고⁠, 말은 그쪽이 하라고⁠.

여준결은 맞은편에 섰다⁠. 장갑을 끼지 않았다⁠. 오른손 손등에 새로 감은 헝겊이 있었다⁠. 놀잇배에서 다시 터진 자리였다⁠. 여준결의 뒤 방청석 맨 앞줄에 여문태가 앉아 있었다⁠. 관아 법정에 세가 가주가 앉은 것은 이 고을이 생긴 이래 처음이라고⁠, 서리 하나가 붓을 떨어뜨리며 속삭였다⁠. 상관씨 가주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송사꾼이 오늘은 부채를 두 개 들고 왔다⁠. 하나는 흰 것⁠, 하나는 검은 것이었다⁠. 무엇에 쓰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부가 경당목을 쳤다⁠.

“⁠먼저 말해 두겠네⁠. 이 법정은 현의 판결을 다시 보는 자리일세⁠. 현에서 나온 증언 가운데⁠, 청파루 기녀 탁세미의 말은 율에 따라 반만 치겠네⁠. 천한 일을 하는 자의 말은 양민의 말과 무게가 다르니까⁠.⁠”

대청 밖 마당이 술렁였다⁠. 세미가 증인석 끝에서 너울 자락을 움켜쥐었다⁠. 미향이 한 걸음 나섰다⁠.

“⁠영감⁠, 그럼 반을 하나 더 데려오겠습니다⁠.⁠”

지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소린가⁠?⁠”

“⁠청파루 놀잇배 사공입니다⁠. 마흔 해 동안 그 배를 저었습니다⁠. 사공도 천한 일이라 하시면 그 사람 말도 반이겠지요⁠. 반과 반을 더하면 하나입니다⁠.⁠”

마당이 터졌다⁠. 웃음이 큰길까지 번져 나갔다⁠. 회화나무 가지 위의 누군가가 손뼉을 치다가 떨어질 뻔했다⁠. 지부의 얼굴이 붉어졌다⁠. 송사꾼이 검은 부채를 펼쳤다⁠.

“⁠영감⁠, 셈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반과 반은⁠…⁠…⁠.⁠”

“⁠반과 반은 하나요⁠!⁠” 마당에서 촌장이 외쳤다⁠. “⁠내가 붕어를 쉰 해 팔았는데 반 근과 반 근은 한 근이오⁠!⁠”

웃음이 한 번 더 일었다⁠. 지부가 경당목을 세 번 쳤다⁠.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마당의 천 명을 내려다보았다⁠. 미향은 이 얼굴이 무엇을 셈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천 명이 오늘 저녁 성안의 술집 천 곳으로 흩어진다⁠. 지부가 사공의 말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같이 흩어질 것이었다⁠.

“⁠사공을 불러라⁠.⁠”

*

사공 노인은 맨발로 들어왔다⁠. 신을 벗어 손에 들고 있었다⁠. 관아 바닥에 신을 신고 올라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노인은 증인석에 서서 지부를 올려다보지 않고 대청 바닥의 검은 벽돌만 보았다⁠. 그러다 미향이 고개를 끄덕이자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배 꼬리에서 노를 잡고 있었소⁠. 꼬리에서는 갑판이 다 보이고⁠, 배 옆에 붙은 작은 배도 다 보이오⁠. 비무는 외눈 나리가 여 공자 소매를 베고 끝났소⁠. 외눈 나리는 제 배로 뛰어내려 저어 갔소⁠. 그 배가 우리 배 꼬리를 지나 등롱 빛 밖으로 나가는 걸 내가 봤소⁠. 내 노 바로 옆을 지나갔으니까⁠.⁠”

송사꾼의 검은 부채가 멈췄다⁠.

“⁠그다음에 여 공자가 공가 딸아이 배로 내려섰소⁠. 아이가 노 손잡이로 밀어냈고⁠, 여 공자가 물에 빠졌다가 올라왔소⁠. 다들 웃었소⁠. 나는 안 웃었소⁠. 나는 노인이라 그런 건 안 우스웠소⁠. 그 아이도 안 웃었소⁠. 나는 그 아이 얼굴을 봤소⁠. 그 아이는 웃지 않고 노를 꽉 쥐고 있었소⁠. 내가 그 아이한테 노 쥐는 법을 한 번 고쳐 준 적이 있소⁠. 그날 밤 그 아이는 내가 고쳐 준 대로 쥐고 있었소⁠.⁠”

노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손에 든 신을 내려다보았다⁠.

“⁠여 공자가 아이 앞에 섰고⁠, 손이 나갔소⁠. 소리가 났소⁠. 북 치는 소리 같았는데 둔했소⁠. 아이가 뒤로 넘어가 물에 들어갔소⁠. 노가 아이 손에서 빠져 물에 떴소⁠. 나는 노를 놓고 뛰어들려고 했소⁠. 그런데 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잡았소⁠. 세가 도련님 하나가⁠. 늙은이가 뛰어들면 둘이 죽는다고⁠.⁠” 노인이 숨을 골랐다⁠. “⁠나는 안 뛰어들었소⁠. 그게 마흔 해 동안 그 배를 저으며 한 일 가운데 제일 부끄러운 일이오⁠. 이튿날 새벽에 물에 뜬 노를 건졌소⁠. 붕어 새긴 노를⁠. 그걸 열흘 가까이 뱃바닥 밑에 숨겨 두고⁠, 공가 영감 얼굴을 못 봤소⁠.⁠”

마당이 조용했다⁠. 천 명이 숨을 죽이면 그렇게 조용해진다는 것을 미향은 처음 알았다⁠. 붕어골 사람들 쪽에서 누군가 코를 훌쩍였다⁠. 공치삼은 증인석 뒤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서 두 손을 꽉 쥐고 있었다⁠. 노인을 보지 않았다⁠. 노인도 공치삼을 보지 않았다⁠.

“⁠그날 밤 이긴 사람이 누구였소⁠?⁠” 미향이 물었다⁠.

“⁠외눈 나리요⁠. 다들 알았소⁠. 아무도 말 안 했지만⁠.⁠”

*

송사꾼이 흰 부채를 펼쳤다⁠. 이 부채를 쓸 때가 온 모양이었다⁠.

“⁠영감⁠, 사공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공은 배 꼬리에 있었고 등롱 빛은 어두웠습니다⁠. 무엇보다 사공은 강호의 법을 모릅니다⁠. 강호에서 비무는 한쪽이 떠났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진 쪽이 진 것을 받아들여야 끝납니다⁠. 여 공자는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비무 자리는 아직 열려 있었고⁠, 그 자리 안에서 생긴 일은 비무 중의 일입니다⁠.⁠” 송사꾼이 부채를 접었다⁠. “⁠그것은 비무를 한 사람이 말할 수 있습니다⁠. 육씨 세가의 객경이 오늘 이 법정에 온다고 들었습니다⁠. 그분께 물어보십시오⁠. 비무가 언제 끝났는지⁠. 그분은 강호 사람이니 강호의 셈으로 답할 겁니다⁠.⁠”

송사꾼의 얼굴에 의심이 없었다⁠. 미향은 이 얼굴을 보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송사꾼은 객경이 무슨 말을 할지 안다고 믿고 있었다⁠. 아니면⁠, 객경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때 방청석 뒤쪽이 술렁였다⁠. 사람들이 갈라지며 회색 관복 차림의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마흔 남짓⁠, 수수한 얼굴에 수행원 하나만 데리고 있었다⁠. 사내는 방청석 맨 뒤 빈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객경이 누구인지 몰랐다⁠. 지부만 알았다⁠. 지부의 손에서 경당목이 미끄러져 법대에 굴렀다⁠.

추관 영감이 미향 곁으로 와서 아주 작게 말했다⁠.

“⁠양절로 제형사 판관일세⁠. 여드레 뒤에 온다더니⁠.⁠”

지부가 법대에서 일어나 이 사내에게 허리를 숙였다⁠. 사내는 손을 들어 앉으라는 시늉만 했다⁠. 지부는 앉아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하인을 불러 귓속말을 했다⁠. 하인이 방청석 뒤로 가서 판관 앞에 무엇을 내려놓았다⁠. 찐 게 한 접시였다⁠. 판관은 이것을 보지도 않았다⁠. 마당의 누군가가 이것을 보고 킥 웃었고⁠, 이 웃음이 큰길까지 번져 나갔다⁠.

*

한낮에 법정이 잠깐 쉬었다⁠. 마당의 천 명은 한 사람도 돌아가지 않았다⁠. 자리를 뜨는 순간 이 자리는 뒤에 선 사람의 것이 되었고⁠, 아무도 이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국수집 아낙의 솥 두 개가 그사이에 다 비었다⁠. 미향은 대청 뒤 우물가에서 찬물로 입을 헹구고 있었다⁠. 어깨의 꿰맨 자리가 맥박에 맞춰 욱신거렸다⁠. 뒤에서 누가 두레박을 집어 들었다⁠. 회색 관복이었다⁠. 판관은 제 손으로 물을 길어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미향을 보았다⁠.

“⁠남문 문지기가 자네인가⁠?⁠”

“⁠예⁠, 나리⁠.⁠”

“⁠붕어골 선창에서 비무를 안 받았다는 말도 들었네⁠. 이겼으면 오늘 이 법정이 필요 없었을 텐데⁠.⁠”

“⁠이겼으면 그 사람이 말했겠지요⁠. 제가 이겨서요⁠.⁠” 미향은 두레박 줄을 잡았다⁠. “⁠저는 그 사람이 아영이를 쳐서 말하게 하고 싶습니다⁠.⁠”

판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레박을 우물에 도로 내려 주고⁠, 소매의 물기를 털며 대청으로 돌아갔다⁠. 이 등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미향은 판관이 마신 물이 이 관아 우물에서 가장 찬 물이라는 것만 알았다⁠. 아버지가 서른 해 동안 마신 물이었다⁠.

*

객경은 오지 않았다⁠.

해가 서쪽 담장에 걸릴 때까지 법정은 객경을 기다렸다⁠. 그사이 함두봉이 증언대에 섰다⁠. 지부를 올려다보고 첫마디에서 한 번 혀가 걸렸다⁠. 그러고는 숨을 쉬고⁠, 지부의 얼굴을 보면서 끝까지 말했다⁠. 방청석 뒤의 판관이 처음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송사꾼은 오작의 말에 이번에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덧붙일 것은 모두 객경에게 걸려 있었다⁠.

해가 지자 지부가 경당목을 쳤다⁠.

“⁠육씨 세가의 객경은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겠네⁠. 내일도 오지 않으면 그 증인은 없는 것으로 보고⁠, 비무가 언제 끝났는지는 비무한 당사자의 말로 정하겠네⁠.⁠” 지부가 여준결을 보았다⁠. 여준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부의 눈이 방청석 맨 앞의 여문태에게로 갔다가 판관에게로 갔다⁠. “⁠파하라⁠.⁠”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미향은 관아 대문 밖으로 나가 돌사자 옆에 섰다⁠. 남문 쪽 길에서 옥담이 뛰어오고 있었다⁠. 미향이 오늘 아침 객경을 데리러 전당강 나루로 보낸 사람이었다⁠. 혼자였다⁠.

옥담이 숨을 헐떡이며 미향 앞에 멈췄다⁠. 그리고 손을 펴 보였다⁠. 손바닥 위에 검은 헝겊 한 조각이 있었다⁠. 눈가리개였다⁠. 헝겊 끝이 피에 젖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나루 창고 뒤 갈대에 걸려 있었어요⁠. 외눈 나리는 없었어요⁠. 노름판 사람들이 그러는데⁠, 새벽에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와서⁠…⁠…⁠.⁠”

미향은 눈가리개를 받아 들었다⁠. 피 냄새 사이로 동백기름 냄새가 났다⁠. 칼에 바르는 기름이었다⁠.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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