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206자)
외눈 객경
삼류 여포두 · 설묵향
이날 오후 세미는 감나무 집 마루에서 비파를 고치고 있었다. 부러진 목에 대나무 부목을 대고 삼실로 친친 감았는데, 감을 때마다 삼실이 손가락을 파고들어 손끝이 빨갰다. 남문으로 나가기 전에 들른 미향이 이 손을 보았다.
“그걸로 소리가 나오?”
“안 나와요. 줄이 없어서.” 세미가 삼실 끝을 이로 끊었다. “청파루 제 방 궤짝에 새 줄이 있어요. 가져오면 소리는 날 거예요. 예쁜 소리는 아니겠지만.”
“청파루엔 가지 마시오.”
“알아요.” 세미가 부목 댄 비파를 무릎에 세웠다. 비파가 조금 기울었다. “포두님, 아영이가 그 배 노를 왜 맡았는지 아세요? 청파루 배는 밤새 저어도 삯이 서른 문이에요. 붕어 한 광주리 값도 안 돼요. 그런데도 맡았어요. 갈대밭 안쪽에 배를 짓고 있었거든요. 제 배. 아버지 배 말고. 배 밑바닥 뼈대인 용골이랑 갈빗대는 다 세웠는데 쇠못 살 돈이 모자라서, 그 값을 모으려고 밤에 노를 저은 거예요.” 세미는 비파 목에 감긴 삼실을 손톱으로 눌렀다. “그 배 아직 갈대밭에 있어요. 공 영감님은 거기 안 가세요. 저도 못 가요.”
미향은 대답 대신 마루 끝에 앉아 삼실을 다 감을 때까지 기다렸다. 세미가 고개를 들었다.
“부 법정에 서면 또 말해야 하죠? 웃었다는 거.”
“말하지 않아도 되오.”
“말할 거예요. 그래야 그다음 말을 믿어 줄 것 같아서요.”
남문을 지키러 나갈 시각이었다. 미향은 일어나 대문을 나섰다. 대문을 닫을 때 세미가 비파 줄 없는 목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는 것이 문틈으로 보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
전당강은 하루에 두 번 거꾸로 흘렀다. 바다 쪽에서 밀물이 들어오면 강물이 하구에서 막혀 올라오다가 한 줄의 흰 벽이 되어 상류로 달렸고, 이 벽이 지나가는 동안 나루의 배들은 밧줄에 매달려 미친 말처럼 날뛰었다. 미향은 남문을 닫은 뒤 이 소리를 들으며 강가로 내려갔다. 멀리서 우레 같은 것이 오더니 발밑 땅이 떨렸다. 흰 물의 벽이 나루 앞을 지나갈 때 물보라가 둑까지 튀어 미향의 뺨을 적셨다. 짠맛이 났다. 서호의 물과는 맛이 달랐다.
“포두! 포두, 저 물 왜 저래요? 강이 왜 거꾸로…….”
옥담이 둑 위에서 펄쩍 뛰었다. 바로 이 순간 두 번째 물보라가 옥담을 정통으로 덮쳤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서서 입에 든 강물을 뱉었다.
“짜요. 포두, 강물이 짜요.”
“바닷물이 올라온 거야. 자네 항주에서 스물셋 해를 살고 전당강 조수를 처음 보나?”
“저는 성안에서만 살았어요. 성안 물은 안 짜요.”
나루 뒤편에 갈대로 지붕을 얹은 긴 창고가 있었다. 창고 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고, 이 안에서 주사위 구르는 소리와 사람들 고함이 섞여 터져 나왔다. 국수집 아낙이 말한 노름판이었다. 미향은 창고 문 앞에서 허리의 쇠사슬을 겉옷 안으로 감추었다. 성문 문지기가 노름판에 들어가면 노름꾼들이 다 뒷문으로 달아날 것이었다.
*
창고 안은 땀과, 누런 곡주인 황주와, 짚 썩은 냄새로 숨이 막혔다. 기름 등잔 열 개가 매달려 있었고, 이 아래 둥근 판 셋에 사람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가장 안쪽 판 앞에 한쪽 눈에 검은 헝겊을 댄 사내가 앉아 있었다. 마흔쯤, 수염이 덥수룩했고, 허리에 찬 가는 칼집이 낡아 끈으로 묶여 있었다. 이 사람은 주사위 그릇을 노려보고 있었다.
“짝!”
그릇이 열렸다. 홀이었다. 사내가 탁자를 쳤다. 그러고는 눈가리개를 벗어 반대쪽 눈에 옮겨 맸다.
옥담이 미향의 소매를 당겼다.
“포두, 저 사람 눈이 둘 다 있어요.”
“보이네.”
“그런데 왜 가려요?”
“물어보게.”
옥담이 판 앞으로 다가가 사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정말로 물었다.
“어르신, 눈이 둘 다 멀쩡하신데 왜 가리십니까?”
외눈 객경이 고개를 돌렸다. 가리지 않은 쪽 눈이 옥담을 위아래로 훑었다.
“왼눈은 운이 나쁘다. 그래서 가렸는데, 오늘 밤은 오른눈도 운이 나쁘다. 그래서 옮겼다. 두 눈을 다 가리면 판이 안 보이니 하나는 뜨고 있어야지.” 객경이 혀를 찼다. “너는 어느 눈이 운이 좋으냐?”
“저는 둘 다 나빠서 안 가립니다.”
객경이 처음으로 웃었다. 이 웃음이 미향에게 닿았다. 웃음을 거두고 미향을 보았다.
“관아 냄새가 나는군.”
“성문 문지기요. 오늘은.”
“그 포두 아씨로군. 붕어 광주리에 처박혔다는.” 객경이 주사위 그릇을 밀어냈다. “나는 할 말이 없소. 육씨 집에서 나온 사람이오. 육씨 가주가 항주를 떠나라고 노잣돈을 줬는데, 그 돈을 여기서 다 잃어서 못 떠나고 있소. 그게 다요.”
“노잣돈을 준 까닭이 무엇이었소?”
객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판 주인이 그릇을 흔들었다. 주인은 배가 불룩하고 손가락이 짧은 사내였는데, 엄지에 굵은 옥가락지를 끼고 있었다. 그릇을 엎었다.
“걸어, 걸어! 외눈 나리, 이번엔 어느 쪽이오?”
객경이 주머니를 털어 마지막 동전 꾸러미를 놓았다.
“짝.”
옥담이 판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인이 그릇을 흔드는 손을 보고 있었다. 미향은 옥담의 얼굴이 이렇게 진지한 것을 관아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잠깐만요.” 옥담이 손을 들었다. “주인 어르신, 주사위 좀 볼 수 있어요?”
판이 조용해졌다. 주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놈이 뭐라는 거야?”
“아니, 그게, 저희 아버지가 노름꾼이셨거든요. 평생 잃기만 하셨는데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부터 주사위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요, 이 그릇 안에서 나는 소리가 이상해요.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소리가 둔해요. 바닥에 닿을 때 똑 하고 안 하고 툭 해요.”
미향이 판 앞으로 나섰다. 주인이 그릇을 열기 전에 손을 뻗어 그릇째 집어 들었다. 주인이 손을 뻗었지만 늦었다. 미향은 주사위 두 개를 손바닥에 굴렸다. 하나는 가볍고 하나는 무거웠다. 무거운 것의 한쪽 면에서 아주 희미하게 쇠 냄새가 났다. 이것을 등잔불에 비춰 보았다. 점 하나를 판 자리가 다른 점보다 깊었고, 이 안이 납으로 채워져 메워져 있었다.
“이건 몇 번을 던져도 홀이 나오는 주사위요.” 미향이 주사위를 판 위에 놓았다. “외눈 나리, 오늘 밤 몇 번 짝에 거셨소?”
객경이 주사위를 집어 들었다. 이것을 등잔에 비추는 동안 창고 안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섰다. 판 주인이 뒷걸음질 치다가 짚단에 걸려 넘어졌다. 노름꾼 셋이 이 위로 덮쳤다. 창고가 뒤집혔다. 옥담이 엎어진 판 밑에서 기어 나오며 소리쳤다. “포두! 저 방금 처음으로 아버지 덕 봤어요!” 그러고는 날아오는 짚신 한 짝을 얼굴로 받았다.
*
창고 밖 둑에 앉아 객경은 잃었던 동전 꾸러미를 무릎 위에서 셌다. 다 되찾지는 못했지만 절반은 되었다. 밀물이 지나간 강은 다시 조용해져 있었고, 물 위에 달이 흔들렸다.
“열여섯 날을 짝에 걸었소.” 객경이 말했다. “열여섯 날 동안 그놈이 나를 벗겨 먹었소. 육씨 집에서 나를 붙잡아 두려고 판 주인한테 그렇게 시켰는지도 모르지.” 객경은 눈가리개를 벗어 손가락에 감았다. 두 눈이 다 보였다. “포두, 그 아가씨를 내가 봤다고 말하라는 거요?”
“본 대로만 말해 주시오.”
“나는 안 봤소. 그게 문제요.” 객경이 강을 보았다. “나는 여 공자 왼 소매를 가르고, 칼을 거두고, 고개를 숙이고, 내 배로 뛰어내렸소. 비무는 거기서 끝났소. 여 공자는 졌소. 나는 저어 가면서 뒤를 안 돌아봤소. 이긴 사람이 뒤돌아보면 진 사람 얼굴에 침을 뱉는 거니까. 그런데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났소. 여자들 웃음소리. 그리고 조금 뒤에 물에 뭐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소. 퐁 하고, 무겁게.” 객경이 동전 꾸러미를 꽉 쥐었다. “나는 그때도 안 돌아봤소. 이튿날 갈대밭에서 아가씨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소. 육씨 가주가 노잣돈을 주더군. 비무가 언제 끝났는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부 법정에서 그 말을 해 주시겠소?”
객경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강 건너에서 개가 짖었다.
“포두, 그때 돌아봤으면 내가 그 배까지 열 걸음이면 갔소. 이긴 사람이 진 사람 배로 다시 뛰어가면 강호에서는 웃음거리가 되지만, 웃음거리가 됐으면 그 아가씨는 살았겠지.” 객경이 눈가리개를 다시 맸다. 이번에는 왼눈이었다. “서겠소.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
둑 아래에서 발소리가 났다. 소리가 없는 발소리였다. 미향은 이제 이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준결이 강가 모래를 밟고 올라왔다. 혼자였다. 오른손에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객경이 일어섰다. 손이 허리의 가는 칼로 갔다. 여준결이 왼손을 들어 보였다. 빈손이었다.
“칼 뽑지 마시오. 싸우러 온 게 아니오.” 여준결이 객경을 보았다. “열여섯 날 동안 여기 있었다는 걸 나도 오늘 알았소. 아버지는 일찍부터 알았겠지.”
“무엇 하러 왔소, 여 공자?”
“다시 하자고 왔소. 그날 비무를.” 여준결의 목소리가 낮았다. “오른손이 나으면. 한 달 뒤에, 같은 배 위에서. 그날은 내가 정신이 딴 데 가 있었소. 다시 하면 이길 수 있소.”
객경이 웃었다. 이번에는 슬픈 웃음이었다.
“여 공자, 그날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던 건 공자가 아니라 나요. 나는 그날 이기고 바로 저어 가 버렸소. 정신이 제자리에 있었으면 돌아봤겠지.” 객경이 칼에서 손을 뗐다. “다시는 안 하오. 공자와는. 공자가 법정에 서기 전에도, 선 뒤에도.”
여준결의 얼굴이 굳었다. 미향은 둘 사이로 한 걸음 들어갔다.
“여 공자. 이 사람은 부 법정에 서기로 했소. 그날 비무가 언제 끝났는지 말하러.”
“알고 있소. 그래서 왔소.” 여준결이 미향을 보았다. “막으러 온 게 아니오. 아버지가 오늘 아침 상관씨 가주를 불렀소. 둘이 사당 앞에서 한 시간을 마주 서 있었는데 아무 말도 안 했다 하오. 그리고 상관씨 가주가 돌아가자마자 아버지가 나한테 그러셨소. 이번 법정은 아무도 막지 말라고. 서는 사람은 서게 두라고.” 여준결이 장갑 낀 오른손을 쥐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실 줄 몰랐소. 포두 아씨, 그날 밤 사당에서 무슨 말을 들었소?”
미향은 대답하기 전에 여준결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웃지 않는 얼굴이었다.
“작은아버님이 하지 않은 일로 목이 잘리셨다는 말을 들었소.”
여준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서서 모래를 밟고 내려갔다. 이번에는 발소리가 났다.
*
남문 초소로 돌아왔을 때는 삼경이 넘어 있었다. 초소 앞에 사환 아이 하나가 등잔을 들고 서 있었다. 감나무 집 옆집 아이였다.
“포두님! 포두님 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어요. 아까 저녁에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왔대요. 세미 언니가 없어요. 마루에 비파만 있어요. 목 부러진 거.”
미향은 쇠사슬을 겉옷 밖으로 꺼냈다. 고리가 손바닥을 지나가는 소리가 평소보다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