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248자)

스물두 해 전

삼류 여포두 · 설묵향

스물두 해 전 가을 밤⁠, 여덟 살 미향은 문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마당에 서서 쇠사슬을 던지고 있었다⁠. 표적은 감나무였다⁠. 미향이 태어난 해에 심었다는 이 나무는 이때 아직 어른 팔뚝만 한 굵기였고⁠, 열매를 맺은 지 두 해밖에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던진 납 추가 감나무 줄기를 한 바퀴 감고 돌아오면⁠, 아버지는 사슬을 풀고 다시 던졌다⁠. 쇠사슬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나무껍질에 감기는 소리⁠, 풀려서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밤새 되풀이되었다⁠. 감나무 껍질이 사슬이 감기는 자리만 벗겨져 하얗게 드러났다⁠. 어머니가 두 번 나가서 아버지를 불렀고⁠, 아버지는 두 번 다 대답하지 않았다⁠.

이날 낮에 성안 저자거리에서 사람 하나가 목이 잘렸다는 것을 미향은 이튿날 알았다⁠. 동네 아이들이 따라가서 보았다고 자랑했다⁠. 무림 세가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이후로 서른 해 포두를 다 채울 때까지 무림인에게 사슬을 던지지 않았다⁠. 감나무 줄기의 벗겨진 자리는 해마다 새 껍질이 덮였지만 끝내 다른 자리보다 조금 홀쭉하게 남았다⁠.

이 밤이 지난 아침⁠, 아버지는 마루에 앉은 미향의 무릎 위에 쇠사슬을 올려놓았다⁠. 처음이었다⁠. 여덟 살 아이의 무릎이 사슬 무게에 눌려 저렸다⁠. 쇠 냄새와 아버지 손의 땀 냄새가 고리마다 배어 있었다⁠.

“⁠무겁지⁠?⁠”

미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워야 한다⁠. 가벼우면 아무한테나 던진다⁠.⁠”

아버지는 이 말만 하고 관아로 나갔다⁠. 미향은 이날 해가 질 때까지 사슬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내려놓으면 안 될 것 같았다⁠.

*

밤 이경⁠, 미향은 여씨 저택 담장 밑에 섰다⁠. 첫날 밤 여준결이 술병을 들고 앉아 있던 이 담장이었다⁠. 대문은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문 안쪽에서 문지기가 가주께서 오늘 밤 손님을 받지 않으신다고 한 번 말하고는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포두⁠, 진짜 넘으시게요⁠?⁠” 옥담이 담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마에 낮에 맞은 붕어 자국이 아직 벌겠다⁠.

“⁠함 오작이 저 안에 있네⁠.⁠”

“⁠포두 경공은 담장 반도 못 넘는다고⁠, 그 도련님이⁠…⁠…⁠.⁠”

“⁠그러니까 자네가 반을 맡게⁠.⁠”

옥담이 담장 앞에 등을 대고 쪼그려 앉아 두 손을 깍지 꼈다⁠. 미향은 이 손바닥을 밟고 옥담의 어깨를 밟았다⁠. 옥담이 끙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그래도 담장 꼭대기까지 한 자가 모자랐다⁠. 미향은 쇠사슬을 풀어 추를 위로 던졌다⁠. 추가 담장 너머 소나무 가지를 감았다⁠. 사슬을 잡고 담을 걸어 올라갔다⁠. 기와 한 장이 발밑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아래에서 옥담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야⁠! 포두⁠, 기와가⁠!⁠”

“⁠쉿⁠.⁠”

“⁠기와가 쉿 하면 안 떨어집니까⁠?⁠”

미향은 담장 위에 엎드렸다가 안쪽 국화 화단으로 뛰어내렸다⁠. 발목이 꺾일 뻔했다⁠. 국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저택 안쪽 깊은 곳⁠, 연무장 너머에 불이 켜진 건물 하나가 있었다⁠. 지붕이 낮고 처마가 깊었다⁠. 사당이었다⁠.

연무장을 가로지르려던 미향은 모래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달빛 아래 누가 혼자 서 있었다⁠. 여준결이었다⁠. 웃옷을 벗은 채 왼손 하나로 장법을 밀고 있었다⁠. 손바닥이 허공을 밀 때마다 모래가 부채꼴로 쓸려 나갔다⁠. 오른손은 허리 뒤로 돌려 허리띠에 꽂혀 있었다⁠. 땀이 여준결의 등을 타고 흘렀다⁠. 이 땀에서도 약술 냄새가 났다⁠.

여준결이 손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놀라지 않았다⁠.

“⁠담으로 오셨소⁠? 기와 떨어지는 소리가 났소⁠.⁠”

“⁠함 오작을 데리러 왔소⁠.⁠”

“⁠사당에 있소⁠.⁠” 여준결이 턱으로 불 켜진 건물을 가리켰다⁠. “⁠걱정하지 마시오⁠. 아버지는 관아 사람 몸에는 손대지 않소⁠. 연무장에서 상관씨 가주한테 하신 말 들으셨잖소⁠.⁠” 여준결이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이 붉게 부어 있었다⁠. “⁠오늘 선창에서 내기를 왜 안 받았는지 생각해 봤소⁠. 한나절 내내⁠.⁠”

“⁠답이 나왔소⁠?⁠”

“⁠아니⁠. 그래서 왼손을 밀고 있었소⁠. 오른손이 나으면 그 내기를 다시 걸까 해서⁠.⁠” 여준결이 웃옷을 집어 어깨에 걸쳤다⁠. “⁠포두 아씨⁠, 아버지가 오늘 그 오작을 부른 건 내 일 때문이 아니오⁠. 작은아버지 일이오⁠. 작은아버지 얼굴은 기억나지 않소⁠. 내가 네 살 때 돌아가셨다는 것만 아오⁠. 집에서 아무도 그분 이야기를 안 하오⁠.⁠” 여준결은 사당 쪽을 보았다⁠. “⁠가서 들으시오⁠. 나는 안 가겠소⁠. 나한테는 아직 아무도 안 들려준 이야기라서⁠.⁠”

여준결은 다시 모래 한가운데로 걸어가 왼손을 들었다⁠. 미향은 이 등 뒤를 지나 사당으로 갔다⁠. 모래 쓸리는 소리가 미향의 등을 따라왔다⁠.

*

사당 안에는 촛불이 두 자루 켜져 있었다⁠. 위패가 층층이 놓인 단 아래에 함두봉이 무릎을 꿇고 있었고⁠, 이 맞은편 의자에 여문태가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은 없었다⁠. 향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 그리고 함두봉의 땀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함두봉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미향이 사당 문을 열었다⁠. 여문태는 놀라지 않았다⁠.

“⁠담을 넘었소⁠, 조미향⁠.⁠”

“⁠문을 안 열어 주셔서요⁠.⁠”

“⁠기와 한 장이 깨졌다고 들었소⁠. 값은 관아로 보내겠소⁠.⁠”

“⁠남문 문지기 녹봉에서 까 주십시오⁠. 한 달에 쌀 두 섬입니다⁠.⁠”

“⁠앉으시오⁠. 마침 잘 왔소⁠.⁠” 여문태가 함두봉을 가리켰다⁠. “⁠이 사람에게 스물두 해 전 일을 물었는데⁠, 한 시간째 대답을 못 듣고 있소⁠.⁠”

함두봉이 미향을 돌아보았다⁠. 눈이 젖어 있었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여문태가 일어나 위패 단 앞으로 갔다⁠. 가장 아래 칸⁠, 가장 새것처럼 보이는 위패 하나를 손으로 짚었다⁠.

“⁠내 동생이오⁠. 스물두 해 전 가을⁠, 성안 비단 가게 주인을 죽였다고 관아 법정에 섰소⁠. 그 사건에서 포승을 던진 사람이 조 포두였고⁠, 시신을 검시한 오작이 이 사람이었소⁠. 동생은 저자거리에서 목이 잘렸소⁠. 나는 그날부터 관아 법정을 믿지 않았소⁠.⁠” 여문태가 미향을 돌아보았다⁠. “⁠나는 이 사람이 그때 무엇을 보았는지 듣고 싶소⁠. 스물두 해 동안 묻지 않았소⁠. 오늘은 물어야겠소⁠. 내 아들이 그 법정에 다시 서야 하니까⁠.⁠”

미향은 함두봉 곁에 무릎을 꿇었다⁠. 함두봉의 손을 잡았다⁠. 손이 얼음장처럼 찼다⁠.

“⁠함 오작⁠. 가주께 말하지 말고⁠, 저분께 말하게⁠.⁠” 미향이 위패를 가리켰다⁠.

함두봉이 고개를 들어 위패를 보았다⁠. 촛불이 흔들렸다⁠. 오래 이것을 보다가⁠, 무릎걸음으로 단 앞에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여씨 둘째 나리⁠. 오래간만이오⁠.⁠” 목소리가 떨렸지만 끊기지 않았다⁠. “⁠나리 몸을 본 건 아니오⁠. 나리가 죽였다는 비단 가게 주인 몸을 봤소⁠. 목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비스듬히 올라간 상처였소⁠. 칼날이 얇았소⁠. 상처 입구가 좁고 깊었으니까⁠.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 벴소⁠. 칼끝이 위쪽 끝에서 뼈에 한 번 걸렸다 빠진 자국이 있었소⁠. 나리 집 사람들은 넓은 칼을 쓰고⁠, 나리는 내려치는 칼을 쓴다고 그때 들었소⁠. 그래서 내가 지부께 아뢰었소⁠. 이건 여씨 둘째 칼이 아니라고⁠. 가는 칼로 올려 베는 손이라고⁠.⁠”

여문태가 위패 단을 짚은 손을 움켜쥐었다⁠.

“⁠지부는 무어라 했소⁠?⁠”

함두봉의 혀가 순간 굳었다⁠. 함두봉은 위패를 향해 다시 숨을 쉬었다⁠.

“⁠지부 영감은⁠, 넓은 칼이든 가는 칼이든 칼은 칼이라고 하셨소⁠, 나리⁠. 오작 따위가 칼을 가리느냐고⁠. 그 일로 나를 검시청에서 내쫓겠다고 하셨소⁠. 그런데 조 포두가 내 말을 믿었소⁠. 조 포두가 지부 영감을 세 번 찾아갔소⁠. 세 번째 갔다 와서 조 포두가 검시청에 와 나한테 그랬소⁠. 이제 그만하자고⁠. 계속하면 지부가 우리 둘을 다 내쫓고⁠, 그다음 오작과 포두는 이런 상처를 보고도 아무 말 안 하는 사람으로 들어올 거라고⁠. 그래서 그만했소⁠, 나리⁠. 그만하고⁠, 나리는 저자거리에서⁠…⁠…⁠.⁠”

함두봉이 위패 앞에 이마를 댔다⁠.

“⁠미안하오⁠, 나리⁠. 나는 그 뒤로 산 사람 앞에서 말이 안 나왔소⁠. 옳은 말을 했는데 아무도 안 들었으니⁠, 산 사람한테 하는 말은 다 소용없는 것 같았소⁠.⁠”

사당 안이 조용했다⁠. 촛농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향은 아버지의 감나무를 생각했다⁠. 세 번째 갔다 온 날 밤⁠. 껍질이 벗겨진 자리⁠.

*

여문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았지만 사당 벽을 울렸다⁠.

“⁠그럼 내 동생은 관아가 죽였소⁠. 돈을 받은 지부가⁠. 그런데도 조미향⁠, 그대는 내 아들을 그 관아 법정에 세우겠다는 거요⁠?⁠”

미향은 일어섰다⁠. 무릎이 저렸다⁠.

“⁠가주⁠. 그 지부에게 돈을 준 사람은 누구였소⁠?⁠”

여문태가 대답하지 않았다⁠.

“⁠관아가 돈을 받고 칼을 가리지 않았소⁠. 그 돈은 어디서 왔소⁠? 비단 가게 주인을 가는 칼로 올려 벤 사람⁠, 그 사람을 숨긴 집에서 왔겠지요⁠. 그 집도 강호의 집이오⁠. 관아를 썩게 한 돈은 강호의 돈이었소⁠. 가주는 강호의 법으로 관아를 막으면 관아가 강호에 물들지 않는다고 하셨소⁠. 스물두 해 전에 이미 물들었소⁠. 강호가 관아 밖에 서 있어서 막아지는 게 아니오⁠. 관아 법정이 바로 서야 막아지오⁠.⁠”

“⁠그 법정이 바로 선 날이 이 고을에 한 번이라도 있었소⁠?⁠”

“⁠현령이 얼마 전에 한 번 섰소⁠. 국화를 법대에 올려놓고⁠.⁠”

여문태가 웃었다⁠. 처음 듣는 웃음이었다⁠. 소리 없이 짧았다⁠.

“⁠조 포두의 딸이 맞소⁠. 조 포두도 그렇게 말했소⁠. 내 동생이 끌려가기 전날 밤⁠, 내가 그의 집에 찾아가 동생을 놓아 달라고 했을 때⁠. 법정이 바로 서면 동생이 무죄로 나올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믿었소⁠. 감나무 아래에서⁠.⁠” 여문태가 위패를 돌아보았다⁠. “⁠그 말을 믿은 값을 내 동생이 냈소⁠. 이번엔 내 아들 차례요⁠?⁠”

“⁠이번엔 아드님이 정말로 사람을 죽였소⁠, 가주⁠.⁠”

여문태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가 멈췄다⁠. 여문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

이때 함두봉이 일어섰다⁠.

함두봉은 위패 단에서 몸을 돌렸다⁠. 촛불을 등지고⁠, 여문태를 보았다⁠. 산 사람이었다⁠. 서호 다섯 세가의 우두머리였다⁠. 미향은 함두봉의 혀가 다시 굳을 거라고 생각했다⁠. 함두봉의 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렸다⁠.

“⁠가주⁠.⁠” 함두봉이 말했다⁠. 더듬지 않았다⁠. “⁠지난주 청파루에서 누가 비파 목을 잘랐소⁠. 가는 칼이었소⁠. 아래에서 위로 올려 벴고⁠, 칼끝이 위쪽 끝에서 한 번 걸렸다 빠졌소⁠. 스물두 해 전 비단 가게 주인 목과 같은 칼이오⁠. 같은 집 칼이오⁠.⁠” 함두봉이 한 걸음 다가섰다⁠. “⁠가주께서 그 비파를 자른 무사의 손가락 둘을 받으셨다고 들었소⁠. 그 무사가 어느 집 사람이었소⁠?⁠”

여문태의 손이 의자 팔걸이를 쥐었다⁠. 나무가 삐걱 소리를 냈다⁠.

“⁠상관씨⁠.⁠” 여문태가 아주 낮게 말했다⁠.

“⁠그 집 선대 가주가 스물두 해 전에 무슨 칼을 썼는지⁠, 가주께서 저보다 잘 아실 거요⁠.⁠” 함두봉은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 미향을 돌아보며 아이처럼 놀란 얼굴로 말했다⁠. “⁠포두⁠, 나 지금 산 사람한테 말했소⁠. 끝까지⁠.⁠”

사당의 촛불 하나가 꺼졌다⁠. 여문태는 남은 촛불 아래에서 동생의 위패를 오래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문태의 손가락이 팔걸이를 쥔 채 하얗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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