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937자)
첫차를 기다리며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내지담
아침 여덟 시, 1층 치킨집 셔터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셔터는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고, 셔터 바닥 고리에 처음 보는 놋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7번 방 자물쇠와 같은 모양이었다. 치킨집 사장은 앞치마를 두른 채 셔터 앞에 서 있었다. 튀김용 닭이 든 스티로폼 상자 두 개가 발치에 놓여 있었다. 오늘 아침 거래처 트럭이 내려놓고 간 상자였다.
고시원 세입자들이 1층 뒷문 앞에 서서 셔터를 구경했다. 201호 남자는 김치통을 안은 채였다. 편의점 직원이 담배 진열장을 정리하다 말고 유리문 너머로 내다보았다. 아무도 치킨집 사장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4층 창문은 닫혀 있었다.
“닭 녹는다.” 치킨집 사장이 상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저녁 장사할 닭이야.”
나는 상자 하나를 들었다. 치킨집 사장이 남은 상자를 들었다. 우리는 상자를 편의점 냉동고에 맡기고 서대문경찰서로 갔다.
*
치킨집 사장의 진술은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나는 진술실 밖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복도 끝 정수기가 물을 데우며 꾸르륵거렸다. 진술실 문이 열리고 치킨집 사장이 나왔다. 얼굴이 밀가루처럼 하얬다. 형사가 뒤따라 나와 복도 벽에 등을 기댔다.
“진술은 받았어요. 노름판, 셔터, 환풍기, 술병, 다.” 형사가 눈두덩을 눌렀다. “근데 판에 같이 앉았다는 사람들한테 전화를 돌렸거든요. 둘 다 모른대요. 하나는 그런 판 본 적도 없다고 하고, 하나는 변호사 통해서 말하겠대요. 치킨집 사장님 혼자 말이에요. 빚진 세입자가 건물주를 원망해서 지어낸 말이라고 하면, 그걸 뒤집을 게 없어요.”
치킨집 사장이 정수기 앞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다가 컵을 구겼다. 물이 손등으로 흘렀다.
*
오후 세 시, 찜질방 수면실 구석에서 미루가 비명을 질렀다. 짧고 높은 비명이었다. 수면실 여기저기서 아주머니들이 고개를 들고 쉿 소리를 냈다. 미루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이불 속에서 나를 불렀다.
“언니, 언니, 이리 와 봐요.”
이불 속은 미루의 노트북 불빛으로 파랬다. 새날의 첫차 채널에 영상 말고 다시보기가 하나 숨어 있었다. 한밤의 라이브 방송을 그대로 남겨 둔 것이었다. 시청자는 셋이었다. 화면에는 7번 방 탁자와 마이크 쥔 손이 비쳤다.
“네, 시청자님 세 분. 어? 비밀번호요?” 새날이 웃었다. 노래할 때보다 높고 빠른 목소리였다. “제 비밀번호는요, 다 노래방 번호예요. 외우기 쉽잖아요. 은행도 노래방 번호, 휴대폰도 노래방 번호. 아,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방금 거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세 분 다요.”
미루가 이불 속에서 내 팔을 붙잡았다.
“언니. 노래방 번호요. 근데 무슨 노래요? 그 언니 노래 엄청 많이 불렀잖아요.”
나는 계산대 모니터의 초록 네모를 떠올렸다. 새벽마다 혼자 예약되던 번호였다. 5816.
“네 번 남았어요.”
“그럼 네 번 안에 맞혀야 해요. 틀리면 다 날아가요.”
“한 번이면 돼요.”
“왜요?”
“새날 씨는 그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싶어 했어요.”
*
새날 어머니는 신촌으로 오겠다고 했다. 새날이 첫차를 타던 정류장에서 듣고 싶다고 했다. 연습이 끝나는 새벽마다 새날은 정류장에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엄마, 첫차 탄다.
택시 기사가 손을 들었다. 인천 집에 가는 길에 어머니를 태워 오겠다고 했다. 목요일 새벽 다섯 시, 택시 기사의 택시가 신촌 버스 정류장 앞에 멈췄다. 비상등이 깜빡였다. 나는 뒷자리에 어머니와 나란히 앉았다. 미루는 조수석에 앉았다. 택시 안은 히터 바람과 방향제 냄새로 따뜻했다. 정류장의 전광판에는 첫차가 이십육 분 뒤에 온다고 떠 있었다.
어머니가 외투 안주머니에서 분홍색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젯밤 충전해 왔다고 했다. 화면을 켜자 숫자판이 떴다. 화면 위에 「네 번 더 틀리면 데이터가 삭제됩니다」라는 글씨가 작게 떠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나는 번호를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먼저 말했다.
“그 노래 번호지?”
“네.”
“오, 팔, 일, 육.”
어머니는 숫자를 하나 누를 때마다 소리 내어 말했다. 고무장갑을 벗은 맨손이었다. 손가락 끝에 고춧가루 물이 배어 있었다. 마지막 숫자를 누르자 화면이 한 번 떨고 바뀌었다.
열렸다.
배경 화면은 반찬 가게 진열대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앞치마 두른 어머니와 어머니 어깨에 턱을 올린 젊은 여자. 여자는 눈을 감고 입을 크게 벌려 웃고 있었다. 이마에 머리띠를 했다. 어머니는 사진을 한참 보다가 엄지로 화면을 한 번 쓸었다. 쓸어 넘기지 않고 쓸기만 했다.
나는 녹음 앱을 열었다. 「첫차 연습」으로 시작하는 파일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맨 위 파일의 이름은 「12월 22일 02:58」이었다. 길이는 한 시간 삼십이 분이었다.
“차 스피커로 틀어도 돼요?”
택시 기사가 대시보드를 두드렸다.
“내 차 블루투스는 트로트밖에 몰라. 사랑의 미터기만 알아.” 택시 기사가 버튼을 이것저것 누르다가 미루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아가씨가 해 봐. 요즘 애들은 이런 거 눈 감고 하잖아.”
미루가 눈을 뜨고 했다. 택시 스피커에서 띵 소리가 났다.
*
처음에는 7번 방 공기가 나왔다. 반주기 냉각팬 소리와 환풍기 소리. 탁자에 휴대전화를 세우는 소리. 그리고 목소리.
“점수 기계님, 오늘은 끝까지 갈게요. 2절까지. 엄마한테 2절 들려줘야 돼요. 엄마는 맨날 1절만 듣고 잠들어요.”
어머니가 입을 손으로 막았다. 웃음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반주가 시작됐다. 숨 들이마시는 소리. 1절. 택시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7번 방 천장 스피커에서 나오던 목소리와 같았다. 철컥. 셔터가 잠기는 소리가 녹음 속에서 멀리, 계단 꼭대기에서 났다. 목소리는 철컥을 듣고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간주. 팬이 느려지고 틱, 틱, 딸깍. 2절. 콜, 다이, 히끅. 위에 취객이야. 판 깨지 마. 지르릉. 퍽, 쉬이익. 기침. 숨 없는 첫.
그리고 브리지. 저기요. 거기 누구 있어요. 문이 안 열려요. 문 좀 열어 주세요. 똑. 똑. 똑.
녹음은 끊기지 않았다. 7번 방의 노래는 노크에서 멈췄지만, 휴대전화는 계속 듣고 있었다. 노크 뒤로 반주가 마지막 후렴을 혼자 연주했다. 목소리는 들어가지 않았다. 반주가 끝나고 기계가 점수를 알렸다. 빰빠라밤. 축하합니다. 기계는 아무도 부르지 않은 후렴에도 팡파르를 울렸다. 이어서 반주기 안내 음성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남은 곡이 없습니다. 곡을 선택해 주세요.
안내 음성 사이로 숨소리가 났다. 작고 느린 숨이었다.
어머니가 내 손등에 손을 얹었다.
“넘겨 줘.”
나는 녹음을 앞으로 넘겼다. 숨소리가 들리는 대목을 건너뛰었다. 어머니는 내 손등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화면의 시간이 세 시 사십 분을 지나갔다.
*
세 시 사십일 분. 멀리서 쇠판이 감겨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셔터였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 지르릉. 방울 소리가 복도를 따라 가까워졌다. 7번 방 문이 열리는 소리.
“얘.”
맹순갑의 목소리였다. 판 깨지 마, 하던 목소리보다 높았다.
“얘. 얘.”
무언가가 바닥에 털썩 앉는 소리. 방울이 바닥에 끌렸다. 한참 아무 말이 없다가 휴대전화 단추 누르는 소리가 났다. 신호음이 두 번 가고 맹순갑이 말했다.
“다 빼. 뒷문으로. 판 치우고. 술병 두 개 봉지에 담아서 7번으로 갖고 올라와. 빨리.”
택시 안에서 미루가 조수석 등받이를 붙잡았다. 택시 기사는 운전대에 두 손을 얹은 채 앞 유리만 보았다. 녹음 속에서 계단 뛰어 올라오는 발소리가 났다. 비닐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 유리병 두 개가 탁자에 하나씩 놓이는 소리. 딱. 딱.
“사장님……”
치킨집 사장의 목소리였다. 히끅 하는 웃음이 없는 목소리였다.
“내려가. 상 옮겨.”
발소리가 내려갔다. 맹순갑은 7번 방에 남았다. 숨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맹순갑의 숨이었다. 맹순갑은 오래 아무 데도 전화하지 않았다. 반주기 안내 음성이 남은 곡이 없다고 열 번도 넘게 말했다.
네 시 이십 분. 단추 누르는 소리. 신호음. 맹순갑의 목소리가 갑자기 다급해졌다.
“여보세요, 119죠?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신촌 순갑빌딩 지하 노래방이요. 방금 발견했어요. 방금요. 숨을 안 쉬어요.”
녹음은 네 시 삼십 분에 끝났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 된 시각이었다.
*
택시 안이 조용했다. 히터 바람만 났다. 전광판의 첫차 시간이 사 분으로 줄어 있었다. 어머니가 내 손등에서 손을 떼고,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녹음 앱 맨 처음으로 돌아가 재생 막대를 맨 앞으로 끌었다.
“처음만 한 번 더.”
점수 기계님, 오늘은 끝까지 갈게요. 2절까지. 엄마한테 2절 들려줘야 돼요. 엄마는 맨날 1절만 듣고 잠들어요.
어머니가 정지를 눌렀다.
“얘가 점수를 그렇게 신경 썼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반찬 값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칠십 점 받으면 전화해서 엄마 나 칠십 점이야, 그랬어. 점수 기계가 무슨 상관이라고.”
정류장에 첫차가 들어왔다. 버스 문이 쉭 열렸다가 닫혔다. 아무도 타지 않았다. 버스가 떠났다.
*
형사는 여섯 시에 왔다. 택시 뒷자리 창문을 두드리고, 어머니가 내주는 휴대전화를 받아 이어폰으로 들었다. 세 시 사십일 분부터 네 시 이십 분까지를 들었다. 형사는 다 듣고 나서도 한참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정류장 지붕에서 녹은 서리가 물방울로 떨어졌다.
“내가 이걸 사고로 닫았어요.”
형사가 이어폰을 뺐다.
“어머님, 이 전화기 저희가 받아 가도 되겠습니까? 원본 그대로 분석해야 합니다. 누가 손댄 적 없다는 걸 기계로 확인해야 해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는 비닐 봉투에 휴대전화를 넣고 봉투 입구를 접었다. 어머니는 봉투에 든 휴대전화를 오래 보았다. 네 해 동안 앞치마 주머니에 있던 것이 봉투 안에 있었다.
“건물주한테 출석 요구할 겁니다. 영장은 분석 결과 보고요.” 형사가 나를 보았다. “윤소진 씨. 오늘 건물 근처 가지 마요.”
*
오후 다섯 시, 미루에게서 문자가 왔다. 미루는 저녁 근무로 노래방에 출근해 있었다.
「언니 철거 아저씨들 왔어요. 금요일이 아니라 오늘 밤에 다 뜯는대요. 사장님이 경찰서 전화 받고 나서 바로 업체에 전화했어요. 통로 통째로 뜯어서 오늘 밤에 실어 간대요」
나는 찜질방 사물함 앞에서 휴대전화를 쥐었다.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사는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겼다. 영장이 나오려면 분석 결과가 나와야 했다. 통로는 오늘 밤에 사라질 것이었다.
새벽 두 시 오십 분, 나는 순갑빌딩 1층 뒷문 앞에 있었다. 골목 바닥 철망 아래에서 쇠를 자르는 소리가 올라왔다. 뒷문 안쪽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 2층 철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작업등 불빛이 계단까지 새어 나왔다. 기계실 벽의 네모난 구멍 둘레가 벌써 반쯤 뜯겨 나가 있었다. 인부 셋이 지렛대와 절단기를 들고 통로에 붙어 있었다.
세 시.
통로 안에서 노래가 울렸다. 7번 방 천장 스피커가 아니라, 뜯겨 나간 통로 안에서였다. 피아노 전주가 쇠 벽에 부딪혀 웅웅 울렸다. 인부 하나가 절단기를 내리고 통로를 들여다보았다.
“위에 노래방 누가 틀었어?”
노래가 1절을 지나고 철컥을 지나고 콜과 방울과 보일러와 기침을 지나 브리지에 이르렀다. 통로 안에서 쉰 목소리가 말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이어서 똑, 똑, 똑. 노크가 인부들이 붙어 있는 통로 쇠벽을 안쪽에서 두드렸다.
인부 셋이 연장을 내던졌다. 절단기가 바닥에 떨어져 시멘트를 긁었다. 인부들이 나를 밀치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한 사람은 안전모를 떨어뜨렸다. 안전모가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와 내 발치에서 멈췄다.
지하 2층에는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맹순갑이었다. 작업등 불빛 아래, 반쯤 뜯긴 통로 앞에 서 있었다. 손에 자루가 긴 해머를 들고 있었다. 누빔 조끼 주머니에서 방울이 울렸다. 맹순갑은 노크가 울린 통로 쇠벽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장님. 내려놓으세요.”
맹순갑이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해머 자루를 고쳐 쥐었다.
“이 구멍만 없으면 그 애도 조용해져.”
맹순갑이 해머를 뒤로 크게 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