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56자)

지하 2층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내지담

해머가 통로 벽을 때렸다⁠. 쾅⁠. 반쯤 뜯긴 함석판이 안으로 우그러졌고⁠, 우그러진 틈으로 검은 가루가 훅 쏟아져 나왔다⁠. 그을음이었다⁠. 네 해 동안 통로 안쪽에 앉아 있던 그을음이 작업등 불빛 안에서 눈처럼 흩어졌다⁠. 맹순갑이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면서 해머를 다시 젖혔다⁠.

똑⁠. 똑⁠. 똑⁠.

우그러진 함석판 안쪽에서 노크가 울렸다⁠. 해머가 맞은 자리 바로 뒤였다⁠. 맹순갑의 팔이 공중에서 멈췄다⁠.

나는 맹순갑과 통로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등 뒤가 통로였다⁠. 찬 바람이 패딩 등판을 밀었다⁠. 맹순갑의 해머 머리가 내 얼굴 앞에서 흔들렸다⁠.

“⁠비켜⁠.⁠”

“⁠못 비켜요⁠.⁠”

“⁠소진아⁠. 너 이거 비키면 302호 일 년 공짜로 줄게⁠.⁠”

맹순갑의 목소리가 금방 부드러워졌다⁠. 해머를 쥔 손은 떨렸는데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천만 원 줄게⁠. 현금으로⁠. 노래방 점장 시켜 줄게⁠. 너 귀 좋잖아⁠. 기계 소리 다 알아듣잖아⁠. 내가 너 같은 애 하나 있으면 가게 걱정 없어⁠.⁠” 맹순갑이 해머 머리를 바닥에 내렸다⁠. 쇠가 시멘트에 닿아 둔하게 울렸다⁠. “⁠너 갈 데 없잖아⁠. 찜질방에서 언제까지 잘 거야⁠?⁠”

“⁠사장님도 매일 밤 들으셨잖아요⁠.⁠”

“⁠그래⁠, 들었어⁠. 네 해 동안 들었어⁠. 그게 내 대가야⁠. 그거면 충분해⁠.⁠”

“⁠새날 씨는 문 열어 달라고 했어요⁠.⁠”

맹순갑의 얼굴이 작업등 불빛 안에서 일그러졌다⁠. 맹순갑은 해머 자루를 두 손으로 다시 쥐었다⁠. 내 등 뒤 통로 안쪽에서 노크가 한 번 더 울렸다⁠. 똑⁠. 맹순갑의 어깨가 움찔했다⁠.

“⁠형사님한테 두 시 오십팔 분에 문자 보냈어요⁠. 지하 2층 철거한다고요⁠.⁠”

맹순갑이 나를 보았다⁠.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여럿 뛰어 내려왔다⁠. 무전기 잡음이 섞였다⁠.

*

형사는 지구대 경찰 둘과 함께 왔다⁠. 점퍼 지퍼도 채우지 않은 채였다⁠. 형사는 계단 맨 아래 칸에서 멈춰 지하 2층을 한 번 둘러보았다⁠. 뜯긴 함석판⁠, 흩어진 그을음⁠, 바닥의 절단기⁠, 맹순갑의 해머⁠, 통로 앞의 나⁠.

“⁠사장님⁠, 그거 내려놓으세요⁠.⁠”

“⁠내 건물이에요⁠. 내 건물 내가 고치는데⁠. 소방서에서 고치라고 했어요⁠.⁠”

“⁠압니다⁠. 오늘부터 여기는 사건 현장이에요⁠.⁠” 형사가 지구대 경찰에게 손짓했다⁠. “⁠줄 쳐⁠. 아무도 못 들어오게⁠. 사장님도요⁠.⁠”

지구대 경찰이 해머 자루를 잡았다⁠. 맹순갑은 한동안 손을 놓지 않다가 놓았다⁠. 해머 머리가 경찰의 손에서 축 늘어졌다⁠. 노란 줄이 철문에서 보일러까지 쳐졌다⁠. 맹순갑은 줄 밖으로 밀려나며 형사에게 말했다⁠.

“⁠변호사 부를 거예요⁠.⁠”

“⁠부르세요⁠.⁠”

맹순갑이 계단을 올라갔다⁠. 방울 소리가 한 칸씩 멀어졌다⁠. 형사는 그을음이 내려앉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우그러진 함석판 틈을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틈 안쪽은 조용했다⁠.

“⁠아까 노크⁠.⁠” 형사가 틈을 보며 말했다⁠. “⁠나도 들었어요⁠.⁠”

“⁠들으셨어요⁠?⁠”

“⁠들었어요⁠. 들은 거랑 증거는 다르다고 내가 그랬죠⁠.⁠” 형사가 일어나 무릎의 그을음을 털었다⁠. “⁠분석 결과 나오려면 사흘은 걸려요⁠. 그동안 그날 알바를 찾아야 해요⁠. 진술이 하나 더 있어야 버팁니다⁠.⁠”

*

아침 아홉 시⁠, 1층 뒷문 앞에 고시원 세입자들이 모여 있었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노란 줄이 쳐져 있었고⁠, 지구대 경찰 하나가 줄 앞에서 하품을 참았다⁠. 내가 골목으로 들어서자 205호 남자가 나를 알아보았다⁠. 맹순갑이 백김치를 담아 주던 남자였다⁠.

“⁠302호 아가씨 맞죠⁠?⁠”

“⁠네⁠.⁠”

“⁠아가씨 때문에 경찰이 왔다면서요⁠.⁠” 205호 남자가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다가왔다⁠. 목소리가 떨렸다⁠. “⁠이 건물 넘어가면 우리 어디 가요⁠? 신촌에 이십오만 원짜리 방 있어요⁠? 사장님이 나쁜 짓 했으면 사장님이 벌 받으면 되는데⁠, 왜 우리가 짐을 싸야 돼요⁠?⁠”

다른 세입자들은 말이 없었다⁠. 201호 남자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바닥만 보았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기면 이 사람들이 짐을 싸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지하 2층에 내려가기 전부터 알았다⁠. 205호 남자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뒷문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 올라가는 슬리퍼 소리가 3층에서 멈췄다⁠.

*

알바는 미루가 찾았다⁠. 정확히는 미루의 구독자가 찾았다⁠. 미루가 보낸 메시지에 댓글 주인이 이틀 만에 답했다⁠. 「⁠제 친구 지금 신촌에서 배달해요⁠. 번호는 못 드리고⁠, 걔가 맨날 저녁에 신촌역 뒤 편의점 앞에서 대기해요⁠」

“⁠잠복이에요⁠, 언니⁠. 진짜 잠복⁠.⁠”

미루는 편의점 건너편 분식집 창가 자리에 앉아 떡볶이를 시켰다⁠. 택시 기사는 택시를 편의점 앞 골목에 대고 운전석에 몸을 낮췄다⁠. 택시 기사가 무전기 대신 휴대전화로 미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가씨⁠, 들려⁠? 여기는 택시⁠. 이상 무⁠.⁠”

“⁠여기는 분식집⁠. 떡볶이 맛있음⁠.⁠”

“⁠떡볶이 얘기 하지 마⁠. 배고파⁠.⁠”

나는 편의점 안에서 삼각김밥을 고르는 척하며 유리문 밖을 보았다⁠. 저녁 일곱 시 반⁠, 배달 오토바이 서너 대가 편의점 앞 인도 끝에 줄지어 멈춰 있었다⁠. 헬멧을 쓴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배달 호출을 기다렸다⁠. 택시 기사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제일 큰 놈⁠. 파란 헬멧⁠. 그놈이 콜라 주던 총각⁠」

파란 헬멧을 쓴 남자는 키가 컸다⁠. 스물여덟쯤이었다⁠. 남자는 내가 다가가자 헬멧을 벗었다⁠. 귀가 추위에 빨갰다⁠. 택시 기사가 택시에서 내려 남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총각⁠, 나 알지⁠? 새벽 두 시에 사랑의 미터기⁠.⁠”

남자의 얼굴이 한순간 풀렸다가 굳었다⁠. 남자가 나를 보고⁠, 택시 기사를 보고⁠, 오토바이 손잡이를 쥐었다⁠.

“⁠저 그 얘기 안 해요⁠.⁠”

“⁠새날 씨 일이에요⁠.⁠”

남자가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배달 앱 알림이 남자의 휴대전화에서 울렸다⁠. 띵⁠. 남자는 알림을 넘기지 않았다⁠. 다시 띵⁠. 남자는 휴대전화 화면을 꺼 버렸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남자는 말했다⁠. 새벽 한 시 오십 분에 맹순갑이 내려와 오늘은 내가 볼 테니 들어가라고 했다⁠. 일당은 다 쳐 준다고 했다⁠. 남자는 고마워하며 퇴근했다⁠. 나갈 때 7번 방에 새날이 있었다⁠. 새날은 일주일에 닷새를 와서 첫차까지 노래했고⁠, 남자는 새날이 첫차 시간에 맞춰 나가는 것을 늘 보았다⁠. 새날은 가끔 계산대에 작은 반찬통을 올려놓고 갔다⁠. 엄마 가게 멸치볶음인데 야간 하면 배고프잖아요⁠, 하고⁠. 통 뚜껑에 해 그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남자는 통을 돌려주지 못했다⁠. 통은 아직 남자의 자취방 싱크대 위에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사장님이 전화했어요⁠. 경찰이 물으면 네 시까지 있었다고 하라고요⁠. 네 시에 사장님이랑 교대했다고⁠. 그날 오후에 오십만 원 주셨어요⁠. 봉투에⁠.⁠” 남자가 헬멧을 무릎 위에서 돌렸다⁠. “⁠경찰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그러고 나서 바로 그만두고 번호 바꿨어요⁠. 제가 있었으면⁠…⁠…⁠”

남자는 말을 끝내지 않았다⁠. 미루가 분식집에서 건너와 남자 앞에 떡볶이 포장을 내려놓았다⁠. 남자는 떡볶이를 보고 웃다가 울었다⁠. 웃음과 울음이 한 얼굴에서 나왔다⁠.

“⁠형사님한테 가 줄 수 있어요⁠?⁠”

남자가 헬멧을 썼다⁠. 고개를 끄덕였다⁠.

*

이튿날 오후⁠, 맹순갑이 변호사를 데리고 서대문경찰서에 왔다⁠. 형사가 전화로 알려 주었다⁠. 나는 경찰서 앞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형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형사의 목소리 뒤로 복도 정수기가 꾸르륵거렸다⁠.

“⁠변호사 말이 이래요⁠. 녹음은 조작이다⁠. 윤소진은 음향제작과를 다녔고 소리 편집을 할 줄 안다⁠. 택시 안에서 휴대전화를 혼자 만졌다⁠. 원본이 원본이라는 걸 누가 보장하냐⁠.⁠” 형사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알바 진술은 돈 받고 한 거래요⁠. 유튜브 하는 알바가 조회 수 벌려고 배달원한테 떡볶이랑 돈을 줬다고⁠.⁠”

“⁠떡볶이는 줬어요⁠.⁠”

“⁠압니다⁠.⁠”

형사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나 더 있어요⁠. 치킨집 사장님이 아까 전화했어요⁠. 진술을 거두겠대요⁠. 그날 술 취해서 헛말을 했다고⁠.⁠”

정류장 의자의 찬 기운이 바지를 뚫고 올라왔다⁠. 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가 떠났다⁠. 버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쉭 소리가 두 번 났고⁠, 나는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아무 버스에도 오르지 않았다⁠.

*

나는 순갑빌딩 1층으로 갔다⁠. 치킨집 셔터가 올라가 있었다⁠. 놋쇠 자물쇠는 없었다⁠. 튀김기에서 기름이 끓는 소리가 났다⁠. 치킨집 사장은 튀김기 앞에서 닭을 튀기고 있었다⁠. 계산대 위에 종이 한 장이 반으로 찢어져 놓여 있었다⁠. 찢긴 종이 위쪽에 「⁠차용증⁠」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사장님이 열쇠 돌려주고 갔어⁠.⁠” 치킨집 사장이 튀김망을 털었다⁠. 기름이 탁탁 튀었다⁠. “⁠빚도 없애 준대⁠. 계약도 오 년 연장해 준대⁠. 대신 경찰서에 전화 한 통만 하래서 했어⁠.⁠”

“⁠사장님⁠.⁠”

“⁠나도 알아⁠.⁠” 치킨집 사장이 튀김망을 기름에 다시 담갔다⁠. 닭이 기름 속에서 거세게 끓었다⁠. “⁠우리 딸 내년에 고삼이야⁠. 나 이 가게 없으면 아무것도 없어⁠. 소진아⁠, 나 너한테 미안하다⁠. 그 아가씨한테도 미안하고⁠. 미안한 걸로 끝내면 안 되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치킨집 사장은 튀김기 앞에서 등을 돌린 채 닭을 튀겼다⁠. 튀김 기름 소리가 컸다⁠. 치킨집 사장은 네 해 동안 튀김기 기름 소리로 새벽 세 시를 덮었다고 했다⁠. 오늘은 오후 네 시였다⁠.

*

저녁이 되자 미루의 채널 댓글 창이 시끄러워졌다⁠. 누군가 「⁠노래방 사건 조작설⁠」이라는 글을 퍼 날랐다⁠. 음향 전공 알바가 귀신 소리를 만들었다는 글이었다⁠. 「⁠구급차도 연출 아님⁠?⁠」 「⁠사천 명 모으려고 남의 딸 팔았네⁠」 미루는 댓글을 지우지 않았다⁠. 지우면 더 믿는다고 했다⁠. 대신 휴대전화를 엎어 두고 찜질방 식혜를 두 개째 마셨다⁠.

“⁠언니⁠, 저 사람들이 저 겁쟁이라고 할 때는 하나도 안 아팠는데요⁠. 조작이라고 하니까 아파요⁠.⁠”

*

저녁에 맹순갑의 변호사가 부평시장에 다녀갔다는 것을 미루에게서 들었다⁠. 미루는 새날 어머니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반찬가게 진열대 앞에서 명함을 내밀었고⁠,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아무 말씀 마시라고 했고⁠, 알바가 휴대전화를 혼자 만졌다고 했고⁠, 음향 하는 애라고 했다⁠.

밤 열한 시⁠, 찜질방 사물함 앞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새날 어머니였다⁠. 시장 소음이 없었다⁠. 가게 문을 닫은 뒤의 조용한 데서 거는 전화였다⁠.

“⁠나야⁠.⁠”

“⁠네⁠, 어머님⁠.⁠”

어머니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 숨소리만 났다⁠. 노래 앞에서 숨을 크게 쉬던 사람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도 말 앞에서 숨을 크게 쉬었다⁠.

“⁠네가⁠…⁠… 만진 거 아니지⁠?⁠”

“⁠아니에요⁠.⁠”

“⁠변호사가 그러더라⁠. 음향 하는 애는 목소리도 만들 수 있다고⁠. 우리 애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면 무슨 말이든 시킬 수 있다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 애가 점수 기계한테 농담하던 거 생각했어⁠. 그것도 네가 만들었니⁠?⁠”

“⁠아니에요⁠.⁠”

나는 아니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니라는 말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숨을 다시 크게 쉬었다⁠.

“⁠그럼 내 귀로 들을게⁠.⁠”

“⁠네⁠?⁠”

“⁠세 시에⁠. 그 방에서⁠. 우리 애가 노래하던 방에서 내 귀로 들을게⁠. 네가 만든 건지⁠, 걔가 부르는 건지⁠.⁠”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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