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45자)

노크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내지담

서대문경찰서 형사과 진술실은 히터가 너무 셌다⁠. 히터 송풍구가 일정하게 쉭쉭거렸고⁠, 벽시계 초침이 송풍구 소리와 박자가 어긋난 채 돌았다⁠. 형사는 책상 건너편에 앉아 서류철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얇은 것과 두꺼운 것이었다⁠. 서류철 옆 종이컵 커피는 식어서 표면에 얇은 막이 앉아 있었고⁠, 나는 패딩을 벗지 않은 채 등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얇은 게 윤소진 씨 거예요⁠.⁠” 형사가 얇은 서류철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고소인 맹순갑⁠. 건조물 침입⁠, 절도⁠. 지하 2층 기계실 무단 출입⁠, 계산대 금고에서 현금 삼십만 원⁠.⁠”

“⁠금고는 손대지 않았어요⁠.⁠”

“⁠지하 2층은요⁠?⁠”

“⁠들어갔어요⁠.⁠”

형사가 눈두덩을 꾹 눌렀다⁠.

“⁠열쇠는 어디서 났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영수증 뒷면의 두 줄이 떠올랐다⁠. 나는 모른다⁠. 치킨집 사장은 두 줄을 쓰고 나서 슬리퍼를 끌며 급히 복도를 지나갔다⁠.

“⁠말 안 하면 윤소진 씨가 훔친 걸로 가요⁠.⁠”

“⁠그래도 말 안 할게요⁠.⁠”

형사가 한참 나를 보다가 두꺼운 서류철을 펼쳤다⁠. 첫 장에 2023년 12월이라는 날짜가 보였다⁠. 형사는 서류를 읽지 않고 손바닥으로 덮어 둔 채 말했다⁠.

“⁠이건 내가 맡았던 거예요⁠. 사망자 스물셋⁠,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 부검 결과 깔끔했고⁠, 보일러 배기관이 낡아서 이음매가 벌어져 있었어요⁠. 설치 업체가 벌금 냈고요⁠. 건물주 진술은 이래요⁠. 그날 알바가 새벽 네 시까지 있었고⁠, 네 시에 알바가 퇴근하고 건물주가 내려왔고⁠, 네 시 십오 분에 7번 방에서 쓰러진 손님을 발견했고⁠, 네 시 이십 분에 119에 신고했다⁠.⁠”

“⁠셔터는요⁠?⁠”

“⁠열려 있었대요⁠.⁠”

“⁠알바는요⁠?⁠”

“⁠알바도 그렇게 말했어요⁠. 네 시까지 있었다고⁠. 그 친구 번호가 기록에 있는데⁠, 어제 걸어 보니 없는 번호예요⁠.⁠” 형사가 서류철을 덮었다⁠. “⁠그해 겨울에 내 책상에 사건이 마흔 개 있었어요⁠. 부검이 깔끔하고 원인이 보이고 업체가 인정했어요⁠. 건물주는 이 동네에서 경찰서 행사에 떡도 돌리는 사람이었고요⁠. 닫을 이유가 다 있었어요⁠.⁠”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미루의 저장 공간을 열었다⁠. 지하 2층에서 미루의 셀카봉이 찍은 영상이었다⁠. 「⁠7번 환풍⁠」 스위치⁠, 초록 펠트 탁자⁠, 화투⁠, 판자의 새카만 네모⁠. 형사가 영상을 멈추고 판자를 오래 보았다⁠.

“⁠이게 골목 철망 크기라고요⁠?⁠”

“⁠나사 구멍 간격까지요⁠.⁠”

나는 녹음 파일도 열었다⁠. 반주를 지운 파일이었다⁠. 형사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았다⁠. 콜⁠, 다이⁠, 히끅⁠. 위에 취객이야⁠, 판 깨지 마⁠, 지르릉⁠. 형사가 이어폰 한쪽을 빼고 나를 보았다⁠.

“⁠이 여자 목소리⁠, 건물주 목소리랑 비슷하네요⁠.⁠”

“⁠같은 목소리예요⁠. 방울도 같고요⁠.⁠”

“⁠비슷한 걸로는 안 돼요⁠. 이 파일⁠, 윤소진 씨가 노래방 기계 소리를 녹음해서 만진 거잖아요⁠. 법정에 가면 그 말부터 나와요⁠. 음향 배운 알바가 소리를 만졌다⁠.⁠” 형사가 이어폰을 마저 뺐다⁠. “⁠나는 들었어요⁠. 들은 거랑 증거는 달라요⁠.⁠”

형사가 휴대전화를 내게 돌려주었다⁠.

“⁠윤소진 씨⁠. 나 귀신 안 믿어요⁠. 새벽 세 시 노래로는 영장 안 나와요⁠. 판자 하나로도 안 나와요⁠.⁠” 형사가 서류철 두 개를 겹쳐 쌓았다⁠. “⁠그리고 하나 알려 줄게요⁠. 어제 소방서가 그 건물 배기 통로 고치라고 했어요⁠. 건물주가 오늘 아침에 철거 업체를 불렀어요⁠. 금요일에 통로를 통째로 뜯어낸대요⁠. 법대로 하는 거라 내가 막을 방법이 없어요⁠.⁠”

*

화요일 밤⁠, 미루가 찜질방 매점 평상으로 찾아왔다⁠. 맹순갑은 미루를 자르지 않았다⁠. 산소마스크까지 쓴 알바를 그다음 날 자르면 동네에 말이 돈다고⁠, 미루는 맹순갑의 말을 흉내 내어 전했다⁠.

“⁠언니⁠, 저 영상 하나 올렸어요⁠. 7번 얘기는 하나도 안 했어요⁠. 그냥 산소마스크 쓴 셀카에 「⁠알바하다 구급차 탐⁠」이라고만 썼어요⁠.⁠”

“⁠그래서요⁠?⁠”

“⁠조회 수 십만이요⁠. 사람들이 저보고 구급차 유튜버래요⁠. 겁쟁이탐방에서 구급차탐방으로 바꾸라는 댓글도 있어요⁠.⁠” 미루가 볼을 부풀렸다⁠. “⁠저 구급차 또 타기 싫어요⁠. 산소마스크에서 고무 냄새가 진동해요⁠.⁠”

미루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근데 이거 보세요⁠.⁠”

댓글 하나였다⁠. 「⁠제 친구가 몇 년 전에 신촌 그 노래방 야간 알바했는데요⁠. 손님 돌아가신 그날 사장님이 일찍 들어가라고 해서 두 시 전에 퇴근했다고 했어요⁠. 그 얘기 하고 나서 연락이 끊겼어요⁠」

“⁠답장 보냈어요⁠. 아직 안 왔어요⁠.⁠”

나는 댓글을 다시 읽었다⁠. 두 시 전에 퇴근⁠. 맹순갑의 진술로는 네 시까지 있던 알바였다⁠. 택시 기사가 평상 끝에서 식혜를 따며 말했다⁠.

“⁠그 알바 총각⁠, 나 알아⁠. 키 큰 애⁠. 나한테 새벽에 콜라 공짜로 주던 애야⁠.⁠”

*

수요일 새벽 두 시 반⁠, 나는 손님으로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미루가 천 원을 받고 동전을 내주며 작게 말했다⁠. 손님은 왕이에요⁠. 택시 기사는 3번 방에 들어갔다⁠. 1층 치킨집 사장이 셔터를 내리고 내려와 있었다⁠. 치킨집 사장은 계산대 옆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무릎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은박지 꾸러미는 들고 오지 않았다⁠.

3번 방 문간에서 택시 기사가 치킨집 사장을 보고 혀를 찼다⁠.

“⁠치킨 사장⁠, 오늘은 닭다리도 없어⁠?⁠”

“⁠기사님 드실 것만 없어요⁠.⁠”

“⁠그때 나보고 한 판 하자던 사람이 누구더라⁠.⁠”

“⁠그 얘기 하지 마세요⁠. 마누라한테 손목 잡힌 사람이 누구더라⁠.⁠”

둘은 서로를 노려보다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미루가 둘 사이에서 고개를 번갈아 돌렸다⁠. 언니⁠, 저 두 분 원래 친해요⁠?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들썩였다⁠. 신촌 뒷골목에서 육 년을 같이 늙은 사람들의 말싸움이었다⁠.

“⁠가스 샌 날 너 아니었으면 저 아가씨 큰일 났대⁠.⁠” 치킨집 사장이 미루를 턱으로 가리켰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나 오늘은 여기 있을게⁠.⁠”

세 시⁠. 모니터의 7번 네모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우리 넷은 복도 끝 7번 방 앞에 모였다⁠. 미루는 셀카봉을 들지 않았다⁠. 택시 기사는 모자를 벗어 손에 쥐었다⁠. 치킨집 사장은 6번 방 앞에서 멈췄다가⁠, 이를 악물고 7번 방 사슬 앞까지 걸어왔다⁠.

노래가 지나갔다⁠. 1절과 철컥⁠, 간주와 딸깍⁠, 2절과 콜과 히끅⁠. 히끅이 나오는 대목에서 치킨집 사장이 눈을 감았다⁠. 판 깨지 마⁠, 지르릉⁠. 퍽⁠, 쉬이익⁠. 기침⁠, 숨 없는 첫⁠.

노래는 기침을 지나갔다⁠. 반주가 낮아지고 피아노 한 대만 남았다⁠. 브리지였다⁠. 목소리가 가사를 부르지 않았다⁠. 숨을 몇 번 끊어 쉬는 소리가 들리고⁠, 마이크에서 멀어진 목소리가 말했다⁠.

“⁠저기요⁠.⁠”

부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말하는 목소리였다⁠. 쉬고 가늘었다⁠.

“⁠거기 누구 있어요⁠? 아래에 누구 있죠⁠. 소리 다 들려요⁠.⁠” 목소리가 기침을 삼켰다⁠. “⁠문이 안 열려요⁠. 문 좀 열어 주세요⁠.⁠”

똑⁠. 똑⁠. 똑⁠.

노크가 바닥에서 울렸다⁠. 실리콘을 뚫고 올라온 노크였다⁠. 네 해 전 겨울밤부터 우리가 들은 노크였다⁠. 이제 노크는 철망 너머의 누군가가 우리에게 보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7번 방 바닥에 엎드린 사람이 철망 안쪽으로⁠, 아래층에 대고 두드린 소리였다⁠.

노래가 끊겼다⁠. 모니터의 7번 네모는 꺼지지 않았다⁠. 초록 불이 켜진 채 반주 없이 오래 기다렸다⁠.

나는 깨달았다⁠. 이번 소리는 이름을 붙인다고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소리였다⁠.

지난겨울 306호 벽 너머의 기침이 생각났다⁠. 나는 엿새 동안 기침을 들었고⁠, 한 번도 벽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귀는 들은 귀가 아니었다⁠. 7번 방 사슬에 손을 얹었다⁠. 쇠사슬이 손바닥에 차갑게 감겼다⁠. 자물쇠 열쇠는 맹순갑의 조끼 주머니에 있었고⁠, 문을 연다고 대답이 되는지도 나는 아직 몰랐다⁠.

*

치킨집 사장이 무릎을 꿇었다⁠. 복도 바닥에 무릎이 닿는 소리가 둔하게 났다⁠. 치킨집 사장은 7번 방 문에 이마를 대고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등이 들썩였다⁠. 한참 뒤에야 말이 나왔다⁠.

“⁠들었어⁠.⁠”

미루가 내 소매를 잡았다⁠.

“⁠그날 밤 우리 들었어⁠. 통로로 다 들렸어⁠. 노래도 들렸고⁠, 기침도 들렸어⁠. 문 좀 열어 달라는 말도⁠. 같이 앉은 사장 하나가 위에 누구 있는데요⁠, 했어⁠. 사장님이 취객이라고 했어⁠. 판 깨지 말라고⁠. 노래가 시끄럽게 내려온다고 기계실 가서 7번 환풍기를 껐어⁠. 우리는 화투를 쳤어⁠. 판이 컸어⁠. 나는 그날 딴 돈으로 밀린 월세 막으려고 했어⁠.⁠”

치킨집 사장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세 시 사십 분쯤에 사장님이 판 끝내고 올라갔어⁠. 셔터 열러⁠. 금방 내 전화가 울렸어⁠. 사장님이었어⁠. 다 빼라고⁠. 뒷문으로⁠. 판 치우고 술병 갖고 올라오라고⁠.⁠” 치킨집 사장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소주병 두 개를 검은 봉지에 넣고 7번 방에 올라갔어⁠. 아가씨가 환풍구 앞에 엎드려 있었어⁠. 손이 철망에 닿아 있었어⁠. 사장님이 봉지를 받아서 병을 탁자에 세웠어⁠. 나보고 내려가라고⁠. 나는 내려가서 탁자를 창고로 옮겼어⁠.⁠”

택시 기사가 모자를 쥔 손을 가슴에 댔다⁠. 미루는 울면서 셀카봉을 꺼내지 않았다⁠.

“⁠나 그 사장님한테 보증금 빌렸어⁠. 가게 계약도 사장님 손에 있어⁠. 다들 그랬어⁠. 그래서 아무도 말 안 했어⁠. 네 해 동안 매일 새벽 세 시에 1층 주방에서 이 노래 들었어⁠. 튀김기 기름 소리로 덮었어⁠.⁠”

*

창고 문 안쪽에서 방울이 울렸다⁠.

지르릉⁠. 서두르지 않는 발소리⁠. 맹순갑이 창고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4층에서 통로를 타고 올라온 말을 다 들은 얼굴이었다⁠. 통로는 위아래로 소리를 다 날랐다⁠. 맹순갑은 무릎 꿇은 치킨집 사장 앞으로 가서 멈췄다⁠. 치킨집 사장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신 차려⁠.⁠”

맹순갑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네 가게 보증금 오천 중에 삼천이 내 돈이야⁠. 계약은 내년 봄에 끝나고⁠. 딸 학원비 석 달 치도 내가 줬지⁠. 여기서 한 말⁠, 밖에서 또 하면 네 가게부터 비어⁠.⁠” 맹순갑이 치킨집 사장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국수를 퍼 주던 손이었다⁠. “⁠다 늙어서 길에서 닭 튀길 거야⁠?⁠”

치킨집 사장의 어깨가 손바닥 밑에서 굳었다⁠. 맹순갑은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소진아⁠. 절도 고소 취하해 줄게⁠. 너 받아 줄 고시원도 알아봐 줄게⁠. 대신 오늘 들은 거 다 지워⁠. 저 사람 말도⁠, 기계 소리도⁠.⁠”

나는 맹순갑과 치킨집 사장 사이로 한 걸음 들어갔다⁠. 7번 방 사슬이 내 등 뒤에서 철렁 흔들렸다⁠. 모니터의 초록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

“⁠사장님⁠. 문 좀 열어 달라고 했어요⁠.⁠”

“⁠기계 소리야⁠.⁠”

“⁠사장님도 들으셨잖아요⁠. 네 해 동안 매일⁠.⁠”

맹순갑의 입가가 굳었다⁠. 맹순갑이 입을 다문 사이 치킨집 사장이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무릎이 덜덜 떨렸다⁠. 치킨집 사장은 맹순갑을 보지 않고 7번 방 문을 한 번 보았다⁠. 손등으로 얼굴을 훔쳤다⁠.

“⁠형사한테 갈게요⁠.⁠”

맹순갑이 치킨집 사장을 보았다⁠. 웃지 않았다⁠.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방울이 지르릉 울었다⁠. 맹순갑은 꾸러미에서 열쇠 하나를 골라 치킨집 사장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치킨집 셔터 열쇠였다⁠.

“⁠가⁠. 대신 내일 아침에 네 가게 셔터는 내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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