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74자)

보일러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내지담

금요일 새벽 세 시⁠, 노래는 맹순갑의 목소리를 지나갔다⁠. 판 깨지 마⁠, 지르릉⁠. 방울의 떨림이 가라앉자 반주가 둘째 후렴으로 넘어갔다⁠. 첫차가 오면 나는 갈게요⁠. 1절 후렴과 같은 가사였는데 목소리가 달랐다⁠. 반 키를 내렸고⁠, 줄 끝마다 숨이 조금씩 모자랐다⁠.

후렴 둘째 줄에서 아래로부터 소리가 올라왔다⁠. 퍽⁠. 무언가에 불이 붙는 둔한 소리였다⁠. 이어서 쉬이익⁠,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길게 났고⁠, 낮게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밑에 깔렸다⁠. 큰 불꽃이 좁은 통 안에서 일정하게 타는 소리였다⁠.

노래가 끊겼다⁠. 똑⁠, 똑⁠, 똑⁠.

나는 녹음을 껐다⁠. 퍽⁠, 쉬이익⁠, 우르릉⁠. 학교 실습실 보일러실에서 들은 적 있는 소리였다⁠. 기름보일러 버너가 점화되는 소리⁠. 택시 기사는 보일러 가스라고 했고⁠, 2024년 기사는 보일러 업체의 과실이라고 했다⁠. 소리는 거기까지 맞았다⁠. 다만 노래방 어디에도 보일러는 없었다⁠. 이 가게는 전기 난방이었다⁠. 보일러가 있을 데는 한 군데였다⁠.

*

토요일 낮⁠, 302호 문밑으로 무언가가 밀려 들어왔다⁠. 철컥 소리도 노크도 없었다⁠. 슬리퍼가 복도를 급히 지나가는 소리만 났다⁠. 바닥에 치킨집 영수증 한 장이 접혀 있었다⁠. 펼치자 안에서 열쇠 하나가 떨어졌다⁠. 열쇠 머리에 녹이 슬어 있었다⁠. 영수증 뒷면에 볼펜으로 두 줄이 적혀 있었다⁠.

「⁠지하 2층 뒷문⁠. 나는 모른다⁠.⁠」

나는 열쇠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 보았다⁠. 판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쓰던 열쇠였다⁠. 치킨집 사장은 네 해 동안 버리지 않았다⁠.

미루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이 일 분도 안 되어 왔다⁠.

「⁠저도 가요⁠. 절대 혼자 가지 마요⁠. 혼자 가면 공포 영화에서 제일 먼저 죽는 사람이에요⁠」

「⁠미루 씨는 무서워하잖아요⁠」

「⁠무서워하는 사람이 같이 가야 무서운 걸 제때 알아요⁠」

*

일요일 새벽 네 시⁠, 노래방 계산대에 「⁠잠시 자리 비움⁠」 팻말을 올려 두고 나는 1층 뒷문으로 나갔다⁠. 미루가 뒷문 앞 골목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마에 헤드랜턴을 쓰고⁠, 셀카봉을 지팡이처럼 짚고 있었다⁠.

“⁠언니⁠, 저 오늘 부적 세 장이에요⁠. 하나는 등에 붙였어요⁠.⁠”

“⁠등에는 왜요⁠?⁠”

“⁠뒤에서 오는 게 제일 무서우니까요⁠.⁠”

뒷문 옆 골목 바닥에 네모난 쇠 철망이 하나 박혀 있었다⁠. 매일 밟고 다니던 철망이었다⁠. 손바닥 네 개를 붙인 만한 크기였고⁠, 철망 아래로 검은 통로가 내려갔다⁠. 철망 네 귀퉁이 둘레의 시멘트에 작은 나사 구멍이 하나씩 나 있었다⁠. 구멍마다 녹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있었다⁠.

뒷문 안쪽의 건물 계단은 위로 고시원⁠, 아래로 노래방 창고를 지나 한 층 더 내려갔다⁠. 지하 1층 창고 문 앞을 지날 때 문 너머로 노래방 복도의 음료 냉장고 소리가 들렸다⁠. 한 층 더 내려가자 냉장고 소리마저 끊겼다⁠. 계단이 끝나는 자리에 철문이 있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 기계실⁠」

열쇠가 맞았다⁠. 열쇠를 돌리자 녹슨 자물통이 끽 하고 울었다⁠. 미루가 내 패딩 뒷자락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철문 안은 추웠다⁠. 바깥 골목보다 추웠다⁠. 헤드랜턴 불빛 안에서 우리 입김이 하얗게 피었다⁠. 천장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고인 물에 닿는 소리가 났다⁠. 똑⁠. 한참 있다가 또 똑⁠. 미루가 그때마다 숨을 멈췄다⁠.

“⁠언니⁠, 저거 노크 아니죠⁠?⁠”

“⁠물이에요⁠.⁠”

“⁠물인 거 알아요⁠. 알아도⁠…⁠…⁠”

“⁠알아도 무서운 거죠⁠.⁠”

*

왼쪽이 기계실이었다⁠. 벽을 따라 새 전기 온수기 두 대가 웅웅거렸고⁠, 온수기 옆에 낡은 기름보일러 한 대가 녹슨 채 서 있었다⁠. 보일러 앞판에 적힌 제조 연도는 이천 년대 초였다⁠. 손바닥으로 앞판을 짚자 쇠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몇 해 동안 불을 넣지 않은 쇠였다⁠. 보일러 꼭대기에서 굵은 연통이 나와 벽의 네모난 구멍으로 들어갔다⁠. 구멍 안이 통로였다⁠. 7번 방 바닥 환풍구가⁠, 골목 바닥 철망이⁠, 이 통로에 이어져 있었다⁠.

연통 옆 벽에 배전반이 붙어 있었다⁠. 뚜껑을 열자 스위치가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스위치마다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테이프에 매직 글씨가 있었다⁠. 「⁠온수기 1⁠」 「⁠온수기 2⁠」 「⁠계단등⁠」 아랫줄 맨 끝 스위치에 적힌 글씨는 다른 것보다 진하고 삐뚤었다⁠.

「⁠7번 환풍⁠」

스위치는 내려가 있었다⁠. 나는 스위치를 손끝으로 만졌다⁠. 간주 여섯 번째 마디의 딸깍이 귓속에서 저절로 울렸다⁠.

오른쪽이 창고였다⁠. 미루의 헤드랜턴이 먼저 들어갔다⁠. 불빛 한가운데에 방수포를 덮어씌운 큰 덩어리가 있었다⁠. 나는 방수포 한 귀퉁이를 걷었다⁠. 초록색 펠트가 깔린 네모난 탁자였다⁠. 펠트에 담뱃불 자국이 군데군데 까맣게 나 있었다⁠. 탁자 옆에 접이식 의자 여섯 개가 겹쳐 세워져 있었고⁠, 벽 선반에 찌그러진 양철 재떨이가 있었다⁠. 재떨이에 꽁초가 말라붙어 있었다⁠.

미루가 탁자 서랍을 열었다⁠. 화투 한 벌이 고무줄에 묶여 있었다⁠. 미루가 화투를 셀카봉 끝 카메라에 비추고 속삭였다⁠.

“⁠구독자님들⁠, 귀신보다 무서운 거 나왔어요⁠. 이건 진짜예요⁠.⁠”

창고 구석에는 방수포 한 뭉치와 판자 한 장이 벽에 기대 세워져 있었다⁠. 나는 판자를 돌려 보았다⁠. 한쪽 면은 합판 결이 그대로였다⁠. 반대쪽 면은 가운데가 네모나게 새카맸다⁠. 손끝으로 문지르자 검은 가루가 묻어 나왔다⁠. 그을음이었다⁠. 판자 네 귀퉁이에는 나사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었다⁠.

나는 판자를 두 팔로 재 보았다⁠. 손바닥 네 개를 붙인 만한 네모였다⁠. 새카만 네모의 크기가 뒷문 앞 골목 바닥의 철망과 같았다⁠. 판자 귀퉁이의 나사 구멍 간격이 철망 둘레 시멘트의 나사 구멍 간격과 같았다⁠.

“⁠미루 씨⁠. 이거 찍어요⁠. 앞뒤 다⁠.⁠”

“⁠이게 뭔데요⁠?⁠”

“⁠골목 철망 뚜껑이요⁠.⁠”

나는 판자를 붙든 채 말했다⁠. 말하면서 소리들이 차례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판이 벌어지는 밤에는 골목 철망을 이걸로 막았어요⁠. 아래서 떠드는 소리가 골목으로 새 나가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보일러를 땠어요⁠. 겨울이니까요⁠. 보일러 연기는 이 통로로 올라가서 골목 철망으로 나가야 하는데⁠, 철망이 막혔어요⁠. 판자 한쪽만 새카만 게 그거예요⁠. 연기가 판자에 막혀서 쌓였어요⁠.⁠”

미루가 셀카봉을 내리고 나를 보았다⁠.

“⁠그럼 연기가 어디로 가요⁠?⁠”

“⁠구멍이 하나 남았어요⁠. 7번 방 바닥이요⁠. 7번 방 환풍기가 돌 때는 환풍기가 공기를 통로로 빼냈어요⁠. 세 시에 누가 여기서 「⁠7번 환풍⁠」을 내렸고요⁠. 노래 소리가 아래까지 내려온다고⁠.⁠”

나는 판 깨지 마⁠, 하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퍽⁠, 쉬이익⁠, 우르릉⁠. 노래가 멈춘 자리의 소리였다⁠.

“⁠보일러 연기가 7번 방으로 올라갔어요⁠. 셔터는 밖에서 잠겨 있었고요⁠.⁠”

미루가 판자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물러난 자리에 고인 물이 있었다⁠. 운동화가 물을 밟는 소리가 찰박 났고⁠, 미루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입을 손으로 막은 채 헤드랜턴 불빛을 판자의 새카만 네모에 고정했다⁠.

*

지르릉⁠.

계단 위에서 방울이 울렸다⁠. 소리는 한 칸씩 내려왔다⁠. 서두르지 않는 발소리였다⁠. 미루가 헤드랜턴을 끄려다 손이 미끄러져 불빛이 천장으로 튀었다⁠. 나는 판자를 벽에 도로 기대 세웠다⁠. 철문이 열렸다⁠.

맹순갑이 손전등을 들고 문간에 있었다⁠. 누빔 조끼 위에 잠옷 바지를 입었고⁠, 맨발에 털신을 신었다⁠. 손전등 불빛이 내 얼굴을 비추고⁠, 미루를 비추고⁠, 방수포 걷힌 초록 탁자를 비추고⁠, 판자를 비추었다⁠. 맹순갑이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입김이 손전등 불빛 안에서 흩어졌다⁠.

“⁠열쇠 누가 줬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맹순갑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치킨집이구나⁠. 그 사람은 겁이 많아서 아무것도 못 버려⁠.⁠”

맹순갑이 탁자 앞으로 걸어왔다⁠. 펠트 위의 담뱃불 자국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오래 만지던 탁자를 만지는 손이었다⁠.

“⁠나는 시장에서 국수를 삼십 년 삶았어⁠. 손목이 이렇게 휘도록⁠. 그 돈으로 이 건물 올렸어⁠. 은행 빚이 건물보다 컸어⁠. 이 건물 세입자가 서른 명이야⁠. 고시원 애들⁠, 치킨집⁠, 편의점⁠. 이 동네에서 방세 이십오만 원짜리 방 있는 데가 여기밖에 없어⁠.⁠” 맹순갑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똑⁠, 똑⁠. “⁠이 판에서 나온 돈으로 은행 이자 막았어⁠. 판에 앉은 사람들도 다 이 골목 사람이야⁠. 다들 빚이 있었어⁠. 나도 있었고⁠.⁠”

“⁠새날 씨는요⁠?⁠”

맹순갑의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멈췄다⁠.

“⁠그 애는 운이 없었어⁠. 안됐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맹순갑이 손전등을 아래로 내렸다⁠. 불빛이 바닥의 고인 물에 닿아 흔들렸다⁠. “⁠근데 소진아⁠. 죽은 애 하나 때문에 산 사람 서른 명이 길에 나앉으면⁠, 그게 맞니⁠?⁠”

“⁠문을 잠근 건 사장님이에요⁠.⁠”

“⁠나도 들어⁠.⁠”

맹순갑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거칠어졌다⁠.

“⁠네 해째야⁠. 매일 새벽 세 시에⁠. 통로 타고 4층까지 올라와⁠. 이불을 머리끝까지 써도 들려⁠. 나는 너보다 그 노래를 천 번은 더 들었어⁠.⁠”

맹순갑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를 향했다⁠. 첫날 밤과 같은 손이었다⁠.

“⁠전화기⁠.⁠”

나는 휴대전화를 건넸다⁠. 맹순갑은 사진첩을 열어 판자와 탁자와 배전반 사진을 하나씩 지웠다⁠. 최근 삭제한 항목에서도 지웠다⁠. 미루는 셀카봉을 패딩 모자 속에 밀어 넣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셀카봉 끝의 휴대전화는 아까부터 미루의 저장 공간으로 영상을 올리는 중이었다⁠. 맹순갑은 미루를 보지 않았다⁠.

“⁠소진아⁠, 너 오늘부로 그만둬⁠. 302호는 오늘 낮 열두 시까지 빼고⁠.⁠”

맹순갑은 휴대전화를 내 손에 돌려주고⁠, 이번에는 미루를 보았다⁠.

“⁠미루야⁠. 너는 오늘 밤부터 야간 나와⁠. 소진이 자리⁠. 시급 올려 줄게⁠.⁠”

미루가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미루가 맹순갑에게 고개를 숙였다⁠.

“⁠네⁠.⁠”

*

낮 열두 시⁠, 나는 302호에서 짐을 쌌다⁠. 옷가지와 헤드폰과 노트북과 녹음기가 상자 두 개에 다 들어갔다⁠. 맹순갑이 준 김치통이 냉장고에 남아 있었다⁠. 나는 김치통을 상자 맨 위에 올렸다⁠. 버릴 방법을 몰랐다⁠.

상자를 안고 1층 뒷문으로 나가자 골목에 작은 트럭이 서 있었다⁠. 트럭 짐칸에서 작업복 입은 남자 둘이 무언가를 내리고 있었다⁠. 바퀴 달린 휘발유 발전기 한 대와 원통형 열풍기 한 대였다⁠. 트럭 옆면에 「⁠설비 철거 · 배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남자들은 발전기를 들고 뒷문 안쪽 계단으로 들어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나는 상자를 골목 바닥에 내려놓았다⁠. 상자 모서리가 골목 철망을 덮었다⁠. 계단으로 뛰어 들어가 발전기 손잡이를 잡은 남자의 팔을 붙들었다⁠.

“⁠그거 지하에서 돌리면 안 돼요⁠.⁠”

“⁠사장님이 시킨 건데요⁠. 밤에 배관 끊어야 한다고⁠.⁠”

“⁠지하 통로가 막혀 있어요⁠. 연기가 위로 올라가요⁠.⁠”

남자가 내 손을 내려다보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4층 창문이 열려 있었다⁠. 맹순갑이 창틀에 팔을 걸치고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에 맹순갑의 회색 파마가 흔들렸다⁠.

“⁠소진아⁠. 너 이제 우리 건물 사람 아니다⁠.⁠”

남자가 내 손을 떼어 내고 발전기를 계단 아래로 끌고 내려갔다⁠. 발전기 바퀴가 계단을 한 칸씩 쿵⁠, 쿵 내려갔다⁠. 내려가는 소리가 지하 2층 철문 앞에서 멈췄다⁠. 오늘 밤 세 시⁠, 노래방 계산대에는 미루가 혼자 앉아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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