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52자)

방울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내지담

맹순갑은 치킨집 사장의 팔꿈치를 잡고 창고 문으로 데려갔다⁠. 계단 아래에서 맹순갑의 목소리가 작게 올라왔다⁠. 가게 가서 자⁠. 내일 장사해야지⁠. 치킨집 사장의 발소리가 1층 뒷문으로 올라가 사라지고⁠, 방울 소리만 도로 내려왔다⁠.

맹순갑은 계산대 안쪽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다 내 옆에 놓고 앉았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세 시 다 됐다⁠. 오늘은 나도 같이 듣자⁠.⁠”

나는 녹음기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맹순갑이 녹음기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니터의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자 7번 네모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맹순갑은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 계산대 위 쟁반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하나씩 집어 오백 원짜리와 백 원짜리로 나눠 쌓았다⁠.

전주가 흐르고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1절⁠. 동전을 쌓는 맹순갑의 손이 느려지지 않았다⁠. 후렴⁠, 철컥⁠. 손이 멈추지 않았다⁠. 간주⁠, 팬 소리⁠, 딸깍⁠. 2절⁠. 주머니 속 동전 하나⁠, 노래 한 곡만큼 남아서⁠. 콜⁠. 히⁠, 히끅⁠. 맹순갑이 오백 원짜리 탑 맨 위에 하나를 더 올렸다⁠.

노래는 콜을 지나 2절 둘째 줄로 들어갔다⁠.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반 키 내린 목소리가 노래 한 곡만큼⁠, 하고 끝을 끌 때 아래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여자 목소리였다⁠. 통로를 타고 올라와 납작하게 눌린⁠, 그러나 숨소리까지 들리는 목소리였다⁠.

“⁠위에 취객이야⁠. 신경 꺼⁠. 판 깨지 마⁠.⁠”

지르릉⁠.

방울 소리가 따라왔다⁠. 울리고 난 끝이 지지직 떨렸다⁠. 노래가 끊겼다⁠. 똑⁠, 똑⁠, 똑⁠.

나는 맹순갑의 조끼 주머니를 보았다⁠. 열쇠 꾸러미가 삐져나와 있었고⁠, 놋쇠 방울이 꾸러미 끝에 매달려 있었다⁠. 맹순갑은 동전 탑을 두 개 다 쌓고 나서 손을 털었다⁠.

“⁠기계가 별소리를 다 낸다⁠.⁠”

“⁠사장님 방울 소리네요⁠.⁠”

“⁠방울은 시장에 가면 다 똑같은 거 팔아⁠.⁠” 맹순갑이 의자에서 일어나 조끼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방울이 손바닥 밑에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소진아⁠, 너 귀 좋은 거 알아⁠. 좋은 귀는 오래 못 써⁠. 시끄러운 데 있으면 금방 상해⁠.⁠”

맹순갑은 창고 문으로 들어갔다⁠. 주머니를 누른 채 계단을 올라갔는지 방울은 울리지 않았다⁠. 나는 동전 탑 두 개를 보았다⁠. 오백 원짜리 탑이 백 원짜리 탑보다 한 닢 높았다⁠.

*

수요일 오후⁠, 미루가 302호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미루는 문짝 안쪽에 부적 한 장을 붙이고 나서야 들어왔다⁠.

“⁠언니 방에도 하나 있어야 해요⁠. 원래 오천 원인데 언니는 공짜예요⁠.⁠”

“⁠문구점에서 샀잖아요⁠.⁠”

“⁠문구점 부적도 부적이에요⁠.⁠”

미루는 침대 끝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영상 댓글에 있던 「⁠커버 올리던 분⁠」을 이틀 동안 찾았다고 했다⁠. 노래 제목과 신촌과 코인노래방을 넣어 뒤지다가⁠, 조회 수가 두 자리인 영상들 사이에서 별무늬 벽지를 찾아냈다⁠. 채널 이름은 새날의 첫차였다⁠. 영상은 서른 개 남짓이었고⁠, 전부 같은 방에서 찍혀 있었다⁠. 소파 인조가죽이 아직 갈라지기 전의 7번 방이었다⁠.

미루가 맨 처음 영상을 눌렀다⁠.

화면에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탁자에 세워 두고 찍어서⁠, 마이크를 쥔 손과 화면 불빛에 비친 턱 끝만 보였다⁠. 손톱이 짧았다⁠. 손등에 볼펜으로 적은 글씨가 비쳤다⁠. 숨⁠.

“⁠점수 기계님⁠, 오늘은 잘 봐 주세요⁠. 어제는 칠십팔 점 주셨잖아요⁠. 저 어제 진짜 잘했는데⁠.⁠”

목소리가 웃었다⁠. 노래할 때보다 높고 빨랐다⁠. 반주가 시작되자 웃음이 쏙 들어가고⁠,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첫 소절 앞이었다⁠. 7번 방에서 새벽마다 듣던 숨이었다⁠.

미루는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노래가 시작되자 노트북 화면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울었다⁠. 무서워서 우는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영상을 하나씩 넘겼다⁠. 「⁠첫차를 기다리며 30번째⁠」 「⁠오늘은 2절까지 가 봄⁠」 「⁠점수 기계님이 저를 미워함⁠」 새날은 노래가 끝나면 점수 화면을 찍었고⁠, 점수가 낮으면 기계 흉내를 냈다⁠. 빰빠라밤⁠, 축하합니다⁠, 칠십삼 점입니다⁠, 다음엔 더 잘하세요⁠. 기계보다 기계 같은 목소리였다⁠. 미루가 울다가 웃었다⁠.

마지막 영상은 2023년 12월 21일에 올라와 있었다⁠. 제목은 「⁠첫차를 기다리며 1절만⁠. 2절은 내일 끝까지⁠!⁠」였다⁠.

댓글 창 맨 아래에 같은 사람이 단 댓글이 줄지어 있었다⁠. 「⁠새날아 엄마 오늘 가게 문 열었다⁠. 네가 좋아하던 멸치볶음 했다⁠.⁠」 「⁠새날아 첫눈 왔다⁠.⁠」 「⁠새날아 오늘 손님이 네 노래 잘 들었다고 하더라⁠. 엄마도 들었다⁠.⁠」 마지막 댓글은 지난달이었다⁠. 프로필 사진은 반찬 가게 진열대였다⁠. 진열대 위 간판에 인천 부평시장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

목요일 오후⁠, 미루와 나는 인천행 전철을 탔다⁠. 미루는 패딩 주머니에 호떡 두 개를 넣어 왔고⁠,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어머님 만나기 전에 단 거 먹어야 해요⁠. 사람이 단 거 먹으면 말이 부드러워진대요⁠.⁠”

“⁠누가 그래요⁠?⁠”

“⁠제 구독자님 중에 한 분이요⁠. 상담사래요⁠.⁠”

“⁠구독자 사천 명이면 상담사도 있겠네요⁠.⁠”

“⁠사천이백이에요⁠.⁠”

미루는 전철 손잡이를 잡고 흔들리며 할 말을 연습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신촌에서 왔고요⁠, 귀신 얘기는 아니고요⁠. 연습하다 말고 나를 보았다⁠.

“⁠언니⁠, 귀신 얘기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소리 얘기라고 해요⁠.⁠”

“⁠소리 얘기면 어머님이 더 무서워하실 것 같은데요⁠.⁠”

맞은편 자리의 할아버지가 우리 얘기를 듣다가 슬그머니 다른 칸으로 옮겨 갔다⁠. 미루가 할아버지 등에 대고 작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전철이 한강을 건너는 동안 바퀴가 철교 이음매를 밟고 일정하게 덜컹거렸다⁠. 덜컹거리는 소리 사이로 전날 들은 여자 목소리가 자꾸 끼어들었다⁠. 판 깨지 마⁠.

부평시장은 젓갈 냄새와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골목마다 섞여 있었다⁠. 반찬 가게는 시장 안쪽 골목 끝에 있었다⁠. 간판에 「⁠새날반찬⁠」이라고 적혀 있었다⁠. 간판 틀은 오래되어 녹이 슬었는데⁠, 글씨만 새것이었다⁠.

새날 어머니는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진열대의 멸치볶음 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쉰 중반이었고 손이 빨랐다⁠. 우리가 진열대 앞에 서자 고개를 들고 우리 얼굴을 한 번씩 훑었다⁠. 손은 멈추지 않았다⁠.

“⁠신촌에서 왔지⁠?⁠”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가 먼저 말했다⁠.

“⁠건물주 사장님이 그저께 왔다 갔어⁠. 귤 한 상자 들고⁠. 노래방 알바 애들이 귀신 영상 찍어서 돈 벌려고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상대하지 말라더라⁠.⁠”

진열대 뒤 냉장고 위에 귤 상자가 뜯기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맹순갑은 우리보다 이틀 먼저 와 있었다⁠.

“⁠어머님⁠, 새날 씨 일 때문에 왔어요⁠.⁠”

옆 가게 전집 아주머니가 뒤집개를 든 채 고개를 내밀었다⁠.

“⁠새날이 엄마⁠, 또 신촌 얘기야⁠? 그만 좀 해⁠. 사람 말라 죽어⁠.⁠”

어머니는 전집을 돌아보지 않았다⁠. 전 뒤집는 소리가 지글거리다가 조용해졌다⁠.

“⁠다 끝난 일이야⁠.⁠” 어머니가 멸치볶음 통 뚜껑을 닫았다⁠. “⁠우리 애가 술을 마시고 그 방에서 혼자 잠들었대⁠. 보일러가 잘못돼서 가스가 샜고⁠. 업체가 벌금을 냈고 사장님은 위로금을 줬어⁠. 나는 합의서에 도장 찍었고⁠.⁠”

“⁠새날 씨가 술을 마셨어요⁠?⁠”

“⁠걔는 술 한 잔도 못 마셨어⁠. 맥주 반 잔에 얼굴이 빨개졌어⁠.⁠” 어머니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앞치마를 쥐었다⁠. “⁠근데 병이 있었다잖아⁠. 소주병이 두 개⁠. 사장님이 아침에 문 열고 들어갔더니 방에서 소주 냄새가 났대⁠.⁠”

*

미루가 휴대전화를 들고 시장 골목을 찍던 손을 내렸다⁠. 진열대 앞에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방울 소리가 먼저 났다⁠. 지르릉⁠.

맹순갑이 긴 패딩 차림으로 우리 뒤에 서 있었다⁠.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었다⁠. 미루가 숨을 들이켜고 제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한 시간 전 미루가 올린 짧은 영상에 「⁠부평시장 왔어요⁠」라는 글씨와 위치 표시가 붙어 있었다⁠. 미루가 화면을 끄며 작게 말했다⁠. 망했다⁠.

맹순갑은 우리를 지나 진열대 앞으로 갔다⁠.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놀라셨죠⁠. 얘네가 기어이 왔네⁠.⁠” 맹순갑이 미루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저 애가 귀신 영상을 올려요⁠. 구독자가 사천 명이래요⁠. 남의 집 딸 얘기로 사천 명을 모은 거예요⁠.⁠”

어머니가 미루를 보았다⁠. 미루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사천이백이라고 말할 수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맹순갑이 이번에는 나를 보았다⁠.

“⁠얘는 우리 가게 알바예요⁠. 오래 일할 애 아니고요⁠.⁠”

“⁠어머님⁠. 새날 씨는 술을 안 마셨어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시장 골목을 지나던 사람 둘이 걸음을 늦췄다⁠. 맹순갑이 웃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네가 봤어⁠?⁠”

“⁠들었어요⁠.⁠”

맹순갑의 웃음이 얼굴에 그대로 남은 채 굳었다⁠. 맹순갑은 장바구니를 진열대에 올리고 멸치볶음 두 통과 깻잎장아찌 한 통을 담았다⁠.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를 꺼내 어머니 앞에 놓았다⁠.

“⁠거스름돈은 됐어요⁠. 또 올게요⁠.⁠”

어머니는 오만 원짜리를 내려다보았다⁠. 고무장갑 낀 손이 지폐 위에서 멈췄다⁠. 어머니가 우리를 보지 않고 말했다⁠.

“⁠가 줘요⁠. 둘 다⁠.⁠”

*

미루와 나는 시장 골목을 빠져나왔다⁠. 미루는 호떡이 든 주머니를 손으로 감싸고 걸었다⁠. 호떡은 다 식어 있었다⁠.

“⁠언니⁠, 제가 위치 올려서⁠…⁠…⁠”

“⁠알아요⁠.⁠”

“⁠구독자 사천이백 명도 사실이에요⁠. 사장님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에요⁠.⁠” 미루가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손가락에 호떡 꿀이 묻어 있었다⁠. “⁠저 그 영상으로 돈 들어와요⁠. 조금이지만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등 뒤에서 고무 장화 소리가 빠르게 따라왔다⁠. 찰박⁠, 찰박⁠. 젖은 시장 바닥을 밟는 소리였다⁠.

새날 어머니였다⁠. 고무장갑을 벗지 않은 채 골목 입구까지 뛰어왔다⁠. 숨이 찼다⁠. 어머니가 내 앞에 멈춰 숨을 고르고⁠, 장갑 낀 손으로 내 패딩 소매를 잡았다⁠.

“⁠그 노래⁠.⁠”

어머니의 목소리가 낮았다⁠.

“⁠우리 애 목소리 맞니⁠? 취한 목소리였니⁠?⁠”

나는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꽂아 한쪽을 내밀었다⁠. 어머니가 장갑 한 짝을 벗고 맨손으로 이어폰을 받아 귀에 꽂았다⁠. 반주를 지운 파일이었다⁠. 가는 목소리가 1절을 또박또박 짚어 나갔다⁠. 숨표마다 숨을 쉬었다⁠. 첫차가⁠, 하는 말 앞에서는 길게 말고 깊게⁠.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숨을 저기서 쉬어⁠.⁠” 어머니의 입술이 움직였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 노래 앞에서 숨부터 크게 쉬어서⁠, 내가 노래 부르기 전에 한숨 쉬지 말라고 맨날 그랬어⁠.⁠”

어머니는 이어폰을 귀에서 빼서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맨손으로 앞치마 주머니를 뒤졌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분홍색 휴대전화가 나왔다⁠. 투명한 케이스 모서리에 금이 갔고⁠, 케이스와 휴대전화 사이에 작은 스티커가 끼어 있었다⁠. 동그라미 둘레로 짧은 선을 뻗친 해였다⁠.

“⁠이거 걔 거야⁠.⁠”

어머니가 휴대전화를 내 손에 쥐여 주지 않고⁠,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네 해 동안 못 열었어⁠. 비밀번호를 몰라서⁠. 열 번 틀리면 다 지워진다길래 여섯 번 틀리고 멈췄어⁠. 앞치마에 넣고 다니기만 했어⁠.⁠”

어머니가 휴대전화를 내 쪽으로 조금 내밀었다가 다시 당겼다⁠.

“⁠열 수 있으면⁠, 나 먼저 듣게 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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