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61자)

콜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내지담

택시 기사는 마스크를 턱에 건 채 계산대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손바닥으로 무릎을 문지르며⁠, 남이 들을까 봐 복도 끝을 두 번 돌아본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몇 해 전이었지⁠. 겨울 들어설 무렵부터 이 골목에 소문이 돌았어⁠. 순갑빌딩 지하에서 밤마다 판이 선다고⁠. 상가 사장들이 가게 문 닫고 내려가서 새벽까지 화투를 친다고⁠.⁠”

“⁠기사님도 가 보셨어요⁠?⁠”

“⁠나는 안 갔어⁠. 1층 치킨집 사장이 한 판 하자고 그랬는데⁠, 안 갔어⁠.⁠” 택시 기사가 손목을 내밀어 보였다⁠. “⁠우리 마누라가 화투만 보면 내 손목부터 봐⁠. 삼십 년 전에 한 번 크게 날려 먹었거든⁠. 그 뒤로 내 손목은 마누라 거야⁠.⁠”

나는 웃음을 참았다⁠. 택시 기사는 진지했다⁠.

“⁠판은 그 일 있고 나서 딱 끊겼어⁠. 소문도 같이 끊겼고⁠.⁠”

새벽 세 시 반이었다⁠. 택시 기사는 3번 방에 남은 두 곡을 작게 부르고 네 시 전에 나갔다⁠. 나가면서 계단 꼭대기의 셔터를 한참 올려다보았다⁠.

*

월요일 오후⁠, 302호 문밑으로 하얀 봉투가 들어와 있었다⁠. 고시원 복도의 슬리퍼 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가 떠나는 것을 잠결에 들었다⁠. 봉투 안에 종이 한 장이 있었다⁠.

「⁠302호 퇴실 안내⁠. 12월 31일까지 방을 비워 주세요⁠. 사유⁠: 리모델링⁠. 보증금 없음⁠. 순갑빌딩⁠.⁠」

종이 아래 귀퉁이에 맹순갑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인주가 덜 말라 손가락에 묻었다⁠. 302호는 창이 있는 방이었다⁠. 창밖으로 1층 치킨집의 배기 덕트가 보였고⁠, 밤이면 덕트에서 튀김 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저녁에 출근하자 계산대에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마른 남자였고⁠, 패딩 지퍼를 턱 끝까지 올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오늘부터 같이 배우래요⁠. 야간이요⁠.⁠”

신입은 말끝마다 고개를 숙였다⁠. 맹순갑이 내 자리를 채울 사람을 들인 것이었다⁠. 나는 신입에게 동전 교환기 여는 법과 음료 냉장고 채우는 순서와 방마다 리모컨 건전지 갈아 끼우는 법을 가르쳤다⁠. 7번 방은 가르치지 않았다⁠. 신입이 먼저 물었다⁠.

“⁠저 7번은 왜 잠가 놨어요⁠?⁠”

“⁠고장이래요⁠.⁠”

“⁠아⁠, 네⁠.⁠”

신입은 7번 방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인수인계 쪽지를 이미 읽은 얼굴이었다⁠.

*

신입에게 계산대를 맡기고 퇴실 안내문을 들고 4층으로 올라갔다⁠. 창고 계단은 3층 고시원 복도를 지나 4층 철문 앞에서 끝났다⁠. 철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 큰 들통 끓는 소리와 텔레비전 일일드라마 소리가 같이 흘러나왔다⁠. 현관 앞에 고시원 세입자 넷이 반찬통을 하나씩 들고 줄을 서 있었다⁠. 맹순갑은 고무장갑을 끼고 김치통에서 배추김치를 꺼내 반찬통마다 꾹꾹 눌러 담았다⁠.

“⁠201호⁠, 너는 많이 먹으니까 두 쪽⁠. 205호는 매운 거 못 먹지⁠? 백김치 줄게⁠.⁠”

세입자들이 고개를 숙이며 반찬통을 받아 갔다⁠. 205호 남자는 반찬통을 가슴에 안고 계단을 내려가며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맹순갑은 줄 맨 끝에 서 있는 나를 보고 고무장갑 낀 손을 흔들었다⁠.

“⁠소진이도 통 가져오지⁠. 겨울엔 김치가 있어야 해⁠.⁠”

“⁠사장님⁠, 이거요⁠.⁠”

나는 안내문을 내밀었다⁠. 맹순갑은 장갑 낀 손으로 안내문을 받지 않고 눈으로만 읽었다⁠.

“⁠리모델링이야⁠. 창 있는 방은 새로 꾸며서 사십 받을 거야⁠.⁠”

“⁠계약은 삼월까지예요⁠.⁠”

“⁠그래⁠, 삼월까지 버텨도 돼⁠.⁠” 맹순갑이 김치통 뚜껑을 닫았다⁠. “⁠근데 소진아⁠, 이 동네 고시원 사장들이 다 나랑 계를 해⁠. 삼월에 너 받아 줄 데가 있을지 모르겠다⁠.⁠”

맹순갑은 빈 반찬통 하나를 꺼내 김치를 가득 담고 뚜껑을 눌러 닫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통이 묵직하고 차가웠다⁠. 나는 통을 받았다⁠. 받지 않을 방법을 몰랐다⁠.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김칫국물이 통 가장자리로 배어 나와 손가락을 적셨다⁠.

*

화요일 새벽 한 시⁠, 미루가 계산대로 전화를 했다⁠. 주말 밤에서 빠진 미루는 집에서 전날 녹음을 붙들고 있었다⁠.

“⁠언니⁠, 들어 보세요⁠. 제가 앱으로 잡음 제거를 했거든요⁠. 이거 콜이 아니라 골이에요⁠. 골⁠! 아래층에서 축구 본 거예요⁠.⁠”

미루가 보낸 파일을 열었다⁠. 잡음 제거 앱이 노래까지 같이 깎아 내서⁠, 목소리가 물속에서 부르는 소리처럼 뭉개져 있었다⁠. 콜은 콜인지 골인지 고래인지 알 수 없었다⁠.

“⁠미루 씨⁠, 그거 노래를 지운 거예요⁠.⁠”

“⁠노래가 잡음이잖아요⁠. 귀신 노래니까⁠.⁠”

나는 신입에게 계산대를 맡기고 6번 방에 들어갔다⁠. 리모컨으로 5816을 눌렀다⁠. 7번 방에서만 나오던 노래가 6번 방 화면에 떴다⁠. 같은 곡⁠, 같은 반주였다⁠. 나는 마이크를 탁자에 엎어 두고 노래 없이 반주만 녹음했다⁠. 사 분 남짓한 반주를 끝까지 받아 냈다⁠.

미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반주 음원을 하나 더 땄어요⁠. 이걸 위아래로 뒤집어서 녹음이랑 박자를 맞춰 겹치면⁠, 똑같은 반주끼리는 서로 지워져요⁠. 반주가 아닌 소리만 남고요⁠.⁠”

“⁠그러니까 반주 빼기⁠, 귀신 남기기네요⁠.⁠”

“⁠귀신 말고 소리요⁠.⁠”

“⁠언니한텐 소리고 저한텐 귀신이에요⁠.⁠”

나는 계산대 구석에서 노트북을 열고 두 파일을 겹쳤다⁠. 박자를 맞추는 일은 더뎠다⁠. 옛 반주기의 녹음은 새 반주기보다 아주 조금 느렸다⁠. 천분의 몇 초씩 밀어 가며 맞추자⁠, 헤드폰 속에서 피아노가 한 음씩 얇아지다가 어느 순간 꺼졌다⁠. 전자 현악도 꺼졌다⁠. 텅 빈 데에 목소리 하나와 숨소리와 반주가 아닌 소리들이 남았다⁠.

“⁠언니⁠, 뭐가 남았어요⁠?⁠”

“⁠잠깐만요⁠.⁠”

*

세 시 정각⁠, 7번 방에서 노래가 시작됐다⁠. 계산대의 신입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나 모니터를 보았다⁠. 초록 네모⁠, 예약 1곡⁠, 5816⁠. 신입이 나를 보았다⁠. 나는 헤드폰을 한쪽 귀에서 내렸다⁠.

“⁠고장이래요⁠.⁠”

신입은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주가 끝나고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나오자⁠, 신입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1절이 시작되자 신입이 일어났다⁠. 철컥이 울리자 신입이 가방을 들었다⁠. 노래가 팬 소리를 지나 2절로 들어가자 신입은 계단을 반쯤 올라가 있었다⁠.

“⁠저 오늘까지만 할게요⁠!⁠”

신입의 발소리가 셔터 아래를 지나 골목으로 사라졌다⁠. 계단 꼭대기에 미루가 뿌려 두고 간 굵은소금이 신입의 운동화 밑에서 와사삭 부서졌다⁠. 아직 첫날이었고⁠, 신입은 첫날의 세 시를 삼 분도 견디지 못했다⁠. 콜 소리 앞에서 노래가 끊기고 노크 세 번이 울렸을 때⁠, 계산대 의자에는 신입의 털장갑 한 짝만 남아 있었다⁠.

*

나는 겹친 파일을 처음부터 다시 돌렸다⁠. 반주가 지워진 자리에서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가는 목소리가 가사를 또박또박 짚어 나갔고⁠, 숨표마다 숨을 쉬었다⁠. 첫차가⁠, 하는 말 앞에서는 길게 말고 깊게⁠. 가사지에 연필로 적힌 그대로였다⁠.

철컥을 지나고⁠, 팬의 딸깍을 지나고⁠, 2절 첫 줄이 끝나는 자리에 이르자 헤드폰 깊은 데서 소리가 올라왔다⁠. 반주에 묻혀 있던 소리가 이제는 혼자였다⁠.

먼저 종이 비비는 소리가 났다⁠. 두꺼운 종이 여러 장을 손바닥 사이에 넣고 섞는 소리⁠. 짝⁠, 하고 탁자에 내려치는 소리⁠. 남자 목소리가 셋이었다⁠. 하나는 굵었고 하나는 쉬었고 하나는 높았다⁠.

“⁠콜⁠.⁠”

“⁠다이⁠. 아⁠, 또 땡이야⁠?⁠”

그리고 웃음⁠. 히⁠, 히끅⁠.

끝이 딸꾹질처럼 한 번 튀어 오르는 웃음이었다⁠. 나는 헤드폰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같은 대목을 다섯 번 돌렸다⁠. 금요일 밤 한 시⁠, 날개는 아가씨 다리는 소진이 하던 목소리⁠, 7번 얘기 하면 닭이 안 팔린다며 렌즈를 덮던 손⁠. 웃음 끝이 튀는 자리까지 똑같았다⁠.

미루에게 파일을 보냈다⁠. 미루는 오 분 뒤에 전화했다⁠.

“⁠언니⁠. 치킨 사장님이에요⁠.⁠”

“⁠네⁠.⁠”

“⁠그럼 그 사장님이 몇 해 전 겨울에 지하에서 화투를 쳤다는 거잖아요⁠. 7번 방에서 그 언니가 노래하고 있을 때요⁠.⁠”

미루가 휴대전화 너머에서 무언가를 뒤적였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아니라 화면 넘기는 손톱 소리였다⁠.

“⁠언니⁠, 기사 하나 더 찾았어요⁠. 2024년 3월이요⁠. 「⁠신촌 노래방 사망 사고⁠, 보일러 설치 업체 과실로 결론⁠」 업체 사장이 벌금을 냈대요⁠. 노래방 주인은 혐의 없음이고요⁠.⁠”

*

수요일 새벽 열두 시 사십 분⁠, 1층 치킨집은 셔터를 반쯤 내린 채 불을 켜 두고 있었다⁠. 나는 셔터 밑으로 허리를 숙여 들어갔다⁠. 치킨집 사장은 튀김기 앞에서 기름을 빼고 있었다⁠. 튀김기 바닥 밸브를 열자 식은 기름이 양동이로 쿨렁쿨렁 쏟아졌다⁠.

“⁠어⁠, 소진이⁠. 닭 다 팔렸어⁠. 다리는 없고 목뼈는 있어⁠.⁠”

“⁠사장님⁠, 이거 한 번만 들어 주세요⁠.⁠”

나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치킨집 사장이 기름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이어폰 한쪽을 귀에 꽂았다⁠. 콜⁠, 다이⁠, 아 또 땡이야⁠, 그리고 히⁠, 히끅⁠.

치킨집 사장의 손이 앞치마 위에서 멈췄다⁠. 이어폰을 귀에서 뽑아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양동이로 떨어지던 기름이 똑⁠, 똑 끊어졌다⁠.

“⁠이게 뭔데⁠.⁠”

“⁠7번 방 노래 밑에 있던 소리예요⁠. 몇 해 전 겨울밤 새벽 세 시요⁠.⁠”

“⁠그런 웃음소리 신촌에 천 명은 있어⁠.⁠” 치킨집 사장이 웃었다⁠. 웃다가 웃음 끝이 히끅 튀었다⁠. 치킨집 사장은 제 입을 손등으로 눌렀다⁠. 손등에 묻은 기름이 입가에 번들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튀김기 밸브에서 기름 한 방울이 떨어졌다⁠. 치킨집 사장은 튀김기 옆 플라스틱 상자에 털썩 앉았다⁠.

“⁠소진아⁠. 너 이거 사장님한테 말하지 마라⁠.⁠”

“⁠사장님이 거기 계셨어요⁠?⁠”

“⁠나 가게 보증금 사장님한테 빌린 거야⁠. 이 가게 계약도 사장님 손에 있고⁠. 우리 딸 학원비도⁠.⁠” 치킨집 사장이 목뼈 봉지를 집어 내게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 목뼈가 원래 제일 맛있어⁠. 다들 몰라서 그래⁠.⁠”

나는 목뼈 봉지를 받지 않았다⁠. 치킨집 사장은 봉지를 든 손을 한참 내밀고 있다가 내렸다⁠.

*

새벽 두 시⁠, 계단에서 비틀거리는 발소리가 내려왔다⁠. 치킨집 사장이었다⁠. 셔터를 내리고 혼자 소주를 마신 냄새가 계산대까지 먼저 왔다⁠. 치킨집 사장은 계산대를 지나 복도로 들어갔다⁠. 1번⁠, 2번⁠, 3번 방을 지났다⁠. 택시 기사는 오늘 오지 않았다⁠. 4번⁠, 5번⁠. 6번 방 앞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사흘 동안⁠, 아니 몇 해 동안 끊기던 자리였다⁠. 발소리가 다시 움직였다⁠. 한 걸음⁠, 두 걸음⁠. 7번 방 사슬 앞이었다⁠.

치킨집 사장은 7번 방 문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유리창에 이마가 닿을 듯 말 듯 했다⁠.

“⁠미안하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미안하다⁠, 아가씨⁠.⁠”

나는 계산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귀만 열어 두었다⁠. 치킨집 사장의 숨이 유리창에 하얗게 서렸다가 지워졌다⁠. 치킨집 사장은 한참 뒤에야 몸을 돌렸고⁠, 돌린 얼굴로 나를 보았다⁠. 계산대 형광등 불빛에 젖은 눈이 번들거렸다⁠.

“⁠너 아무것도 못 들은 거다⁠.⁠”

창고 문 안쪽에서 방울이 울렸다⁠. 지르릉⁠. 문이 열렸다⁠. 맹순갑이 누빔 조끼 차림으로 창고 문간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계단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맹순갑은 치킨집 사장을 보고⁠, 사슬 감긴 7번 방 문을 보고⁠, 마지막으로 나를 보았다⁠. 국수를 퍼 주던 얼굴로 웃었다⁠.

“⁠들었어도 못 들은 거야⁠. 그치⁠, 소진아⁠?⁠”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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