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93자)

환풍기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내지담

셔터가 닫히고 나서 처음 들린 것은 미루의 숨이었다⁠. 짧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숨이 계단 아래 좁은 데서 두 번 울렸다⁠. 다음은 천장 환기구 팬이었다⁠. 아까보다 한 음 낮게⁠, 무겁게 돌았다⁠.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야 할 팬이 내보낼 데를 잃고 헛힘을 쓰고 있었다⁠.

“⁠언니⁠. 십 분이면 몇 초예요⁠?⁠”

“⁠육백 초요⁠.⁠”

“⁠세지 마요⁠. 세지 말라고 물어본 거예요⁠.⁠”

미루는 계단에 주저앉아 굵은소금 지퍼백을 통째로 끌어안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112를 눌러 놓고⁠, 통화 단추 위에 엄지를 올린 채 누르지 않았다⁠. 나는 미루 옆을 지나 복도 끝으로 갔다⁠. 7번 방 문틈에 손등을 댔다⁠. 바람이 나왔다⁠. 셔터가 열려 있을 때보다 셌다⁠. 가게의 팬들이 공기를 끌어당기자 7번 방 바닥 환풍구가 그만큼을 아래에서 올려 보내고 있었다⁠.

바람에 냄새가 묻어 있었다⁠. 오래된 기름과 젖은 시멘트와 곰팡이⁠. 노래방 복도의 방향제 냄새와는 다른 공기였다⁠. 지하 2층의 공기가 7번 방 바닥으로 곧장 올라오고 있었다⁠.

“⁠언니⁠, 육 분 지났어요⁠.⁠”

“⁠센 거예요⁠?⁠”

“⁠저절로 세져요⁠.⁠”

십 분이 거의 다 되었을 때 바깥에서 빗장 빠지는 소리가 났다⁠. 셔터가 마디마디 감겨 올라갔다⁠. 골목의 찬 공기가 계단으로 쏟아져 내려왔고⁠, 천장 팬이 원래 음으로 돌아왔다⁠. 맹순갑이 쇠갈고리를 든 채 계단 꼭대기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봐라⁠. 숨 막혀 죽은 사람 없지⁠.⁠”

맹순갑은 갈고리를 벽의 못에 도로 걸어 두고⁠, 미루의 휴대전화 화면을 흘끗 보았다⁠.

“⁠누르지 그랬어⁠. 경찰 오면 너네가 셔터 만진 것부터 말할 텐데⁠.⁠”

방울 소리가 골목 끝으로 멀어졌다⁠. 미루는 엄지를 화면에서 떼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나는 맹순갑의 말을 입 안에서 한 번 더 굴렸다⁠. 숨 막혀⁠. 택시 기사는 보일러 가스라고 했다⁠. 가스로 죽은 사람을 두고 숨 막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죽음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

토요일 오후⁠, 미루는 영상을 올렸다⁠. 제목은 「⁠신촌 코인노래방 7번 방⁠, 새벽 세 시 신청하지 않은 노래⁠」였다⁠. 새 기계 화면에 뜬 곡 번호⁠, 빈 방⁠, 비명⁠, 철컥⁠, 노크⁠. 가게 이름과 간판은 모자이크로 가렸지만 계단 손잡이의 노란 테이프와 별무늬 벽지는 가리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에 조회 수가 사만을 넘었다⁠. 미루가 전화로 소리를 질렀다⁠.

“⁠언니⁠, 구독자 사천 명이에요⁠! 사천⁠! 저 어제까지 삼백이었어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신촌 그 노래방 맞죠⁠? 별무늬 벽지⁠」 「⁠여기 몇 년 전에 뉴스 나왔던 데 아니에요⁠?⁠」 누군가 짧은 기사 주소를 붙여 놓았다⁠. 2023년 12월 22일 자였다⁠. 「⁠신촌 코인노래방서 20대 여성 숨진 채 발견 … 경찰 “⁠보일러 배기 불량 추정⁠”⁠」 기사는 네 문장이었다⁠. 새벽에 노래방 방 안에서 손님이 쓰러진 채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고⁠,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보이며⁠, 경찰은 보일러 설치 업체의 과실 여부를 조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름은 없었다⁠.

댓글 하나가 더 있었다⁠. 「⁠저 7번 방에서 노래 연습하던 언니 영상 본 적 있어요⁠. 커버 올리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안 올라왔어요⁠」

*

일요일 새벽 세 시⁠, 나는 혼자였다⁠. 녹음기를 계산대에 올리고 7번 방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노래가 시작됐다⁠. 1절⁠, 후렴⁠, 첫차가 오면 나는 갈게요⁠, 아무도 깨우지 않고⁠. 마지막 음 위로 철컥이 떨어졌다⁠.

노래가 끊기지 않았다⁠.

철컥의 떨림을 지나 반주가 이어졌다⁠. 간주였다⁠. 처음 듣는 대목이었다⁠. 피아노가 내려오고 전자 현악이 올라가며 여덟 마디를 이었다⁠. 목소리는 간주 동안 쉬었다⁠. 쉬는 동안 숨소리가 들렸다⁠. 1절보다 숨이 조금 짧았다⁠.

간주 여섯 번째 마디에서 반주 밑에 깔려 있던 소리 하나가 사그라졌다⁠. 위이잉⁠, 하고 돌던 팬 소리였다⁠. 팬 소리는 내내 노래 밑에 있었는데⁠, 너무 고르게 깔려 있어서 거기 있는 줄도 몰랐다⁠. 돌던 팬이 느려지며 날개 하나가 틱⁠, 틱⁠, 틱 둘레 틀을 긁었다⁠. 이어서 딸깍⁠. 노래가 끊겼다⁠. 똑⁠, 똑⁠, 똑⁠.

나는 문 앞에 앉은 채 녹음기를 껐다⁠. 손끝이 시렸다⁠. 어제 셔터라고 이름을 붙였고⁠, 오늘 노래는 셔터를 지나갔다⁠. 노래는 아직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 소리 앞에서 멈추고 있었다⁠.

아침에 302호로 올라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고시원 벽은 합판 한 장이라 복도 끝 공용 부엌의 전자레인지 소리까지 들어왔다⁠. 301호 남자는 일곱 시에 알람을 세 번 미뤘고⁠, 303호 여자는 머리를 말리며 통화했다⁠. 나는 헤드폰을 쓰고 간주를 돌렸다⁠. 팬이 멈추는 딸깍을 들을 때마다 지난겨울의 기침 소리가 같이 따라왔다⁠.

지난겨울에 나는 같은 고시원 305호에 살았다⁠. 옆방 306호 남자가 밤마다 기침을 했다⁠. 처음 사흘은 마른기침이었고⁠, 나흘째부터는 기침 끝에 쇳소리가 붙었다⁠. 나는 밤마다 벽에 귀를 대고 기침을 들었고⁠, 들으면서 이어폰 볼륨을 올렸다⁠. 엿새째 새벽에 구급대원들이 306호 문을 땄다⁠. 남자는 들것에 실려 내려가며 숨을 쉬고 있었다⁠. 맹순갑은 306호를 치우고 302호를 내게 십만 원 깎아 주었다⁠. 창 있는 방이 비었다고 했다⁠.

*

일요일 오후⁠, 미루에게 문자가 왔다⁠. 맹순갑이 보낸 것을 캡처해 보낸 것이었다⁠.

「⁠미루야⁠. 영상 내려라⁠. 우리 가게 영업 방해고 명예훼손이다⁠. 아는 법무사한테 물어보니 소송하면 영업 손실 다 물어야 한단다⁠. 오늘 안에 내리면 없던 일로 하마⁠. 사장이⁠.⁠」

미루는 전화로 울다가 웃다가 했다⁠.

“⁠언니⁠, 저 고소당하면 구독자님들한테 뭐라고 해요⁠? 겁쟁이탐방이 겁먹고 도망갔다고 해요⁠? 그게 맞는 말이라 더 싫어요⁠.⁠”

“⁠내려요⁠.⁠”

“⁠내리면 지는 거잖아요⁠.⁠”

“⁠내려도 댓글은 남아요⁠. 기사 주소⁠, 미루 씨가 저장했잖아요⁠.⁠”

미루는 일요일 저녁 영상을 내렸다⁠. 구독자는 사천에서 줄지 않았다⁠. 내린 영상 자리에 「⁠사정상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무서워서 아닙니다⁠」라는 공지가 붙었다⁠.

*

월요일 새벽 두 시⁠, 나는 계산대 서랍을 통째로 빼냈다⁠. 쪽지를 다시 읽으려던 참이었는데⁠, 서랍 바닥 밑면에 투명 테이프로 붙여 둔 열쇠 하나가 손에 닿았다⁠. 테이프 위에 볼펜 글씨가 있었다⁠. 「⁠7번 자물쇠 여벌⁠. 사장님이 늘 같은 자물쇠를 써요⁠. 혹시 몰라서⁠.⁠」

자물쇠가 맞았다⁠. 사슬을 풀고 7번 방에 들어갔다⁠. 방 안이 복도보다 한참 추웠다⁠. 별무늬 벽지가 화면 불빛에 희미하게 떴고⁠, 소파 인조가죽이 엉덩이 닿는 자리마다 갈라져 있었다⁠. 문 옆 바닥에 손바닥 두 개만 한 환풍구 철망이 있었다⁠. 철망 틈으로 찬 바람이 올라왔다⁠.

나사 넷을 동전으로 풀었다⁠. 철망을 들어내자 안쪽에 낡은 환풍기가 보였다⁠. 날개 넷 가운데 하나의 끝이 이 빠지듯 떨어져 나가 있었다⁠. 손가락으로 날개를 돌려 보았다⁠. 날개가 한 바퀴 돌 때마다 이 빠진 끝이 둘레 틀에 닿았다⁠. 틱⁠. 녹음 속의 틱과 같은 소리였다⁠.

환풍기 전선은 방 안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벽 콘센트에도⁠, 반주기에도 이어지지 않았다⁠. 계산대 분전함의 「⁠7⁠」 차단기는 반주기와 조명만 껐다⁠. 전선은 환풍기 뒤로 돌아 통로 아래 어둠으로 곧장 내려갔다⁠.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자 통로가 아래로 꺾이며 사라졌다⁠. 팬을 끄는 스위치는 이 방에 없었다⁠. 아래층에 있었다⁠.

간주 여섯 번째 마디에서 팬이 멈췄다⁠. 몇 해 전 겨울밤 새벽 세 시⁠, 누군가 아래층에서 7번 방 환풍기를 껐다⁠.

불빛을 거두려다 환풍기 틀과 통로 벽 사이에 끼인 종이를 보았다⁠. 네 번 접힌 종이였다⁠. 손톱으로 집어 빼냈다⁠. 접힌 자리가 닳아 보풀이 일어 있었다⁠. 오래 주머니에 넣고 다닌 종이였다⁠.

펼치자 인쇄한 가사지였다⁠. 「⁠첫차를 기다리며⁠」 가사 줄 사이사이에 연필로 작은 브이 자가 그어져 있었다⁠. 숨 쉬는 자리였다⁠. 첫차가⁠, 하는 말 앞마다 브이가 있었다⁠. 여백에 둥근 글씨로 몇 줄이 적혀 있었다⁠.

「⁠2절은 반 키 내려서⁠」 「⁠숨은 첫차가 앞에서⁠, 길게 말고 깊게⁠」 「⁠오늘은 끝까지⁠」

맨 아래 구석에 작은 해가 하나 그려져 있었다⁠. 동그라미 둘레로 짧은 선을 여덟 개 뻗친 해였다⁠. 해 옆에 이름이 있었다⁠.

「⁠새날⁠」

나는 가사지를 들고 7번 방 바닥에 앉아 있었다⁠. 노래 앞에서 숨을 먼저 들이마시는 소리가 귓속에서 저절로 다시 돌았다⁠. 첫차가⁠, 하는 말 앞이었다⁠. 브이 자리와 같았다⁠.

*

환풍구 아래에서 방울이 울렸다⁠. 지르릉⁠. 통로를 타고 올라온 소리라 납작하고 가까웠다⁠. 이어서 계단 밟는 소리가 위로 올라왔다⁠. 나는 가사지를 접어 소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철망을 내려놓기 전에 7번 방 문이 열렸다⁠.

“⁠그 방에 왜 들어가⁠.⁠”

맹순갑이 문간에 있었다⁠. 아래층에서 나사 푸는 소리를 들은 얼굴이었다⁠. 통로는 위아래로 소리를 다 날랐다⁠. 맹순갑의 눈이 바닥의 철망과 나사 네 개와 내 손의 열쇠를 차례로 짚었다⁠. 맹순갑은 손을 내밀었고⁠, 나는 열쇠를 건넸다⁠.

맹순갑은 창고에서 실리콘 총을 들고 왔다⁠. 무릎을 꿇고 철망을 제자리에 대고 나사 넷을 직접 조였다⁠. 이어서 철망 둘레를 따라 실리콘을 짰다⁠. 하얀 실리콘이 철망과 바닥 사이를 메워 나갔다⁠. 실리콘 총 방아쇠가 끽⁠, 끽 울었다⁠.

“⁠이 방은 처음부터 바람이 나빠⁠. 막는 게 나아⁠.⁠”

“⁠사장님⁠. 몇 해 전 겨울에도 이 환풍기 끄셨어요⁠?⁠”

실리콘 줄이 툭 끊겼다⁠. 맹순갑은 끊긴 자리에서 다시 짜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소진아⁠, 너 302호 계약 언제까지지⁠?⁠”

“⁠삼월요⁠.⁠”

“⁠삼월이 멀다⁠.⁠”

맹순갑은 철망 네 귀퉁이까지 실리콘을 다 메우고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다졌다⁠. 그러고는 일어나 무릎을 털고⁠, 실리콘 총을 든 채 문을 닫고 사슬을 감았다⁠. 딸깍⁠.

*

세 시가 되기 이십 분 전⁠, 계단에서 발소리가 났다⁠. 마스크를 쓰고 털모자를 귀까지 눌러쓴 사람이 계산대 앞에 천 원짜리를 내밀었다⁠. 택시 기사였다⁠.

“⁠나 손님이야⁠. 손님은 받아야지⁠.⁠”

“⁠사장님이 오지 말래셨잖아요⁠.⁠”

“⁠나 아니야⁠. 나는 처음 온 손님이야⁠.⁠” 택시 기사가 마스크 위로 눈을 끔뻑였다⁠. “⁠3번 비었지⁠?⁠”

나는 동전 교환기에서 백 원짜리를 바꿔 주었다⁠. 택시 기사는 3번 방으로 들어가 이번에는 「⁠사랑의 미터기⁠」를 아주 작게 틀었다⁠. 금지당한 사람의 트로트는 속삭이는 트로트였다⁠.

세 시⁠. 노래가 시작됐다⁠. 실리콘으로 막은 환풍구에서도 노크는 올라올 것이고⁠, 노래는 천장 스피커로 나올 것이었다⁠. 나는 녹음기를 켰다⁠. 철컥을 지나고⁠, 간주를 지나고⁠, 팬이 멈추는 딸깍도 지나갔다⁠. 목소리가 2절로 들어갔다⁠. 주머니 속 동전 하나⁠, 노래 한 곡만큼 남아서⁠. 목소리는 1절보다 조금 낮았다⁠. 반 키를 내린 2절이었다⁠.

2절 첫 줄이 끝나는 자리에 소리가 섞였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였다⁠. 남자들 웃음소리⁠, 손바닥으로 무언가를 탁자에 내려치는 짝 소리⁠, 그리고 굵은 남자 목소리 하나⁠.

“⁠콜⁠.⁠”

노래가 끊겼다⁠. 똑⁠, 똑⁠, 똑⁠. 실리콘을 뚫고 올라온 노크는 아까보다 둔했다⁠.

3번 방 문이 열렸다⁠. 택시 기사가 마스크를 턱 밑으로 내리고 복도로 나와 7번 방을 보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가씨⁠. 그거 하우스 소리야⁠.⁠”

“⁠하우스요⁠?⁠”

“⁠노름판⁠. 화투 두 장씩 들고 끗수 겨루는 섯다 판에서⁠, 판돈 받겠다고 할 때 콜 그래⁠.⁠” 택시 기사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 건물 지하에서 판 돈다는 소문⁠, 그 무렵에 있었어⁠.⁠”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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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차승객2026.10.31· 3화

    십 분이면 몇 초냐고 묻고 세지 말라는 미루, 무서운데 웃겼어요.

    • 내지담작가2026.10.31

      무서울 때 사람은 이상한 걸 묻더라고요. 환풍기 소리는 계속 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