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11자)

백십구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내지담

아침 일곱 시⁠, 나는 서대문경찰서 앞 계단에 앉아 형사를 기다렸다⁠. 밤새 찜질방 수면실 천장을 보며 하나만 생각했다⁠. 내가 만질 수 없었던 소리⁠. 택시 안의 휴대전화는 내 손을 거쳤고⁠, 반주를 지운 파일은 내 노트북에서 나왔다⁠. 변호사는 두 가지를 쥐고 있었다⁠. 내 손을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소리가 하나 있었다⁠.

형사가 출근하며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손에 든 종이컵 커피에서 김이 올랐다⁠.

“⁠또 왜요⁠.⁠”

“⁠119 신고 녹음이요⁠. 네 해 전 네 시 이십 분⁠.⁠”

형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거 사건 기록에 붙어 있어요⁠. 그해에 내가 소방서에서 받아 왔어요⁠. 사망 사건이라 신고 시각 확인하려고⁠.⁠” 형사가 눈두덩을 눌렀다⁠. “⁠건물주 목소리밖에 없어요⁠. 사람 쓰러졌다⁠, 방금 발견했다⁠. 그해에 내가 다섯 번은 들었어요⁠.⁠”

“⁠사장님 목소리 말고⁠, 뒤를 듣고 싶어요⁠.⁠”

형사는 커피를 다 마시고 종이컵을 구겼다⁠.

“⁠들어와요⁠.⁠”

*

진술실 히터는 오늘도 셌다⁠. 형사가 노트북에 오래된 시디를 넣었다⁠. 시디 겉면에 매직으로 사건 번호와 「⁠119 신고 녹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헤드폰을 꺼냈다⁠. 학교 다닐 때 산⁠, 귀를 통째로 덮는 헤드폰이었다⁠.

“⁠소리 키워도 돼요⁠?⁠”

“⁠귀 상하지 않을 만큼만요⁠.⁠”

신고 녹음은 일 분 사십 초였다⁠. 상황실 요원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119입니다⁠. 이어서 맹순갑의 목소리⁠. 여보세요⁠, 119죠⁠?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신촌 순갑빌딩 지하 노래방이요⁠. 방금 발견했어요⁠. 방금요⁠.

나는 맹순갑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목소리 뒤를 들었다⁠. 처음 두 번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화기 마이크가 맹순갑의 입에 너무 가까웠다⁠. 세 번째에 눈을 감았다⁠. 맹순갑이 숨 쉬는 틈마다 뒤의 공기가 잠깐씩 열렸다⁠.

열린 틈으로 기계 목소리가 들렸다⁠. 남은 곡이 없습니다⁠. 곡을 선택해 주세요⁠. 7번 방 반주기 안내 음성이었다⁠. 반주가 끝나고 한참 지난 기계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방금 노래가 끝난 방이 아니었다⁠.

네 번째에는 더 깊이 들었다⁠. 맹순갑이 주소를 말하는 사이⁠, 아주 멀리서 쇠가 시멘트를 긁는 소리가 났다⁠. 끼이익⁠. 무거운 것의 다리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였다⁠. 소리는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왔다⁠. 바닥 환풍구를 거쳐 온 소리라 납작했다⁠. 이어서 남자 목소리 하나가 올라왔다⁠. 맹순갑이 숨을 들이켜는 반 초 사이였다⁠.

“⁠사장님⁠, 상 다리가 안 접혀요⁠. 어디 둬요⁠?⁠”

나는 헤드폰을 벗었다⁠. 손이 떨렸다⁠. 형사에게 헤드폰을 내밀었다⁠.

“⁠일 분 십이 초요⁠. 사장님이 주소 말하고 숨 쉬는 자리요⁠. 뒤에 기계 안내 음성도 들어 보세요⁠.⁠”

형사가 헤드폰을 썼다⁠. 일 분 십이 초로 돌렸다⁠. 한 번⁠. 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두 번⁠. 형사의 손가락이 노트북 위에서 멈췄다⁠. 세 번⁠. 형사가 헤드폰을 쓴 채 눈을 감았다⁠. 히터가 쉭쉭거렸다⁠. 형사는 헤드폰을 벗지 않고 오래 앉아 있었다⁠.

“⁠상 다리⁠.⁠”

형사가 헤드폰을 벗었다⁠. 목소리가 쉬었다⁠.

“⁠네 시 이십 분에 지하에서 누가 탁자를 옮기고 있었어요⁠. 방금 발견했다고 신고하는 동안에요⁠.⁠” 형사가 시디 겉면의 매직 글씨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이 소리가 네 해 동안 내 서랍에 있었어요⁠. 다섯 번 듣고도 못 들었어요⁠.⁠”

“⁠사장님 목소리가 너무 가까웠어요⁠.⁠”

“⁠윤소진 씨는 이 시디 만진 적 없죠⁠.⁠”

“⁠처음 봐요⁠.⁠”

형사가 일어나 진술실 문을 열고 복도에 대고 누군가를 불렀다⁠. 휴대전화 분석을 맡은 직원이 서류 한 장을 들고 왔다⁠. 형사가 서류를 훑어보고 내게 말했다⁠.

“⁠휴대전화 1차 분석도 오늘 아침에 나왔어요⁠. 녹음 파일⁠, 만든 날부터 지금까지 손댄 흔적 없대요⁠. 택시 안에서 열어 들은 기록만 있고요⁠.⁠”

*

치킨집 사장은 오후에 왔다⁠. 형사가 불렀다⁠. 치킨집 사장은 앞치마를 벗지 않고 왔고⁠, 진술실 의자에 앉자마자 무릎에 손을 올렸다⁠. 형사가 헤드폰을 치킨집 사장에게 씌우고 일 분 십이 초를 틀었다⁠.

사장님⁠, 상 다리가 안 접혀요⁠. 어디 둬요⁠?

치킨집 사장이 헤드폰을 귀에서 떼어 냈다⁠. 헤드폰을 탁자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 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히⁠, 히끅⁠. 웃음이 아니었다⁠. 울음 끝이 웃음 끝처럼 튀었다⁠.

“⁠나네⁠.⁠”

치킨집 사장은 진술을 되돌렸다⁠. 거둔다던 진술을 다시 내놓고⁠, 한 장을 더 썼다⁠. 맹순갑이 열쇠를 돌려주고 차용증을 찢어 주며 전화 한 통을 시켰다는 것까지 적었다⁠. 노름판에 앉은 일로 자기도 처벌받는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딸한테 뭐라고 하냐⁠.⁠” 치킨집 사장이 진술서에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아빠가 화투 쳐서 잡혀간다고 하냐⁠, 아빠가 네 해 동안 입 다물고 닭 튀겼다고 하냐⁠.⁠”

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

저녁 여덟 시 반⁠, 신촌역 뒤 편의점 앞에서 예전 알바가 새날 어머니를 기다렸다⁠. 택시 기사의 택시가 비상등을 켜고 멈추자 어머니가 뒷문을 열고 내렸다⁠. 예전 알바는 헬멧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른 손에 작은 반찬통 하나를 들고 있었다⁠. 뚜껑에 해 그림 스티커가 붙은 통이었다⁠. 깨끗이 씻겨 있었다⁠.

“⁠이거⁠, 새날 씨가 주셨던 거예요⁠. 돌려드려야 했는데⁠.⁠”

어머니가 통을 받았다⁠. 뚜껑을 열어 보지 않았다⁠. 스티커를 엄지로 한 번 문지르고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멸치볶음 맛있었니⁠?⁠”

“⁠네⁠. 짰어요⁠.⁠”

“⁠짜게 해야 오래가⁠.⁠”

어머니는 한마디만 하고 노래방 쪽으로 걸었다⁠. 예전 알바는 헬멧을 쓰지 않은 채 뒤를 따랐다⁠. 택시 기사가 택시를 골목에 대 놓고 우리 뒤에서 모자를 고쳐 썼다⁠. 미루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장님 계산대에 앉았어요⁠. 변호사 아저씨도요⁠. 언니 저 손 떨려요⁠」

*

저녁 아홉 시⁠, 별빛 코인노래방 계산대에 맹순갑이 앉아 있었다⁠. 미루가 계산대 옆에서 동전 교환기를 채우고 있었다⁠. 맹순갑은 오늘 밤 가게를 직접 보겠다고 미루에게 말했다고 했다⁠. 회색 코트를 입은 변호사가 계산대 앞 플라스틱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여럿 내려왔다⁠. 형사와 경찰 둘⁠, 나⁠, 택시 기사⁠, 앞치마를 두른 치킨집 사장⁠, 파란 헬멧을 겨드랑이에 낀 예전 알바⁠. 맨 뒤에 새날 어머니가 있었다⁠. 택시 기사가 저녁에 인천에서 태워 온 길이었다⁠. 어머니는 외투 안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맹순갑이 계산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온 사람들을 한 명씩 보았다⁠. 치킨집 사장에게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치킨집 사장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사장님⁠, 체포영장 나왔습니다⁠.⁠” 형사가 서류를 꺼내 보였다⁠. “⁠네 해 전 12월 22일 새벽⁠, 7번 방에 손님이 있는 걸 알면서 셔터를 밖에서 잠그고⁠, 손님이 문을 열어 달라고 두드리는 걸 듣고도 구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 지하 2층에서 노름판을 연 혐의⁠. 사고로 꾸미려고 술병을 갖다 놓고 거짓 신고를 하고⁠, 그저께 배기 통로를 부숴 증거를 없애려 한 혐의⁠.⁠”

“⁠다 기계 소리예요⁠.⁠” 변호사가 다리를 풀었다⁠. “⁠녹음은 음향 하는 알바가⁠…⁠…⁠”

“⁠119 녹음은 그해에 내가 소방서에서 받아서 내 서랍에 넣어 둔 겁니다⁠. 그 알바는 오늘 아침에 처음 봤어요⁠.⁠” 형사가 맹순갑을 보았다⁠. “⁠사장님 신고 전화 뒤에서 이분이 상을 어디 두냐고 물어요⁠.⁠”

치킨집 사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제가 물었어요⁠. 사장님⁠.⁠”

맹순갑의 손이 조끼 주머니로 갔다⁠.

“⁠사장님⁠, 주머니에 든 열쇠 좀 보여 주세요⁠.⁠” 형사가 말했다⁠.

맹순갑이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한참 손에 쥐고 있다가⁠, 계산대 위로 던졌다⁠. 꾸러미가 계산대 유리판에 부딪혀 미끄러졌다⁠. 놋쇠 방울이 울었다⁠.

지르릉⁠.

울리고 난 끝이 지지직 떨렸다⁠. 계산대 앞에 선 사람들이 모두 떨림을 들었다⁠. 택시 기사가 모자를 벗었다⁠. 미루가 동전 교환기 뚜껑을 쥔 채 굳었다⁠. 판 깨지 마⁠, 뒤에 따라오던 방울 소리였다⁠. 휴대전화 녹음 속에서 세 시 사십일 분⁠, 7번 방으로 다가오던 방울 소리였다⁠.

방울의 떨림이 다 가라앉았다⁠. 맹순갑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가 그 애를 죽였어⁠?⁠” 맹순갑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보일러가 죽였지⁠. 낡은 연통이 죽였지⁠. 업체가 벌금 냈잖아⁠.⁠”

“⁠문을 잠근 건 보일러가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계산대 형광등이 지지거렸다⁠.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것도⁠, 환풍기를 끈 것도⁠, 판을 안 깬 것도요⁠. 사십 분 동안 아무도 내려가지 않은 것도요⁠.⁠”

맹순갑이 나를 보았다⁠. 국수를 퍼 주던 얼굴이 아니었다⁠. 맹순갑은 나에게서 눈을 돌려 새날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님⁠. 위로금 드렸잖아요⁠. 합의하셨잖아요⁠.⁠”

새날 어머니가 외투 안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접힌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오만 원짜리였다⁠. 어머니는 계산대 앞으로 걸어가 맹순갑의 열쇠 꾸러미 옆에 지폐를 펴서 놓았다⁠.

“⁠멸치볶음 거스름돈이에요⁠. 그날 두고 가셨어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반찬 값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맹순갑은 지폐를 내려다보았다⁠. 손을 대지 않았다⁠.

형사가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 맹순갑의 손목을 잡았다⁠. 수갑이 채워지는 소리가 났다⁠. 철컥⁠. 가볍고 짧은 철컥이었다⁠. 셔터의 철컥과 달랐다⁠.

*

경찰이 맹순갑을 계단으로 데려갔다⁠. 계단 중간에서 맹순갑이 돌아보았다⁠. 고시원 세입자 몇이 1층 뒷문 쪽 계단참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205호 남자도 있었다⁠. 맹순갑은 세입자들을 보지 않고 나를 보았다⁠.

“⁠소진아⁠. 가게 비우면 셔터는 내려야지⁠. 도둑 든다⁠.⁠”

“⁠오늘은 안 내려요⁠.⁠”

맹순갑의 입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닫혔다⁠. 경찰이 맹순갑의 팔을 끌었다⁠. 방울 없는 발소리가 계단을 올라갔다⁠.

형사가 계산대 위의 열쇠 꾸러미를 비닐 봉투에 넣었다⁠. 봉투에 넣기 전에 꾸러미에서 놋쇠 자물쇠 열쇠 하나를 빼서 손에 쥐었다⁠.

“⁠내일 낮 열두 시에 이 가게 봉인합니다⁠. 감식하고 영업 정지예요⁠.⁠” 형사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늘이 동지예요⁠. 네 해 전 그날도 동지였어요⁠. 변호사가 건물주는 지하에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주장하니까⁠, 오늘 새벽 세 시에 현장 재현을 합니다⁠. 7번 방 소리가 지하 2층에서 들리는지⁠. 건물주도 입회해요⁠. 그날 서 있던 자리에⁠.⁠”

새날 어머니가 형사 앞으로 갔다⁠.

“⁠저는 7번 방에 있을게요⁠.⁠”

형사가 어머니를 보았다⁠. 한참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두 시 오십팔 분⁠. 계단 아래에서 발소리가 둘 내려갔다⁠. 지하 2층으로 가는 건물 계단이었다⁠. 경찰 하나와⁠, 수갑 찬 맹순갑⁠. 형사가 뒤따라 내려가며 내게 무전기 하나를 건넸다⁠. 노란 줄이 걷히는 소리가 아래에서 났다⁠.

나는 7번 방 앞에 있었다⁠. 형사가 빼 준 열쇠로 놋쇠 자물쇠를 열었다⁠. 딸깍⁠. 사슬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7번 방에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갈라진 인조가죽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화면은 꺼져 있었다⁠. 미루는 계산대에서 셀카봉을 들지 않고 두 손을 무릎에 모았다⁠. 택시 기사와 치킨집 사장과 예전 알바가 복도 벽에 나란히 기대어 있었다⁠.

나는 문간에 서서 계산대 모니터를 돌아보았다⁠. 일곱 번째 네모가 회색이었다⁠. 시계가 두 시 오십구 분을 넘어갔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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