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10자)

끝까지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내지담

세 시 정각⁠, 계산대 모니터의 일곱 번째 네모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7번 · 사용 중 · 예약 1곡 · 5816 첫차를 기다리며⁠」

7번 방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파란 빛이 소파에 앉은 새날 어머니의 얼굴을 비추었다⁠. 어머니는 손을 무릎에 얹고 화면을 보았다⁠. 화면에 곡 제목이 떴다가 사라지고⁠, 별무늬 벽지 위로 반주기 업체의 낡은 배경 영상이 흘렀다⁠. 겨울 정류장과 가로등과 눈발⁠.

문 옆 바닥의 환풍구 철망은 실리콘이 걷혀 있었다⁠. 두 시 오십 분에 형사가 직접 칼로 실리콘을 그어 냈다⁠. 철망 틈으로 찬 바람이 올라왔고⁠, 바람에 아래층 소리가 실려 왔다⁠. 무전기 잡음⁠, 경찰의 기침⁠, 그리고 형사의 낮은 목소리⁠.

“⁠지하 2층⁠, 시작합니다⁠. 사장님은 그 자리에 계세요⁠. 그날 판 앉았던 자리⁠.⁠”

대답은 없었다⁠. 숨소리 하나가 철망을 타고 올라왔다⁠. 짧게 들이쉬고 오래 참는 숨이었다⁠.

피아노 전주가 흘러나왔다⁠. 옛 반주기처럼 높은 음이 쇳소리로 갈라졌다⁠. 새 기계에서 나오는 옛 기계의 소리였다⁠. 전주가 여덟 마디를 돌았다⁠.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마이크에 먼저 닿았다⁠.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

불 꺼진 창을 세다가⁠, 손끝이 먼저 얼어요⁠.

목소리가 1절을 짚어 나갔다⁠. 어머니의 입술이 가사를 따라 움직였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복도 벽에 기대선 택시 기사가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댔고⁠, 치킨집 사장은 앞치마 끈을 두 손으로 비틀었다⁠. 예전 알바는 헬멧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미루는 계산대에서 나와 내 등 뒤로 왔다⁠. 셀카봉은 계산대 위에 엎어 두고 왔다⁠.

후렴이 끝났다⁠. 철컥⁠.

택시 기사가 계단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셔터는 끝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다⁠. 나는 자정에 셔터 바닥 빗장에 굵은 철사를 감아 두었다⁠. 아무도 오늘 밤 셔터를 내리지 못했다⁠. 철컥은 노래 속에서만 났고⁠, 쇠의 떨림은 노래 속에서만 길게 끌었다⁠.

간주⁠. 팬이 느려지는 소리가 노래 밑에서 났다⁠. 틱⁠, 틱⁠, 딸깍⁠. 철망 아래에서 형사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7번 환풍⁠, 지금 켜져 있습니다⁠. 내가 아까 올렸어요⁠.⁠”

7번 방 환풍기는 실제로 돌고 있었다⁠. 이 빠진 날개가 한 바퀴마다 틀을 긁었다⁠. 노래 속 환풍기는 멈췄고 철망 안 환풍기는 돌았다⁠. 두 소리가 겹쳤다가 갈라졌다⁠.

2절⁠. 주머니 속 동전 하나⁠, 노래 한 곡만큼 남아서⁠. 반 키 내린 목소리였다⁠. 콜⁠. 다이⁠. 아⁠, 또 땡이야⁠. 히⁠, 히끅⁠. 치킨집 사장이 제 웃음소리가 노래 속에서 나오는 동안 눈을 감지 않았다⁠. 7번 방 문틀을 보며 끝까지 들었다⁠.

위에 취객이야⁠. 신경 꺼⁠. 판 깨지 마⁠.

지르릉⁠.

노래 속의 목소리가 아래로 내려가 철망을 통해 다시 올라왔다⁠. 네 해 전 겨울밤 지하 2층에서 위로 올라오던 말이⁠, 오늘은 7번 방에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철망 아래가 잠깐 조용했다⁠. 이어서 맹순갑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갈라지고 작았다⁠.

“⁠꺼⁠. 끄라고 해⁠.⁠”

“⁠기계 전원 빠져 있어요⁠. 아까부터요⁠.⁠” 형사의 목소리였다⁠. “⁠사장님⁠, 들리세요⁠?⁠”

맹순갑은 대답하지 않았다⁠.

퍽⁠. 쉬이익⁠. 우르릉⁠. 둘째 후렴⁠, 첫차가 오면⁠. 기침⁠. 숨표 자리에서 숨이 반쯤 막히고⁠, 목소리가 숨 없이 첫⁠, 하고 한 글자를 냈다⁠. 어머니가 소파 인조가죽을 손톱으로 움켜쥐었다⁠. 갈라진 가죽이 손톱 밑에서 바스락거렸다⁠.

*

브리지⁠. 피아노 한 대만 남았다⁠. 목소리가 노래를 멈추고 말했다⁠.

“⁠저기요⁠.⁠”

어머니가 눈을 떴다⁠.

“⁠거기 누구 있어요⁠? 아래에 누구 있죠⁠. 소리 다 들려요⁠.⁠” 기침을 삼키는 소리⁠. “⁠문이 안 열려요⁠. 문 좀 열어 주세요⁠.⁠”

똑⁠. 똑⁠. 똑⁠.

노크가 철망에서 울렸다⁠. 문 옆 바닥⁠, 환풍구 안쪽에서 바깥으로 두드리는 소리였다⁠. 세 번째가 앞의 두 번보다 약했다⁠. 모니터의 초록 네모가 꺼지지 않은 채 기다렸다⁠. 반주도 목소리도 없이⁠, 네 해 동안 매일 새벽 기다리던 자리였다⁠.

나는 7번 방 문을 밀었다⁠. 반쯤 열려 있던 문이 끝까지 열려 벽에 닿았다⁠. 문손잡이가 벽을 툭 쳤다⁠. 복도의 형광등 빛이 7번 방 바닥까지 들어가 철망 위에 닿았다⁠.

“⁠열려 있어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았다⁠. 다시 말했다⁠.

“⁠문 열려 있어요⁠. 셔터도요⁠.⁠”

어머니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문 옆 바닥에 무릎을 꿇고 철망 앞에 엎드렸다⁠. 손을 철망 위에 올렸다⁠. 맨손이었다⁠. 손가락 마디를 구부려 철망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세 번 다 같은 세기였다⁠.

“⁠엄마 여기 있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반찬 값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엄마 왔어⁠. 문 열렸어⁠. 2절 끝까지 불러⁠. 엄마 오늘은 안 잘게⁠.⁠”

*

철망 아래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수갑이 쇠 탁자 다리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이어서 무릎이 시멘트에 닿는 소리⁠. 맹순갑의 숨이 철망을 타고 올라왔다⁠. 숨이 몇 번 끊겼다⁠.

“⁠들었어⁠.⁠”

통로를 타고 올라온 목소리가 납작했다⁠.

“⁠들었어⁠. 그때도 다 들었어⁠. 문 열어 달라는 거⁠, 두드리는 거⁠.⁠” 맹순갑의 목소리가 떨렸다⁠. “⁠걔가 첫차까지 있는 애인 거 알았어⁠. 모니터에 7번 불 켜진 거 보고 셔터 내렸어⁠. 다섯 시 반에 열어 주면 된다고 생각했어⁠. 판이 컸어⁠. 그날 판이 제일 컸어⁠.⁠”

“⁠사장님⁠, 다시 말씀하세요⁠. 천천히⁠.⁠” 형사의 목소리였다⁠.

“⁠판이 컸어⁠.⁠”

맹순갑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세 번째에 목소리가 완전히 갈라졌다⁠. 철망 아래에서 울음소리가 올라왔다⁠. 국수를 퍼 주던 사람의 울음이었고⁠, 판 깨지 마⁠, 하던 사람의 울음이었다⁠. 어머니는 철망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듣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피아노가 다시 울렸다⁠.

브리지의 마지막 마디가 이어졌다⁠. 반주가 차오르고 현악 소리가 올라왔다⁠. 마지막 후렴이었다⁠. 네 해 전 겨울밤 휴대전화 속에서 반주 혼자 연주하고 지나간 후렴이었다⁠.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길게 말고 깊게⁠.

숨이 끝까지 들어갔다⁠. 막히지 않았다⁠.

첫차가 오면 나는 갈게요⁠.

목소리가 반 키를 내리지 않았다⁠. 원래 키였다⁠. 쉬지도 갈라지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철망 앞에 엎드린 채 따라 불렀다⁠. 음이 맞지 않았다⁠. 반 박자씩 늦었고⁠, 높은 데서는 소리가 뒤집혔다⁠. 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미루가 내 등 뒤에서 울면서 콧노래를 했다⁠. 택시 기사가 모자를 가슴에 댄 채 낮게 웅얼거렸다⁠. 트로트 꺾기가 섞였다⁠. 치킨집 사장은 입만 벌렸고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예전 알바는 헬멧 옆에 쪼그려 앉아 바닥을 보았다⁠.

뒤돌아보지 않을게요⁠.

마지막 줄이었다⁠. 목소리가 마지막 음을 길게 끌었다⁠. 철컥은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음이 다 끌리고 나서 숨이 한 번⁠, 내쉬는 숨이 마이크에 닿았다⁠. 끝 반주가 네 마디 돌고 피아노 한 음으로 닫혔다⁠.

*

빰빠라밤⁠.

7번 방 화면에 팡파르가 터졌다⁠. 숫자가 굴러가다 멈췄다⁠.

「⁠78점⁠」

“⁠축하합니다⁠. 칠십팔 점입니다⁠. 다음엔 더 잘하세요⁠.⁠”

어머니가 철망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화면의 숫자를 보았다⁠. 어머니의 어깨가 흔들렸다⁠. 우는 줄 알았는데 웃음이었다⁠. 웃음소리가 7번 방 천장에 부딪혔다⁠.

“⁠또 칠십팔 점이네⁠. 점수 기계는 안 변해⁠.⁠”

미루가 울다가 웃었다⁠. 택시 기사가 모자로 얼굴을 덮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남은 곡이 없습니다⁠」

기계 안내 음성이 한 번 말했다⁠. 남은 곡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없었다⁠. 화면이 꺼졌다⁠. 계산대 모니터의 일곱 번째 네모가 회색으로 돌아갔다⁠. 철망에서 올라오던 찬 바람이 멎었다⁠. 환풍기만 이 빠진 날개로 틀을 긁으며 돌았다⁠. 틱⁠. 틱⁠.

나는 귀를 열어 두었다⁠. 음료 냉장고 모터가 웅웅거렸다⁠. 천장 형광등 하나가 지지거렸다⁠. 동전 교환기가 혼자 딸깍했다⁠. 세 시 육 분⁠, 세 시 십 분⁠, 세 시 반⁠. 노크는 없었다⁠. 철망 너머에서 아무도 두드리지 않았다⁠. 가게의 소리만 남았다⁠.

*

네 시⁠, 형사가 맹순갑을 데리고 창고 문으로 올라왔다⁠. 맹순갑은 누빔 조끼에 수갑을 찼다⁠. 조끼 주머니가 비어 있어서 걸을 때 방울이 울리지 않았다⁠. 형사가 계산대 앞을 지나며 내게 말했다⁠. 구속영장 청구합니다⁠. 오늘 진술 다 녹화했어요⁠. 맹순갑의 무릎에 지하 2층 바닥의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맹순갑이 7번 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꺼진 화면을 보고 있었다⁠. 맹순갑이 열린 문간에서 고개를 숙였다⁠.

“⁠어머님⁠…⁠…⁠”

어머니가 맹순갑을 돌아보았다⁠. 오래 보았다⁠.

“⁠우리 애가 노래를 끝까지 불렀어요⁠.⁠”

어머니는 한마디만 하고 다시 꺼진 화면을 보았다⁠. 맹순갑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경찰이 맹순갑의 팔을 잡았다⁠. 맹순갑이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꼭대기 셔터 아래를 지나며 맹순갑은 셔터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빗장에 감긴 철사가 가로등 불빛에 반짝였다⁠. 골목에 서 있던 고시원 세입자들이 맹순갑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경찰차 문 닫히는 소리가 골목에 한 번 울렸다⁠.

열두 시가 되면 이 가게는 봉인된다⁠. 미루와 나는 일자리가 없어지고⁠, 나는 잘 방이 없고⁠, 택시 기사는 새벽 두 시에 갈 데가 없어진다⁠. 치킨집 사장은 다음 주에 경찰서에 다시 가야 하고⁠, 고시원 세입자들은 건물이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205호 남자는 골목에 서서 경찰차가 사라진 골목 끝을 오래 보았다⁠. 김치통을 안고 있지 않은 205호 남자의 두 손이 패딩 주머니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다섯 시 이십 분⁠, 신촌 버스 정류장은 비어 있었다⁠. 전광판에 첫차가 육 분 뒤에 온다고 떠 있었다⁠. 어머니는 인천까지 첫차로 가서 갈아타겠다고 했다⁠. 택시 기사가 태워 주겠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걔가 타던 차를 타 보겠다고 했다⁠.

택시 기사의 택시는 정류장 뒤에 비상등을 켜고 서 있었다⁠. 뒷자리에서 미루가 셀카봉을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 잠들기 전에 미루가 말했다⁠. 언니⁠, 저희 집 와요⁠. 부적 많아요⁠. 치킨집은 셔터를 반쯤 올리고 불을 켰다⁠. 다섯 시에 닭을 튀기는 집은 신촌에 하나뿐이었다⁠.

어머니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외투 주머니에서 반찬통을 꺼냈다⁠. 해 그림 스티커를 엄지로 문질렀다⁠. 통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았다⁠. 정류장 지붕에서 녹은 서리가 떨어졌다⁠. 똑⁠. 한참 있다가 또 똑⁠.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물이었다⁠.

첫차가 들어왔다⁠. 버스 문이 쉭 열렸다⁠. 어머니가 일어나 버스에 올랐다⁠. 교통카드 찍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움직이기 직전⁠, 어머니가 창에 얼굴을 대고 나를 돌아보았다⁠. 손을 흔들었다⁠.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노래를 끝까지 들은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손을 들었다⁠. 버스가 떠났다⁠. 엔진 소리가 연세로 끝에서 작아지다가 사라졌다⁠.

정류장에 내 숨소리만 남았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길게 말고 깊게⁠. 첫차가⁠, 하는 말 앞에서 새날이 쉬던 숨이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작가를 구독하면 다음 화가 올라올 때 알려 드립니다.

12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끝까지 ·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