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53자)
바닥 널
관 속의 천하제일고수가 자꾸 배고프다고 한다 · 강묵현
“널이 마르는 소리요.”
막손은 저잣거리에 대고 말했다. 목이 쉬어 있어서 소리가 갈라졌다.
“장마 끝에 해가 나면 오동나무가 마르면서 우오. 상두꾼들은 다 아는 소리요. 관이 운다고들 하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기무광은 웃지도 않았다. 관 뚜껑을 한 번 내려다보고 초아를 한 번 본 다음, 막손에게 고개를 숙였다.
“상주가 들었으면 됐네.”
기무광은 흰 옷들을 데리고 한양 나루 계단을 내려갔다. 구경꾼들이 길을 내주었다.
초아는 관 뚜껑에 손을 얹은 그대로 서 있었다. 울지 않았다. 따지지도 않았다. 막손은 이 조용한 얼굴이 무한 저잣거리 서른 명의 빚쟁이보다 무서웠다. 한참 뒤에 손을 거두고 상주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이날 밤 양주로 내려가는 배에 오를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양주까지 내려가는 배는 큰 짐배였다. 갑판 아래 선실에 소금 섬과 비단 궤짝이 실렸고, 관은 이 사이 나무 받침 둘 위에 가로로 놓였다. 받침 높이가 무릎께였다. 관 밑으로 사람 하나가 엎드려 기어 들어갈 만한 틈이 있었다.
사흘째 밤이었다.
초아는 선실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숨을 셌다. 소금 섬 너머에서 떡보가 코를 골았고, 맹구는 이를 갈았다. 막손은 갑판 위 고물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기무광은 무한에서 내리고 이 배에 오르지 않았다. 사흘 동안 이 빈자리가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초아는 몸을 굴려 관 밑으로 들어갔다.
삼협에 들기 전 아침, 떡보가 관을 받친다며 관 밑으로 기어 들어간 것을 초아는 보았다. 기무광이 관 밑판을 손가락으로 쓸며 여러 장이라고 한 말도 들었다. 이날은 둘 다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다.
손바닥으로 밑판을 더듬었다. 오동나무 결이 매끄러웠다. 이음매가 셋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음매는 손톱도 안 들어갔다. 세 번째 이음매에서 손끝이 걸렸다. 초아는 숨을 멈추고 이 널을 위로 밀었다.
널이 소리 없이 들렸다.
안에서 따뜻한 공기가 얼굴로 내려왔다. 시신 냄새가 아니었다. 돼지고기와 파와 기름 냄새, 그리고 오래 씻지 못한 늙은 사람의 살 냄새였다. 이 냄새를 초아는 알았다. 어릴 때 할아버지 무릎에 앉으면 맡던 냄새였다.
어둠 속에서 손 하나가 내려와 초아의 손목을 잡았다. 마른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가 대추씨처럼 굵었다.
“초아냐.”
*
노인은 관 밑으로 흘러내리듯 빠져나와 선실 바닥에 앉았다. 수의는 무릎이 해졌고 앞섶에 기름 얼룩이 겹겹이 앉아 있었다. 손에 만두 할멈의 기름종이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초아는 관 밑에서 기어 나와 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노인의 뺨을 쳤다.
소리가 선실 안을 울렸다. 소금 섬 너머의 코골이가 멎었다.
노인은 피하지 않았다. 천하제일이라는 손이 무릎 위에 가만히 있었다.
“열이틀이요.”
초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열이틀을 울었어요. 중경 나루에서부터요. 끼니마다 상식 만두를 올렸어요. 할아버지 좋아하는 고기 만두로요. 뚜껑 위에서 식는 거 보면서요.”
“다 먹었다.”
노인이 말했다.
“뚜껑 위에 놓인 채로는 못 먹었다. 네가 올린 건 식으면 떡보가 내려다 데워서 밑으로 넣어 줬다. 중경 것은 생강이 많았다.”
초아가 손을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내리치지 못했다. 손이 공중에서 떨리다가 노인의 앞섶을 움켜쥐었다.
“왜요.”
“…….”
“왜 죽은 척을 했어요. 왜 나한테까지요.”
노인은 손녀의 손을 앞섶에서 떼지 않았다.
“그놈 아들이 나를 찾으면, 내 다음엔 너다. 원수는 핏줄을 타고 내려간다. 요즘 강호가 다 그렇다. 내가 죽었다고 다들 믿고, 내 손녀가 진짜로 울어야, 그놈들이 너를 원수의 손녀가 아니라 원수 잃은 손녀로 본다.”
“그래서 날 울렸어요?”
“네가 울어야 믿으니까.”
초아는 노인의 앞섶을 놓았다. 그리고 물었다. 무한 저잣거리에서부터 사흘을 참은 물음이었다.
“흰 깃발 아래서, 칼 내려놓은 사람을 벴어요?”
“벴다.”
노인은 기름종이를 펴서 무릎 위에 놓았다. 만두 할멈의 만두가 반쯤 남아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말했다.
“네 아비와 어미는 역병으로 죽은 게 아니다. 너한테는 그렇게 말했지. 정사대전 세 번째 해 겨울, 혈수문 선대 문주가 형주 강가 마을 하나를 불태웠다. 그 마을이 정파 편에 섰다고. 네 아비 어미가 그 마을에서 약방을 했다. 둘이 같이 불 속에 있었다.”
초아의 입술이 하얗게 말랐다.
“강화 날, 그놈이 흰 깃발 아래 앉으려고 칼을 풀었다. 깃발 아래 앉으면 정사대전에서 한 짓이 다 덮인다. 그게 강화다. 나는 그놈이 앉는 걸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앉기 전에 벴다. 칼을 내려놓은 놈을. 깃발 아래서.”
“기무광은 그걸 알아요?”
“알 거다. 제 아비가 무엇을 태웠는지. 그래도 제 아비다.”
노인은 만두 반쪽을 손녀에게 내밀었다. 초아는 받지 않았다. 노인은 이것을 도로 기름종이에 쌌다.
선실 계단이 삐걱였다. 막손이 내려와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 몰랐다. 초아가 고개를 돌려 막손을 보았다.
“반만 말했죠.”
“반만 말했소.”
“나머지 반은 이 할아버지가 다 말했어요. 그러니까 그쪽이 나한테 진 빚은 이제 없어요.”
초아는 일어서서 상복 무릎을 털었다.
“대신 새로 지세요. 고향까지 거짓말 하나도 없이 가는 걸로요.”
“지겠소.”
“그리고 뚜껑은 제가 정해요. 언제 열지, 열지 말지. 할아버지도 그쪽도 정하지 마세요. 저는 상주예요.”
노인이 입을 열려다가 닫았다. 그리고 바닥 널 쪽으로 기어가 관 안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다 말고 아래를 보았다.
“초아야, 내일 아침 만두는 두 개만 더 올려라. 떡보 것은 쑥떡이라 질기다.”
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 널이 닫혔다. 관 옆 제자리에 누워 등을 돌렸다. 막손은 계단에 앉아 이 등이 날이 샐 때까지 한 번도 들썩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
이튿날 아침부터 관 속 끼니는 초아가 정했다.
“만두 다섯 개에 나물 한 접시요.”
초아는 선실에서 상식 그릇을 차리며 관에 대고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 상식 올릴 때와 똑같았다. 옹이구멍에서 목소리가 났다.
“열.”
“짠 거 많이 드시면 밤에 기침하세요. 관 속에서 기침하면 다 들켜요.”
“여덟.”
“다섯이요. 나물 다 드시면 여섯.”
옹이구멍 안이 조용해졌다. 천하제일이 흥정에서 진 소리였다.
떡보는 소금 섬 뒤에서 이것을 듣고 두 손을 모았다. 사흘 내내 상주 앞에서 관 밑으로 만두를 넣느라 등에 식은땀이 마를 날이 없었다. 초아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
“아씨, 아씨 이제 아시는 거죠? 다 아시는 거죠? 저 이제 관 밑에 안 기어 들어가도 되는 거죠?”
“들어가세요. 상주가 관 밑을 기어 다니는 거 누가 보면 어떡해요.”
떡보가 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실 계단 위에서 운향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여 아랫단에 숨었던 혈수문 살수까지는 알았다. 관 속까지는 몰랐다.
“너 지금 관한테 흥정했냐?”
“상식이에요.”
“상식을 흥정해?”
“우리 집안은 그래요.”
운향은 초아를 한참 보다가 막손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관 무게, 무한에서부터 아침마다 달라. 내 어깨가 알아.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또 있지?”
막손은 사흘 전 밤의 약조를 떠올렸다. 고향까지 거짓말 하나 없이. 운향한테 한 약조는 아니었다.
“있소. 양주에서 말하겠소.”
“양주에서 안 말하면 품삯 세 배야.”
운향은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막손은 양주에서 갚을 것을 하나 더 셌다.
*
양주 동쪽, 장강에서 대운하로 갈라져 들어가는 운하 어귀에 배가 닿은 것은 닷새째 아침이었다. 운하 물은 장강보다 좁고 느렸고, 버드나무 그늘이 물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북쪽으로 산동까지 이어지는 물길이었다.
운하 어귀 둑 위에 깃발이 여럿 서 있었다. 혈수문의 흰 깃발 옆에, 막손이 처음 보는 깃발 넷이 바람에 펄럭였다. 사파 문파들의 깃발이었다. 정사대전에서 염백수에게 사람을 잃은 문파들이라고, 운향이 깃발 무늬를 하나씩 짚어 가며 말해 주었다. 둑 위에 백 명이 넘게 서 있었다.
길목마다 묻겠다던 사람이, 이제는 혼자 묻지 않았다.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둑 위로 올라섰다. 열둘이었다. 상두꾼 열하나에 운향이 끼어 메는 상여였다. 막손이 앞채 왼쪽에서 요령을 흔들었다.
기무광이 둑 한가운데에서 상여 앞을 막았다. 그런데 이번에 막손을 보지 않았다. 상여 채를 멘 상두꾼들을 하나씩 보았다.
“성도 상여계 사람들, 듣게.”
기무광의 목소리는 낮았는데 둑 끝까지 닿았다.
“상여계에는 법이 있다고 들었네. 산 사람은 안 멘다. 자네들이 성도에서부터 이천 리를 메고 온 관에는 산 사람이 들었네. 염백수는 죽지 않았네. 내 사람이 의창에서 그분이 만두 먹는 것을 보았네.”
상두꾼들의 어깨가 굳었다. 막손은 어깨에 얹힌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뒤채 쪽이 흔들렸다.
운향이 채 밑에서 막손을 돌아보았다.
“이거였어? 양주에서 말하겠다던 게?”
막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차례를 기무광이 먼저 가져갔다.
“자네들은 속은 것이네. 우두머리가 오백 냥을 받고 자네들한테 산 사람을 메게 했네. 산 사람을 멘 상여계는 강호 어느 장례도 다시 못 메지. 성도 상여계는 이 상여가 끝나는 날 같이 끝나네.”
기무광이 손을 들었다. 흰 옷 하나가 쟁반을 들고 나왔다. 쟁반 위에 은자 열 냥짜리 덩이가 열한 개 놓여 있었다.
“여기서 채를 내려놓는 사람에게는 열 냥씩 주지. 성도로 돌아갈 뱃삯과 석 달 밥값이네. 자네들 잘못이 아니니 혈수문이 갚아 주지.”
뒤채의 늙은 상두꾼이 막손을 불렀다. 무한 저잣거리에서 고개를 젓던 사람이었다. 스물다섯 해를 멘 어깨가 상여 채 아래서 떨렸다.
“형님. 참말이오?”
막손은 요령을 쥔 손을 내렸다. 고향까지 거짓말 하나 없이 가겠다고 사흘 전 밤에 약조했다. 상두꾼들에게 한 약조는 아니었다. 그래도 같은 입이었다.
“참말이다.”
늙은 상두꾼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상여 채에서 어깨를 뺐다.
뒤채 오른쪽이 한 치 내려앉았다. 막손의 어깨로 이 한 치가 넘어왔다. 늙은 상두꾼은 채를 땅에 내려놓고 쟁반 쪽으로 걸어갔다. 이 옆의 상두꾼이 막손을 한 번 보고, 고개를 숙이고, 채에서 어깨를 뺐다. 다시 한 치가 내려앉았다.
세 번째가 뺐다. 네 번째가 뺐다.
상여가 뒤쪽으로 기울었다. 관을 묶은 끈이 팽팽해졌다. 관 속에서 무언가가 아래쪽으로 미끄러지는 무게가 막손의 어깨로 올라왔다. 노인이 기운 관 안에서 몸을 버티고 있었다.
막손은 앞채를 놓지 않았다. 발을 둑 흙에 박고 무릎을 굽혔다. 어깨 하나로 받는 무게가 백 근을 넘어가고 있었다. 무릎이 떨리기 시작했다.
“형님!”
떡보가 울면서 채를 붙잡고 있었다. 맹구가 이를 악물었다. 운향이 욕을 했다. 다섯 번째 상두꾼의 어깨가 채 밑에서 빠지려 하고 있었다.
기무광은 둑 위에서 이것을 지켜보았다. 쟁반 위의 은자가 하나씩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