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33자)

무한의 빚쟁이들

관 속의 천하제일고수가 자꾸 배고프다고 한다 · 강묵현

이날 밤 형주 빈소에서 초아는 관 앞에 앉지 않았다⁠. 관과 막손 사이에 앉았다⁠.

“⁠노선배라고 했어요⁠. 그건 산 사람한테 하는 말이에요⁠.⁠”

막손은 향을 갈았다⁠. 손이 바빠야 입이 덜 흔들렸다⁠.

“⁠저 혈수문 살수가 의창에서 할아버님을 봤다고 했을 거요⁠. 만두 골목에서⁠.⁠”

초아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 말을 믿으면 상주는 오늘 밤 일곱 매듭을 풀겠지⁠. 길 위에서 상주가 제 손으로 열면 강호 도리로도 문주를 탓할 사람이 없소⁠. 문주는 손 하나 안 대고 원하는 것을 다 보오⁠. 그래서 상주 귀에 들리게 두드린 거요⁠.⁠”

“⁠그러니까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상주가 길에서 열게 하려는 말이라는 거요⁠.⁠”

초아가 막손을 오래 보았다⁠. 막손은 이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반만 말했어요⁠.⁠”

“⁠…⁠…⁠.⁠”

“⁠아까 다 말해 준다고 했잖아요⁠. 반 말고 다요⁠.⁠”

막손은 대답하지 못했다⁠. 관 안에서도 아무 소리가 없었다⁠. 초아는 일어나서 관 머리맡의 상식 그릇을 갈았다⁠. 만두를 새로 올리면서 이번에는 막손의 몫을 덜지 않았다⁠.

“⁠무한까지만 참을게요⁠. 무한에서도 반이면⁠, 그때는 제가 풀어요⁠.⁠”

초아는 일곱 매듭 가운데 첫 번째 매듭에 손가락을 걸었다가 놓았다⁠.

상두꾼들이 잠들고 나서 막손은 관 옆에 누웠다⁠. 옹이구멍이 귀 옆이었다⁠.

“⁠달아날 거면 오늘 밤이오⁠. 기무광이 다 알았소⁠.⁠”

“⁠달아나면 그 애가 내 원수를 물려받는다⁠. 강호는 염백수가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할 거고⁠, 그 애는 도망친 놈의 손녀가 된다⁠.⁠”

“⁠그럼 산동까지 가오⁠?⁠”

“⁠가야지⁠. 묻혀야지⁠.⁠”

노인의 목소리가 오래 끊겼다가 다시 났다⁠.

“⁠그놈이 산동에서 보자고 했다⁠. 만두를 산다고⁠. 그놈 아비도 그런 말버릇이 있었다⁠.⁠”

*

무한은 장강과 한수가 만나는 자리에 세 도시가 마주 앉은 곳이었다⁠. 배가 한양 나루에 닿기 전부터 막손은 강가 찻집 기둥마다 붙은 흰 종이를 보았다⁠. 나루에 내리자 이 종이가 저잣거리 기둥에도⁠, 만두집 문짝에도⁠, 뱃사공 오두막 벽에도 붙어 있었다⁠.

천하제일 염백수의 상여가 한양 나루를 지난다⁠. 막손에게 빚과 원한이 있는 자는 길을 막으라⁠. 혈수문⁠.

떡보는 글을 몰라서 맹구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맹구는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운향이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떡보는 다 듣고 나서 종이 한 장을 떼어 품에 넣었다⁠. 떡 쌀 때 쓰겠다고 했다⁠.

종이 아래에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상여가 나루 계단을 올라서자 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줄은 나루 계단 위에서 시작해 저잣거리를 지나 한양 성문 쪽 모퉁이까지 이어졌다⁠. 막손은 세다가 서른에서 그만두었다⁠.

맨 앞은 등이 굽은 할멈이었다⁠. 앞치마에 밀가루가 엉겨 있었다⁠.

“⁠마흔 해 전이오⁠. 그 영감이 내 만두집에서 석 달을 먹고 외상을 달았소⁠. 만두 삼백 개⁠. 그때 그 영감이 천하제일인 줄 알았으면 외상을 안 줬지⁠.⁠”

이후는 칼을 찬 젊은 검객이었다⁠. 정파 어느 검문의 제자라고 했다⁠. 형이 정사대전 때 염백수의 손에 칼을 잃고 이후로 검을 못 잡다가 목을 맸다고 했다⁠.

이후는 아이를 업은 여자였다⁠. 다음은 표물을 잃었다는 표국 주인이었다⁠. 다음은 정사대전 때 염백수가 질 거라는 편에 집을 걸었다가 날린 노름꾼이었다⁠. 다음은⁠, 다음은⁠.

초아는 상주 자리에 서서 이 줄을 끝까지 보았다⁠. 사람 하나가 입을 열 때마다 초아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초아는 상주 자리를 떠나 아이를 업은 여자 앞으로 갔다⁠. 막손이 말리기 전이었다⁠.

“⁠그쪽 남편은⁠, 왜요⁠?⁠”

여자가 초아의 상복을 위아래로 보았다⁠. 손녀라는 것을 알아보는 얼굴이었다⁠.

“⁠사파 사람이었어요⁠. 혈수문은 아니고 다른 데요⁠. 칼 들고 나갔다가 안 돌아왔어요⁠. 염백수한테 죽었다고들 했어요⁠.⁠”

“⁠나쁜 짓을 하러 간 거였어요⁠?⁠”

“⁠몰라요⁠.⁠”

여자가 아이를 추슬러 업었다⁠. 아이가 초아의 상복 고름을 잡아당겼다⁠.

“⁠나쁜 사람이었는지 나는 몰라요⁠. 애 아비였어요⁠. 그건 알아요⁠.⁠”

초아는 아이 손에서 고름을 빼지 않았다⁠. 아이가 놓을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줄 가운데쯤에서 소란이 났다⁠. 형을 잃었다는 젊은 검객이 줄을 벗어나 상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칼집에서 칼이 반쯤 나와 있었다⁠.

“⁠돈은 필요 없소⁠. 형은 시신도 못 찾았소⁠. 나는 원수 시신이라도 봐야겠소⁠.⁠”

검객이 칼끝으로 관 뚜껑의 일곱 매듭을 겨누었다⁠. 끈만 끊으면 뚜껑이 들리는 자리였다⁠.

맹구가 상여 채를 들고 이 앞을 막았다⁠. 운향이 다른 채를 들고 옆을 막았다⁠. 떡보는 관 뒤로 숨었다가⁠, 숨은 자리가 관 바로 옆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기어 나왔다⁠. 막손은 채를 들지 않았다⁠. 검객 앞에 맨손으로 섰다⁠.

“⁠관 뚜껑은 상주만 여오⁠. 검문 제자시면 아실 거요⁠. 그걸 깨면 그쪽 검문은 형님 장례에도 조문을 못 받소⁠.⁠”

검객의 칼끝이 떨렸다⁠.

“⁠그럼 내 형은 뭘로 보내오⁠?⁠”

막손은 상여 둘레에 걸린 흰 만장 열한 폭을 올려다보았다⁠. 성도에서 열두 폭을 걸고 나왔는데 고개에서 하나가 찢어졌다⁠.

“⁠만장 한 폭을 베어 가시오⁠. 망자를 보내는 깃발이오⁠. 그걸 형님 무덤에 꽂으면⁠, 이 상여가 형님도 같이 보낸 거요⁠.⁠”

검객은 한참 칼을 쥐고 서 있다가 칼끝을 만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줄 제자리로 돌아갔다⁠. 차례가 오면 베겠다고 했다⁠.

운향이 막손의 귀에 대고 말했다⁠.

“⁠내 이백오십 냥은 이 줄 어디쯤이야⁠?⁠”

“⁠맨 앞이오⁠. 두목 빚이 제일 먼저 생겼으니⁠.⁠”

“⁠저 만두 할멈이 마흔 해 먼저야⁠.⁠”

길막이는 한 사람에 하나씩 갚아야 상여가 지나갔다⁠. 노잣돈은 형주에서부터 동전 열네 닢 그대로였다⁠.

막손은 상여를 저잣거리 한복판에 내리게 했다⁠. 해가 아직 높았다⁠. 해 지기 전에 상여를 땅에 내리는 것은 상여계 법에 없는 일이었다⁠. 상두꾼들이 막손을 보았다⁠.

“⁠길막이를 다 갚기 전에는 상여가 못 가오⁠. 못 가는 상여는 내려놓는 수밖에 없소⁠.⁠”

막손은 상여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선 채로 요령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한양 저잣거리의 장꾼과 짐꾼과 구경꾼이 이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성도 상여계 길막손이오⁠! 망자 염백수의 빚을 오늘 이 자리에서 곡으로 갚겠소⁠!⁠”

웅성거림이 저잣거리를 돌았다⁠. 막손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곡을 시작했다⁠.

막손은 염백수를 슬퍼하지 않았다⁠. 줄 선 사람들을 하나씩 소리에 실었다⁠. 외상 만두 삼백 개를 마흔 해 동안 기다린 할멈의 손⁠, 칼을 잃은 형을 보다가 칼을 찬 동생⁠, 업힌 아이의 아비⁠, 잃은 표물에 딸린 표사들의 목숨⁠, 노름에 날린 집의 문짝⁠. 망자가 진 빚을 망자는 못 갚으니 남은 사람이 갚는다⁠. 갚을 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늘 장강을 건너간다⁠. 막손은 이 말을 길게 끌어 저잣거리 끝까지 밀어 보냈다⁠.

처음 운 것은 줄에 선 사람들이었다⁠. 만두 할멈이 앞치마로 눈을 눌렀다⁠. 업힌 아이가 울었고⁠, 아이를 업은 여자가 따라 울었다⁠. 다음은 구경꾼이었다⁠. 천하제일의 장례를 보러 나왔다가 빚쟁이 장례를 보게 된 사람들이었다⁠. 동전이 상여 줄로 날아왔다⁠. 쪼갠 은이 날아왔다⁠. 한양 나루 객주 하나가 은자 열 냥짜리 덩이를 상여 머리에 꽂았다⁠. 비단 장수가 꽂았고⁠, 소금 장수가 꽂았다⁠. 상여 줄이 노잣돈 무게로 처지기 시작했다⁠.

막손의 목이 쉬어 갈 무렵⁠, 떡보가 상여 줄에서 돈을 걷어 바구니에 담았다⁠. 바구니가 세 번 찼다⁠.

막손은 곡을 멈추고 줄 맨 앞부터 갚기 시작했다⁠.

운향이 먼저 이백오십 냥을 받았다⁠. 은자를 손바닥에 굴려 무게를 재고 품에 넣었다⁠. 그리고 상여 채를 도로 어깨에 걸쳤다⁠.

“⁠다 받았는데 왜 메오⁠?⁠”

“⁠품삯이 아직 남았잖아⁠. 그리고 저 관 끝까지 가는 거 봐야겠어⁠. 내 돈 들어간 관인데⁠.⁠”

뱃주인이 수리비 삼십 냥을 받아 갔다⁠. 표국 주인과 노름꾼과 업힌 아이의 어미가 차례로 노잣돈을 받았다⁠. 젊은 검객은 차례가 오자 돈 대신 칼을 뽑아 만장 한 폭을 베었다⁠. 이것을 둘둘 말아 등에 지고⁠, 상여에 대고 한 번 고개를 숙이고 갔다⁠.

만두 할멈은 동전 꿰미를 밀어냈다⁠.

“⁠외상은 만두로 갚아야지⁠.⁠”

할멈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기름종이에 싼 만두 하나를 꺼냈다⁠.

“⁠관에 넣어 가시오⁠. 저승에서라도 먹고 맛이 어떤지 말해 보라고⁠. 마흔 해 전엔 짜다고 투덜댔소⁠.⁠”

막손은 만두를 받아 관 옆구리 옹이구멍 앞에 놓았다⁠. 구멍 앞에 놓은 만두 냄새가 관 안으로 들어갔다⁠. 관 안에서 아주 작게⁠, 이번엔 안 짜다는 소리가 났다⁠. 할멈은 귀가 어두웠다⁠. 떡보만 이 소리를 듣고 사레가 들렸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까지 줄이 줄었다⁠. 바구니 셋의 노잣돈이 바구니 하나로 줄었다⁠.

막손은 남은 바구니를 내려다보며 셌다⁠. 운향의 이백오십 냥과 뱃주인의 삼십 냥이 끝났다⁠. 남은 것은 하관 날의 첫자리 하나였다⁠. 대신 새것이 들어섰다⁠. 무한에서 양주까지 내려갈 뱃삯이 바구니 하나로 빠듯했고⁠, 해 지기 전에 상여를 땅에 내린 일이 있었다⁠. 뒤채를 메는 늙은 상두꾼 하나가 상여를 다시 들 때 막손을 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상여계 법을 우두머리가 먼저 깼다는 얼굴이었다⁠. 막손은 이 얼굴도 빚으로 셌다⁠.

*

줄 맨 끝에 기무광이 서 있었다⁠.

기무광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막손은 곡을 하는 동안에도 이것을 알았다⁠. 줄이 줄어드는 내내 한 번도 끼어들지 않고 차례를 기다렸다⁠.

기무광이 상여 앞에 섰다⁠.

“⁠혈수문 기무광⁠, 길을 막네⁠.⁠”

“⁠문주 빚은 성도 동문에서 이미 날을 받아 두셨소⁠. 태산 아래 하관하는 날이오⁠.⁠”

“⁠그건 그대로네⁠. 오늘 대는 빚은 다른 것이네⁠.⁠”

기무광은 막손을 지나쳐 초아 앞에 섰다⁠. 상주 자리였다⁠.

“⁠상주에게 말할 빚이네⁠. 내 아비가 어떻게 죽었는지⁠, 상주가 알아야 할 빚⁠.⁠”

막손이 둘 사이로 한 걸음 들어갔다⁠. 기무광은 막손을 보지 않고 초아만 보았다⁠.

“⁠정사대전이 끝나던 해 겨울이었네⁠. 정파와 사파가 강화를 하겠다고 장강 가에 흰 깃발 하나를 세웠지⁠. 그 깃발 아래서는 누구도 칼을 뽑지 않기로 했네⁠. 양쪽 문주와 장문인들이 다 칼을 내려놓고 그 아래 앉았네⁠. 내 아비도 칼을 풀어 땅에 놓았지⁠.⁠”

저잣거리가 조용해졌다⁠. 줄에서 갚음을 받고 돌아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염 노선배가 그 자리에 왔네⁠. 어느 쪽 사람도 아니었으니 깃발 아래 앉을 자리는 없었지⁠. 그분은 앉지 않고 걸어 들어와서⁠, 칼을 내려놓은 내 아비의 목을 베었네⁠. 흰 깃발 아래서⁠.⁠”

초아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날 강화는 깨지지 않았네⁠. 아무도 칼을 뽑지 않았으니까⁠. 다들 그분이 무서워서 앉은 채로 보기만 했네⁠.⁠”

기무광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깍듯한 절이었다⁠.

“⁠이 빚은 갚으라는 빚이 아니네⁠. 상주가 알라는 빚이지⁠. 이제 갚았네⁠.⁠”

초아가 관을 돌아보았다⁠. 일곱 매듭과 붉은 손바닥 자국⁠, 이 옆구리 옹이구멍 앞에 놓인 만두 할멈의 만두가 있었다⁠. 관 앞으로 걸어가 뚜껑에 손을 얹었다⁠. 막손은 이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할아버지⁠.⁠”

저잣거리의 모든 귀가 초아를 향했다⁠.

“⁠정말이에요⁠?⁠”

관 안에서 소리가 났다⁠.

똑⁠, 똑⁠.

손가락 마디로 안쪽 널을 두 번 두드리는 소리였다⁠. 기무광이 관 뚜껑을 두드리던 바로 이 박자였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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