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07자)

죽은 사람의 젓가락

관 속의 천하제일고수가 자꾸 배고프다고 한다 · 강묵현

청면이 먼저 움직였다⁠. 등불이 한 번 흔들렸고⁠, 이 사이에 푸른 얼굴이 골목 절반을 건너와 있었다⁠. 소매에서 나온 짧은 칼 두 자루가 노인의 목과 옆구리를 한꺼번에 노렸다⁠.

노인은 찜통을 내려놓지 않았다⁠.

막손이 본 것은 젓가락이었다⁠. 노인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대나무 젓가락 한 벌이 칼날 두 개 사이로 들어갔다⁠. 쇠와 대나무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라⁠, 대나무가 쇠를 미끄러뜨리는 소리가 났다⁠. 첫 칼이 노인의 귓바퀴 옆을 스쳐 벽에 박혔다⁠. 두 번째 칼은 젓가락 사이에 물렸다⁠. 노인이 손목을 한 번 비틀자 칼이 청면의 손에서 빠져 골목 바닥에 떨어졌다⁠.

노인은 그동안 입에 문 만두를 씹고 있었다⁠.

청면이 물러나며 발을 차올렸다⁠. 찜통을 노린 발이었다⁠. 노인은 찜통 뚜껑을 왼손으로 집어 이 발바닥에 대 주었다⁠. 대나무 뚜껑이 쪼개지면서 청면의 발이 허공에 멈췄다⁠. 찜통 안의 만두는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김만 옆으로 쏠렸다⁠.

막손은 상여 채를 끌어안은 채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 끼어들 틈이 없었다⁠. 상여 채를 휘두르는 대신 바닥을 한 번 쾅 찍었다⁠. 청면의 눈이 막손 쪽으로 반 박자 흘렀다⁠.

이 반 박자에 노인의 젓가락이 청면의 목 아래 오목한 자리와 겨드랑이 아래 두 곳을 차례로 찍었다⁠. 청면의 몸이 선 채로 굳었다⁠. 팔은 칼을 쥐려다 만 모양 그대로였고⁠, 입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벌어진 그대로였다⁠.

노인은 그제야 만두를 삼켰다⁠.

“⁠혈을 막았다⁠. 반나절은 말도 못 하고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인다⁠.⁠”

노인은 젓가락 끝으로 청면의 얼굴에 바른 푸른 칠을 긁었다⁠. 칠 아래에서 왼쪽 눈썹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흉이 드러났다⁠. 노인이 이 흉을 오래 보았다⁠.

“⁠너구나⁠. 삼 년 전 형주 강가에서⁠. 혈수문이 정파 마을 하나를 덮쳤을 때 맨 앞에서 칼 들고 오던 애송이⁠.⁠”

청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칼을 부러뜨리고 돌려보냈더니⁠, 얼굴에 칠을 하고 대장이 되어 왔구나⁠.⁠”

막손이 다가와 청면과 노인 사이에 섰다⁠.

“⁠영감⁠, 이 사람은 영감 얼굴을 봤소⁠.⁠”

“⁠봤지⁠.⁠”

“⁠기무광한테 가면 다 끝나오⁠.⁠”

“⁠알아⁠.⁠”

“⁠그럼 어쩔 거요⁠.⁠”

노인은 쪼개진 찜통 뚜껑을 바닥에 내려놓고 찜통을 막손의 팔에 안겼다⁠.

“⁠나는 죽으러 가는 길이다⁠. 죽으러 가는 길에 사람을 죽이면 셈이 안 맞는다⁠. 묻히는 날까지 내 손으로는 아무도 안 죽인다⁠. 성도에서 관에 들어갈 때 그렇게 정했다⁠.⁠”

막손은 찜통의 김을 얼굴에 맞으며 굳은 청면을 보았다⁠. 살려 보내면 기무광이 안다⁠. 죽이지 않으면 데리고 가야 했다⁠. 사람 하나를 이천 리 상여길에 숨겨서⁠.

“⁠상여 아랫단이 비어 있소⁠.⁠”

막손이 말했다⁠.

“⁠만장하고 장식을 넣는 칸이오⁠. 사람 하나는 들어가오⁠. 무릎을 접으면⁠.⁠”

노인이 찜통에서 만두 하나를 꺼내 청면의 벌어진 입에 넣었다⁠.

“⁠들었냐⁠. 무릎 접어라⁠. 아⁠, 못 접지⁠. 내가 접어 주마⁠.⁠”

*

아침에 상여를 들었을 때 상두꾼들이 한꺼번에 신음했다⁠.

“⁠형님⁠, 관이 밤새 살쪘어요⁠!⁠”

“⁠관이 무슨 살이 쪄⁠. 비를 먹었나 보지⁠.⁠”

“⁠귀신이 붙었나 봐요⁠. 귀신은 무겁대요⁠.⁠”

운향이 상여 채를 어깨에 고쳐 메며 막손을 노려보았다⁠.

“⁠어젯밤 이 관 밑에 뭘 처넣었어⁠? 어깨가 내려앉는다⁠. 품삯 두 배야⁠.⁠”

막손은 대답하지 않았다⁠. 앞채 왼쪽에 얹힌 무게를 셌다⁠. 관 육십 근⁠, 노인 백 근에 만두 몇 근⁠, 그리고 무릎을 접은 사내 하나가 백삼십 근쯤이었다⁠. 열하나가 메던 무게가 한 사람 몫 반이나 늘었다⁠. 노인이 관 속에서 말했다⁠. 옹이구멍이 막손의 귀 바로 옆이었다⁠.

“⁠어깨가 무너지겠구나⁠.⁠”

“⁠영감이 어젯밤 찜통 둘을 비웠소⁠. 그 무게도 들었소⁠.⁠”

상여 아랫단 옆에는 떡보가 붙어 걸었다⁠. 막손이 그렇게 시켰다⁠. 아랫단 살창 틈으로 청면의 눈이 보였다⁠. 혈이 막힌 몸으로 무릎을 접고 누운 채 눈만 굴렸다⁠. 떡보는 처음 한 시진 동안 이 눈과 마주칠 때마다 딸꾹질을 했다⁠. 두 시진째에 품에서 쑥떡을 꺼내 살창 틈으로 밀어 넣었다⁠.

“⁠드세요⁠. 배고프시죠⁠. 저도 무서우면 배고파요⁠.⁠”

청면은 입을 못 벌렸다⁠. 쑥떡은 청면의 코끝에 얹혀 있었다⁠. 떡보는 한참 이것을 보다가 다시 꺼내 자기가 먹었다⁠.

배는 의창에서 하루를 묶여 밑창을 고쳤다⁠. 이 하루 동안 기무광의 흰 옷들이 의창 거리를 뒤졌다⁠. 객잔과 나루와 만두 골목을 돌았고⁠, 저녁에는 둘이 빈소 헛간 앞을 두 번 지나갔다⁠. 기무광은 이들 가운데 없었다⁠. 객잔 이층 창가에 앉아 상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아는 기무광을 올려다보다가 막손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 뭘 찾아요⁠?⁠”

“⁠사람을 잃어버렸나 보오⁠.⁠”

“⁠누구를요⁠?⁠”

“⁠혈수문 사람이겠지⁠.⁠”

초아는 상여 아랫단 쪽을 한 번 보았다⁠. 떡보가 이 앞에 쭈그려 앉아 다리를 벌리고 떡을 먹고 있었다⁠. 살창을 등으로 가리는 자세였다⁠. 초아의 눈이 거기서 조금 오래 머물렀다가 떠났다⁠.

다음 날 배가 떠나 사흘 만에 형주에 닿았다⁠. 이 사흘 동안 노인은 밤마다 바닥 널 대신 상여 아랫단 판자를 밀고 나와 청면의 혈을 다시 막았다⁠. 혈은 반나절마다 풀렸다⁠. 노인은 이 일을 끝내면 청면 옆에 누워 만두를 먹었다⁠. 청면은 이것을 눈으로만 보았다⁠.

두 번째 날 밤⁠, 막손이 뱃전에서 졸다가 눈을 떴을 때 운향이 상여 아랫단 앞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운향의 손가락이 살창 판자 하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판자 안쪽에서 청면의 눈이 운향을 보았다⁠.

운향은 놀라지 않았다⁠. 판자를 도로 내려놓고 막손을 돌아보았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어깨가 왜 내려앉나 했더니⁠.⁠”

막손이 운향 옆에 가서 앉았다⁠. 둘 다 목소리를 낮췄다⁠. 관 건너편에서 초아가 무릎을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혈수문 사람이지⁠? 저 얼굴 칠⁠. 문주가 의창 바닥을 뒤지던 게 이 사람이고⁠.⁠”

“⁠그렇소⁠.⁠”

“⁠이걸 문주한테 가서 말하면 얼마 받을까⁠?⁠”

“⁠한 푼도 못 받소⁠. 문주는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라 고자질 값은 안 치르오⁠. 그리고 문주가 이 상여를 세우면 무한까지 갈 상여가 없어지오⁠. 두목이 받을 이백 냥도 같이 없어지오⁠.⁠”

운향이 턱을 괴고 막손을 보았다⁠.

“⁠그럼 네가 치러⁠. 입 다무는 값⁠.⁠”

“⁠얼마요⁠?⁠”

“⁠오십⁠.⁠”

“⁠무한에서 이백오십이오⁠.⁠”

“⁠그리고 저 사람 밥은 네가 먹여⁠. 내 떡보는 안 된다⁠.⁠”

“⁠떡보가 언제 두목 거가 됐소⁠.⁠”

“⁠떡을 나눠 주는 놈은 다 내 거야⁠.⁠”

운향은 판자를 한 번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제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막손은 무한에서 갚을 것을 다시 셌다⁠. 이백오십 냥과 뱃주인의 삼십 냥⁠, 운향의 품삯이 하루 한 냥씩 사흘⁠, 그리고 하관 날의 첫자리였다⁠. 노잣돈 주머니에는 동전 열네 닢이 있었다⁠.

*

형주 나루에 닿은 날 오후⁠, 맹구가 쌀과 떡을 사러 장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흰 옷 하나가 빈소에 왔다⁠. 흰 옷은 맹구의 짚신 한 짝을 상여 앞에 내려놓았다⁠. 짚신 코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문주께서 강가 버드나무 아래서 기다리시오⁠. 사람 하나와 사람 하나를 바꾸자 하시오⁠.⁠”

흰 옷이 돌아가자 운향이 상여 채를 내려놓았다⁠.

“⁠무슨 소리야⁠. 무슨 사람 하나⁠?⁠”

막손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여 아랫단 앞에 쪼그려 앉았다⁠. 살창 안에서 청면의 눈이 막손을 보았다⁠. 혈이 풀릴 때가 가까운 눈이었다⁠. 손가락 끝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옹이구멍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났다⁠. 아주 낮았다⁠.

“⁠내줘라⁠.⁠”

“⁠저 사람을 내주면 영감 얼굴을 다 말하오⁠.⁠”

“⁠그 아이를 살려라⁠. 떡 사러 간 아이다⁠.⁠”

“⁠그 아이도 영감이 살아 있는 걸 알고 따라왔소⁠.⁠”

“⁠그러니까 살려야지⁠.⁠”

막손은 상여 아랫단 판자를 열었다⁠. 청면의 몸이 접힌 채로 굴러 나왔다⁠. 운향이 숨을 들이켰다⁠. 초아가 상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사람⁠, 그 사람 누구예요⁠? 왜 상여 밑에서 나와요⁠?⁠”

“⁠혈수문 사람이오⁠. 의창에서 관을 노리러 왔길래 잡아 두었소⁠.⁠”

거짓말은 아니었다⁠. 반만 말했다⁠. 초아가 막손을 보는 눈은 이 반을 다 헤아리고 있었다⁠.

*

강가 버드나무는 물가 둑 아래에 서 있었다⁠. 장마에 불어난 물이 버드나무 밑동까지 차올라 가지 끝이 물에 잠겨 흔들렸다⁠. 이 아래 맹구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흰 옷 둘이 맹구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고⁠, 하나는 칼을 맹구의 목덜미에 대고 있었다⁠. 맹구의 이마가 찢어져 피가 눈썹으로 흘러내렸다⁠. 그래도 평소처럼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기무광이 버드나무 둥치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막손은 청면을 등에 업고 왔다⁠. 상여 메듯이 무게를 어깨에 고르게 나눴다⁠. 운향과 떡보가 뒤를 따랐다⁠. 초아도 따라왔다⁠. 막손은 초아를 말리지 못했다⁠.

둑 아래로 내려서기 전에 초아가 막손의 소매를 잡았다⁠.

“⁠저 사람이 왜 상여 밑에 있었는지⁠, 오늘 밤에 다 말해 줘요⁠. 반 말고 다요⁠.⁠”

막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갚을 날을 정한 약조였다⁠. 무한에서 갚을 것 위에⁠, 오늘 밤 갚을 것이 하나 더 얹혔다⁠.

“⁠내 사람이 자네 상여 밑에서 나왔군⁠.⁠”

기무광이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고르게 깔렸다⁠.

“⁠왜 거기 있었는지는 묻지 않겠네⁠. 내 사람 입으로 직접 듣지⁠.⁠”

“⁠먼저 우리 막내를 보내시오⁠.⁠”

“⁠같이 보내지⁠. 셋에⁠.⁠”

막손은 청면을 등에서 내려 두 발로 세웠다⁠. 혈이 풀려 가는 다리가 휘청였다⁠. 청면이 처음으로 막손을 보았다⁠. 푸른 칠이 반쯤 벗겨진 얼굴이었다⁠. 이 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막손은 읽을 수 없었다⁠.

“⁠하나⁠.⁠”

기무광이 셌다⁠. 흰 옷이 맹구의 목덜미에서 칼을 뗐다⁠.

“⁠둘⁠.⁠”

막손이 청면의 등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청면이 한 걸음 내디뎠다⁠.

“⁠셋⁠.⁠”

맹구가 일어섰다⁠. 청면이 걸었다⁠. 두 사람이 둑 한가운데에서 엇갈렸다⁠. 맹구는 청면을 한 번 돌아보았고⁠, 청면은 앞만 보고 걸었다⁠.

맹구가 막손 앞에 와 섰다⁠. 이마의 피를 손등으로 닦고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형님⁠, 떡은 못 샀어요⁠.⁠”

떡보가 울음을 터뜨리며 품에서 쑥떡 반쪽을 꺼내 맹구 손에 쥐여 주었다⁠.

청면이 기무광 앞에 섰다⁠. 기무광이 고개를 숙였다⁠. 청면은 굳었던 입술을 두어 번 움직여 풀고⁠, 기무광의 귀에 입을 대었다⁠. 쇠를 긁는 목소리가 아주 짧게 무언가를 말했다⁠. 막손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아도 알았다⁠. 의창 만두 골목⁠, 수의 차림의 맨발⁠, 찜통과 젓가락⁠, 그리고 성도에서 죽었다던 사람의 얼굴이었다⁠.

기무광의 얼굴은 바뀌지 않았다⁠. 기무광은 청면의 어깨를 한 번 짚고 막손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막손 곁을 지나 둑을 올라갔다⁠. 빈소 쪽이었다⁠.

막손이 따라 뛰었다⁠. 빈소 헛간 앞에 상여가 서 있었고⁠, 남은 상두꾼들이 이 둘레에 앉아 있었다⁠. 기무광은 아무도 막지 않는 길로 걸어 들어가 관 앞에 섰다⁠. 일곱 매듭이 감긴 뚜껑⁠, 이 위의 붉은 손바닥 자국 앞이었다⁠.

기무광은 손가락 마디로 관 뚜껑을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손님이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박자였다⁠.

“⁠염 노선배⁠.⁠”

헛간 안의 모든 사람이 숨을 멈췄다⁠. 초아가 헛간 문간에서 멈춰 섰다⁠.

“⁠산동에서 뵙겠습니다⁠. 만두는 제가 사지요⁠.⁠”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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