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65자)

상주가 왔다

관 속의 천하제일고수가 자꾸 배고프다고 한다 · 강묵현

고개 아래 마을은 새벽 장을 준비하는 연기로 먼저 깨어 있었다⁠. 막손은 피 묻은 손바닥에 천을 감은 채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내려왔고⁠, 마을 어귀 첫 집에서 대나무 찜통 김이 오르는 것을 보았다⁠. 만두집이었다⁠. 주인 사내는 아궁이 앞에서 고개를 꺾고 졸고 있었다⁠.

노인은 찜통 앞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맨발이었고⁠, 수의 위에 만두집 주인의 기름 묻은 앞치마를 걸쳤고⁠, 두 번째 찜통 뚜껑을 막 열고 있었다⁠.

“⁠영감⁠.⁠”

“⁠왔냐⁠. 이 집 소는 생강을 너무 넣었다⁠. 그래도 사천에서 먹은 것 중엔 셋째다⁠.⁠”

막손은 노인 맞은편에 앉지 않고 서서 찜통을 내려다보았다⁠. 빈 찜통이 이미 셋이었다⁠.

“⁠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소⁠.⁠”

“⁠그 푸른 칠한 놈을 따라왔다⁠. 따라와야 했다⁠.⁠”

노인이 만두 하나를 반으로 갈랐다⁠. 김이 노인의 눈썹을 적셨다⁠.

“⁠그놈이 고개 아래에서 말 탄 놈 하나를 동쪽으로 보냈다⁠. 중경으로 가라고 했다⁠. 중경 약방의 계집을 찾으라고⁠.⁠”

막손은 노인의 젓가락이 처음으로 멈추는 것을 보았다⁠.

“⁠내 손녀가 중경 약방에 있다⁠. 열여섯부터 거기서 약초를 썰었다⁠. 그 애한테는 내가 성도 근처 산골에서 약초나 캐는 늙은이인 줄로 알게 해 두었다⁠.⁠”

“⁠기무광이 손녀를 잡겠다는 거요⁠?⁠”

“⁠잡지는 않는다⁠. 그놈은 도리를 지키는 놈이다⁠. 남의 장례에서 상주를 건드리면 혈수문은 끝난다⁠.⁠”

노인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데려오겠지⁠. 상주로⁠. 관 뚜껑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상주니까⁠.⁠”

막손은 이 말을 이해하는 데 숨 한 번이 걸렸다⁠. 관 뚜껑은 상주만 연다⁠. 이 도리가 지금까지는 막손의 방패였다⁠. 손녀가 상주로 오면 이 방패가 손녀 손에 들린다⁠. 그리고 손녀는 할아버지가 살아 있는 줄 모른다⁠.

“⁠내가 먼저 중경으로 간다⁠.⁠”

노인이 일어섰다⁠. 앞치마 끈이 풀렸다⁠.

“⁠영감이 중경에 나타나면 오백 냥도⁠, 죽은 척도⁠, 손녀를 빼는 것도 다 끝이오⁠. 염백수가 살아서 손녀를 데리러 왔다고 강호가 다 알게 되오⁠.⁠”

“⁠그럼 어떡하라고⁠.⁠”

“⁠상여로 가오⁠. 닷새요⁠. 닷새 뒤에 중경 나루에서 손녀를 만나는 건 영감이 아니라 내가 하오⁠.⁠”

노인이 막손을 노려보았다⁠. 천하제일이라던 눈이 아니라 끼니 거른 늙은이의 눈이었다⁠. 한참 뒤에 의자에 도로 앉았다⁠.

“⁠만두⁠.⁠”

“⁠하루 열 개⁠.⁠”

“⁠스물⁠.⁠”

“⁠열⁠. 관 속에서 스무 개를 드시면 상두꾼 어깨가 먼저 아오⁠. 나는 아침마다 무게를 재오⁠.⁠”

“⁠열다섯⁠.⁠”

“⁠열 개에⁠, 다른 날보다 많이 걸은 날은 둘을 더 드리오⁠. 대신 관 밖으로는 한 발짝도 안 나오시오⁠.⁠”

노인은 대답 대신 찜통에 남은 만두를 앞치마 앞섶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 문으로 걸어 나가다 돌아보았다⁠.

“⁠값은 네가 치러라⁠. 나는 죽은 사람이라 돈이 없다⁠.⁠”

막손은 졸고 있는 만두집 주인의 손에 노잣돈 한 냥을 쥐여 주었다⁠. 찜통 넷 값으로는 많았다⁠. 주인이 잠결에 돈을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

중경을 하루 앞둔 밤⁠, 상여는 강가 마을 객잔 헛간에 빈소를 차렸다⁠. 막손은 상두꾼들이 잠든 뒤 관 옆에 엎드려 바닥 널 밑으로 만두 열 개를 밀어 넣었다⁠. 널 안쪽에서 손이 나와 만두를 하나씩 세어 가져갔다⁠. 아홉에서 손이 멈췄다⁠.

“⁠하나 모자란다⁠.⁠”

“⁠떡보가 오는 길에 하나 먹었소⁠. 자기 떡을 영감이 먹었으니 갚는 거라고⁠.⁠”

널 안쪽에서 혀 차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한참 씹는 소리만 났다⁠. 다 먹고 나서 노인이 물었다⁠.

“⁠그 애가 오면⁠, 울겠지⁠.⁠”

“⁠울 거요⁠. 상주니까⁠.⁠”

“⁠나는 이 안에서 그걸 듣고 있어야 하냐⁠.⁠”

막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헛간 밖에서 장강 물소리가 낮게 깔렸다⁠. 한참 뒤에 노인이 다시 말했다⁠.

“⁠숨을 멈추는 건 반 시진까지다⁠. 그 애가 반 시진 넘게 관 앞에 있으면⁠, 나는 숨을 쉰다⁠.⁠”

“⁠그 전에 상주를 떼어 내겠소⁠.⁠”

“⁠어떻게⁠.⁠”

“⁠모르오⁠. 내일 아침에 그 애 얼굴을 보고 정하겠소⁠.⁠”

바닥 널이 안쪽에서 닫혔다⁠.

*

중경 나루는 장강과 가릉강이 만나는 자리에 있었다⁠. 누런 장강 물과 푸른 가릉강 물이 한동안 섞이지 않고 나란히 흐르다가 아래에서 하나가 되었다⁠. 성벽 아래 돌계단이 물가까지 이백 개 넘게 이어졌고⁠, 장마로 불어난 물이 이 계단 아래쪽 스무 개를 삼켜 버렸다⁠.

상여는 닷새 만에 이 계단 위에 멈췄다⁠. 열하나가 메는 상여는 열둘이 메던 때보다 한 사람 몫씩 무거웠다⁠. 막손은 이 무게를 어깨로 나눠 받으며⁠, 아침마다 노인의 만두가 몇 개였는지도 같이 쟀다⁠.

뱃주인은 관을 보자마자 손을 내저었다⁠.

“⁠관은 안 싣소⁠. 관 실은 배는 삼협에서 뒤집히오⁠. 다 아는 소리요⁠.⁠”

“⁠배 한가운데에 가로로 놓으면 안 뒤집히오⁠. 장강 상여는 다 그렇게 싣소⁠.⁠”

“⁠처음 듣는 소리요⁠.⁠”

“⁠삼협 아래 상여계에선 다 아는 소리요⁠.⁠”

막손은 처음 하는 소리를 그렇게 말했고⁠, 뱃삯은 세 배로 정해졌다⁠. 노잣돈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소리가 났다⁠.

이때 계단 위쪽에서 누가 뛰어 내려왔다⁠.

*

염초아는 이틀 밤을 걸어서 왔다⁠. 약방 주인에게 말도 못 하고 나왔고⁠, 상복은 길가 삼베 가게에서 외상으로 샀다⁠. 흰 옷을 입은 친절한 사내가 약방 문 앞에 와서 할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준 것이 사흘 전이었다⁠. 할아버지는 성도 근처 산골에서 약초를 캐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내는 할아버지의 이름 앞에 천하제일이라는 말을 붙였다⁠.

계단 아래에 꽃상여가 있었다⁠. 비에 젖은 만장이 바람에 무겁게 펄럭였다⁠. 상여 위 관 뚜껑에 붉은 손바닥 자국 하나가 녹처럼 번져 있었다⁠.

초아는 이 앞에 섰다⁠. 숨이 차서 말이 바로 안 나왔다⁠. 상여를 멘 사내들이 초아를 보았고⁠, 맨 앞에 선 사내가 손에 든 요령을 내렸다⁠. 서른 남짓에⁠, 상두꾼답게 어깨가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었다⁠.

“⁠염초아예요⁠. 염백수의 손녀예요⁠.⁠”

초아는 숨을 고르고 다시 말했다⁠.

“⁠상주예요⁠. 관을 열어 주세요⁠. 할아버지 얼굴 봐야겠어요⁠.⁠”

*

막손은 손녀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눈매가 노인과 닮았는데⁠, 노인처럼 웃음기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손톱 밑에 약초 물이 들어 거뭇했다⁠.

계단 위 찻집 처마 아래에 기무광이 앉아 있었다⁠. 찻잔을 든 채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주께서 오셨소⁠.⁠”

막손은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숙인 채로 말했다⁠.

“⁠관은 못 여오⁠.⁠”

“⁠상주가 연다고 하잖아요⁠. 그쪽이 그랬다던데요⁠. 관 뚜껑은 상주만 연다고⁠. 그 흰 옷 입은 분이 다 말해 줬어요⁠.⁠”

초아가 관 쪽으로 걸어갔다⁠. 막손은 초아 앞을 막지 못했다⁠. 상주를 막는 상두꾼은 없었다⁠. 초아는 관 뚜껑의 붉은 손바닥 자국 옆에 제 손을 얹었다⁠.

관 안이 조용해졌다⁠. 원래 조용했지만⁠, 막손은 이 조용함이 한 겹 더 깊어지는 것을 알았다⁠. 노인이 숨을 멈췄다⁠.

“⁠이상해요⁠.⁠”

초아가 코를 관 이음새 가까이 댔다⁠.

“⁠돌아가신 지 여드레예요⁠. 장마철이고요⁠. 약방에서 시신 냄새는 다 맡아 봤어요⁠. 이 관에서는 그 냄새가 하나도 없어요⁠.⁠”

“⁠장뇌와 향나무 가루를 관 안에 채웠소⁠. 이천 리 갈 관이라⁠.⁠”

막손은 거기까지는 막힘없이 말했다⁠. 다음 말은 몰랐다⁠. 초아의 손가락이 뚜껑 가장자리를 더듬어 못이 박히지 않은 자리를 찾고 있었다⁠.

“⁠상주⁠.⁠”

막손은 상주 앞 돌계단에 무릎을 댔다⁠. 계단의 물기가 무릎으로 올라왔다⁠.

“⁠할아버님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있소⁠. 얼굴은 고향 땅에서 처음 보이라고 하셨소⁠. 할머님 무덤 곁에서⁠. 길에서 열면 얼굴이 상해서⁠, 먼저 간 할머님이 못 알아본다고⁠. 할머님이 제일 먼저 보셔야 한다고⁠.⁠”

초아의 손가락이 멈췄다⁠.

막손은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이 거짓인 줄 알았다⁠. 노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노인은 만두와 관의 너비 말고는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초아의 손가락이 이 거짓말 앞에서 떨리기 시작했다⁠.

계단 위에서 기무광이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내려왔다⁠.

“⁠상주가 원하면 뚜껑은 열리는 법이네⁠. 상두꾼 말은 상두꾼 말이고⁠.⁠”

기무광은 초아 옆에 서서 관을 내려다보았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아가씨⁠, 할아버님 마지막 얼굴을 보는 것은 손녀의 권리일세⁠. 내가 옆에서 뚜껑을 들어 드리지⁠. 못 하나 안 박혀 있으니 손 하나면 되네⁠.⁠”

막손은 상여 머리에 꽂아 둔 향을 보았다⁠. 초아가 관에 손을 얹은 뒤로 향 한 대가 반 넘게 탔다⁠. 향 한 대가 다 타는 동안이 반 시진이었다⁠. 향의 붉은 끝이 비에 젖어 한 번 꺼질 듯하다가 다시 살아났다⁠. 막손은 이것이 꺼지기를 바랐는지 살아나기를 바랐는지 알 수 없었다⁠.

초아가 기무광을 보았다⁠. 그리고 막손을 보았다⁠. 관 위에 얹은 손바닥에 힘이 들어갔다가 빠졌다⁠. 주먹을 쥐고 관 뚜껑을 한 번 내리쳤다⁠. 둔한 소리가 났다⁠. 막손은 관 속 노인의 몸이 이 소리에 움찔하지 않는 것이 더 무서웠다⁠.

“⁠할아버지는 맨날 그랬어요⁠.⁠”

초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만두 먹을 때도 할머니 몫을 먼저 덜어 놨어요⁠. 할머니는 고향에 계셨는데도요⁠. 돌아가시고 열 해가 지났는데도요⁠. 할머니가 먼저 드셔야 한다고⁠.⁠”

초아는 손을 거두었다⁠. 손바닥에 붉은 손바닥 자국의 녹이 조금 묻어 있었다⁠. 초아는 이것을 치마에 닦지 않았다⁠.

“⁠고향에서 열게요⁠. 할머니 무덤 앞에서⁠, 제 손으로⁠. 그 전에는 아무도 못 열어요⁠. 그쪽도요⁠.⁠”

마지막 말은 기무광에게 한 것이었다⁠. 기무광은 고개를 숙여 받았다⁠.

“⁠상주 뜻이 그러면⁠.⁠”

그리고 기무광은 막손을 보며 덧붙였다⁠.

“⁠그날 나는 상주 다음 자리에 서기로 했네⁠. 성도 동문에서 이 상두꾼이 약조했지⁠. 하관 날⁠, 관 앞 첫자리⁠.⁠”

초아가 돌아섰다⁠.

“⁠원수한테 그 자리를 줬어요⁠? 할아버지 마지막 얼굴을⁠, 할아버지가 죽인 사람 아들한테요⁠?⁠”

“⁠성문 앞에서 길막이를 당했소⁠. 그 약조가 아니면 상여가 성도를 못 나왔소⁠.⁠”

“⁠그럼 그 약조를 하신 분이 할머니 무덤 앞에서 그 사람을 막으세요⁠.⁠”

초아는 이 말을 남기고 뱃전으로 올라갔다⁠. 상복 소매가 바람에 뒤집혔다⁠.

*

상두꾼들이 관을 배 한가운데에 가로로 내렸다⁠. 뱃주인이 이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듣는 법을 벌써 믿는 얼굴이었다⁠. 떡보는 관 옆 갑판에 엎드려 장강 물을 내려다보다가 얼굴이 노래졌다⁠.

“⁠형님⁠, 저 헤엄 못 쳐요⁠.⁠”

“⁠관 붙들고 있어라⁠. 오동나무는 뜬다⁠.⁠”

“⁠관이요⁠? 관을 붙들고요⁠? 영⁠…⁠, 아니⁠, 망자랑 같이요⁠?⁠”

막손이 떡보의 정강이를 찼다⁠. 고물 쪽에서 밧줄을 감던 맹구가 한참 뒤에 고개를 들었다⁠.

“⁠…저는 헤엄 쳐요⁠. 떡보 형님 하나는 끌고 나와요⁠. 관까지는 못 하고요⁠.⁠”

아무도 묻지 않은 대답이었다⁠. 떡보는 이 말을 듣고 관 모서리를 더 꽉 붙들었다⁠.

닻줄이 풀리기 직전⁠, 나루 쪽 판자다리가 삐걱였다⁠. 기무광이 배에 올라왔다⁠. 뒤로 흰 옷 둘이 보따리를 지고 따라 올랐다⁠. 뱃주인이 손님 셋의 뱃삯을 받아 들고 허리를 굽혔다⁠. 은자였다⁠. 막손이 낸 세 배 뱃삯보다 많았다⁠.

기무광은 갑판을 천천히 걸어 관 앞까지 왔다⁠. 그리고 관 옆⁠, 초아가 앉은 맞은편 자리에 보따리를 내려놓고 이 위에 앉았다⁠.

“⁠장강 뱃길은 한 길뿐이라⁠.⁠”

기무광은 관 뚜껑의 붉은 손바닥 자국을 보며 말했다⁠.

“⁠나도 이 배로 내려가네⁠, 상두꾼⁠. 상주와 함께 밤마다 망자 곁을 지키지⁠.⁠”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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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갈피곰2026.10.26· 3화

    상주가 왔는데 관 속 사람이 배고프다고 하면 장례는 어떻게 돼요?

    • 강묵현작가2026.10.26

      그게 3화에서 제일 곤란한 대목이에요. 울어야 할지 밥을 지어야 할지 상주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