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32자)

동문의 길막이

관 속의 천하제일고수가 자꾸 배고프다고 한다 · 강묵현

막손은 대답하기 전에 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마루에 닿는 소리가 빈소를 한 번 울렸다⁠.

“⁠반함이오⁠.⁠”

“⁠반함⁠.⁠”

“⁠염할 때 망자 입에 쌀을 물리는 것 말이오⁠. 저승길에 배곯지 말라고⁠. 강호 어르신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모르나⁠, 사천 산골에서는 쌀 대신 만두를 물리오⁠. 고기 만두로⁠.⁠”

기무광이 손가락 끝의 부스러기를 내려다보았다⁠. 막손은 이 눈이 다시 올라오기 전에 말을 이었다⁠.

“⁠망자께서 생전에 먹성이 대단하셨소⁠. 하나로는 저승 문턱도 못 넘겠다 싶어 열 개를 물려 드렸더니⁠, 입에 다 안 들어가서 넘쳤소⁠. 염하는 손이 거칠어 이음새까지 흘렀나 보오⁠. 상두꾼 손이 다 그렇소⁠.⁠”

뒤에서 떡보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맞아요⁠, 맞아요⁠. 저희 고향에서는 떡을 물려요⁠. 쑥떡으로⁠. 그래서 저는 죽으면 쑥떡을 물려 달라고 벌써 형님한테 말해 뒀어요⁠. 세 개⁠.⁠”

기무광은 떡보를 한참 보았다⁠. 떡보가 숨을 멈췄다⁠. 관 속의 노인보다 오래 멈춘 것 같았다⁠.

“⁠발인은 언제인가⁠.⁠”

“⁠모레 새벽이오⁠.⁠”

“⁠동문으로 나가겠군⁠.⁠”

기무광은 부스러기를 손수건에 싸서 품에 넣고 빈소를 나갔다⁠. 빗방울이 기무광의 어깨 앞에서 또 옆으로 미끄러졌다⁠. 마당을 다 건너가서야 한 번 돌아보았다⁠.

“⁠모레 동문에서 보세⁠, 상두꾼⁠.⁠”

발소리가 사라지자 관 옆구리의 옹이구멍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열 개는 거짓말이고⁠, 오늘 저녁 만두는 일곱 개였다⁠. 셋이 모자란다⁠.⁠”

*

발인 새벽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상두꾼 열둘이 빈소 마당에 모였고⁠, 막손은 앞채 왼쪽에 어깨를 넣었다⁠. 하나⁠, 둘⁠, 셋에 상여가 들렸다⁠. 어깨에 얹힌 무게가 발바닥까지 내려왔다⁠.

어제보다 두 근이 무거웠다⁠.

막손은 옹이구멍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밤새 몇 개 드셨소⁠.⁠”

“⁠열여덟⁠. 식었더라⁠.⁠”

“⁠식은 걸 열여덟 개 드셨소⁠.⁠”

“⁠식었으니까 열여덟 개지⁠. 따뜻했으면 서른 개 먹었다⁠.⁠”

막손은 요령을 흔들었다⁠. 상여가 빗속으로 나갔다⁠.

성도 동문은 아침 장이 서기 전부터 사람으로 막혀 있었다⁠. 염백수의 상여가 지나간다는 말이 이틀 사이에 성안을 다 돌았고⁠, 처마 밑과 지붕 위와 성벽 위까지 구경꾼이 올라앉았다⁠. 이 사람들 사이로 흰 옷을 입은 사내 서른이 성문 앞에 두 줄로 서 있었다⁠. 줄 한가운데에 기무광이 있었다⁠.

상여가 멈췄다⁠. 기무광이 앞으로 세 걸음 나와 상여 앞을 막아섰다⁠.

“⁠혈수문 기무광⁠, 망자에게 받을 빚이 있어 길을 막네⁠.⁠”

구경꾼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번졌다⁠. 길막이였다⁠. 상여 앞을 막아선 사람은 망자에게 받을 빚 하나를 댈 수 있고⁠, 상주나 호상이 이 자리에서 갚거나 갚을 날을 약조해야 상여가 지나간다⁠. 약조를 어긴 상여계는 다시는 상여를 메지 못한다⁠. 막손이 상두꾼이 된 뒤로 길막이를 당한 것은 노름빚 진 망자 둘과 첩을 둘 둔 망자 하나였다⁠. 셋 다 돈으로 끝났다⁠.

“⁠무슨 빚이오⁠.⁠”

“⁠내 아비의 목숨값이네⁠.⁠”

기무광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는데 성벽 위까지 닿았다⁠.

“⁠갚는 길은 하나뿐이네⁠. 관을 열어 내 눈으로 얼굴을 보는 것⁠. 그러면 나는 아비 원수를 다 갚은 것으로 치고 돌아가겠네⁠.⁠”

막손은 상여 채에서 어깨를 빼고 앞으로 나갔다⁠. 비에 젖은 요령이 손 안에서 차가웠다⁠. 관을 열면 끝이었다⁠. 안 열면 길막이를 못 갚은 상여가 되고⁠, 성문 앞에서 상여를 돌리면 성도 상여계는 이날로 문을 닫았다⁠.

막손은 갚을 날을 약조하는 것을 골랐다⁠.

“⁠관은 상주가 오기 전에는 못 여오⁠. 그러니 날을 드리겠소⁠. 망자를 태산 아래 고향에 내리는 하관 날⁠, 관을 묻기 전에 상주가 뚜껑을 열고 마지막 얼굴을 보이오⁠. 그 자리⁠, 관 앞 첫자리를 문주께 드리겠소⁠.⁠”

“⁠관 앞 첫자리⁠.⁠”

“⁠상주 다음이오⁠. 상주 다음에 문주가 망자 얼굴을 보시오⁠. 이천 리 밖이지만⁠.⁠”

옹이구멍에서 무언가가 관 널을 세게 걷어차는 소리가 났다⁠. 막손은 이 소리가 나자마자 요령을 크게 흔들었다⁠. 방울 소리가 발길질 소리를 덮었다⁠. 떡보가 뒤에서 딸꾹질을 했다⁠.

기무광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상여 곁으로 와서 관 앞쪽 채 끝을 한 손으로 잡고⁠, 상두꾼 열둘이 메던 것을 혼자 한 치쯤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막손의 어깨가 이 한 치 동안 텅 비었다⁠.

“⁠백육십 근이군⁠.⁠”

기무광이 손을 털었다⁠.

“⁠약조를 받겠네⁠. 하관 날 관 앞 첫자리⁠. 이천 리 동안 이 무게를 기억해 두지⁠. 그 전까지는 길목마다 다시 묻겠네⁠.⁠”

기무광이 손을 들자 흰 옷 서른이 길 양쪽으로 갈라섰다⁠.

그런데 성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루 아래에서 수문장이 창을 짚고 나왔다⁠. 마흔 남짓에 수염이 비에 젖어 축 처져 있었다⁠.

“⁠성 밖으로 나가는 관은 관마다 은자 두 냥이오⁠. 장마철 성문 출입 규정이오⁠.⁠”

떡보가 막손의 등에 대고 속삭였다⁠.

“⁠형님⁠, 그런 규정 처음 들어요⁠.⁠”

“⁠오늘 생긴 거다⁠.⁠”

노잣돈 일곱 냥은 사흘 밥값에 이미 들어갔다⁠. 막손은 수문장 얼굴을 보았다⁠. 눈 밑이 거뭇했고⁠, 갑옷 소매 안쪽에 삼베 띠가 감겨 있었다⁠. 상복 띠였다⁠. 상을 당한 지 한 달이 안 된 사람이었다⁠.

“⁠수문장 어른⁠, 어머님이시오⁠?⁠”

수문장이 움찔했다⁠.

“⁠장마에 성문을 지키느라 발인에 못 가셨소⁠?⁠”

대답이 없었다⁠. 막손은 이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상여 앞이 아니라 수문장 앞에서 곡을 시작했다⁠. 장마에 둑이 무너질까 성문을 못 떠난 아들이 있고⁠, 이 아들 없이 산으로 올라간 어머니가 있다⁠. 아들이 보내지 못한 어머니를 오늘 이 상여가 대신 보내 드린다⁠. 막손은 이 말을 소리에 실어 길게⁠, 낮게⁠, 문루 위까지 끌어 올렸다⁠.

수문장이 창을 놓쳤다⁠. 창이 돌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막손은 이것을 줍지 않고 고개를 숙였고⁠, 어깨가 두 번 들썩였다⁠. 성벽 위의 구경꾼들이 먼저 울기 시작했고⁠, 이 소리가 동문 거리를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 동전 꿰미가 상여 줄로 날아와 걸렸다⁠. 흰 옷 서른 가운데 젊은 하나가 코를 훔쳤다가 옆 사람에게 옆구리를 찔렸다⁠.

수문장은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며 성문지기들에게 손을 휘저었다⁠. 성문이 열렸다⁠.

상여가 동문을 지나갈 때 기무광은 길가에 비켜서서 이것을 지켜보았다⁠. 막손은 이 앞을 지나며 기무광의 눈을 보지 않았다⁠. 대신 어깨에 얹힌 무게를 셌다⁠. 백육십 근 하고도 두 근이었다⁠. 기무광은 두 근을 떼고 말했다⁠. 떼어 버린 두 근이 밤새 들어간 만두라는 것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

해가 지기 전에 상여는 성도 동쪽 고개에 올라섰다⁠. 산마루 아래 낡은 산신각이 있었고⁠, 막손은 이 앞마당에 상여를 내리고 관을 끌러 처마 앞 흙바닥에 놓았다⁠. 상여는 해 지기 전까지 땅에 내리지 않고⁠, 해가 지면 빈소를 차려 밤을 새운다⁠. 산신각 처마 아래에 향을 피우고 상두꾼들이 둘씩 교대로 깨어 있기로 했다⁠.

마당 끝은 벼랑이었다⁠. 빗물이 벼랑 끝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밤새 들렸다⁠.

상두꾼들이 잠들자 막손은 관 옆에 등을 대고 앉았다⁠. 옹이구멍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하관 날 얼굴을 보인다고 했지⁠. 내 얼굴을⁠.⁠”

“⁠그 약조가 아니면 성문 앞에서 상여를 돌려야 했소⁠. 상여를 돌리면 영감은 성도 한복판에서 관 뚜껑이 열리오⁠.⁠”

“⁠그래서 이천 리 뒤로 미뤘다⁠.⁠”

“⁠미뤘소⁠. 이천 리 동안 방도를 찾겠소⁠.⁠”

관 안에서 한참 아무 소리가 없었다⁠. 그러다 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가 났다⁠.

“⁠너는 오늘 내 빚을 하나 더 졌다⁠. 나는 기무광한테 목숨값 하나를 졌고⁠, 너는 그 목숨값을 이천 리 뒤에 갚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약조했다⁠. 내가 죽은 척을 한 건 빚을 끝내려고였는데⁠, 상여가 성문 하나 지나는 사이에 빚이 늘었다⁠.⁠”

“⁠노잣돈은 늘었소⁠. 수문장 덕에⁠.⁠”

“⁠그게 위로냐⁠.⁠”

“⁠위로는 곡비한테 사시오⁠. 나는 상두꾼이오⁠.⁠”

옹이구멍으로 손가락 하나가 나왔다⁠. 막손은 품에서 떡보한테 얻은 쑥떡 반쪽을 꺼내 이 손가락에 쥐여 주었다⁠. 손가락이 쑥떡을 물고 들어갔다⁠.

삼경 무렵⁠, 벼랑의 물소리가 끊겼다⁠.

막손이 눈을 뜬 것은 빗소리가 아니라 냄새 때문이었다⁠. 젖은 숯 냄새와 쇠 냄새였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마당 위 소나무에서 그림자 다섯이 떨어졌다⁠. 맨 앞의 하나는 얼굴 위에 푸른 칠을 바르고 있었다⁠. 눈과 입만 비워 놓은 푸른 얼굴이 등불 아래에서 물고기 비늘처럼 번들거렸다⁠.

“⁠채 빼⁠!⁠”

막손의 고함에 상두꾼들이 일어났다⁠. 상여 몸통에서 긴 채를 뽑아 드는 데 숨 한 번이면 됐다⁠. 장정 둘이 겨우 드는 상여 채였다⁠. 상두꾼들은 이것을 칼처럼 휘두르지 않았다⁠. 막손이 요령을 흔들고 선소리를 메기면 채 다섯 개가 한 박자에 같이 나갔다가 같이 물러났다⁠. 상여를 메던 박자 그대로였다⁠. 살수 둘이 채에 걸려 마당 흙에 처박혔다⁠.

푸른 얼굴은 채 사이로 들어오지 않았다⁠. 막손은 마당을 한 바퀴 돌아 관 뒤로 갔다⁠. 그리고 관 끝을 발로 찼다⁠.

관이 젖은 흙 위로 미끄러졌다⁠. 벼랑 쪽이었다⁠.

뒤채 쪽을 맡은 늙은 상두꾼이 관을 붙잡으려 몸을 던졌다⁠. 살수 하나의 칼이 팔뚝을 그었고⁠, 늙은 상두꾼은 비명을 지르며 굴렀다⁠. 관은 계속 미끄러졌다⁠. 막손이 채를 내던지고 달려가 관을 묶은 굵은 밧줄을 움켜쥐었다⁠. 손바닥 살이 밧줄에 쓸려 벗겨졌다⁠. 관 끝이 벼랑 끝에 걸려 반쯤 허공으로 나갔다⁠.

“⁠떡보야⁠!⁠”

떡보가 울면서 달려와 막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뒤로 맹구가 떡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셋이 줄줄이 매달린 채로 관이 멈췄다⁠.

푸른 얼굴이 칼을 들고 다가왔다⁠. 밧줄을 끊을 생각이었다⁠. 막손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칼날이 등불을 받아 한 번 번쩍였다⁠.

이때 딱⁠, 하는 소리가 났다⁠.

푸른 얼굴의 손목이 옆으로 꺾였고 칼이 흙에 떨어졌다⁠. 푸른 얼굴의 발치에 무언가가 굴렀다⁠. 대추씨였다⁠. 관 옆구리⁠, 옹이구멍이 있는 쪽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푸른 얼굴이 관을 보았다⁠. 아주 짧게⁠, 한 번⁠. 이 사이 맹구가 떡보를 놓고 일어나 상여 채를 들고 휘둘렀다⁠. 푸른 얼굴은 뒤로 물러나 벼랑 아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고⁠, 나머지 넷도 넘어진 동료를 끌고 숲으로 사라졌다⁠. 숲 쪽에서 한 마디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쇠를 긁는 것 같았다⁠.

“⁠관이 쏘았다⁠.⁠”

떡보가 막손의 허리를 놓고 주저앉았다⁠.

“⁠형님⁠, 관이 쐈대요⁠. 들었어요⁠? 영감님이 쏜 거죠⁠? 그쵸⁠? 그 양반이 쐈다고 하면 우리 다 죽는 거죠⁠?⁠”

막손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피가 밧줄로 번지고 있었다⁠. 다른 상두꾼들이 듣기 전에 떡보의 입을 손등으로 막았다⁠. 늙은 상두꾼의 팔에서는 피가 소매를 타고 손끝까지 흘렀다⁠. 천을 세 겹 감아도 배어 나왔다⁠. 늙은 상두꾼은 이를 악물고⁠, 이 팔로는 내일 채를 못 멘다고 했다⁠. 서른 해를 멘 사람이 이 말을 하는 데 한참 걸렸다⁠. 열둘이 메던 상여가 열하나가 되었다⁠.

막손은 맹구와 둘이서 관 끝을 붙잡아 벼랑에서 끌어올렸다⁠.

관 앞쪽을 어깨에 얹은 순간⁠, 막손은 멈췄다⁠.

가벼웠다⁠.

오동나무 관 육십 근⁠, 그리고 이것뿐이었다⁠. 아침에 동문에서 잰 백육십 근에서 노인 하나만큼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막손은 관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어 바닥 널 끝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널이 쉽게 빠졌다⁠. 등불을 들이밀었다⁠. 관 안에는 식은 만두 찜통 하나와 대추씨 몇 알과⁠, 노인이 누워 있던 자리에 아직 남은 온기가 있었다⁠.

떡보가 등불 너머로 관 안을 들여다보았다⁠. 떡보의 입에서 쑥떡이 떨어졌다⁠.

“⁠형님⁠. 영감님이 없어요⁠.⁠”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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