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18자)

이름 없는 노인

관 속의 천하제일고수가 자꾸 배고프다고 한다 · 강묵현

막손은 거적을 내려놓지 않았다⁠. 떡보가 발치를 들고 있었고⁠, 둘 사이에 사람 하나의 무게가 처져 있었다⁠.

“⁠다리 밑 영감이오⁠. 제녕 운하 셋째 다리 밑에서 닷새 전에 죽었소⁠. 이름은 아무도 모르오⁠. 의장에서 스무 냥을 주고 데려왔소⁠.⁠”

거짓말 하나 없이 가겠다고 한 약조였다⁠. 막손은 이 약조대로 다 말했다⁠.

“⁠하관 날 상주가 뚜껑을 열면⁠, 이 사람이 관 속에 있을 거요⁠. 얼굴이 부어서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오⁠. 기무광도 모르오⁠. 영감은 그 전날 밤 바닥 널로 빠져나가고⁠.⁠”

초아가 한 걸음 다가왔다⁠. 냄새가 초아의 얼굴을 쳤는데 코를 막지 않았다⁠.

“⁠남의 할아버지를⁠, 우리 할아버지 이름으로 묻어요⁠?⁠”

“⁠이 사람은 이름이 없소⁠.⁠”

“⁠그러니까요⁠.⁠”

초아의 목소리가 처마 밑을 울렸다⁠.

“⁠이름 없이 죽은 사람한테 남의 이름까지 씌워요⁠? 다리 밑에서 죽은 것도 모자라서⁠, 원수들 침 받으라고 우리 할아버지 대신 관에 넣어요⁠?⁠”

막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초아의 품을 보았다⁠. 흰 깃발 끝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아씨 품에 있는 건 뭐요⁠?⁠”

초아가 깃발을 꺼냈다⁠. 감추지 않았다⁠. 검붉은 얼룩이 진 귀퉁이가 향불에 비쳤다⁠.

“⁠기무광이 줬어요⁠. 강화의 흰 깃발이래요⁠. 마을에 들기 전에 길 위에서 제가 뚜껑을 열면⁠, 할아버지랑 강호 앞에서 정식으로 겨루겠대요⁠. 원수는 둘 사이에서 끝내고⁠, 염가 피붙이한테는 안 묻겠대요⁠.⁠”

“⁠그 말을 믿소⁠?⁠”

“⁠그쪽 말보다는요⁠.⁠”

떡보가 거적 발치를 든 채로 울상이 되었다⁠.

“⁠형님⁠, 아씨⁠, 이거 내려놓고 싸우시면 안 돼요⁠? 이 어르신도 무거우세요⁠.⁠”

받침 위의 관에서 바닥 널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노인이 흘러내려 처마 밑 흙바닥에 앉았다⁠. 무명옷에 그을음이 아직 얼룩져 있었다⁠. 거적으로 기어가 들추어진 한쪽 끝을 마저 들추었다⁠. 부은 얼굴을 오래 보았다⁠. 이 손을 보았다⁠. 마디가 굵은 손이었다⁠.

“⁠이 사람⁠, 뭘 쥐고 살았는지 아냐⁠.⁠”

“⁠모르오⁠.⁠”

“⁠노다⁠. 손바닥 가운데가 이렇게 패인 건 평생 노를 잡은 손이다⁠. 뱃사공이었다⁠.⁠”

노인은 거적을 도로 덮었다⁠. 떡보가 얹어 둔 쑥떡이 이 위에 그대로 있었다⁠.

“⁠남의 할아비를 내 이름으로 못 묻는다⁠. 이 사람도 누구 할아비다⁠. 손주가 없었으면 누구 아비고⁠, 아비도 아니었으면 누구 아들이다⁠. 내 이름 쓰고 묻히면 그 누가 끝내 이 사람을 못 찾는다⁠.⁠”

“⁠그럼 하관 날 뚜껑을 열면 영감 얼굴이 나오오⁠.⁠”

“⁠나오겠지⁠.⁠”

“⁠그게 영감이 성도에서 관에 들어간 까닭을 다 버리는 거요⁠.⁠”

“⁠알아⁠.⁠”

노인은 초아를 보았다⁠. 초아 손에 들린 흰 깃발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놈하고 겨루는 건 내 일이다⁠. 뚜껑은 네 일이고⁠. 이 사람은 이 사람 일이다⁠.⁠”

노인은 막손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대로 묻어 줘라⁠. 네 곡으로⁠. 내 장례보다 낫게⁠.⁠”

*

이튿날 새벽⁠, 제녕 성 밖 언덕 길가에 구덩이가 파였다⁠. 고을 공동묘가 아니라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 막손이 골랐다⁠. 다리 밑 영감이 평생 노를 저었을 물길이 보이는 자리였다⁠.

관은 없었다⁠. 오동나무 관은 하나뿐이었고 이 안에는 산 사람이 누워야 했다⁠. 막손은 의장 지기에게 다시 가서 머리를 숙이고 널판 다섯 장을 얻었다⁠. 의장 지기는 본 적 없는 값 두 냥에 널판 값까지 들어 있었다고 했다⁠. 맹구와 젊은 상두꾼이 이것으로 새벽까지 상자 같은 관을 짰다⁠. 못이 모자라 끈으로 묶었다⁠.

상여 채 두 개에 이 관을 매달았다⁠. 맨상여였다⁠. 메는 사람은 다섯이었다⁠. 막손⁠, 맹구⁠, 운향⁠, 젊은 상두꾼⁠, 그리고 두건을 쓰고 그을음을 바른 뒤채 오른쪽의 노인이었다⁠. 떡보는 거적에서 옮긴 시신 머리맡에 쑥떡을 놓고 이 옆을 따라 걸었다⁠. 운향은 채를 메기 전에 노인의 두건을 한 번 고쳐 씌웠다⁠. 그을음이 새벽 이슬에 지워지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제 손가락에 아궁이 재를 묻혀 노인의 뺨에 다시 발랐다⁠. 노인도 아무 말 없이 뺨을 내밀었다⁠. 초아는 상주 자리에 섰다⁠. 남의 장례였다⁠. 그래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길가에 내려놓고 막손이 무릎을 꿇었다⁠.

막손은 망자를 몰랐다⁠. 이름도⁠, 고향도⁠, 누구를 두고 왔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는 것만 소리에 실었다⁠. 운하 셋째 다리 밑⁠, 거적 한 장⁠, 노를 쥐어 가운데가 패인 손바닥⁠, 장마에 불어난 물이 다리 기둥을 치는 밤마다 이 소리를 듣고 잤을 귀⁠. 그리고 망자를 메고 가는 다섯 가운데 하나가 천하제일이라는 것은 소리에 넣지 않았다⁠.

언덕길을 지나던 짐꾼 둘이 멈췄다⁠. 운하 쪽에서 올라오던 뱃사공 셋이 멈췄다⁠. 뱃사공 하나가 관을 보다가 다리 밑 영감이냐고 물었다⁠. 막손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 뱃사공이 노를 땅에 세우고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젊어서 같은 배를 탔다고 했다⁠. 이름을 물었다⁠. 뱃사공은 다들 이 사람을 셋째 다리라고만 불렀다고 했다⁠.

노잣돈은 동전 넷이었다⁠. 막손은 이것을 관 위에 올려 같이 묻었다⁠.

흙을 덮을 때 노인이 삽을 들었다⁠. 두건 아래 그을음 낀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흙을 세 삽 뜨고 삽을 맹구에게 넘겼다⁠.

“⁠내 장례보다 낫다⁠.⁠”

노인은 그렇게만 말했다⁠.

이 하루로 상여는 하루가 늦었다⁠. 노잣돈 주머니는 동전 한 닢 없이 비었다⁠. 하관 날은 그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

이틀 뒤 오후⁠, 막손은 운향과 둘이서 먼저 태산 남쪽 기슭 마을로 갔다⁠. 관을 내릴 자리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노인의 아내가 묻힌 마을 선산이 거기 있었다⁠.

마을 어귀에 개울이 흘렀고⁠, 이 위에 돌다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다리 건너가 마을이었다⁠. 다리 이쪽 개울가 풀밭에는 천막이 열 개 넘게 서 있었다⁠. 깃발이 꽂혀 있었다⁠. 혈수문의 흰 깃발⁠, 양주에서 본 사파 깃발 넷⁠, 그리고 막손이 처음 보는 정파 검문들의 깃발이었다⁠. 칼자루에 흰 천을 감은 사람들이 천막 사이를 오갔다⁠. 백 명은 넘었다⁠. 무한에서 만장을 베어 간 젊은 검객도 이 사이에 앉아 칼을 닦고 있었다⁠.

다리 한가운데에 기무광이 서 있었다⁠. 청면이 뒤에 있었다⁠. 그리고 다리 건너편 끝에 마을 사람 스무 명이 몽둥이와 쇠스랑을 들고 서 있었다⁠. 맨 앞에 수염이 흰 촌장이 있었다⁠.

막손이 다리 앞에 서자 촌장이 먼저 소리쳤다⁠.

“⁠염백수 장례는 이 마을 선산에 못 들이오⁠!⁠”

“⁠그 어른 아내가 거기 묻혀 있소⁠. 그 어른이 이 마을에서 났소⁠.⁠”

“⁠떠난 지 쉰 해요⁠! 쉰 해 동안 한 번 안 온 사람이 죽어서 오는데⁠, 저 칼 찬 놈들을 백 명이나 달고 오오⁠. 선산에 들이면 저놈들이 다 선산으로 들어오오⁠. 마을 조상 무덤 사이로 칼 든 놈들이 밟고 다니오⁠. 못 들이오⁠!⁠”

막손은 다리 위의 기무광을 보았다⁠. 기무광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할 말을 이미 다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운향이 막손 옆으로 나섰다⁠.

“⁠촌장 어르신⁠, 선산 한 귀퉁이 빌리는 값을 치를게⁠. 얼마면 돼⁠?⁠”

“⁠돈 문제가 아니오⁠!⁠”

“⁠그럼 뭔데⁠. 쇠스랑 들고 백 명이랑 싸울 거야⁠? 쇠스랑 몇 개야⁠. 스물⁠? 저쪽은 칼이 백 자루야⁠. 우리 편이 돼⁠. 그게 셈이 맞아⁠.⁠”

촌장이 운향을 보다가 막손을 보았다⁠.

“⁠저 아낙은 누구요⁠?⁠”

“⁠빚쟁이요⁠.⁠”

“⁠빚쟁이가 왜 상여를 따라오오⁠?⁠”

“⁠돈을 다 받고도 따라왔소⁠. 그건 나도 모르겠소⁠.⁠”

촌장은 대답 대신 쇠스랑을 고쳐 쥐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리 건너편을 한 뼘씩 좁혀 섰다⁠.

기무광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선산에 못 들면 길가에 묻는 것이 법이지⁠. 상두꾼이면 알 걸세⁠.⁠”

막손은 알았다⁠. 산에 못 가는 상여는 길가에 묻었다⁠. 객사한 사람⁠, 마을이 받아 주지 않는 사람이 그랬다⁠.

“⁠이 다리 앞이 길가네⁠. 하관은 여기서 하게⁠. 관 앞 첫자리는 여기⁠, 내가 선 자리고⁠.⁠”

“⁠하관할 땅이 없으면 하관 날도 없소⁠. 약조는 하관 날이오⁠. 그날이 안 오면 약조도 아직이오⁠.⁠”

기무광이 처음으로 웃었다⁠. 소리 없이⁠, 입꼬리만⁠.

“⁠그럼 상여는 이 다리를 못 건너네⁠. 길막이를 아직 다 못 갚았으니⁠. 길 위에 영원히 있게⁠. 길 위의 관은 썩지⁠.⁠”

기무광은 다리 한가운데에 그대로 섰다⁠. 비킬 생각이 없는 자리였다⁠. 다리 이쪽의 백 명이 칼을 닦던 손을 멈추고 막손을 보았다⁠.

막손과 운향이 고개 쪽으로 돌아설 때⁠, 개울가 버드나무 그늘에서 청면이 걸어 나왔다⁠. 막손과 나란히 몇 걸음을 걸었다⁠. 운향이 채를 고쳐 쥐었다⁠. 청면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그 노인⁠.⁠”

쇠를 긁는 목소리였다⁠. 막손은 걸음을 늦췄다⁠.

“⁠나를 두 번 살렸다⁠. 형주 강가에서 한 번⁠. 의창 골목에서 한 번⁠.⁠”

“⁠알고 있소⁠.⁠”

“⁠문주도 안다⁠. 문주는 겨루면 진다⁠. 그것도 안다⁠.⁠”

청면은 거기서 멈췄다⁠. 푸른 칠 아래 눈썹의 흉이 비쳤다⁠.

“⁠그래도 겨룬다⁠. 내일⁠.⁠”

청면은 이 말만 하고 버드나무 그늘로 돌아갔다⁠. 운향이 막손의 옆구리를 찔렀다⁠.

“⁠저거 지금 편들어 준 거야⁠, 겁준 거야⁠?⁠”

막손도 알 수 없었다⁠.

*

이날 밤 빈소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개 위 소나무 아래였다⁠. 마을 쪽에서 천막의 불빛 열몇 개가 개울을 따라 점점이 켜져 있었다⁠.

떡보가 먼저 관 옆에 가서 엎드렸다⁠. 품에서 마지막 쑥떡 하나를 꺼내 바닥 널 틈으로 밀었다⁠. 널 안쪽에서 손이 나와 떡을 만지더니 도로 밀어냈다⁠.

“⁠마지막 떡이냐⁠.⁠”

“⁠예⁠. 성도에서 쪄 온 게 이게 끝이에요⁠. 장마에 불었다 말랐다 해서 돌이 됐어요⁠.⁠”

“⁠그럼 네가 먹어라⁠. 내일 아침에 울려면 배가 불러야 한다⁠. 무서우면 배고프다며⁠.⁠”

떡보는 떡을 들고 한참 있다가 반으로 쪼갰다⁠. 반은 자기 입에 넣고⁠, 반은 다시 널 틈으로 밀었다⁠. 이번에는 손이 받아 갔다⁠.

막손은 관 옆에 앉아 다 말했다⁠. 다리⁠, 촌장⁠, 백 명⁠, 길가의 하관⁠. 초아와 떡보와 맹구와 운향과 젊은 상두꾼이 둘러앉아 들었다⁠. 바닥 널이 열려 있었다⁠. 노인이 관 안에 누운 채로 들었다⁠.

“⁠내가 나가겠다⁠.⁠”

노인이 말했다⁠.

“⁠내일 아침⁠, 다리 앞에서⁠. 그놈하고 겨룬다⁠.⁠”

“⁠그러면 영감은 관에 숨었다 나온 사람이오⁠.⁠”

“⁠그래⁠, 숨었다 나온 사람⁠. 그게 나다⁠. 그러니 나가서 그렇게 말하면 된다⁠.⁠”

초아가 입을 열려 했다⁠. 노인이 손을 들어 막았다⁠.

“⁠막손아⁠.⁠”

노인이 처음으로 막손의 이름을 불렀다⁠. 성도에서부터 상두꾼이라고만 불렀다⁠.

“⁠우리 할멈 무덤이 저 마을 선산 맨 위쪽 소나무 아래 있다⁠. 무덤 오른쪽 상석 밑을 한 자만 파면 항아리가 나온다⁠. 은자 사백오십 냥이다⁠.⁠”

막손은 대답하지 못했다⁠.

“⁠네 것이다⁠. 나를 묻든 못 묻든⁠. 성도에서 관을 넓혀 준 값⁠, 동문에서 길막이를 갚은 값⁠, 이천 리 동안 만두 넣어 준 값이다⁠. 빚은 갚고 간다⁠.⁠”

노인은 바닥 널 쪽으로 손을 뻗어 널을 끌어다 닫았다⁠. 닫히기 직전⁠, 안에서 마지막 말이 새어 나왔다⁠.

“⁠초아야⁠. 내일 아침 뚜껑은 네가 정해라⁠. 나는 안에 있겠다⁠.⁠”

널이 닫혔다⁠. 관 안이 조용해졌다⁠.

초아는 무릎 위에 흰 깃발을 펼쳐 놓고 있었다⁠. 깃발을 보다가 막손을 보았다⁠.

“⁠그쪽은요⁠?⁠”

막손이 초아를 보았다⁠.

“⁠제가 열면⁠, 그쪽 약조는 지켜지는 거예요⁠. 하관 날⁠, 상주가 열고 그 다음이 기무광이니까요⁠. 오백 냥도 이제 받았고요⁠. 그럼 그쪽은 내일⁠, 뭘 위해서 그 관을 메요⁠?⁠”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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