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10자)

제녕 의장

관 속의 천하제일고수가 자꾸 배고프다고 한다 · 강묵현

두건이 벗겨졌다⁠.

그을음이 묻은 두건 아래에서 나온 얼굴은 하얗고 둥글었다⁠. 볼이 불룩했다⁠. 입 안에 쑥떡이 반쯤 들어가 있었다⁠.

떡보였다⁠. 방금 어깨를 보이고 지나간 얼굴이었다⁠.

떡보는 기무광과 눈이 마주치자 떡을 삼키려 했고⁠, 떡은 반만 넘어갔다⁠. 가슴을 치며 컥컥거렸다⁠. 운향이 뒤에서 떡보의 등을 주먹으로 세 번 내리쳤다⁠. 떡 덩어리가 둑 흙에 떨어졌다⁠. 떡보는 이것을 내려다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아까운데⁠…⁠…⁠.⁠”

기무광은 떡보의 저고리 깃을 다시 젖혔다⁠. 어깨 위에 굳은살이 주먹만 하게 솟아 있었다⁠. 열다섯 해 상여 채가 앉은 자리였다⁠. 조금 전에 본 이 굳은살이었다⁠. 기무광은 손을 거두고 뒤채 왼쪽을 돌아보았다⁠. 떡보가 서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떡보는 채 옆에 선 사람들을 다시 셌다⁠. 막손⁠, 맹구⁠, 운향⁠, 젊은 상두꾼⁠, 떡보⁠. 그리고 상주 자리의 초아⁠.

“⁠하나가 줄었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갑문의 물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기무광은 둑 끝⁠, 물가 쪽에 놓인 관으로 걸어갔다⁠. 관 둘레의 둑 흙이 젖어 있었다⁠. 갑문 물보라에 젖은 것인지⁠, 무언가 무거운 것이 물로 굴러떨어지며 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관 앞쪽 채 끝을 한 손으로 잡고 한 치 들어 올렸다⁠. 성도 동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막손은 숨을 쉬지 않았다⁠.

기무광이 관을 내려놓았다⁠.

“⁠동문에서 잰 것보다 반 근이 가볍군⁠.⁠”

기무광은 손을 털었다⁠.

“⁠만두를 덜 드셨나 보네⁠.⁠”

관 속에서는 기척 하나 없었다⁠. 기무광은 일곱 매듭이 감긴 뚜껑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손바닥 자국 위로 기무광의 그림자가 겹쳤다⁠.

“⁠관 밖에서 뵙고 싶었네⁠. 관 밖에 계신 분에게는 관 뚜껑의 도리가 닿지 않으니⁠. 갑문 둑에서 두건 벗은 천하제일을 갑문지기와 뱃사람 백 명이 보았으면⁠, 강호는 거짓 장례를 다 알았겠지⁠.⁠”

기무광은 막손을 돌아보았다⁠.

“⁠관 속으로 돌아가셨으니 오늘은 내가 졌네⁠. 산동 땅에서 뵙지⁠. 하관 날 첫자리⁠, 잊지 말게⁠.⁠”

기무광은 청면을 데리고 둑을 내려갔다⁠. 청면이 한 번 돌아보았다⁠. 관이 아니라 떡보를 보았다⁠. 떡보는 둑 흙에 떨어진 떡을 주워 털고 있다가 이 눈과 마주쳐 떡을 도로 떨어뜨렸다⁠.

*

이날 밤 운하 둑 아래에서⁠, 막손은 관 옆에 엎드려 바닥 널을 밀었다⁠. 안에서 젖은 냄새가 났다⁠. 노인은 돌 망태 대신 갑문 물보라에 젖은 헌 수의와 만장 조각을 깔고 누워 있었다⁠.

“⁠돌은 다 물에 넣었소⁠?⁠”

“⁠다 넣었다⁠. 등에 깔린 놈 하나를 빼느라 숨이 찼다⁠. 그놈이 반 근 모자란다고 했지⁠. 초아가 만두를 다섯으로 줄인 값이다⁠.⁠”

막손은 웃지 않았다⁠. 노인도 웃지 않았다⁠.

“⁠그놈이 관 밖에서 날 보고 싶다고 했다⁠.⁠”

“⁠들었소⁠.⁠”

“⁠하관 날 그놈이 뚜껑 앞에 서면⁠, 내가 나간다⁠. 관 밖으로⁠. 그놈하고 겨루고 끝낸다⁠.⁠”

“⁠그러면 강호는 염백수가 관에 숨었다가 들켜서 나왔다고 하오⁠. 겨뤄서 이기든 지든⁠.⁠”

“⁠그럼 네 방도는 뭐냐⁠. 동문에서부터 이천 리 동안 찾겠다던 방도⁠.⁠”

막손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 널을 도로 닫았다⁠. 닫기 전에 만두 다섯 개를 넣었다⁠. 초아가 정한 수였다⁠. 노인은 이것을 세지 않고 받았다⁠.

*

산동 땅에 들어서자 운하 둑의 흙빛이 누레졌다⁠. 제녕은 운하가 산동 한가운데를 지나는 큰 고을이었고⁠, 거기서 태산까지는 뭍길로 사흘이었다⁠.

나루에서부터 칼 찬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셋씩 다섯씩 무리를 지어 북쪽 길로 올라가고 있었다⁠. 깃발을 든 무리도 있었고⁠, 깃발 없이 칼자루에 흰 천을 감은 무리도 있었다⁠. 상복의 흰 천이었다⁠. 원수의 장례에 간다는 표시였다⁠.

이 가운데 낯익은 등이 하나 있었다⁠. 둘둘 만 흰 천을 등에 진 젊은 검객이었다⁠. 무한 저잣거리에서 만장 한 폭을 베어 간 사람이었다⁠. 검객이 맨상여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형 무덤에 만장을 꽂고 왔소⁠. 이건 남은 반이오⁠.⁠”

검객은 등의 흰 천을 턱으로 가리켰다⁠.

“⁠태산 아래서 원수 얼굴을 보고 나면⁠, 그 자리에 이걸 꽂고 돌아가겠소⁠. 다들 그러려고 가오⁠. 하관 날 상주 다음 자리가 혈수문 문주라고⁠, 산동 찻집마다 그 말뿐이오⁠.⁠”

검객은 고개를 숙여 상여에 절하고 북쪽 길로 올라갔다⁠. 막손은 이 등이 칼 찬 무리 속에 섞여 안 보일 때까지 서 있었다⁠. 이천 리 뒤로 미룬 약조가 사흘 앞으로 와 있었고⁠, 이 약조를 보러 강호가 먼저 가 있었다⁠.

막손은 제녕 나루에 상여를 내리고 혼자 고을을 걸었다⁠. 걸으면서 셌다⁠. 사흘 뒤면 태산 아래 마을이다⁠. 하관 날⁠, 상주가 일곱 매듭을 풀고 뚜껑을 연다⁠. 상주 다음 자리는 기무광이다⁠. 기무광은 관 속의 얼굴을 본다⁠. 살아서 숨 쉬는 얼굴을⁠. 이 순간 거짓 장례가 강호 앞에 드러나고⁠, 노인은 도망친 자가 되고⁠, 초아는 도망친 자의 손녀가 된다⁠. 오백 냥은 없다⁠. 성도 상여계는 산 사람을 멘 상여계가 된다⁠.

관 속에 죽은 노인이 있으면 달랐다⁠.

제녕 북문 밖 의장은 흙담에 둘러싸인 낮은 집이었다⁠. 객지에서 죽어 거둘 사람이 없는 시신을 고을이 맡아 두었다가 묻어 주는 곳이었다⁠. 문간에 들어서기도 전에 냄새가 먼저 나왔다⁠. 막손은 이 냄새를 스무 해 동안 맡아 왔다⁠.

의장 지기는 쉰 남짓의 외눈 사내였다⁠. 의장 지기는 막손의 행색을 보고 상두꾼인 것을 알아보았다⁠.

“⁠어느 집 시신을 찾으러 왔소⁠?⁠”

“⁠늙은 남자⁠. 일흔 넘은⁠. 키 작고 마른⁠.⁠”

의장 지기가 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찾는 시신이 아니라 고르는 시신이구먼⁠.⁠”

의장 지기는 막손을 안쪽 칸으로 데려갔다⁠. 거적 셋이 흙바닥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가운데 거적을 들추었다⁠. 운하 다리 밑에서 발견된 늙은 걸인이었다⁠. 닷새 전이었다⁠. 장마철이라 얼굴이 이미 부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막손은 이 얼굴을 오래 보았다⁠. 키가 노인과 비슷했다⁠.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평생 무언가를 쥐고 산 손이었다⁠. 무엇을 쥐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얼마요⁠.⁠”

“⁠의장 시신은 고을 것이라 팔 수가 없소⁠.⁠”

“⁠묻어 주는 값을 내겠소⁠. 고을이 묻는 것보다 잘 묻어 주겠소⁠.⁠”

의장 지기가 콧바람을 뿜었다⁠.

“⁠고을은 거적에 싸서 공동묘에 던지오⁠. 그보다 못 묻을 수는 없지⁠.⁠”

“⁠열 냥⁠.⁠”

“⁠스무 냥⁠.⁠”

“⁠열넷⁠.⁠”

“⁠열여덟⁠. 그리고 내가 이걸 본 적이 없는 값으로 둘⁠.⁠”

“⁠이 노인 이름은 아시오⁠?⁠”

“⁠모르오⁠. 운하 셋째 다리 밑에서 거적 덮고 자던 사람이오⁠. 사람들은 다리 밑 영감이라고 했소⁠.⁠”

막손은 이 다리를 기억해 두었다⁠. 이름 대신 기억할 것이 이것밖에 없었다⁠.

막손은 늙은 상두꾼이 쥐여 주고 간 열 냥 덩이를 꺼냈다⁠. 거기에 노잣돈 주머니를 털었다⁠. 스무 냥이 겨우 채워졌다⁠. 주머니가 비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떡보가 거적을 보고 얼굴이 하얘졌다⁠.

“⁠형님⁠, 시⁠, 시신을 사요⁠? 돈 주고요⁠?⁠”

“⁠상여계는 늘 시신을 메고 돈을 받았다⁠. 이번엔 거꾸로다⁠.⁠”

“⁠아씨는요⁠? 아씨도 아세요⁠?⁠”

막손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향까지 거짓말 하나 없이 가겠다고 약조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말을 안 했을 뿐이었다⁠. 떡보가 이 얼굴을 보더니 아무것도 묻지 않고 거적의 발치 쪽을 들었다⁠. 들고 나서 한참 뒤에⁠, 품에서 쑥떡 하나를 꺼내 거적 위에 얹었다⁠. 저승 가는 길에 드시라고⁠, 반함은 못 해 드리니 이거라도 드시라고 했다⁠. 막손은 이 떡을 치우지 않았다⁠.

*

같은 시각⁠, 초아는 제녕 운하 객잔 이층에 앉아 있었다⁠.

기무광이 사람을 보내 상주에게 차 한 잔을 청했다⁠. 막손이 없는 사이였다⁠. 초아는 운향을 데리고 갔다⁠. 운향은 계단 아래에서 상여 채를 세워 들고 기다렸다⁠. 누가 올라가면 다리부터 부러뜨리겠다고 했다⁠.

기무광은 찻잔 두 개를 놓고 초아 맞은편에 앉았다⁠. 창밖으로 운하 위 짐배들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할아버님이 다 말씀하셨겠지⁠.⁠”

초아는 찻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당신 아버지가 우리 부모님을 불태웠어요⁠. 형주 강가 마을에서요⁠. 약방째로요⁠.⁠”

“⁠알고 있네⁠.⁠”

기무광은 이 말을 피하지 않았다⁠.

“⁠그 마을이 정파 편에 서서 혈수문 사람 열둘을 독으로 죽였다고들 했네⁠. 약방에서 나온 독이라고⁠. 사실인지는 나도 모르네⁠. 아비는 그 말을 믿었고⁠, 마을을 태웠지⁠. 그날 밤 나도 거기 있었네⁠.⁠”

초아의 손이 무릎 위에서 주먹이 되었다⁠.

“⁠그래도 내 아비네⁠. 자네 할아버지가 자네 할아버지인 것처럼⁠.⁠”

기무광은 품에서 흰 천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낡은 무명 깃발이었다⁠. 한쪽 귀퉁이가 검붉게 굳어 있었다⁠.

“⁠강화의 흰 깃발이네⁠. 내 아비가 그 아래서 죽었고⁠, 이 얼룩이 그때 것이네⁠.⁠”

초아는 깃발을 보았다⁠. 손을 대지 않았다⁠.

“⁠상주에게 하나를 청하겠네⁠. 하관 날까지 기다리지 말고⁠, 태산 아래 마을에 들기 전에 길 위에서 뚜껑을 열어 주게⁠. 상주의 손으로⁠. 그분이 살아 계신 것을 강호가 보면⁠, 나는 그분과 강호 앞에서 정식으로 겨루겠네⁠. 원수는 그분과 나 사이에서 끝내고⁠, 혈수문은 염가 피붙이에게 원수를 묻지 않겠네⁠. 이 깃발에 대고 약조하지⁠.⁠”

“⁠할아버지랑 겨루면⁠, 누가 이겨요⁠?⁠”

“⁠모르네⁠. 그분은 일흔넷이고⁠, 나는 쉰이네⁠. 그분은 천하제일이고⁠, 나는 아비를 묻은 날부터 밤마다 그분 하나만 생각하며 손바닥을 갈았네⁠. 모르니까 겨루는 거지⁠.⁠”

“⁠안 열면요⁠?⁠”

“⁠태산 아래 마을에는 이미 사람을 보냈네⁠. 내가 아니어도 정사대전에서 그분께 사람을 잃은 문파들이 그 마을로 가고 있네⁠. 하관 날에는 강호가 다 거기 있을 걸세⁠. 그날 내가 보네⁠. 그때 거짓 장례가 강호 앞에 드러나면 그분은 원수 앞에서 관에 숨은 사람이 되고⁠, 강호는 그분 대신 자네를 보네⁠. 원수는 핏줄로 내려가네⁠. 요즘 강호가 다 그렇네⁠.⁠”

기무광은 깃발을 개어 초아 쪽으로 밀었다⁠.

“⁠상주가 정하게⁠. 관 뚜껑은 상주만 여니까⁠.⁠”

초아는 한참 앉아 있었다⁠. 창밖의 짐배 하나가 갑문 쪽으로 사라질 때까지였다⁠. 깃발을 집어 품에 넣었다⁠. 찻잔에는 끝내 손을 대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오자 운향이 채를 내리고 물었다⁠.

“⁠뭐래⁠?⁠”

“⁠할아버지랑 겨루겠대요⁠. 제가 뚜껑을 열면요⁠.⁠”

“⁠그래서 열 거야⁠?⁠”

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운향은 더 묻지 않았다⁠. 둘은 해가 지는 운하 둑을 따라 빈소로 걸었다⁠.

*

빈소는 제녕 나루 옆 소금 창고 처마 밑이었다⁠. 맨상여가 받침 위에 놓여 있었고⁠, 향 하나가 타고 있었다⁠. 맹구와 젊은 상두꾼은 나루에 저녁거리를 사러 나가 있었다⁠.

초아가 처마 밑으로 들어서는데 창고 뒷문이 열렸다⁠.

막손과 떡보가 무언가를 메고 들어오고 있었다⁠. 거적이었다⁠. 거적 양 끝을 둘이 하나씩 들었고⁠, 가운데가 사람 몸 하나만큼 처져 있었다⁠. 거적 사이로 맨발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 부어서 검푸른 발이었다⁠.

냄새가 먼저 초아에게 닿았다⁠. 약방에서 수없이 맡은 냄새였다⁠. 중경 나루에서 관에 코를 대고 찾던⁠, 당시에는 없어서 이상했던 바로 이 냄새였다⁠.

막손이 초아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떡보가 거적 발치를 놓칠 뻔했다⁠.

초아의 품에서 흰 깃발 끝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막손의 눈이 거기에 갔다⁠. 초아의 눈은 거적에서 비어져 나온 검푸른 발에 가 있었다⁠.

“⁠그건 누구예요⁠?⁠”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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