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494자)

뚜껑

관 속의 천하제일고수가 자꾸 배고프다고 한다 · 강묵현

막손은 이 물음에 날이 샐 때까지 대답하지 못했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이 트고⁠, 마을 쪽 개울가 천막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오를 무렵에야 입을 열었다⁠. 초아는 밤새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상두꾼은 한 번 멘 상여는 산에 닿을 때까지 메오⁠.⁠”

초아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못 닿았소⁠. 길 한복판에서 관 옆에 쓰러졌소⁠. 그 상여를 끝까지 멘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그래서 나는 메오⁠. 돈은 그다음이오⁠.⁠”

“⁠제가 다리 앞에서 열면요⁠?⁠”

“⁠그건 상주 일이오⁠. 나는 다리까지 메고 가오⁠. 다리 건너 선산까지 가게 되면 선산까지 메고 가고⁠.⁠”

막손은 일어서서 무릎의 솔잎을 털었다⁠.

“⁠아씨가 무얼 정했는지는 안 묻겠소⁠. 묻는 순간 내가 정하는 게 되오⁠.⁠”

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식 그릇을 들고 관 옆으로 가서 바닥 널을 두드렸다⁠. 널이 열렸다⁠. 만두를 하나씩 세어 넣었다⁠. 다섯에서 멈추지 않았다⁠. 여섯⁠, 일곱⁠, 여덟⁠. 열에서 멈췄다⁠.

막손은 이 수를 들었다⁠. 관 안에서 노인도 들었을 것이다⁠. 노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열 개를 다 받았다⁠.

“⁠할아버지⁠.⁠”

초아가 널 틈에 대고 말했다⁠.

“⁠할머니 만두 소에 뭐 넣었어요⁠?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맨날 그 맛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관 안에서 한참 씹는 소리만 났다⁠. 그러다 목소리가 났다⁠.

“⁠부추⁠. 돼지고기 반⁠, 부추 반⁠. 그리고 생강은 손톱만큼⁠. 너희 할미는 생강을 싫어했다⁠.⁠”

막손은 이것을 들었다⁠. 들어 두었다⁠.

*

상여를 들기 전에 손님이 왔다⁠. 청면이었다⁠. 청면은 소나무 아래 빈소 앞에서 멈췄다⁠. 칼은 차지 않았다⁠. 손에 흰 천 다섯 장이 들려 있었다⁠.

“⁠문주 말이다⁠.⁠”

쇠를 긁는 목소리가 짧게 끊어 말했다⁠.

“⁠오늘 다리 앞에서 상두꾼은 물러나라⁠. 이걸 칼자루에 감고 저쪽 천막에 서면 원수 갚으러 온 사람으로 친다⁠. 물러나면 성도 상여계는 산 사람을 멘 상여계라고 안 하겠다⁠.⁠”

청면은 흰 천 다섯 장을 빈소 앞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안 물러나면⁠, 다리 위에서 같이 본다⁠.⁠”

청면은 돌아가지 않고 기다렸다⁠. 대답을 가져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막손은 상두꾼들을 돌아보았다⁠. 묻지 않았다⁠. 각자 알아서 하라는 얼굴이었다⁠.

맹구가 제일 먼저 움직였다⁠. 한참 걸렸다⁠. 바위 위의 흰 천을 내려다보다가 이 옆에 놓인 상여 채를 집어 어깨에 걸쳤다⁠.

“⁠…형님이 메니까요⁠.⁠”

젊은 상두꾼이 뒤를 따랐다⁠. 열아홉에 상여계에 들어와 세 해 동안 막손의 선소리만 받았다⁠. 다른 소리를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운향은 흰 천 한 장을 집어 들고 뒤집어 보았다⁠.

“⁠무명이네⁠. 이거 팔면 얼마야⁠?⁠”

“⁠두목⁠.⁠”

“⁠알아⁠, 알아⁠. 품삯 덜 받았어⁠. 끝까지 안 메면 못 받잖아⁠.⁠”

운향은 흰 천을 도로 던져 놓고 채를 멨다⁠.

떡보는 흰 천과 상여 채를 번갈아 보았다⁠. 무릎이 떨렸다⁠. 품을 더듬었다⁠. 떡이 없었다⁠. 어젯밤 마지막 떡을 반으로 쪼갰다⁠.

“⁠형님⁠.⁠”

“⁠말해라⁠.⁠”

“⁠무서우면 배고프고요⁠, 배고프면 형님이 떡 사 주시잖아요⁠. 성도에서부터 그랬잖아요⁠. 저 지금 엄청 무서워요⁠.⁠”

떡보는 상여 뒤채 밑으로 기어 들어가 어깨를 넣었다⁠.

“⁠그러니까 끝나면 떡 사 주세요⁠. 쑥떡으로⁠. 세 개⁠.⁠”

청면은 바위 위의 흰 천 다섯 장을 다시 집어 들었다⁠. 떡보를 한 번 보았다⁠. 갑문 둑에서 떡을 떨어뜨리던 얼굴이었다⁠. 푸른 칠 아래 무엇이 움직였는지 막손은 볼 수 없었다⁠. 청면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내려갔다⁠.

*

해가 산마루에 올라서자 상여가 들렸다⁠. 맨상여였다⁠. 채 두 개에 오동나무 관 하나⁠, 끝에 만장 한 폭⁠. 앞채 왼쪽에 막손⁠, 오른쪽에 맹구⁠, 가운데 둘에 운향과 젊은 상두꾼⁠, 뒤채에 떡보가 혼자 두 몫을 받쳤다⁠. 초아가 상주 자리에서 향을 들고 앞섰다⁠.

어깨에 얹힌 무게는 백육십 근 하고도 만두 열 개였다⁠. 성도 동문을 나서던 아침과 거의 같은 무게였다⁠. 막손은 이 무게를 발바닥까지 내려받으며 고개를 내려갔다⁠.

길 양옆에 칼 찬 사람들이 서 있었다⁠. 개울가 천막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칼자루에 흰 천을 감은 사람들이 상여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두 줄로 늘어섰다⁠. 아무도 길을 막지 않았다⁠. 다들 다리 앞까지 따라 내려왔다⁠. 다리 앞에서 무엇이 열릴지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다리 건너편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쇠스랑을 들고 섰다⁠. 어제보다 늘어 마흔 명쯤이었다⁠. 촌장이 맨 앞이었다⁠.

기무광은 어제 이 자리⁠, 다리 한가운데에 그대로 있었다⁠. 흰 옷이었다⁠. 성도 빈소에 조문을 오던 날과 같은 옷이었다⁠. 청면이 뒤에 있었다⁠.

상여가 다리 앞 열 걸음에서 멈췄다⁠. 막손은 상여를 내리지 않았다⁠. 해가 아직 낮았다⁠. 채에서 어깨를 빼고 맹구에게 앞채를 넘긴 뒤 상여 앞으로 나갔다⁠. 다리 쪽이 아니라 개울 건너 마을 쪽을 향해 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성도 상여계 길막손이오⁠!⁠”

마을 사람들이 쇠스랑을 고쳐 쥐었다⁠.

“⁠오늘 이 상여는 망자를 위해 울지 않소⁠. 이 마을 선산에 열 해 먼저 누운 분을 위해 울겠소⁠.⁠”

막손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곡을 시작했다⁠.

막손은 염백수를 소리에 넣지 않았다⁠. 염백수의 아내를 넣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이 마을로 시집와서⁠, 칼 하나 들고 떠난 남편을 쉰 해 동안 기다린 여자⁠. 아들 하나를 이 개울가에서 키워 내보내고⁠, 이 아들이 불 속에서 죽었다는 말을 이 마을에서 들은 여자⁠. 돼지고기 반에 부추 반을 넣고 생강은 손톱만큼만 넣은 만두를 빚어 놓고⁠, 오지 않는 사람 몫을 먼저 덜어 놓던 여자⁠. 아내가 열 해 전에 저 선산 맨 위쪽 소나무 아래 혼자 누웠고⁠, 오늘 남편이 칼 백 자루를 달고 아내 곁에 누우러 왔다⁠. 막손은 이 말을 다리 건너 마을 끝까지 밀어 보냈다⁠.

다리 건너편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늙은 아낙 하나가 먼저 앞치마를 들어 얼굴을 덮었다⁠. 부추 만두를 아는 사람이었다⁠. 이 옆의 늙은 사내가 쇠스랑 자루에 이마를 댔다⁠. 촌장의 수염이 떨렸다⁠. 촌장은 쇠스랑을 땅에 세우고 한참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 누님 만두는 생강이 안 들어서 싱거웠소⁠.⁠”

촌장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우리 어머니가 그 만두를 얻어다 우리 형제를 먹였소⁠. 흉년에⁠.⁠”

촌장은 쇠스랑을 뒤로 넘겼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씩 쇠스랑을 내렸다⁠.

“⁠선산으로 오시오⁠. 그 누님 곁으로⁠. 칼 든 놈들은 다리 이쪽에 두고⁠.⁠”

다리 이쪽에서 백 명이 웅성거렸다⁠. 정파 검문 깃발 아래에서 누가⁠, 마을에 들이면 원수 얼굴을 못 본다고 소리쳤다⁠. 사파 깃발 아래에서 다른 누가⁠, 그럼 여기서 열라고 받았다⁠. 백 명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열어라⁠, 열어라⁠. 막손이 메기는 선소리보다 박자가 고르지 않았다⁠. 떡보는 뒤채를 받친 채로 꺽꺽 울면서 빈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운향이 채 밑에서 떡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울지 마⁠. 채 흔들려⁠.⁠”

“⁠울면 배고파요⁠.⁠”

“⁠떡도 없으면서 뭘 씹어⁠.⁠”

“⁠씹는 시늉이라도 해야 덜 무서워요⁠.⁠”

*

기무광은 다리 한가운데에서 비키지 않았다⁠.

막손이 일어서서 상여로 돌아가 앞채를 다시 멨다⁠. 요령을 흔들었다⁠. 상여가 다리 앞까지 나아갔다⁠. 다리 위로 한 걸음⁠, 두 걸음⁠. 기무광 앞에서 상여가 멈췄다⁠. 기무광은 상여 머리에서 팔 하나 거리였다⁠.

“⁠선산 길이 열렸소⁠. 비켜 주시오⁠.⁠”

“⁠성도 동문에서 진 빚이 있네⁠.⁠”

기무광의 목소리는 동문에서처럼 낮게 깔렸다⁠. 다리 이쪽의 백 명과 저쪽의 마흔 명이 다 들었다⁠.

“⁠하관 날⁠, 관 앞 첫자리⁠. 선산은 다리 건너네⁠. 건너면 그 누님의 마을이고⁠, 마을 사람들이 쇠스랑을 들고 내 첫자리를 막겠지⁠. 상두꾼 곡은 마을을 열었지만 내 약조는 열지 않았네⁠.⁠”

기무광은 손을 뻗어 관 뚜껑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붉은 손바닥 자국 위에 다시 이 손이 겹쳤다⁠. 이번에는 술잔도 향 연기도 없었다⁠. 막손은 어깨로 이것을 느꼈다⁠. 관 전체가 한 번 떨렸다⁠. 관 안의 노인이 이 손바닥의 기운을 받아 내고 있었다⁠.

“⁠그 누님 곁에 모시는 것은 막지 않겠네⁠. 그 전에 여기서 약조를 갚게⁠. 이 다리 위에서 하관하듯 뚜껑을 열고⁠, 상주 다음에 내가 보네⁠. 그다음엔 어디든 모셔 가게⁠.⁠”

“⁠약조는 하관 날이오⁠. 여기는 다리요⁠.⁠”

“⁠그럼 상여는 다리를 못 건너네⁠.⁠”

기무광의 손바닥 아래에서 오동나무 결이 다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다리 이쪽에서 칼집 소리가 몇 개 났다⁠. 무한의 젊은 검객이 칼을 반쯤 뽑았다⁠. 다리 저쪽에서 촌장이 쇠스랑을 도로 들었다⁠. 맹구가 앞채 오른쪽에서 이를 갈았다⁠. 막손은 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상여를 내려놓으면 싸움이었다⁠. 상여를 메고 밀면 기무광의 손바닥이 관을 뚫었다⁠.

“⁠상주예요⁠.⁠”

초아의 목소리였다⁠.

초아는 상주 자리에서 걸어 나와 상여와 기무광 사이로 들어섰다⁠. 향은 이미 다 타서 손에 대만 남아 있었다⁠. 초아는 이것을 다리 난간에 꽂았다⁠. 그리고 품에서 흰 깃발을 꺼냈다⁠.

다리 위가 조용해졌다⁠. 칼집 소리가 멎었다⁠.

“⁠이거 문주님 거죠⁠.⁠”

“⁠자네 것이네⁠. 줬으니⁠.⁠”

“⁠그럼 제가 정해요⁠.⁠”

초아가 깃발을 펼쳐 관 머리에 덮었다⁠. 검붉은 얼룩이 진 귀퉁이가 일곱 매듭 가운데 첫 번째 위에 내려앉았다⁠.

“⁠열게요⁠.⁠”

막손이 채를 쥔 채 초아를 불렀다⁠.

“⁠아씨⁠.⁠”

“⁠그쪽 약조는 그쪽이 지키세요⁠. 다리까지 메겠다고 했잖아요⁠. 메셨어요⁠. 제 약조는 제가 정해요⁠.⁠”

초아는 기무광을 보았다⁠.

“⁠대신 문주님도 지키세요⁠. 제가 열면⁠, 그 깃발 아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형주 강가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날 밤 문주님이 거기서 뭘 봤는지⁠, 여기 이 사람들 앞에서 다 말하세요⁠. 반 말고 다요⁠.⁠”

기무광이 초아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다리 이쪽의 백 명이 이 얼굴을 보았다⁠.

기무광은 관 뚜껑에서 손바닥을 뗐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상주 뜻대로⁠.⁠”

초아는 첫째 매듭에 손가락을 걸었다⁠. 막손이 삼협의 배 위에서 피 젖은 손으로 지은 매듭이었다⁠. 삼베가 굳어 있었다⁠. 손톱으로 매듭을 풀었다⁠.

하나⁠.

다리 이쪽에서 누가 숨죽여 셌다⁠.

둘⁠. 셋⁠.

관 안에서 몸이 움직이는 무게가 막손의 어깨로 올라왔다⁠. 누워 있던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가 고르게 펴졌다⁠. 노인이 관 안에서 자세를 바로 하고 있었다⁠. 막손은 이것이 일어날 준비인지 눕는 자세를 고치는 것인지 어깨로도 알 수 없었다⁠.

넷⁠. 다섯⁠. 여섯⁠.

떡보가 우는 것을 멈췄다⁠. 운향이 채를 쥔 손을 바꿨다⁠. 청면이 기무광 뒤에서 반 걸음 앞으로 나왔다⁠.

일곱⁠.

마지막 끈이 관 옆으로 흘러내렸다⁠. 이제 뚜껑을 붙잡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초아는 흰 깃발을 걷어 기무광의 손에 돌려주었다⁠. 그리고 두 손을 관 뚜껑 위에 얹었다⁠. 오른손이 붉은 손바닥 자국 위에 놓였다⁠. 초아의 손은 이 자국보다 한 마디가 작았다⁠.

기무광이 관 앞 첫자리로 한 걸음 들어섰다⁠.

초아가 뚜껑을 밀었다⁠.

오동나무가 오동나무 위를 미끄러지는 낮은 소리가 났다⁠. 뚜껑이 손가락 하나만큼⁠, 손바닥 하나만큼 옆으로 밀려났다⁠. 아침 해가 이 틈으로 비스듬히 들어갔다⁠. 다리 이쪽저쪽의 백사십 명이 동시에 목을 뺐다⁠.

틈 안쪽⁠, 빛이 닿은 자리에 늙은 얼굴 하나가 있었다⁠. 눈을 뜨고 있었다⁠. 입가에 만두 기름이 반짝였다⁠.

이 눈이 초아를 지나 기무광에게 가서 멈췄다⁠.

“⁠만두는 사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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