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16자) · 마지막 영업일

열넷

마감 시간에 오는 사람 · 오세림

십일월 이십사일 화요일. 파란세탁 마지막 영업일.

아침부터 사람들이 옷을 찾으러 왔다. 가게 닫는다는 걸 아는 단골들. 겨울 코트, 이불 커버, 교복. 정우는 옷을 내줄 때마다 무게를 봤다. 코트는 무겁고 교복은 가볍고 이불 커버는 부피만 크다. 열한 시에 지난주 결혼식 신부 어머니가 왔다. 찾아갈 옷이 없는데 왔다. 손에 보자기. 안에 이바지 떡 한 상자. 폐백 때 쓰고 남은 거라고. 치마 폭이 너무 고와서 사돈댁이 어디서 다렸냐고 물었다고. 정우는 떡 상자를 받았다. 무거웠다. 떡은 늘 생각보다 무겁다. 정우는 그걸 떡집에 가져다줬다. 미숙이 떡집에 떡을 가져오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오후 세 시가 되자 옷걸이가 반쯤 비었다. 옷걸이가 비면 가게가 넓어진다. 칠 년 동안 이 가게가 이렇게 넓은 걸 본 적이 없었다.

창고의 찾아가지 않은 옷 여든 벌은 그대로였다. 정우는 그걸 어떻게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옷걸이 맨 끝의 셔츠 두 장도 그대로였다. 이번 주 셔츠는 지난주에 맡긴 것. 그리고 열네 해 된 것. 그 사이에 크레파스 그림. 다리미 받침 옆에 종이학.

어제 오후, 조사관이 전화로 알려 주었다. 결정문이 나왔다고. 접근금지 범위가 솔빛역과 이 골목까지 넓어졌다고. 다만 서진철에게 송달되는 건 며칠 걸린다고. 송달되기 전에는 옛 결정이 기준이라고. 정우는 그 말을 들으면서 셔츠 목깃을 다리고 있었다. 다리미가 목깃 끝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여덟 시. 평소 같으면 떡집 셔터가 제일 먼저 내려가는 시각이다. 떡집 셔터가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미숙이 가게 앞에 의자 대신 떡판을 내놓았다. 떡판 위에 인절미가 쌓여 있었다. 골목 사람들 먹으라고.

여덟 시 이십 분. 약국이 간판 불을 켰다. 약사가 약국 문 앞에 나와 섰다. 흰 가운을 입은 채로.

여덟 시 반. 정우는 열쇠집 셔터를 올리러 갔다. 영감님이 이미 올려 놓았다. 영감님은 졸지 않고 가게 문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열쇠 꾸러미를 올려놓고. 오늘은 안 졸린다고 했다. 열쇠는 왜 들고 계시냐고 정우가 물었다. 영감님은 그냥, 하고 대답했다. 손에 뭘 쥐고 있어야 덜 떨린다고.

치킨집 홀에 불이 들어왔다. 남편이 배달 오토바이를 골목 한가운데에 세워 두었다. 시동을 끈 채로. 헬멧을 핸들에 걸고. 반찬가게. 유리 두 장 너머 형광등. 사장이 유리문 앞에 섰다. 미용실. 원장이 가위를 든 채 나왔다가 가위를 도로 가져다 놓고 나왔다. 편의점 옆창. 블라인드가 올라가 있었다. 점장이 오늘은 가게 밖에 나와 서 있었다. 하람은 계산대 안에. 휴대폰을 계산대 위에 세워 두고.

그리고 오늘 처음 켜진 불들. 골목 중간, 이 년 동안 비어 있던 비디오 가게 자리 옆, 셔터를 오래 내린 채였던 수선집. 할머니 혼자 하던 곳. 할머니가 오늘 셔터를 올렸다. 재봉틀 위에 스탠드 하나를 켜 두었다. 그 옆 부동산. 문구점 자리를 넘겨받은 휴대폰 가게. 부동산 옆 김밥집. 사장이 김발을 말다 말고 나왔다. 골목 맨 안쪽, 파란세탁 너머 방앗간. 방앗간 주인은 여덟 시면 잔다고 했는데 오늘은 기계를 돌리지 않고 불만 켰다. 참기름 냄새가 골목에 번졌다.

열넷.

정우는 셌다. 스위치 소리가 아니라 사람으로. 가게 열넷에 사람이 스물을 넘었다. 치킨집 아이들까지 나와 있었다. 미숙이 인절미를 하나씩 나눠 주고 있었다. 가게 앞마다 사람이 하나씩, 둘씩 서 있었다. 파란세탁 문 앞에는 정우. 불빛 열넷이 골목 입구에서 안쪽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동그라미와 동그라미가 겹쳐서 골목 바닥에 틈이 없었다. 칠 년 동안 이 골목이 이렇게 밝은 걸 본 적이 없었다. 아홉 시 전에도.

여덟 시 사십 분. 정우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옷걸이 맨 끝을 한 번 봤다. 셔츠 두 장, 그 사이 그림. 열네 해 된 셔츠를 내려 비닐째 들어 봤다. 이백이십 그램 남짓. 들고 있으니 벽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정우는 셔츠를 도로 걸었다. 오늘 이걸 내줄 것이다. 여덟 번째가 오면.

여덟 시 사십이 분. 하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역 쪽. 회색 점퍼. 출구에서 기다림. 백 미터 안.

여덟 시 사십사 분. 두 번째 문자. 흰 셔츠 나옴. 회색 점퍼 따라감. 거리 이십 미터.

정우는 문 앞에서 한 걸음 나갔다. 가로등 불빛 밖으로. 골목 입구가 보였다. 편의점 옆창 불빛 속으로 흰 셔츠가 들어섰다. 여덟 시 사십팔 분. 이 분 일찍. 윤서는 걷고 있었다. 뛰지 않고. 소매를 두 번 걷은 채.

그 뒤로 회색 점퍼가 들어섰다. 편의점 앞에서 점장이 한 걸음 옆으로 섰다. 길을 막지는 않았다. 막을 수는 없었다. 대신 그 사람 옆에서 같은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떨어져서.

정우는 윤서가 걷는 걸 봤다. 석 달 동안 이 골목에서 뛰던 사람이었다고 치킨집 부인이 말했다. 가로등 꺼진 데는 뛰고 불 켜진 데는 걷는다고.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걸었다. 뛸 데가 없었다. 골목 전체가 불 켜진 데였다. 그래서 뒤의 발소리가 더 잘 들렸을 것이다. 따라오는 발소리. 한 걸음 떨어져 따라 걷는 점장의 발소리까지.

윤서는 약국 앞을 지났다. 약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찬가게 앞. 사장이 유리문 앞에서 팔짱을 꼈다. 미용실. 수선집. 진철이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 윤서야. 골목이 밝아서 그 목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모두가 봤다. 윤서는 멈추지 않았다.

치킨집 앞에서 진철이 걸음을 빨리했다. 오토바이가 골목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었다. 진철은 오토바이 옆으로 돌아 나오면서 윤서의 팔을 잡았다. 왼팔. 걷어 올린 흰 소매 아래 맨살.

“얘기 좀 해. 오 분만.”

열쇠집 앞이었다. 영감님이 일어섰다. 무릎의 열쇠 꾸러미가 쏟아졌다. 수십 개의 놋쇠 열쇠가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모든 사람이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진철도.

정우는 뛰었다. 파란세탁에서 열쇠집까지 스무 걸음. 옆구리가 결리지 않았다. 스무 걸음 뛰는 동안 정우는 다리미를 생각했다. 이 킬로그램 사백. 칠 년. 그 무게를 매일 들었다 놓은 팔. 그 팔이 진철의 손목을 잡았다. 윤서의 팔을 잡은 손목을.

“놓으세요.”

정우가 말했다. 지난번 접수대 앞에서와 같은 말. 이번에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진철이 정우를 봤다. 광대뼈. 노랗게 다 가라앉은 자국. 진철의 다른 손이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정우 뒤에서 누가 섰다. 치킨집 남편. 옆에 미숙. 인절미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반찬가게 사장. 약사. 편의점 점장. 미용실 원장. 수선집 할머니까지. 할머니는 목에 천 줄자를 걸고 있었다. 셔터 올리면서 습관처럼 걸고 나온 것. 백 미터는 못 재는 줄자. 누구도 진철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냥 섰다. 열쇠집 앞 불빛 안에. 불빛이 사람으로 찼다.

진철의 주먹이 올라가지 않았다. 주먹을 쥔 손이 허공에서 무거워 보였다. 들어 올릴 데가 없는 무게였다. 골목 어디를 봐도 불빛 속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 사람은 그 무게를 천천히 내렸다.

사이렌은 없었다. 순찰차는 골목 입구에 조용히 섰다. 지구대 경위가 내렸다. 지난번 그 사십 대. 정우가 월요일에 지구대에 들러 오늘이 마지막 화요일이라고 말해 두었다. 경위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었다. 오늘 여덟 시 반부터 순찰차가 큰길에 서 있었다고 하람이 나중에 말했다.

경위가 걸어왔다. 불빛 열넷 사이를. 서두르지 않고.

“서진철 씨. 가정폭력 임시조치 위반, 피해자 신체 접촉.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진철이 윤서의 팔을 놓았다. 정우도 진철의 손목을 놓았다. 경위가 수갑을 꺼냈다. 진철은 저항하지 않았다. 골목을 한 번 둘러봤다. 가게마다 켜진 불. 가게마다 선 사람. 계산대 위에 세워진 휴대폰. 진철은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못했다. 맞출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모든 불빛이 그 사람을 보고 있었다.

순찰차가 떠나고 나서 골목이 잠깐 조용했다. 편의점 계산대 안에서 하람이 주저앉는 게 유리 너머로 보였다. 점장이 들어가 하람 옆에 앉았다. 휴대폰은 계산대 위에 세워진 채 아직 녹화 중이었다. 빨간 점이 깜빡였다. 점장이 손을 뻗어 그걸 껐다. 영감님이 쪼그려 앉아 쏟아진 열쇠를 줍기 시작했다. 수선집 할머니가 옆에 앉아 도왔다. 하람이 편의점에서 나와 도왔다. 하나씩. 놋쇠 열쇠. 십 그램씩. 다 모으니 영감님 두 손바닥에 수북했다. 영감님이 그걸 세다가 그만뒀다. 하나 모자라도 괜찮다고. 오늘은. 수선집 할머니가 치마 주머니에서 하나를 더 꺼냈다. 자기 발밑에 굴러와 있었다고. 영감님이 그걸 받고 한참 웃었다. 사십 년 동안 열쇠를 깎았는데 남이 주워 준 열쇠는 처음이라고.

윤서는 열쇠집 앞에 서 있었다. 왼팔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한동안 아무도 윤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들 그게 맞다는 걸 알았다. 걷어 올린 소매 아래 빨간 손자국이 보였다. 정우가 옆에 섰다. 한 걸음 떨어져서.

“괜찮아요?”

“팔이 좀.”

윤서가 소매를 내렸다. 손자국이 흰 소매 아래로 사라졌다. 아버지 셔츠 소매 아래로.

“여덟 번째예요.”

윤서가 말했다.

“알아요.”

“셔츠 안 가져왔어요. 오늘은 맡길 게 없어요. 찾기만 하려고요. 두 장 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는 주머니에서 사탕 봉지를 꺼냈다. 목요일에 받은. 은채 할머니가 준.

“이거, 은채 할머니가요. 은채 좋아하는 거래요. 할머니가 주면 안 먹을지도 모른다고.”

윤서가 봉지를 받았다. 딸기맛 막대사탕. 윤서는 그걸 한참 봤다.

“이거 은채가 제일 싫어하는 맛이에요.”

정우가 윤서를 봤다. 윤서가 웃었다. 오늘 처음.

“근데 할머니가 주면 먹어요. 할머니 앞에서만. 싫다고 하면 할머니가 서운해하니까. 여덟 살이 그걸 알아요.”

둘은 파란세탁 쪽으로 걸었다. 스무 걸음. 불빛 속에서. 치킨집 앞, 떡집 앞. 미숙이 인절미 하나를 윤서 손에 쥐여 줬다. 손에 뭘 쥐여 주면 사람은 일단 간다. 윤서는 인절미를 쥐고 걸었다.

파란세탁 앞에서 정우가 문을 열었다. 문종이 울렸다. 벽시계가 여덟 시 오십팔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윤서는 문턱을 넘자마자 옷걸이 끝을 봤다. 셔츠 두 장. 흰 셔츠, 파란 네모, 흰 셔츠. 윤서가 인절미를 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콩고물이 입가에 묻었다.

뒤에서 가로등 두 개가 꺼질 시간이 이 분 남아 있었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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