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60자) · 아홉 시

딸기 케이크

마감 시간에 오는 사람 · 오세림

아홉 시. 탁, 탁. 골목 가로등 두 개가 꺼졌다. 구청이 정한 시간. 칠 년 동안 매일 밤 그 소리가 나면 골목이 한꺼번에 어두워졌고, 파란세탁 앞 하나만 남았다.

오늘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정우는 유리문 너머를 봤다. 가로등 두 개가 꺼진 자리에 가게 불빛 열넷이 그대로 있었다. 약국 간판, 편의점 옆창, 반찬가게 유리 두 장, 미용실, 수선집 스탠드, 부동산, 휴대폰 가게, 김밥집, 치킨집 홀, 열쇠집, 떡집, 비디오 가게 자리, 방앗간. 그리고 파란세탁. 아무도 불을 끄지 않았다. 가게 앞에 선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았다. 미숙이 떡판 앞에서 인절미를 썰고 있었다. 치킨집 남편이 오토바이를 한쪽으로 치웠다. 아이들이 골목 한가운데서 뛰었다. 불빛 사이에 틈이 없어서 아이들은 어디로 뛰어도 밝은 데였다.

윤서는 접수대 앞에 서 있었다. 인절미 콩고물이 입가에 조금 남아 있었다. 정우는 그걸 말해 줄까 하다가 말았다.

정우는 옷걸이 맨 끝으로 갔다. 클립에서 그림을 뗐다. 파란 네모. 접수대 위에 폈다. 그다음 지난주 셔츠를 내렸다. 비닐 씌운 흰 셔츠. J.H. 그림 옆에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네 해 된 셔츠. 누렇게 바랜 비닐 두 겹. 두 손으로 들었다. 이백이십 그램 남짓. 셔츠를 접수대 위에 내려놓는 데 오래 걸렸다. 내려놓으면 끝이었다. 아버지가 일곱 해, 정우가 일곱 해.

“접수증 있으세요?”

정우가 물었다. 칠 년 동안 수만 번 한 말이었다. 윤서가 웃었다. 셔츠 왼쪽 주머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지난주 접수증. 다른 하나는 누렇고 얇은 종이. 반으로 두 번 접힌. 펴자 잉크가 바래 있었다. 파란세탁. 이천십이 년 삼월 십삼일 화요일. 셔츠 1. 금액 삼천 원. 그 아래 낯익은 글씨. 아버지 글씨였다. 이름 칸에 아무것도 없었다.

정우는 접수증을 받았다. 두 장. 열네 해 차이. 같은 인쇄, 같은 상호. 대표 이름만 달랐다. 김태수, 김정우.

“여기요.”

정우는 비닐을 벗겼다. 두 겹. 비닐이 삭아서 손끝에서 바스러졌다. 오래된 면 냄새. 먼지와 햇빛을 못 본 옷의 냄새. 그리고 그 밑에 아주 옅게, 무언가 다른 냄새. 정우는 그게 뭔지 몰랐다. 윤서는 알았다.

윤서가 셔츠를 받았다. 두 팔로. 얼굴을 목깃에 묻었다.

“담배 냄새예요. 아빠 거.”

윤서는 목깃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 있었다. 정우는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리미도 들지 않고, 접수증도 정리하지 않았다. 칠 년 동안 가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손이 빈 채로 서 있는 법을 그날 배웠다.

열네 해가 지나도 셔츠는 기억한다. 세탁하기 전에 맡겨진 옷이었다. 아버지는 받은 그대로 걸어 두었다. 빨지 않았다. 빨면 주인이 찾으러 왔을 때 이게 자기 옷인지 모를까 봐 그랬을지도 모른다. 정우는 그걸 오늘 처음 알았다. 아버지가 이 셔츠를 빨지 않았다는 걸.

윤서가 셔츠를 조금 떼었다. 목깃 J.H.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어머니의 수. J 끝이 왼쪽으로 말려 올라간. 그러고는 셔츠 왼쪽 가슴 주머니를 만졌다. 손끝이 멈췄다.

주머니에 무언가 있었다.

정우는 숨을 멈췄다. 세탁 전에 주머니를 확인하는 건 기본이다. 아버지는 그걸 서른네 해 지켰다. 그런데 이 셔츠는 세탁을 하지 않았다. 세탁하지 않으면 주머니를 확인할 이유가 없다. 아버지는 이 셔츠 주머니를 열어 보지 않았다. 열네 해 동안. 남의 물건은 안 본다. 아버지의 규칙.

윤서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작은 메모지. 택시 회사 로고가 찍힌. 한 번 접힌. 윤서는 그걸 폈다. 읽었다. 오래. 그러고는 정우 쪽으로 내밀었다. 읽어 달라는 게 아니라 같이 봐 달라는 손짓이었다.

볼펜 글씨. 크고 모난. 택시 운전석에서 무릎에 대고 쓴 글씨.

금요일 아침 셔츠 찾기. 윤서 생일. 딸기 케이크. 늦어도 받아 준다니까 목요일 밤에 가도 됨.

정우는 그 세 줄을 읽었다. 금요일 새벽, 신호 대기 중. 그 사람은 목요일 밤에 오지 못했다. 금요일 아침은 오지 않았다. 딸기 케이크도.

“제 생일이었어요.”

윤서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용했다.

“열일곱. 그 금요일이. 아빠가 흰 셔츠 새로 다려 입고 케이크 사 온다고 했어요. 전날 밤에. 출근하면서. 그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에요.”

윤서는 메모지를 셔츠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조심스럽게. 원래 있던 자리에. 그러고는 셔츠를 다시 두 팔로 안았다.

“엄마가 왜 못 왔는지 알겠어요. 찾으러 오면 이걸 봤을 테니까.”

가게 안이 조용했다. 밖에서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났다. 미숙이 누구를 부르는 소리. 떡 먹고 가라고.

정우는 다리미를 봤다. 받침에 세워진 이 킬로그램 사백. 칠 년 동안 들었다 놓은. 정우는 뭔가를 해야 했다. 말은 없었다. 말은 늘 없었다. 대신 손이 있었다.

“다려 드릴까요?”

윤서가 정우를 봤다.

“빨지는 않고요. 냄새 안 빠지게. 다리기만요. 금요일 아침에 찾아가시려던 거니까.”

윤서는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셔츠를 접수대 위에 내려놓았다. 조심스럽게. 두 팔을 풀었다.

정우는 다림판 전원을 다시 꽂았다. 마감 순서를 거꾸로. 스팀은 켜지 않았다. 물이 닿으면 냄새가 빠진다. 온도를 가장 낮게. 흰 면 손수건을 목깃 위에 한 장 덮었다. 깃부터. 어깨, 소매, 몸판. 아버지가 가르쳐 준 순서. 다리미를 누르지 않고 무게만 얹었다. 열네 해 동안 옷걸이에 걸려 제 무게로 늘어진 어깨선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왔다. 소매의 접힌 자국이 펴졌다. 주머니는 건드리지 않았다. 메모지가 든 채로. 다리미가 주머니 가장자리만 돌아서 지나갔다.

사 분. 셔츠 한 장에 사 분. 칠 년 동안 셔츠 수만 장을 사 분씩 다렸다. 오늘의 사 분이 제일 길었다.

정우는 셔츠를 옷걸이에 걸어 윤서에게 건넸다. 비닐은 씌우지 않았다. 윤서가 받았다. 한 손으로. 옷걸이 고리를 손가락에 걸고. 셔츠가 윤서 손끝에서 곧게 늘어졌다.

“가볍네요.”

윤서가 말했다.

“다리면 가벼워져요. 구김에도 무게가 있어서.”

윤서는 웃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묻지 않았다.

문종이 울렸다. 방앗간 주인이었다. 예순 후반. 이 골목 맨 안쪽 방앗간과 파란세탁이 든 이 층 건물의 주인.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방앗간 주인은 윤서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정우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재계약서. 석 달 전에 네가 안 한다고 한 거. 월세는 그대로 적었어. 올리려고 했는데 오늘 보니까 못 올리겠더라. 골목 불 켜 놓고 월세 올리는 놈은 없잖아.”

정우는 봉투를 받았다. 종이 몇 장. 가벼웠다. 그런데 받는 손이 떨렸다.

“저 닫기로 했어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

“그래서 오늘 가져왔지. 내일 가져오면 늦잖아.”

방앗간 주인은 그 말을 하고 골목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들, 아까 다 나한테 왔어. 반찬가게, 약국, 미용실. 다들 세탁소 없으면 어디다 맡기냐고. 역 건너편 무인 빨래방까지 이불 들고 가야 되냐고. 수선집 할머니는 자기 가게 옷 줄일 때 세탁소 다리미 빌려 썼다더라. 나 몰랐다. 이 골목에 네 가게가 그렇게 쓰이는지.”

정우는 봉투를 봤다. 윤서를 봤다. 윤서는 셔츠를 든 채 정우를 보고 있었다.

“다음 주 화요일에도 열어요?”

윤서가 물었다. 석 달 동안 정우가 한 번도 못 한 질문과 같은 모양의 질문이었다. 짧고, 대답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지는.

“은채가 토요일에 올 수도 있어요. 새 결정 나오면 센터 말고 다른 데서 만나요. 떡집 사장님이 인도자 해 준대요. 떡집이 시장으로 옮기면 거기서요. 그리고 화요일에는.”

윤서가 말을 멈췄다. 옷걸이 고리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아빠 셔츠가 아직 열 장쯤 남았어요. 옷장에. 한 장씩 맡기려고 했는데.”

정우는 서류 봉투를 열었다. 재계약서. 이름 칸이 비어 있었다. 임차인. 정우는 볼펜을 들었다. 칠 년 동안 아버지 방식대로 이름 칸을 비워 두던 손이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김정우. 적고 나서 도장이 없다는 걸 알았다. 방앗간 주인이 손도장으로 하라고 했다. 정우는 엄지를 인주 대신 다리미 받침에 묻은 파란 페인트 자국에 댔다. 오래전 간판 칠하다 떨어진 것. 파란 엄지. 계약서 위에 찍었다.

“늦어도 받아요.”

정우가 말했다. 윤서에게.

“열 장이면 열 번이요. 그다음에도요. 셔츠 없으면 그냥 오셔도 되고요.”

윤서가 웃었다. 콩고물이 아직 입가에 있었다. 정우는 이번에는 말해 주었다. 윤서가 손등으로 닦았다. 소매로 닦을 뻔하다가 아버지 셔츠라서 손등으로 닦았다.

아홉 시 사십 분. 정우는 가게 밖으로 나갔다. 윤서가 다린 셔츠를 들고 따라 나왔다. 방앗간 주인도. 골목에는 아직 사람들이 있었다. 미숙이 마지막 인절미를 나눠 주고 있었다. 하람은 편의점 옆창 앞에서 점장과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점장이 오늘 경위서는 자기가 쓴다고, 블라인드 올린 사유에 골목 행사라고 적겠다고 했다고 하람이 나중에 말했다. 열쇠집 영감님은 수선집 할머니와 열쇠를 세고 있었다. 치킨집 부인이 떡강정을 들고 돌아다녔다. 아무도 사지 않았다. 다들 공짜로 먹었다.

미숙이 정우를 보자마자 떡판을 두고 왔다. 정우 손의 서류 봉투를 봤다. 방앗간 주인을 봤다. 파란 엄지를 봤다.

“찍었어?”

“찍었어요.”

“잘했어. 나 시장 가도 세탁은 여기서 해. 떡 찌는 면포는 아무 데나 맡기면 안 돼. 너희 아버지가 삶는 법을 알았어. 너도 알지?”

“알아요.”

“그럼 됐어.”

미숙은 그 말을 하고 윤서 손의 셔츠를 봤다. 다린 셔츠. 조 기사님 셔츠. 미숙은 셔츠 소매를 손끝으로 한 번 만져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코를 한 번 훌쩍였다. 감기라고 했다.

정우는 파란세탁 앞 가로등 아래에 섰다. 칠 년 동안 이 골목에 하나 남던 불빛. 오늘은 열다섯 가운데 하나였다. 가장 흐린 하나. 가게 불빛들이 더 밝았다.

마감 순서가 남아 있었다. 계산기, 다림판 전원, 앞쪽 형광등 두 개, 그리고 문 앞 매트. 정우는 계산기를 껐다. 다림판 전원을 뽑았다. 형광등에 손을 뻗었다가 내렸다. 매트는 그대로 두었다.

골목을 봤다. 떡집도, 치킨집도, 편의점 옆창도, 수선집 스탠드도. 누구도 먼저 끄지 않았다. 다들 누가 먼저 끄는지 보고 있었다. 아무도 끄지 않았다.

아홉 시가 넘어도 불이 하나도 안 꺼졌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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