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17자) · 넥타이

조정

마감 시간에 오는 사람 · 오세림

십일월 십칠일, 일곱 번째 화요일은 조용히 지나갔다. 골목에 불이 아홉. 입구에 회색 점퍼는 없었다. 하람이 문자를 보냈다. 안 옴. 윤서는 여덟 시 오십 분에 와서 셔츠를 맡기고, 지난주 셔츠를 찾고, 은채와 종이접기를 했다며 종이학 한 마리를 접수대에 올려놓고 갔다. 종이학은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접수대 위에서 문틈 바람에 한 번 굴렀다. 정우는 그걸 다리미 받침 옆에 세워 두었다.

목요일 오후 한 시, 파란세탁 접수대 뒤에 미숙이 앉아 있었다. 앞치마는 떡집 것 그대로. 접수대 위에 떡 포장지 한 뭉치와 볼펜.

“누나, 접수증은 저기 있어요.”

“나는 포장지가 편해. 이름 쓰고, 뭐 맡겼는지 쓰고, 끝. 떡도 옷도 똑같아.”

“이름 쓰면 손님이 부담스러워해요.”

“누가 그래.”

“아버지가요.”

“너희 아버지는 틀렸어. 이름 안 쓰니까 이 사단이 났잖아.”

미숙은 포장지 맨 위에 벌써 한 줄을 적어 놓았다. 열쇠집 영감님, 바지 한 벌, 열쇠 스무 개 들어 있음. 치킨집 부인이 다림판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떡강정 한 통을 무릎에 올려놓고. 다림질은 못 한다고 했다. 대신 비닐 씌우는 건 한다고. 치킨집은 남편 혼자 본다고.

정우는 다림판을 봤다. 셔츠 열두 장이 걸려 있었다. 목요일 오후 세 시가 제일 바쁜 시간이다. 한 장에 사 분. 사십팔 분. 오늘은 그 사십팔 분이 없다.

“셔츠는 저녁에 와서 다릴게요.”

“가. 늦겠다.”

나가는데 미숙이 불렀다. 넥타이를 매 준다고. 정우는 넥타이가 없었다. 미숙이 떡집에서 남편 넥타이를 가져왔다. 택시 회사 넥타이. 남색에 작은 바퀴 무늬. 미숙이 그걸 정우 목에 매 주면서 말했다. 조 기사님도 이거 맸어. 같은 회사니까. 정우는 넥타이의 무게를 처음 느꼈다. 폴리에스테르 한 줄이 목을 조금 당겼다.

솔빛역 옆 가정법원 별관. 면접교섭센터가 있는 건물의 삼 층. 조정실은 좁았다. 창이 하나.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와 있었다. 복사 용지 냄새와 오래된 카펫 냄새가 났다. 긴 탁자 하나. 한쪽에 조정위원 둘. 가사 조사관 하나. 맞은편에 윤서. 탁자 끝에 서진철과 변호사. 그리고 벽 쪽 의자에 참고인 둘. 정우와, 진철 어머니. 둘은 한 칸 떨어져 앉았다.

윤서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늘은 소매를 걷지 않았다. 손을 덮은 소매를 탁자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었다. 정우는 그 소매를 봤다. 왼쪽 안쪽에 푸른 잉크 자국. 오늘은 없었다. 어젯밤 윤서가 이 셔츠만은 잉크를 빼 달라고 했다. 정우는 알코올로 두드렸다.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다. 옅어졌다.

진철 쪽 변호사가 먼저 말했다. 서류를 넘기며.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상대방은 이혼 후 일정한 주거 없이 원룸을 전전하고, 교대 근무로 생활이 불규칙합니다. 무엇보다 최근 수개월간 매주 화요일 밤마다 돌아가신 부친의 의류를 소지하고 인근 세탁소를 반복적으로 방문하는 등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면접교섭 시간 이후 곧바로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동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합니다.”

돌아가신 부친의 의류. 반복적으로. 정서적으로 불안정. 정우는 그 단어들을 하나씩 들었다. 목에 맨 넥타이가 조금 더 조였다. 다 사실이었다. 사실을 그렇게 이어 붙이니까 다른 사람이 됐다. 셔츠 한 장을 두 팔로 안던 사람이, 서류 위에서는 밤마다 죽은 사람 옷을 들고 헤매는 사람이 됐다.

조정위원이 윤서를 봤다.

“상대방, 사실입니까?”

“네. 사실이에요.”

윤서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떨리는 건 소매 속 손이었을 것이다. 소매가 덮고 있었다.

“아버지 셔츠를 입고 다녀요. 세탁소에 맡겨요. 매주 화요일에요.”

“이유가 있습니까?”

윤서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정우를 봤다. 벽 쪽 의자. 조정위원이 그 시선을 따라왔다.

“참고인, 세탁소 운영하시는 분이시죠.”

정우는 일어섰다. 무릎이 떨렸다. 칠 년 동안 다림판 앞에서 서 있었는데 이렇게 서 있는 건 처음이었다.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다리미도, 셔츠도. 빈손이 무거웠다.

“파란세탁 김정우입니다.”

“상대방이 매주 방문한 게 맞습니까?”

“열아홉 번 왔어요. 칠월 십사일부터 그저께까지. 한 번도 안 빠졌어요. 한 번은 아홉 시 이십 분에 왔어요. 늦게. 그날은 면접교섭이 취소됐는데도 센터에 먼저 갔다가 왔어요. 애가 진짜 아픈가 해서요.”

진철 쪽 변호사가 무언가 적었다.

“돌아가신 부친 의류라는 건요.”

“조현 씨 셔츠예요. 택시 하셨어요. 이천십이 년 삼월 화요일에 저희 가게에 셔츠를 맡기고 그 주에 돌아가셨어요. 그 셔츠가 아직 저희 가게에 있어요. 열네 해요. 저희 아버지가 못 버리셨고, 저도 못 버렸어요. 따님이 그걸 찾으러 오신 거예요. 근데 바로 찾아가면 아버지가 없다는 게 확실해질 것 같다고, 아버지 다른 셔츠를 한 장씩 맡기면서 여덟 번 채우고 나서 받겠다고 했어요. 저희 가게 닫는 날까지요.”

조정실이 조용했다. 조정위원 하나가 볼펜을 내려놓았다.

“그게 불안정한 건지 저는 모르겠어요.”

정우가 말했다. 누가 묻지 않았다.

“저희 가게는 사십일 년 됐어요. 찾아가지 않은 옷이 창고에 여든 벌쯤 있어요. 다 누군가 찾으러 오기로 했던 옷이에요. 찾으러 온 사람은 이분이 처음이에요. 열네 해 만에.”

진철이 웃었다. 소리를 내서.

“세탁소 사장이 무슨 상관이에요. 저 여자랑 무슨 사인데요, 화요일마다.”

변호사가 진철의 팔을 잡았다. 진철이 뿌리쳤다.

“간판 하나 가지고 나를 전과자로 만들려는 사람이에요, 저 사람. 합의도 안 해 주고. 우리 엄마가 돈까지 들고 갔는데.”

조사관이 서류 하나를 꺼냈다. 경찰서에서 넘어온 사건 기록. 사진 몇 장. 하람의 영상에서 뽑은 장면들. 쇠파이프, 간판, 그리고 정우의 광대뼈.

“신청인, 십일월 첫째 주 일요일 밤, 이 세탁소에 간 이유가 뭡니까. 접근금지 명령상 상대방 주거지와 직장, 그리고 면접교섭 장소 반경 백 미터였죠. 이 세탁소는 상대방이 면접교섭 후 매주 들르는 곳입니다. 신청인은 그걸 알고 있었고요.”

“몰랐어요.”

“화요일마다 솔빛역 이 번 출구에 서 계셨다는 진술이 여럿입니다. 편의점 직원, 떡집 운영자, 치킨집 운영자.”

진철의 얼굴이 붉어졌다. 목부터. 그 사람은 탁자를 쳤다. 손바닥으로. 탁자 위 물컵이 흔들렸다. 물이 넘쳐 서류 한 장을 적셨다.

“저 세탁소 새끼가 골목 사람들을.”

“신청인.”

조정위원이 말했다. 낮게. 진철이 입을 다물었다. 너무 늦게. 탁자를 친 소리가 좁은 방에 아직 남아 있었다.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들었다. 서류가 아니라 소리로.

그때 벽 쪽 의자에서 진철 어머니가 일어섰다.

“제가 말해도 될까요?”

조정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가방에서 도화지를 꺼냈다. 한 장이 아니었다. 스무 장쯤. 고무줄로 묶은. 도화지 스무 장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여자는 두 손으로 그걸 들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쿵, 작게. 여자는 고무줄을 풀었다. 크레파스 그림들이 탁자 위에 부채처럼 펼쳐졌다. 집, 해, 사람 둘. 흰 옷 입은 큰 사람과 분홍 작은 사람. 거의 모든 그림에.

“우리 집 냉장고에 붙어 있던 거예요. 오늘 다 떼 왔어요.”

여자는 진철을 보지 않았다. 조정위원을 봤다.

“우리 아들이 술 먹으면 손이 나가요. 제 아버지 닮아서. 저도 맞고 살았어요. 그래서 저 여자가 나간 거 알아요. 그걸 알면서 일 년 동안 아들 편 들었어요. 편 들 사람이 아들밖에 없어서요.”

진철이 엄마, 하고 불렀다. 여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근데 은채가 토요일에 저 세탁소에서 다리미를 들어 봤어요. 못 들었어요. 무겁다고. 엄마도 이거 드냐고. 저 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이것보다 무거운 거 들고 다닌다고. 그날 밤에 은채가 그 말을 저한테 물었어요. 할머니, 엄마가 뭘 들고 다녀? 저는 대답을 못 했어요.”

여자는 그림들을 윤서 쪽으로 밀었다.

“화요일 한 시간 반 말고요. 더 보게 해 주세요. 우리 집 말고 다른 데서 만나게요. 애 아빠가 못 오는 데서요.”

윤서가 그림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흰 옷 입은 큰 사람. 소매가 손을 덮은. 윤서는 그 그림을 보다가 자기 소매를 봤다. 손을 덮은 흰 소매. 윤서는 소매를 한 번 걷었다. 두 번. 오늘 처음으로.

조정은 성립하지 않았다. 진철이 서명을 거부했다. 변호사와 함께 먼저 나갔다. 나가면서 문을 세게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정우는 가게 문종이 흔들리던 소리와 비교했다. 너무 천천히 닫는 것과 너무 세게 닫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대신 조사관이 말했다. 오늘 기록과 영상으로 법원은 임시조치를 연장하고 범위를 넓힐 거라고. 솔빛역과 그 세탁소 골목까지. 결정문은 다음 주 월요일에 나온다고. 면접교섭은 심판으로 넘어가지만, 그 전까지 교섭 장소를 센터 말고 제삼자 인도 방식으로 바꾸도록 권고하겠다고.

다음 주 월요일. 그러면 결정문이 나온 바로 다음 날, 새 결정이 그 사람 손에 닿기 전에, 화요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종이는 늘 사람보다 늦게 도착한다. 십일월 이십사일. 파란세탁 마지막 영업일.

조정실을 나오는데 복도에서 진철 어머니가 정우를 불러 세웠다. 여자는 가방에서 사탕 한 봉지를 꺼냈다. 은채가 좋아하는 거라고 했다. 다음 화요일에 그 여자 편에 전해 달라고. 자기가 주면 할머니가 준 거라 안 먹을지도 모른다고. 정우는 사탕 봉지를 받았다. 가벼웠다. 여자는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등산 조끼 등이 지난 토요일보다 조금 펴져 있었다.

별관 계단을 내려오면서 윤서가 말했다.

“다음 주 화요일, 그 사람 올 거예요.”

“알아요.”

“결정문 나오기 전 마지막 화요일이니까요. 그 사람은 마지막을 좋아해요.”

“저도요.”

정우가 말했다. 윤서가 정우를 봤다.

“마지막 날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여덟 번째라서요.”

그날 밤 아홉 시, 정우는 파란세탁으로 돌아와 셔츠 열두 장을 다렸다. 사십팔 분. 미숙이 떡 포장지에 적은 이름들을 하나씩 접수증에 옮겨 적었다. 이번에는 이름 칸까지. 열쇠집 영감님. 신부 어머니. 반찬가게 사장님. 이름을 적으니까 옷걸이의 옷들이 조금 무거워진 것 같았다. 사람 하나씩 걸려 있는 것처럼.

8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