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57자) · 은채
다리미
마감 시간에 오는 사람 · 오세림
토요일 오후 두 시, 결혼식 한복을 찾으러 온 신부 어머니가 막 나간 참이었다. 명주 치마 열두 폭을 비닐에 싸서 두 팔로 안고 나가면서, 신부 어머니는 치마가 새것보다 곱다고 했다. 정우는 새벽 세 시에 솔로 먼지를 털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광대뼈의 퍼런 자국은 노랗게 바뀌는 중이었다.
문종이 울렸다.
예순 넘은 여자였다. 짧은 파마, 등산 조끼. 한 손에 여자아이 손을 잡고 있었다. 여덟 살쯤. 분홍 패딩. 아이는 문턱에서 멈춰 가게 안을 둘러봤다. 옷걸이에 줄지어 걸린 비닐 씌운 옷들. 다림판. 스팀다리미. 아이의 눈이 옷걸이 맨 끝에서 멈췄다. 흰 셔츠 두 장이 나란히 걸린 자리. 하나는 이번 주 J.H., 하나는 누렇게 바랜 비닐 속 열네 해 된 J.H.
“사장님이 여기 사장님이세요?”
여자가 물었다. 목소리가 날카롭지 않았다. 피곤했다. 여러 번 말을 고르고 온 사람의 목소리.
“네.”
“서진철이 엄마예요.”
정우는 다리미를 받침에 세웠다. 아이를 봤다. 아이는 여전히 옷걸이 끝을 보고 있었다. 은채. 종이에 적힌 이름. 도화지 속 크레파스 사람. 정우는 그 아이를 처음 봤는데 처음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앉으세요.”
정우는 다림판 옆 나무 의자를 내밀었다. 여자는 앉지 않았다. 대신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은행 봉투. 두툼했다. 접수대 위에 올려놓았다.
“간판 값이요. 새로 다는 데 얼마 드는지 몰라서 넉넉히 넣었어요.”
“이게 뭔데요.”
“합의해 주세요. 폭행은 사장님이 원하지 않으면 처벌 안 한대요. 경찰이 그러더라고요. 간판은 물어 드리고요.”
여자의 눈이 정우 얼굴에 멈췄다. 왼쪽 광대뼈. 노랗게 변해 가는 퍼런 자국.
“그거, 우리 아들이 그랬어요?”
“네.”
여자는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과도, 변명도. 봉투를 쥔 손가락만 조금 하얘졌다.
정우는 봉투를 보지 않았다. 여자를 봤다.
“아드님이 화요일마다 역 앞에 서 있는 건 아세요.”
“알아요.”
여자는 대답이 빨랐다.
“그게 죄예요? 애 엄마 얼굴 좀 보겠다는 게. 애 엄마가 애를 두고 나갔어요. 원룸 얻어서. 우리 아들은 애 데리고 남았고. 내가 키웠어요. 일 년 동안 내가 애 밥해 먹이고 학교 보내고. 그 여자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반 와서 그림이나 그려 주고. 그 그림을 우리 집 냉장고에 붙여요. 내가 붙여요. 애가 붙이라니까.”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러다 아이를 보고 도로 낮아졌다. 아이는 옷걸이 쪽으로 걸어가 있었다. 흰 셔츠 앞에.
“우리 아들이 잘했다는 거 아니에요. 술 먹으면 손이 나가요. 알아요. 제 아버지 닮아서. 그래서 그 여자가 나간 것도 알아요. 근데 전과가 생기면요. 애 아빠가 전과자가 되면 은채는 뭐가 돼요. 학교에서. 나중에.”
가게 안에 스팀 냄새가 남아 있었다. 방금 나간 명주 치마의 냄새. 여자는 그 냄새 속에서 숨을 한 번 골랐다. 정우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 여자 말도 맞았다. 이 가을에 만난 사람들은 다 한쪽으로는 맞았다. 반찬가게 사장, 편의점 점장, 윤서, 그리고 이 여자. 맞는 말끼리 부딪히면 소리가 안 났다. 그냥 무거웠다.
“합의는 안 해요.”
정우가 말했다. 여자의 얼굴이 굳었다.
“간판 때문이 아니에요. 간판은 현수막 걸었어요. 닭 그림 있는 걸로. 그거면 돼요. 합의를 안 하는 건 화요일 때문이에요. 아드님은 화요일에 또 올 거예요. 지구대에서 그랬어요. 화요일에 봬요. 합의하면 다음 화요일이 더 쉬워져요.”
“그럼 우리 은채는요.”
“은채는.”
정우는 아이를 봤다. 아이는 흰 셔츠 비닐에 코를 대고 있었다. 킁킁. 냄새를 맡았다. 이번 주 셔츠. 윤서가 맡긴 J.H.
“이거 할아버지 냄새다.”
아이가 말했다. 누구한테 하는 말도 아니었다.
여자가 아이를 불렀다. 은채야, 만지지 마. 아이는 만지지 않았다. 냄새만 맡았다. 그러고는 정우를 돌아봤다.
“아저씨, 우리 엄마 여기 와요?”
가게가 조용해졌다. 여자가 숨을 들이켰다. 정우는 여자를 봤다. 여자는 대답하지 말라는 얼굴도, 대답하라는 얼굴도 아니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화요일마다 와.”
정우가 말했다.
“엄마도 이 냄새 나. 엄마가 할아버지 옷 입어. 커서 소매 걷어.”
“알아요. 알고 물어봤어요.”
은채가 웃었다. 이가 하나 빠져 있었다. 앞니 옆.
“아저씨, 이거 들어 봐도 돼요?”
아이가 가리킨 것은 스팀다리미였다. 받침에 세워진. 정우는 여자를 봤다. 여자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허락이라기보다 지쳤다는 끄덕임이었다. 정우는 전원을 뽑았다. 코드를 감았다. 다리미 바닥이 아직 뜨거웠다. 정우는 다림판 위에 두꺼운 면 수건을 여러 겹 깔고 다리미를 그 위에 눕혀 식혔다. 삼 분. 여자가 기다렸다. 아이도 기다렸다. 정우는 다리미 손잡이를 아이 쪽으로 돌렸다. 바닥은 여전히 수건 위에.
“두 손으로. 바닥은 만지지 말고.”
아이가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들었다. 들리지 않았다. 한 번 더. 이 킬로그램 사백. 여덟 살 두 팔에. 아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다리미가 수건에서 한 뼘 떠올랐다가 내려앉았다.
“무거워요.”
“응. 아저씨도 아침엔 무거워.”
“엄마도 이거 들 수 있어요?”
“엄마는 이것보다 무거운 거 들고 다녀.”
아이가 정우를 봤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얼굴. 정우도 자기가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다 알지는 못했다. 그냥 그게 맞는 말 같았다. 화요일마다 역에서 여기까지 팔 분을 걸어오는 무게. 여덟 번 가운데 여덟 번을 채우겠다는 무게.
여자가 봉투를 집어 들었다. 가방에 넣었다. 넣다가 멈췄다. 봉투 대신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도화지. 둘둘 말린. 여자는 그걸 접수대 위에 폈다.
크레파스 그림. 사람 둘. 한 사람은 크고 흰 옷을 입었다. 옷이 너무 커서 소매가 손을 덮었다. 다른 사람은 작고 분홍색. 둘 사이에 이상한 네모가 하나 있었다. 파란 네모. 네모 안에 흰 글씨 같은 선들.
“지난주에 그 여자랑 그린 거래요. 냉장고에 붙이라길래 붙였는데. 이 파란 거, 뭐냐니까 엄마 오는 길에 있는 가게래요. 여기 같아서요.”
여자는 그림을 정우 쪽으로 밀었다.
“우리 집 냉장고엔 자리가 없어요. 그 여자 그림이 벌써 스무 장이에요.”
정우는 그림을 봤다. 파란 네모. 파란세탁 간판. 깨지기 전의. 크레파스를 세게 눌러 칠해서 파란색이 두꺼웠다. 도화지가 그 자리만 조금 빳빳했다. 손끝으로 만지면 크레파스가 밀려 올라왔다. 아이 눈에는 저렇게 보였다. 크고, 파랗고, 흰 선이 그어진.
“합의는 안 하시는 거죠.”
여자가 물었다.
“안 해요.”
“알겠어요.”
여자는 아이 손을 잡았다. 문으로 갔다. 문턱에서 멈췄다.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 셔츠, 우리 사돈 거죠. 조 기사님. 택시 하시던. 뵌 적은 없어요. 결혼식 날 신부 측 혼주석 빈자리에 흰 셔츠가 개어져 있었어요. 소매를 두 번 접어서. 사돈 부인이 그렇게 올려놓았더라고요. 그때는 이상한 집이다 했어요.”
여자가 나갔다. 등산 조끼 등이 조금 굽어 있었다. 아이가 뒤돌아 손을 흔들었다. 빠진 이 옆으로 웃으면서. 할머니 손에 끌려가면서도 두 번 더 돌아봤다. 문종이 한 번 울렸다.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다시 열렸다. 미숙이었다. 떡 접시 없이 맨손으로.
“방금 그 사람, 진철이 엄마지.”
“네.”
“돈 들고 왔지.”
“도로 가져갔어요.”
미숙이 접수대에 기대섰다. 한참 문 쪽을 봤다.
“저 양반도 불쌍해. 남편한테 맞고 살았대. 동네 사람들이 그러더라. 아들이 그걸 보고 컸고. 이제 손녀 키우면서 아들 편 들고. 편 들 사람이 아들밖에 없으니까.”
“누나는 모르는 게 없네요.”
“떡집이잖아. 떡 사러 오는 사람은 다 떠들고 가.”
미숙은 그 말을 하고 옷걸이 끝의 그림을 봤다. 파란 네모. 한참 보다가 코를 한 번 훌쩍였다. 감기라고 했다. 나가면서 한 번 더 훌쩍였다.
정우는 접수대 위의 그림을 오래 봤다. 그러다 그걸 들고 옷걸이 맨 끝으로 갔다. 두 셔츠 사이에 그림을 클립으로 달았다. 흰 셔츠, 파란 네모, 흰 셔츠.
월요일에 정우는 현수막 옆에 그 그림을 복사해서 한 장 더 붙일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림은 옷걸이에 있는 게 맞았다. 셔츠 두 장 사이에.
화요일, 십일월 십일. 여섯 번째.
여덟 시 반, 골목에 불이 아홉 들어왔다. 여덟 시 사십 분에 휴대폰이 울렸다. 하람이었다. 지구대에서 번호를 주고받았다. 문자는 짧았다. 회색 점퍼 담배 사 감. 입구에 서 있음. 정우는 유리문 밖을 봤다. 골목 입구, 편의점 옆창 불빛 가장자리. 회색 점퍼가 서 있었다. 들어오지 않았다. 불빛 아홉이 이어진 골목을 보고 있었다. 삼 분쯤. 그러고는 사라졌다. 여덟 시 사십사 분. 하람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 감.
윤서는 여덟 시 오십 분에 왔다. 들어오자마자 옷걸이 끝을 봤다. 그림을 봤다. 멈췄다.
“이거.”
“은채가 왔었어요. 토요일에. 할머니랑.”
윤서가 접수대를 짚었다. 짚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무 접수대가 조금 삐걱거렸다. 서진철이 짚었을 때와 같은 소리였다. 무게가 달랐다.
“뭐래요?”
“다리미 들어 봤어요. 못 들었어요. 무겁대요. 엄마도 이거 드냐고 물었어요.”
“뭐라고 했어요.”
“엄마는 이것보다 무거운 거 들고 다닌다고요.”
윤서가 웃었다. 우는 얼굴로. 이번에는 우는 쪽이 조금 더 컸다. 정우는 다림판 위 면 수건 한 장을 건넸다. 방금 다린. 아직 따뜻한. 윤서는 그걸 얼굴에 댔다. 오래.
수건 너머로 윤서가 말했다.
“할머니가 그림 줬어요?”
“냉장고에 자리가 없대요.”
윤서는 수건을 내렸다. 눈이 빨갰다. 웃었다.
“그 집 냉장고 엄청 커요.”
그러고는 수건을 접어 다림판 위에 올려놓았다. 반으로, 또 반으로.
“다음 주 목요일에 조정이에요. 가정법원. 십구일. 그 사람 쪽에서 저를 불안정하다고 할 거예요. 밤마다 죽은 아버지 옷을 들고 세탁소를 돌아다니는 여자라고. 사장님, 오실 수 있어요? 참고인으로요. 안 오셔도 돼요.”
“갈게요.”
정우는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칠 년 동안 가게를 비운 적이 없었다. 목요일 오후는 제일 바쁜 시간이다. 셔츠 한 장에 사 분. 그 사 분들을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