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43자) · 일요일 밤
간판
마감 시간에 오는 사람 · 오세림
십일월 첫 일요일 밤 열한 시. 파란세탁은 문을 닫았지만 안에 불이 하나 켜져 있었다. 정우가 한복을 다리고 있었다. 다음 주 토요일 결혼식이 있는 집에서 맡긴 것. 신부 어머니 한복 한 벌, 치마 폭이 열두 폭이다. 한복 치마는 일요일 밤에만 다린다. 가게에 손님이 안 들어와야 폭을 다림판에 끝까지 펼 수 있다. 명주 치마 한 벌은 가볍다. 오백 그램이 안 된다. 그런데 다리는 동안에는 무겁다. 한 폭을 다리는 동안 나머지 열한 폭이 다림판 끝에서 늘어져 제 무게로 당긴다. 그걸 왼팔로 받치면서 오른손으로 다린다. 아버지는 이걸 서른네 해 했다.
일곱째 폭을 다리고 있을 때 밖에서 소리가 났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보다 둔했다. 플라스틱이 쪼개지는 소리.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정우는 다리미를 받침에 세웠다. 치마 폭이 다림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정우는 그걸 잡지 못했다.
문을 열고 나갔다. 가로등 아래. 파란세탁 앞 하나 남은 가로등. 그 불빛 아래에 서진철이 서 있었다. 손에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공사장에서 주웠을 법한 녹슨 것.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파란세탁 간판은 아크릴 박스 간판이다. 안에 형광등 두 줄. 아버지가 천구백구십사 년에 바꿔 단 것. 파란 바탕에 흰 글씨. 그 파란 면 한가운데가 쪼개져 있었다. 쇠파이프 끝 모양으로 움푹. 금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안의 형광등 한 줄이 깜빡였다.
“닫을 가게니까 간판 필요 없잖아요.”
진철이 말했다. 돌아보지도 않고. 술 냄새가 났다. 많이는 아니었다. 핑계가 될 만큼만.
“내려놓으세요.”
정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차분했다. 다리미를 칠 년 든 팔이 떨리지 않았다. 떨리는 건 무릎이었다.
“화요일마다 골목에 불 켜 놓고 사람들 앉혀 놓고. 그게 뭐예요. 나 구경거리 만들려고요? 나는 내 딸 엄마 보러 온 거예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접근금지요.”
“백 미터요. 나 백일 미터에 있었어요. 재 봤어요?”
진철이 돌아섰다. 쇠파이프를 든 채. 한 걸음. 정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면 가게 문이었다. 문 안에 바닥에 흘러내린 명주 치마가 있었다.
“사장님이 뭔데요.”
“세탁소요.”
정우는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 다른 대답이 없었다. 칠 년 동안 그것 말고 다른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진철이 웃었다. 그러고는 쇠파이프를 내렸다. 바닥에 던졌다. 쇠가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소리가 골목을 길게 울렸다. 정우가 그 소리를 보느라 눈을 내린 순간, 진철의 주먹이 왔다.
왼쪽 광대뼈. 정우는 뒤로 넘어지지 않았다. 문틀에 등을 부딪쳤다. 입 안에서 쇠 맛이 났다. 두 번째 주먹이 오기 전에 누가 소리쳤다.
“찍고 있어요!”
골목 입구. 편의점 옆창 앞에 스무 살짜리가 서 있었다. 야간 알바. 휴대폰을 들고. 앞치마 이름표에 하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휴대폰을 든 팔은 떨리지 않았다.
“신고했어요! 다 찍었어요! 간판부터 다요!”
진철이 그쪽을 봤다. 정우를 봤다. 두 번째 주먹은 오지 않았다. 진철은 쇠파이프를 줍지 않고 골목 반대쪽, 주택가 쪽으로 걸어갔다. 뛰지 않았다. 뛰면 쫓기는 사람이 되니까.
지구대 순찰차는 칠 분 뒤에 왔다. 진철은 주택가 쪽 공영주차장 자기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순순히 내렸다고 했다. 재물손괴, 폭행. 하람의 영상이 있었다. 간판을 두 번 내리치는 것부터, 정우의 광대뼈까지.
새벽 한 시, 솔빛지구대. 정우는 얼음주머니를 광대뼈에 대고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람이 옆에 앉아 있었다. 편의점은 점장이 대신 보러 나왔다고 했다. 점장이 지구대까지 하람을 태워다 줬다고.
경찰은 사십 대 경위였다. 진술서를 받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 기록 있네요. 가정폭력으로 임시조치, 접근금지. 전처 폭행 전력. 근데 오늘 건은 사장님 건이라 별개예요. 재물손괴랑 폭행으로 입건하고, 오늘은 조사 받고 나갈 거예요. 주거 일정하고 직장 있으니까.”
“나가요?”
“나가요.”
경위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사장님, 저도 화나요. 근데 법이 그래요. 대신 이 영상, 그 여자분 쪽 가정법원 사건에 제출할 수 있어요. 접근금지 명령 받은 사람이 피해자 다니는 길목 가게를 부쉈다. 그게 그쪽 사건에 무게가 있어요. 오늘 건보다 거기서 더 무거울 거예요.”
정우는 얼음주머니를 내렸다. 광대뼈가 욱신거렸다. 무게. 영상 한 편이 법원에서 얼마나 무거운지 정우는 몰랐다. 간판 한 장보다는 무거웠으면 했다.
하람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사장님, 저 블라인드 올린 거요. 점장님이 알았어요. 경위서 쓰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오늘 차에서 그러시더라고요. 다음 화요일부터 옆창 블라인드 본사에 말해서 올려 두겠다고. 도난 나면 자기가 경위서 쓰겠다고.”
정우는 하람을 봤다. 스무 살. 얼굴에 여드름 자국.
“왜 찍었어요. 무서웠을 텐데.”
“무서웠죠. 근데 저 사람 화요일마다 담배 사 가면서 저한테 반말해요. 거스름돈 던지고. 그래서요.”
하람은 그 말을 하고 웃었다. 정우도 웃으려다 광대뼈가 아파서 그만뒀다.
두 시쯤 조사실 문이 열렸다. 진철이 나왔다. 형사 한 사람과. 복도를 지나다가 긴 의자 앞에서 걸음이 느려졌다. 정우를 봤다. 얼음주머니를 봤다. 하람을 봤다. 하람이 휴대폰을 쥔 손을 무릎 사이로 감췄다.
“사장님, 화요일에 봬요.”
진철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형사가 그 사람 팔을 잡고 끌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하람의 무릎이 떨리고 있었다. 정우는 얼음주머니를 하람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차가운 무게가 떨림을 조금 눌렀다. 하람이 이게 뭐냐고 물었다. 정우는 모르겠다고 했다. 사람 손에 뭘 쥐여 주면 일단 가라앉는다고, 떡집 누나가 그랬다고.
월요일 새벽 세 시, 정우는 가게로 돌아가 바닥에 흘러내린 명주 치마를 주웠다. 열두 폭 가운데 다섯 폭이 바닥 먼지를 먹었다. 명주는 물세탁을 싫어한다. 정우는 솔로 먼지를 하나씩 털었다. 손끝으로 두드려 가며. 동이 틀 때까지 걸렸다. 열두 폭을 다 다렸을 때 광대뼈가 부어서 왼쪽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치마는 다림판 위에서 가벼웠다. 그걸 옷걸이에 걸고 나서야 정우는 자기가 밤을 새웠다는 걸 알았다. 토요일 결혼식은 지켰다.
월요일 아침, 파란세탁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깨진 간판 아래. 미숙, 치킨집 부부, 열쇠집 영감님, 약사. 그리고 반찬가게 사장. 반찬가게 사장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안에 냉동 완두콩 두 봉지. 얼음주머니 대신이라고 했다. 정우 광대뼈에 대 주면서 말했다.
“내가 그랬잖아요. 유리 깨진다고.”
“간판이에요. 유리 아니고.”
“그게 그거지.”
반찬가게 사장은 완두콩 봉지를 정우 손에 쥐여 주고 간판을 올려다봤다. 오래.
“내일 화요일이죠.”
“네.”
“우리 가게도 켤게요. 유리 두 장. 깨지면 깨지는 거지. 깨지는 것보다 우리 딸이 저런 골목 걷는 게 더 싫어.”
치킨집 남편이 사다리를 가져왔다. 열쇠집 영감님이 사다리를 잡았다. 치킨집 남편은 깨진 간판 앞에 현수막을 한 장 걸었다. 가게 판촉용으로 뽑아 둔 걸 뒤집어 흰 면에 매직으로 크게 썼다. 파란세탁. 매직이 검정뿐이었다. 파란세탁인데 검은 글씨. 구석에 원래 현수막의 닭 그림이 비쳐 보였다.
“닭이 보이는데요.”
“광고비 안 받을게.”
미용실 원장이 지나가다가 멈췄다. 이 골목에서 제일 늦게 여는 가게. 원장은 현수막을 보고, 정우 얼굴을 보고, 사람들을 봤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화요일에 몇 시까지 켜 두면 되냐고.
십일월 삼일 화요일, 여덟 시 반.
골목에 불이 들어왔다. 하나씩. 정우는 셔터 소리가 아니라 불 켜지는 소리로 셌다. 스위치 누르는 소리는 다 비슷하다. 불빛이 떨어지는 자리가 다르다. 파란세탁. 떡집. 치킨집 홀. 열쇠집. 정우가 영감님 열쇠로 켰다. 반찬가게. 유리 두 장 너머 형광등. 미용실. 약국 간판. 편의점 옆창. 블라인드가 여덟 시 반부터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이 년째 비어 있는 비디오 가게 자리. 거기에도 불이 들어왔다. 건물주가 전기를 살려 두었다고 미숙이 말했다. 누가 부탁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홉.
골목 입구에서 파란세탁까지, 불빛 사이에 어두운 틈이 거의 없었다.
여덟 시 오십 분. 흰 셔츠가 들어섰다. 윤서는 입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불빛 아홉을 지나 곧장 걸어왔다. 걸으면서 현수막을 봤다. 닭 그림이 비치는 파란세탁. 깨진 간판. 그리고 문 앞에 선 정우의 얼굴. 왼쪽 광대뼈가 퍼렇게.
윤서가 멈췄다. 가로등 불빛 한가운데에서.
“그 사람이에요?”
“네.”
“저 때문에.”
“간판 때문에요. 오래돼서 약했어요.”
윤서는 웃지 않았다. 종이봉투를 든 손이 봉투를 구겼다. 오늘 맡길 셔츠가 든 봉투.
“오늘까지만 올게요. 다음부터는 안 와요. 사장님이 맞는 거, 골목이 불 켜는 거, 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안 오면 그 사람도 안 와요.”
정우는 문틀을 짚었다. 등이 아직 아팠다.
“여덟 번 채운다면서요.”
“그건 제 사정이고요.”
“이제 골목 사정이에요.”
정우는 골목을 가리켰다. 불빛 아홉. 떡집 앞 의자에 미숙과 치킨집 부인과 반찬가게 사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셋 다 이쪽을 보지 않는 척했다. 셋 다 서툴렀다. 반찬가게 사장이 들고 온 보온병에서 김이 올랐다. 미숙이 거기 뭐냐고 물었고, 반찬가게 사장이 대추차라고 했고, 미숙이 떡에는 대추차가 맞다고 했고, 치킨집 부인이 떡강정에도 맞냐고 물었다. 셋이 동시에 웃었다. 골목 한가운데서.
“저 사람들 오늘 불 켜려고 전기 요금 계산했어요. 반찬가게 사장님은 유리 두 장 계산했고요. 조윤서 씨가 안 오면 그 계산이 다 헛계산이 돼요. 여덟 번이에요. 남은 건 셋이고요.”
윤서가 정우를 봤다. 광대뼈를. 오래. 그러다 종이봉투에서 셔츠를 꺼냈다. 흰색. J.H. 정우에게 내밀었다.
“맡길게요.”
정우는 받았다. 이백 그램. 오늘은 가벼웠다. 주머니를 확인했다. 종이가 없었다. 지난주에 이어 두 주 연속 주머니가 비어 있었다. 은채에게 미안하다고 쓸 일이 오늘도 없었던 것이다. 센터는 이번에도 진단서 없는 취소 전화를 받아 주지 않았다. 정우는 빈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한 번 더 훑었다. 비어 있는 주머니가 이렇게 가벼운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