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51자) · 골목 열넷
불빛 다섯
마감 시간에 오는 사람 · 오세림
수요일 아침 아홉 시, 떡집 찜기에서 김이 올랐다. 골목이 그때 한 번 하얘진다. 정우는 셔터를 반쯤 올리다 말고 떡집으로 갔다. 칠 년 동안 아침에 떡집에 간 적이 없었다. 떡은 늘 미숙이 가져왔다.
미숙은 시루를 뒤집고 있었다. 시루떡 한 판이 통째로 도마 위에 엎어졌다. 쿵. 떡 한 판은 무겁다. 미숙은 그걸 스무 해 동안 하루에 여덟 판씩 뒤집었다. 팔뚝이 정우보다 굵었다.
“누나, 조현 씨 알았죠.”
미숙이 칼을 들다가 멈췄다. 칼을 도로 내려놓았다.
“어제 그 아가씨가 말했어?”
“아버지 셔츠 얘기만요. 누나 얘기는 안 했어요. 근데 누나가 칠월에 그 사람 이름을 먼저 알았잖아요. 떡 사면서. 이름만 알고 그 사람이 누구 딸인지는 몰랐다는 게 누나답지 않아서요.”
미숙은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오래 닦았다.
“조현 씨, 밤에 택시 나가기 전에 우리 집에서 떡 샀어. 인절미 한 줄. 밤새 운전하면 배고프다고. 이천십이 년 삼월에 그 사람 돌아가신 걸 너희 아버지한테 알려 준 게 나야. 우리 집 양반이 같은 택시 회사였거든. 그 금요일에.”
정우는 그 금요일 오후를 떠올렸다. 택시 회사 조끼를 입은 남자. 아버지와 한참 이야기를 하고 간.
“그게 누나 남편이었어요?”
“응. 그 양반도 이제 없고.”
미숙은 칼을 다시 들었다. 시루떡에 칼을 넣었다. 김이 한 번 더 올랐다.
“칠월에 그 아가씨가 처음 떡 사러 왔을 때, 목깃에 J.H.가 보이더라. 조현 씨 부인 손버릇. 내가 그걸 알지. 조현 씨 셔츠를 몇 번 봤으니까. 그래서 물었어. 혹시 조현 씨 따님이냐고. 그랬더니 울더라. 떡집 앞에서.”
“그래서 세탁소 얘기를.”
“아니. 그건 그 아가씨가 먼저 알고 왔어. 엄마 쪽지 들고. 나는 셔츠가 아직 있을 거라고만 했어. 너희 아버지가 못 버렸으니까, 너도 못 버렸을 거라고. 너네 부자는 버리는 걸 못 해.”
미숙이 떡 한 조각을 잘라 정우 손에 쥐여 줬다. 뜨거웠다.
“너한테 말 안 한 건, 그 아가씨가 스스로 물어야 된다고 생각해서야. 남의 아버지 셔츠를 내가 대신 찾아 줄 수는 없잖아. 그리고 너도 스스로 물어야 되고.”
정우는 떡을 들고 서 있었다. 이 여름과 가을 내내 골목에서 모든 걸 알고 있었던 사람이 떡을 뒤집고 있었다.
“누나.”
“또 뭐.”
“어제처럼 불 켜 두는 거요. 떡집 말고 다른 데도 해 달라고 하면, 해 줄까요?”
미숙이 칼을 멈췄다. 이번에는 오래 멈췄다.
“화요일 아홉 시에?”
“여덟 시 반부터 아홉 시 십 분까지요. 사십 분만.”
미숙이 앞치마를 벗었다.
“가자.”
치킨집은 오후 세 시에 문을 연다. 미숙은 두 시 반에 주방 뒷문을 두드렸다. 정우는 그 사이 셔츠 열한 장을 다렸다. 손이 빨랐다. 빨리 끝내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사장 부부가 닭을 손질하다가 나왔다. 남편은 어젯밤 헬멧을 벗고 둘을 봤던 그 사람이었다. 정우가 설명했다. 설명이 서툴렀다. 화요일, 여덟 시 반, 역에서 오는 손님, 회색 점퍼. 설명을 반쯤 했을 때 치킨집 부인이 말을 잘랐다.
“그 흰 셔츠 아가씨?”
“아세요?”
“화요일마다 우리 가게 앞을 뛰어가잖아. 가로등 꺼진 데는 뛰어. 불 켜진 데 오면 걷고. 나 그거 석 달 봤어. 무슨 운동하는 줄 알았네.”
남편이 앞치마 끈을 다시 맸다.
“홀 불 켜 두죠, 뭐. 어차피 주방은 켜져 있으니까. 대신 누님, 그 시간에 떡 좀 튀겨 봅시다. 떡강정. 신메뉴.”
“떡은 튀기는 거 아니야.”
“팔리면 튀기는 거예요.”
열쇠집 영감님은 가게 앞 의자에서 졸다가 깼다. 설명을 듣더니 일어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 나와서 정우 손에 열쇠 하나를 쥐여 줬다.
“이게 뭔데요.”
“우리 가게 열쇠. 나 여덟 시면 졸려. 네가 화요일에 와서 불 켜고 가.”
“영감님, 가게 열쇠를 남한테.”
“너 내 열쇠 꾸러미 칠 년 동안 한 개도 안 잃어버리고 봉투에 넣어 줬잖어. 너한테 맡기면 안 잃어버려.”
열쇠는 가벼웠다. 놋쇠 열쇠 하나. 십 그램이나 될까. 정우는 그걸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조금 처졌다. 남의 가게 열쇠를 넣고 다니는 건 처음이었다.
약국은 골목 입구, 큰길 쪽에 붙어 있다. 약국은 쉬웠다. 약사가 원래 아홉 시까지 불을 켜 둔다고 했다. 셔터만 내리고 간판 불은 켜 둔다고. 정우는 칠 년 동안 그걸 몰랐다. 약국 간판이 아홉 시 넘어서도 켜져 있다는 걸. 세탁소 앞에서만 서 있었으니까.
반찬가게 사장은 거절했다. 쉰 후반. 이 골목에서 열두 해. 계산대에서 깻잎을 묶다가 고개도 안 들고 말했다.
“남의 이혼에 골목이 왜 불을 켜요. 전기세는 누가 내고. 그리고 그 남자가 앙심 품고 골목 가게 유리창이라도 깨면요. 그건 누가 물어요. 우리 가게는 유리가 두 장이에요.”
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유리가 두 장이라는 말이 특히 그랬다. 정우는 그 유리 두 장을 봤다. 두꺼웠다. 한 장에 이십 킬로그램은 될 것이다. 깨지면 그 무게가 다 쏟아진다. 미숙이 대답하려는 것을 정우가 팔을 잡아 말렸다. 반찬가게 사장은 깻잎을 다 묶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나도 딸이 있어요. 근데 내 딸 일도 내가 다 못 지켜요. 미안해요.”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 다시 깻잎을 묶었다.
나와서 미숙이 투덜거렸다. 저 집 깻잎은 내가 맨날 사 주는데. 정우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은 게 맞았다. 불을 안 켜는 사람한테도 이유가 있었다. 이유가 있는 거절은 무겁지 않았다. 정우가 무거운 건 이유 없이 불을 켜 주는 사람들이었다. 치킨집, 열쇠집. 그 무게를 어떻게 갚을지 몰랐다.
편의점은 골목 입구다. 점장은 서른 후반. 본사 조끼를 입고 있었다. 점장은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듣고 나서 말했다.
“저희는 원래 스물네 시간 불 켜져 있어요.”
“골목 쪽 옆창이요. 거기 블라인드를 내리시잖아요. 여덟 시 반에.”
“그거 본사 지침이에요. 옆창 진열대 도난 때문에. 블라인드 올려 두면 제가 경위서 써야 돼요.”
“화요일 사십 분만요.”
“사장님, 그 남자가 우리 가게 들어와서 담배 사 가요. 화요일마다. 단골이에요. 우리가 블라인드 올리고 그 사람 쳐다보는 거, 그 사람도 알아요. 그다음에 무슨 일 나면요. 저는 여기 알바생들 지켜야 돼요. 밤에 스무 살짜리 혼자 서 있어요.”
정우는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 사람도 누군가를 지키고 있었다. 모두가 자기 쪽의 누군가를 지키고 있었다. 골목 열넷이 다 그랬다.
“알겠습니다.”
정우가 고개를 숙였다. 나오는데 계산대 안쪽에서 누가 정우를 봤다. 스무 살쯤. 앞치마에 이름표. 야간 알바였다. 오후에 교대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우를 봤다. 정우도 아무 말 안 하고 나왔다.
“셋은 됐네.”
미숙이 손가락을 꼽았다. 떡집, 치킨집, 열쇠집. 파란세탁까지 넷.
“편의점은 아쉽다. 거기가 제일 밝은데.”
“제일 밝은 데가 제일 무서운 거예요, 아마.”
정우는 그렇게 말하고 자기 말에 놀랐다. 미숙이 정우를 한 번 올려다봤다. 칠 년 동안 다리미 앞에서 말이 없던 사람이 요즘 말이 늘었다는 얼굴이었다.
시월 이십칠일 화요일.
여덟 시 반, 정우는 열쇠집 셔터를 올리고 불을 켰다. 열쇠 수백 개가 벽에 걸려 있는 가게. 형광등 아래 열쇠들이 한꺼번에 반짝였다. 치킨집 홀에 불이 들어왔다. 떡집은 원래 켜져 있었다. 미숙이 문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담요. 오늘은 의자가 세 개였다. 치킨집 부인이 떡강정 한 접시를 들고 와서 옆에 앉았다. 떡강정은 팔리지 않았다. 셋이서 다 먹었다. 조청이 이에 붙었다. 미숙은 떡은 튀기는 게 아니라고 한 번 더 말하고 한 개를 더 먹었다.
골목에 불빛이 넷. 파란세탁, 떡집, 치킨집, 열쇠집. 네 개의 동그라미가 골목 바닥에 떨어졌다. 파란세탁과 떡집 사이, 떡집과 치킨집 사이는 불빛이 겹쳤다. 치킨집과 열쇠집 사이에 어두운 틈이 한 뼘 남았다. 역 쪽으로는 아직 길게 어두웠다.
여덟 시 사십칠 분. 골목 입구 편의점 옆창에서 블라인드가 올라갔다.
정우는 그쪽을 봤다. 옆창 너머 진열대 불빛이 골목 쪽으로 흘러나왔다. 입구에서 치킨집까지 이어지던 어둠 가운데 절반이 밝아졌다. 계산대 안에 스무 살짜리가 서 있었다. 이쪽을 보지 않았다. 계산만 했다. 블라인드는 올라간 채였다.
다섯.
여덟 시 오십 분. 흰 셔츠가 골목 입구에 들어섰다.
윤서는 편의점 옆창 앞에서 멈췄다. 올라간 블라인드를 봤다. 그러고는 골목 안쪽을 봤다. 불빛 다섯이 징검다리처럼 놓인 골목. 윤서는 뛰지 않았다. 걸었다. 불빛 하나를 지날 때마다 조금씩 느려졌다. 열쇠집 앞에서 열쇠들의 반짝임을 봤다. 치킨집 앞에서 떡강정 냄새를 맡았다. 떡집 앞에서 미숙과 치킨집 부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뒤로 골목 입구에 회색 점퍼가 섰다. 편의점 옆창 불빛 가장자리. 서진철이었다. 담배를 사 들고 나온 참이었다. 그 사람은 불빛 다섯이 이어진 골목을 봤다. 오래. 떡집 앞 의자 세 개와 그 위의 사람 셋을 봤다. 치킨집 부인이 일어서서 그쪽을 똑바로 봤다. 떡강정 접시를 든 채. 진철은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 골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돌아서서 큰길 쪽으로 갔다. 정우는 그 등을 유리문 너머로 봤다. 이긴 기분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돌아서는 방식이 너무 조용했다.
파란세탁 문이 열렸다.
“오셨어요.”
“네.”
윤서의 손에 종이봉투와, 도화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도화지는 둘둘 말려 있었다. 윤서가 그걸 접수대에 폈다. 크레파스 그림. 집 하나, 해 하나. 사람 둘이 손을 잡고 있었다. 한 사람은 크고 흰 옷을 입었다. 옷이 너무 커서 소매가 손을 덮었다.
“오늘 봤어요. 은채. 한 시간 반. 센터에서 오늘은 취소 전화 받으면 진단서 내라고 했대요. 누가 센터에 와서 화요일마다 거짓말이라고 했대요. 떡집 사장님 같던데.”
정우는 유리문 밖 떡집을 봤다. 미숙이 떡강정 마지막 조각을 먹고 있었다. 이쪽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 척하는 데는 미숙이 골목에서 제일 서툴렀다.
“이건 제가 가져왔어요. 처음으로. 그 집 냉장고 말고.”
윤서가 그림을 들어 보였다. 크레파스 냄새가 났다. 도화지 한 장의 무게. 정우는 그게 가벼운지 무거운지 알 수 없었다. 윤서가 들고 있는 방식으로는 아주 무거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