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29자) · 이천십이 년

늦어도 받아요

마감 시간에 오는 사람 · 오세림

정우는 앞쪽 형광등을 껐다. 다 끄지는 않았다. 안쪽 다림판 위 등 하나만 남겼다. 밖에서 가게 안이 너무 환하게 보이는 게 싫었다. 오늘 밤에는. 유리문 너머 골목에서 미숙이 떡집 앞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담요를 덮고. 보초라고 했다. 보초는 가끔 고개를 빼고 이쪽 유리문을 들여다봤다. 눈이 마주치면 얼른 보온병을 들어 마시는 척했다. 보온병은 아까 비었다.

윤서는 다림판 옆 의자에 앉았다. 손님 의자가 아니라 정우가 다림질하다 잠깐 앉는 나무 의자. 등받이가 없었다. 윤서는 셔츠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두 팔로 안았던 셔츠를.

“이천십이 년 삼월이었대요.”

윤서가 말했다. 다림판 위 등이 윤서 얼굴 반쪽만 비췄다.

“아빠는 택시를 하셨어요. 밤에. 저녁 아홉 시에 나가서 아침에 들어왔어요. 흰 셔츠만 입었어요. 기사는 셔츠가 깨끗해야 손님이 믿는다고. 엄마가 목깃에 이니셜을 수놓았어요. 택시 회사 탈의실에서 셔츠가 자꾸 바뀌니까. J.H. 조현.”

정우는 셔츠 목깃의 두 글자를 떠올렸다. J의 끝이 왼쪽으로 말려 올라간. 수놓은 사람의 손버릇이었다.

“셔츠를 여기 맡겼대요. 화요일 밤에. 출근하기 전에. 집 근처 세탁소는 여덟 시에 닫는데 여기는 아홉 시까지 한다고. 아빠가 엄마한테 그랬대요. 골목 끝 파란 간판 세탁소는 늦어도 받아 준다고. 사장님이 한 번도 문 앞에서 돌려보낸 적이 없다고.”

정우는 그 화요일을 기억했다. 기억한다고 믿었다. 열아홉 살 봄이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아버지 가게에서 옷걸이 정리를 하던 때. 아홉 시 오 분 전에 문종이 울렸고, 택시 기사 조끼를 입은 남자가 셔츠 한 장을 들고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형광등을 반쯤 끈 채였다. 아버지가 형광등을 도로 켰다. 늦어도 받아요. 그 말을 정우는 옆에서 들었다. 남자가 웃었다. 사장님은 맨날 그 말씀이시네. 남자는 접수증을 받아 반으로 두 번 접었다. 그러고는 나갔다.

“그 주 금요일 새벽에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택시 안에서요. 심장이요. 신호 대기하다가. 손님은 안 태우고 있었대요. 다행이라고들 했어요.”

윤서는 그 말을 하고 셔츠 목깃을 만졌다. 오늘 받아 간 셔츠. 줄무늬가 희미한.

“엄마는 셔츠를 찾으러 못 왔어요. 가면 아빠가 없다는 게 확실해질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어요. 접수증을 지갑에 넣고 다녔어요. 십사 년 동안. 올봄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지갑을 정리하는데 그게 나왔어요. 그리고 그 쪽지.”

정우는 다림판 위의 연필 쪽지를 봤다. 아까 윤서가 다려 달라고 한. 아직 다리지 않았다. 골목 끝 세탁소. 파란 간판. 화요일. 아홉 시 전에. 거기는 늦어도 받아 준다고 함. 떨리는 연필 글씨. 아픈 사람이 누군가 한 말을 잊지 않으려고 적은 글씨.

정우는 그 뒤를 기억했다. 그 주 금요일 오후, 택시 회사 조끼를 입은 다른 남자가 가게에 왔었다. 아버지와 한참 이야기를 하고 갔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다림질을 하지 않았다. 다음 주 화요일 아홉 시 오 분 전, 아버지는 형광등을 끄지 않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다음 화요일에도. 정우가 왜 그러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셔츠는 옷걸이 맨 끝에 걸려 있었다. 정우는 그게 누구 셔츠인지 그날 처음 알았다. 열네 해 만에.

“그래서 칠월부터 오셨어요.”

“아빠 셔츠를 한 장씩 들고요. 엄마가 버리지 못한 게 스무 장쯤 있어요. 옷장에. 그걸 입고 다녀요. 크죠. 어깨가 한 뼘 남아요. 근데 이걸 입으면 좀 덜 무서워요. 화요일에는.”

“물어보시지 그랬어요. 그 셔츠.”

윤서가 정우를 봤다.

“사장님은 왜 제 이름 안 물어보셨어요?”

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둘은 서로 그걸 알았다. 묻지 못한 이유가 같은 모양이었다. 물어서 없으면. 물어서 끝나면.

“화요일이요.”

정우가 말했다. 화제를 돌린 게 아니었다. 아까부터 목에 걸린 말이었다.

“역 앞에 서진철 씨가 있었어요. 오늘 애가 아프다고 센터에 전화했대요. 안 아픈 거 같았어요.”

윤서의 손이 셔츠 목깃에서 멈췄다.

“알아요.”

“여덟 번이요.”

“알아요.”

“신고해요. 지금. 거짓말로 교섭 취소시킨 거, 역 앞에 서 있는 거.”

“안 돼요.”

윤서는 바로 대답했다. 생각하지 않고. 이미 여러 번 생각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람처럼.

“다음 달에 가정법원 조정이 있어요. 면접교섭 다시 정하는 거. 그 사람 쪽에서 그래요. 제가 불안정하다고. 밤마다 돌아가신 아버지 옷을 들고 세탁소에 다닌다고. 거기다 제가 경찰 부르고 소리 내면, 그 사람 말이 맞는 게 돼요. 불안정한 엄마. 조용히 가야 돼요. 조정까지만.”

“조정까지 화요일이 몇 번 남았는데요.”

“네 번이요.”

“그 네 번도 저 사람이 취소하면요.”

윤서가 입을 다물었다. 다림판 위 등이 한 번 깜빡였다. 오래된 형광등이다. 아버지 때부터.

“애는 왜 그쪽에서.”

정우가 물었다. 묻고 나서 너무 많이 물었다고 생각했다. 윤서는 대답했다.

“이혼할 때 저는 집이 없었어요. 원룸 하나. 공항 일은 교대 근무고요. 그 사람은 아파트가 있고 어머니가 애를 봐 준다고 했어요. 판사님이 그러셨어요. 아이가 사는 곳을 자주 바꾸는 건 좋지 않다고. 맞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화요일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반. 센터 놀이방에서.”

윤서는 그 말을 하는 동안 셔츠 단추를 하나씩 만졌다. 일곱 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한 시간 반이면 은채가 그림 하나 그려요. 그걸 가져가요. 저는 그림을 못 가져와요. 그 집 냉장고에 붙어 있대요.”

“조용히 가는 게 저 사람한테는 제일 좋은 거예요.”

정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셌다.

“사장님은 모르잖아요.”

윤서가 일어섰다. 셔츠를 안은 채. 등받이 없는 의자가 뒤로 밀렸다.

“사장님은 한 번도 아무것도 안 물어봤잖아요. 석 달 동안. 그런데 오늘 처음 물어보는 게, 제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예요?”

가게 안이 조용했다. 탈수기가 끝난 지 오래였다. 냉장고도 없는 가게라 윙 소리 하나 없었다. 정우는 그 조용함 속에서 그 말을 받았다. 맞는 말이었다. 이백 그램짜리 셔츠에 물 먹은 무게처럼 무거운 말이었다. 정우는 다림판을 짚었다. 다림판이 삐걱거렸다.

“맞아요.”

정우가 말했다.

“한 번도 안 물어봤어요. 칠 년 동안 아무것도요. 옷만 받았어요. 주머니에서 나온 건 봉투에 넣어서 돌려주고. 안 보고. 근데 이번엔 봤어요. 은채 이름을 봤어요. 손님 이름보다 먼저요. 그래서 이제 안 물어볼 수가 없어요.”

윤서가 멈췄다. 문 쪽으로 반쯤 몸을 튼 채.

정우는 창고 문을 열었다. 불을 켜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벽의 못에서 셔츠를 내렸다. 비닐 두 겹. 누렇게 바랜. 들고 나왔다. 다림판 위 등 아래로.

윤서가 그 셔츠를 봤다. 무릎 위의 셔츠를 한 번 내려다보고, 다시 비닐 속 셔츠를 봤다. 두 셔츠가 같은 등 아래에 있었다. 숨을 쉬지 않았다. 적어도 정우는 윤서가 숨 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일곱 해 가게 옷걸이에 걸어 두셨어요. 제가 버리자고 할 때마다 대답을 안 하셨어요. 돌아가신 뒤로 제가 창고에 일곱 해. 열네 해예요.”

정우는 비닐을 벗기지 않았다. 목깃이 비닐 너머로 보이게 들었다. J.H.

윤서가 손을 뻗었다. 비닐에 손끝이 닿았다. 그리고 멈췄다. 손을 거두었다.

“지금은 안 받을래요.”

“왜요.”

“받으면 끝날 것 같아서요. 엄마 말이 맞았어요. 가서 받으면 아빠가 없다는 게 확실해져요.”

윤서는 그 말을 하고 웃었다. 우는 얼굴로.

“여덟 번이라고 하셨죠. 가게 닫을 때까지. 남은 다섯 번 다 올게요. 한 번도 안 빠지고. 그 사람이 뭘 해도요. 마지막 날에 받을게요. 그날은 확실해져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정우는 셔츠를 다림판 위에 내려놓았다. 비닐을 씌운 채로. 그러고는 윤서가 다려 달라던 연필 쪽지를 들었다. 다리미를 가장 낮은 온도로 내렸다. 손수건을 위아래로. 스팀은 껐다. 무게만 얹어서 천천히. 한 번, 두 번. 손수건을 걷었다. 닳은 접힌 자리는 그대로였다. 떨리는 연필 글씨도 그대로였다. 종이만 펴졌다.

정우는 그 쪽지를 윤서에게 내밀었다.

“늦어도 받아요.”

정우가 말했다. 아버지의 말이었다. 열아홉 살 봄에 옆에서 들은.

윤서가 쪽지를 받았다. 네 번 접지 않았다. 편 채로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문으로 갔다. 손잡이를 잡았다. 멈췄다. 석 달 동안 매주 그랬듯이.

“조윤서예요.”

윤서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김정우예요.”

“알아요. 접수증 밑에 대표 김정우라고 인쇄돼 있잖아요. 석 달 동안 매주 봤어요.”

문종이 울렸다. 윤서가 나갔다. 정우는 유리문 너머로 봤다. 윤서가 떡집 앞 미숙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숙이 일어서서 윤서 손에 뭔가를 쥐여 줬다. 떡이었을 것이다. 손에 뭘 쥐여 주면 사람은 일단 간다. 윤서는 두 불빛 사이를 지나 주택가 쪽으로 걸었다. 이번에는 빠르지 않았다.

정우는 다림판 위의 열네 해 된 셔츠를 봤다. 비닐 너머. 들어 봤다. 아까보다 무겁지 않았다. 이십 그램은 그대로일 텐데. 주인을 찾은 셔츠는 무게가 다르게 얹힌다. 정우는 그걸 창고로 가져가지 않았다. 옷걸이 맨 끝에 걸었다. 아버지가 일곱 해 걸어 두었던 그 자리에. 그러고는 접수대로 가서 잠근 서랍을 열었다. 접수증 통을 꺼냈다. 오늘 날짜 접수증을 찾았다. 이름 칸이 비어 있었다. 칠 년 동안 비워 둔 칸.

정우는 볼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적지 않았다. 적지 않아도 이제 알았다. 대신 달력을 봤다. 벽에 걸린, 미숙네 떡집에서 준 달력. 시월 이십칠일, 십일월 삼일, 십일월 십일, 십칠일, 이십사일. 화요일 다섯 번. 계약은 삼십일까지지만, 정우는 마지막 영업일을 이십사일 화요일로 정해 두었다.

정우는 형광등을 다 끄고 매트를 들여놓았다. 순서대로. 오늘은 순서를 끝까지 지켰다. 문을 잠그고 나오자 미숙이 의자를 접고 있었다.

“이름 들었어?”

“네.”

“떡값 굳었네.”

“누나는 얼마 받고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요.”

“가래떡 한 줄.”

정우는 그날 처음 웃었다. 골목에 불빛이 둘 켜진 채였다. 미숙이 떡집 불을 끄러 들어가다가 도로 나왔다. 오늘은 그냥 켜 두겠다고 했다. 전기세는 가래떡 한 줄 값이라고.

4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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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5.13· 4화

    문장이 짧은데 밀도가 있어요. 계속 읽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