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28자) · 안 온 화요일

이 번 출구

마감 시간에 오는 사람 · 오세림

시월 이십일 화요일. 여덟 시 오십 분에 문이 열리지 않았다.

정우는 여덟 시 사십 분부터 계산기를 켜 둔 채 서 있었다. 진열장 등도 켰다. 문은 고무 받침으로 반쯤 괴어 두었다. 옷걸이 맨 앞에 지난주 셔츠가 걸려 있었다. 흰색, 희미한 줄무늬. 옷걸이 고리에 흰 봉투가 클립으로 달려 있었다. 버려 달라던 종이가 다림질로 펴진 채 그 안에 있었다.

여덟 시 오십삼 분. 옷걸이 맨 앞 셔츠가 문틈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오십육 분. 정우는 문 앞까지 나갔다가 들어왔다. 나가면 기다리는 게 되고, 기다리는 티를 내면 손님이 불편할 것 같았다. 석 달 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은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손님이 불편할까 봐가 아니라 자기가 무서워서 안 나간 것이었다.

여덟 시 오십팔 분에 정우는 앞치마를 벗었다. 계산기를 끄지 않았다. 형광등도 끄지 않았다. 매트도 들여놓지 않았다. 순서 가운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게 문을 나섰다. 칠 년 만이었다.

떡집 앞에서 미숙이 셔터를 내리다 말고 불렀다.

“어디 가?”

“역이요.”

“가게는?”

“불 좀 봐 주세요.”

미숙이 셔터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반쯤 내린 셔터를 도로 올렸다. 떡집 안 형광등이 다시 켜졌다. 떡집 불빛이 파란세탁 불빛 옆에 나란히 골목에 떨어졌다. 정우는 그걸 등 뒤로 느끼면서 뛰었다.

솔빛역까지 팔 분. 뛰면 사 분이다. 골목을 나와 큰길을 건너고, 약국 모퉁이를 돌면 역이다. 정우는 뛰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 분 뛰자 옆구리가 결렸다. 다리미를 칠 년 든 팔은 튼튼한데 다리는 아니었다.

이 번 출구는 역 뒤편 계단이다. 계단 위 난간 옆에 흡연 금지 표지판이 있고, 그 아래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그 옆에 회색 점퍼가 서 있었다.

정우는 계단 위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봤다. 지하철이 한 대 들어오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이 분쯤 지나면 계단이 빈다. 다시 한 대. 정우는 세 대를 봤다. 한 대에 쉰 명쯤. 백오십 명 가운데 흰 셔츠는 둘이었다. 둘 다 남자였다. 사람을 이렇게 오래 본 적이 없었다. 옷은 오래 본다. 목깃, 소매, 단추. 사람은 옷을 내밀 때 잠깐 본다. 백오십 명을 보니 다리가 무거워졌다. 기다리는 일에도 무게가 있었다.

서진철은 담배를 들고 있지 않았다.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계단 쪽이 아니라 휴대폰을. 오늘은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었다. 정우는 숨을 고르며 그 옆에 섰다. 한 걸음 떨어져서.

진철이 고개를 들었다. 알아봤다. 웃었다.

“세탁소 사장님. 여긴 웬일이세요.”

“셔츠 찾으러 올 사람 기다려요.”

“가게에서 기다리셔야지.”

“안 와서요.”

진철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계단 아래를 한 번 내려다봤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올라왔다. 넥타이, 배낭, 장바구니. 흰 셔츠는 없었다.

“오늘은 안 와요.”

진철이 말했다.

“어떻게 아세요?”

“면접교섭 취소됐거든요. 애가 아파서. 제가 오후에 센터에 전화했어요. 열이 좀 있다고.”

정우는 그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면접교섭. 센터. 열. 단어가 하나씩 떨어졌다가 늦게 붙었다.

“애가 아파요?”

진철이 정우를 봤다. 대답 대신 웃었다. 그 웃음으로 대답이 됐다. 애는 아프지 않았다.

“석 달 동안 열두 번 중에 여덟 번이요.”

정우가 말했다. 그 숫자는 손님이 한 말이 아니었다. 정우가 셌다. 열두 번의 화요일 가운데 손님이 여덟 시 오십 분에 웃는 얼굴로 들어온 날은 네 번이었다. 나머지 여덟 번은 문을 열기 전에 가로등 아래에서 한참 서 있다가 들어왔다. 정우는 그게 무슨 날인지 몰랐다. 그냥 셌다. 세탁소는 옷을 세고 사람을 센다.

“그 여덟 번도 애가 아팠어요?”

진철의 얼굴에서 웃음이 빠졌다. 처음으로.

“사장님, 남의 집 일에.”

“남의 집 일 아니에요. 우리 가게 손님 일이에요.”

“손님이 뭐 대단한 거라고.”

“화요일 여덟 시 오십 분에 오는 손님은 한 명뿐이에요. 대단해요.”

정우는 그 말을 하고 자기 입을 의심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리미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옷은 말을 안 하니까. 그런데 지금 입이 먼저 움직였다. 옆구리가 결리는 채로.

진철이 한 걸음 다가왔다. 정우보다 머리 반 개가 컸다. 가까이 오자 담배 냄새와 섬유유연제 냄새가 동시에 났다. 섬유유연제. 누가 빨아 준 옷이었다. 진철은 목소리를 낮췄다.

“사장님 가게 두 달 뒤에 닫는다면서요. 닫는 가게가 뭘 그렇게 지켜요.”

“닫을 때까지는 열려 있어요.”

“그럼 닫을 때까지만 조심하세요. 요즘 골목 어둡잖아요. 가로등도 아홉 시에 꺼지고.”

진철은 그 말을 하고 정우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가볍게. 친한 사람처럼. 손바닥이 무거웠다. 두 번 다. 그러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철을 타러. 오늘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정우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어깨에 남은 손 무게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셔츠에 밴 물처럼.

계단을 내려가는 대신 정우는 역 옆으로 걸었다. 가정법원 별관이 거기 있다. 칠 년 동안 이 역을 수백 번 지나면서 그 건물을 본 적이 없었다. 일 층 유리문에 작은 간판이 붙어 있었다. 면접교섭센터. 문은 잠겨 있었다. 유리문 안쪽에 크레파스 그림이 몇 장 붙어 있었다. 아이들이 그린 것. 집, 해, 사람 셋. 사람 둘. 사람 하나와 강아지. 한 장에는 사람 둘이 손을 잡고 있고 그 위에 삐뚤빼뚤 글씨가 있었다. 엄마 화요일. 정우는 그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오래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남의 집 창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골목으로 돌아왔을 때 아홉 시 사 분이었다. 가로등 두 개가 이미 꺼져 있었다. 골목 안쪽에 불빛이 두 개 있었다. 파란세탁 앞, 그리고 그 옆 떡집. 미숙이 떡집 문 앞에 플라스틱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었다. 무릎에 담요를 덮고. 한 손에 보온병.

“떡집 불은 왜.”

“불 좀 봐 달라며. 네 집 불만 보고 있으면 심심하잖아. 우리 집 불도 같이 켜 놨지.”

미숙은 보온병 뚜껑에 보리차를 따라 내밀었다. 정우는 받았다. 뜨거웠다.

미숙이 한 손으로 무릎 담요를 정우 쪽으로 반 덮어 주었다. 시월 밤은 앉아 있으면 발끝부터 식는다. 담요는 떡 찔 때 쓰는 면포를 몇 겹 누빈 것이었다. 쑥 냄새가 났다.

“만났어?”

“네.”

“뭐래.”

“애 아프다고 센터에 전화했대요. 오늘도, 아마 여덟 번 다.”

미숙은 한참 말이 없었다. 보온병 뚜껑을 돌려 닫았다. 돌려 닫는 손이 셌다.

“그 새끼가.”

미숙은 욕을 잘 안 한다. 떡을 스무 해 찌면서 욕을 하면 떡이 쉰다고 믿는 사람이다. 정우는 미숙 입에서 그 말을 처음 들었다.

치킨집 사장이 배달 오토바이를 끌고 골목을 지나가다 멈췄다. 마흔 중반. 헬멧을 벗고 둘을 봤다.

“누님, 오늘 떡집 야간 개장이에요?”

“어. 보초 서.”

“뭘 지키는데요.”

“골목.”

치킨집 사장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헬멧을 다시 썼다. 쓰다가 벗었다. 불 켜진 두 가게를 번갈아 보고, 자기 가게 쪽을 봤다. 치킨집 홀 불은 꺼져 있었다. 주방 불만 켜져 있었다. 사장은 아무 말 없이 오토바이를 끌고 갔다. 정우는 그 사람이 한 번 뒤돌아보는 것을 봤다.

둘은 떡집 앞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정우는 서 있다가 미숙이 옆에 의자를 하나 더 꺼내 줘서 앉았다. 골목에 불빛 두 개. 칠 년 동안 아홉 시 넘어 이 골목에 불이 두 개 켜진 건 처음이었다. 두 개가 되니까 불빛 사이가 이어졌다. 파란세탁 앞 동그라미와 떡집 앞 동그라미가 가장자리에서 조금 겹쳤다.

아홉 시 이십 분. 골목 반대쪽, 주택가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흰 셔츠였다.

윤서는 불빛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떡집 앞 의자 두 개를 봤다. 떡집 불과 세탁소 불을 봤다. 이 시각에 켜져 있을 리 없는 불 두 개.

“늦었어요.”

윤서가 말했다. 숨이 차 있었다. 주택가 쪽에서 뛰어온 모양이었다.

“센터 갔었어요. 취소됐다고 문자 왔는데 그래도 갔어요. 혹시나 해서. 애가 진짜 아픈가 해서. 문 닫혀 있었어요. 그래서 이쪽으로 돌아서 왔어요. 역 앞 말고.”

정우는 일어섰다. 보리차 뚜껑을 의자에 내려놓았다. 미숙이 그 뚜껑을 얼른 집어 들었다. 쏟아지면 담요가 젖는다고. 그러고는 윤서를 향해 턱짓을 했다. 들어가 보라고. 자기는 여기 있겠다고.

“셔츠 있어요. 늦어도 받아요.”

윤서가 그 말에 정우를 봤다. 이상한 얼굴이었다. 무언가를 처음 듣는 얼굴이 아니라 오래전에 들은 말을 다시 듣는 얼굴이었다.

가게로 들어가서 정우는 옷걸이 맨 앞 셔츠를 내렸다. 비닐을 씌운 셔츠를 윤서가 두 팔로 받았다. 한 손으로 받던 사람이 오늘은 두 팔로 안았다. 이백 그램 남짓한 셔츠를. 흰 봉투가 클립으로 달린 채. 윤서가 봉투를 봤다.

“그거, 버려 달라고 했는데.”

“못 버렸어요. 주머니에서 나온 건 돌려줘요. 아버지 때부터.”

“펴셨네요.”

“젖어 있어서요. 다렸어요.”

“종이를요?”

“손수건 대고요.”

윤서가 봉투를 열었다. 펴진 종이를 꺼냈다. 은채야. 미안해. 오늘도 못 갔어. 다음 주에는 꼭. 엄마가. 접힌 자국은 남고 글씨는 번지지 않은 종이. 윤서는 그걸 오래 봤다. 그러다 입고 있던 셔츠 왼쪽 주머니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이것도 네 번 접힌. 오래되어서 접힌 자리가 하얗게 닳은.

“이것도 다려 줄 수 있어요?”

정우는 받았다. 종이 한 장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오래 접혀 있던 종이는 접힌 자리마다 손때가 먹어서 새 종이보다 무겁다. 불빛에 비치지 않아도 글씨가 보였다. 볼펜이 아니라 연필이었다. 어른 글씨인데 떨리는.

골목 끝 세탁소. 파란 간판. 화요일. 아홉 시 전에. 거기는 늦어도 받아 준다고 함.

“우리 엄마 글씨예요. 올봄에 돌아가셨는데 지갑에 이게 있었어요. 아빠 셔츠 접수증이랑 같이.”

윤서가 옷걸이를 봤다. 셔츠를 안은 채로. 가게 안쪽, 창고 문을 봤다. 정우는 그 시선이 어디로 가는지 알았다. 열네 해 된 셔츠가 걸린 곳.

“우리 아빠가 여기 셔츠를 맡겼대요. 이천십이 년에. 그리고 찾아가지 못했대요.”

가게 밖에서 미숙이 보온병 뚜껑을 여는 소리가 났다. 골목의 불빛 두 개가 유리문에 겹쳐 비쳤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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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차2026.05.12· 3화

    같은 출발점에서 나온 다른 작품도 읽고 왔는데 완전히 달라서 신기했어요.

    • 한화만더2026.05.13

      저도 그 장면에서 멈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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