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78자) · 목요일
손목
마감 시간에 오는 사람 · 오세림
목요일 오후 세 시, 파란세탁에서 제일 바쁜 시간이다. 화요일과 수요일에 받은 옷이 다림판을 한 번씩 거쳐 비닐을 쓰고 옷걸이에 줄을 선다. 정우는 그 시간에 말을 거의 안 한다. 셔츠 한 장에 사 분. 깃, 어깨, 소매, 몸판. 아버지가 가르쳐 준 순서다. 스팀이 올라올 때마다 뜨거운 면 냄새가 가게를 채운다. 정우는 그 냄새를 열아홉 살 때부터 맡았다. 처음에는 머리가 아팠고 지금은 그 냄새가 없으면 머리가 아프다.
J.H. 셔츠는 화요일 밤에 빨았고 오늘 아침에 다렸다. 옷걸이 맨 앞에 걸려 있었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거기 걸려 있을 것이다. 정우는 다른 셔츠를 다리다가 가끔 그쪽을 봤다. 그리고 창고 쪽을 봤다. 창고 못에 걸린 열네 해 된 셔츠. 같은 두 글자. 같은 획. 정우는 그 두 셔츠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나란히 놓으면 무언가 확인하게 될 것 같았다. 확인한 다음에는 물어야 한다. 정우는 묻는 사람이 아니다.
세 시 십 분에 열쇠집 영감님이 바지 한 벌을 들고 왔다. 일흔. 이 골목 열쇠집을 마흔 해 했다. 영감님은 바지를 내밀며 말했다. 무릎 나온 거 들어가게 해 줘. 정우는 무릎 나온 바지는 다림질로 들어가지만 영감님 무릎은 다림질로 안 들어간다고 했다. 영감님이 웃다가 기침을 했다. 바지를 받으면서 정우는 무게를 봤다. 주머니에 뭔가 있었다. 열쇠 꾸러미. 스무 개. 영감님은 바지를 맡길 때마다 열쇠를 두고 간다. 정우는 매번 봉투에 넣어 돌려준다. 영감님은 매번 놀란다.
세 시 이십 분에 문종이 울렸다.
회색 점퍼. 화요일의 그 남자였다. 이번에는 사원증 줄이 없었다.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옷걸이 맨 앞을 봤다. 흰 셔츠. 비닐 너머로 목깃이 보였다.
“저거 찾으러 왔어요.”
남자가 말했다. 웃지 않았다. 화요일보다 빨랐다.
“접수증 주세요.”
“아내가 갖고 있어요. 제가 대신 찾아다 주려고요. 요즘 바빠서.”
“접수증 없으면 못 드립니다.”
“아내 거라니까요.”
“그럼 아내분이 접수증 들고 오시면 됩니다.”
정우는 다리미를 받침에 세웠다. 이 킬로그램 사백. 손에서 무게가 빠지자 손이 가벼워진 게 아니라 비어 버린 것 같았다. 정우는 빈손을 접수대 위에 올렸다.
남자가 접수대 앞으로 왔다. 화요일처럼 손바닥을 접수대에 얹었다. 이번에는 더 세게.
“사장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제 이름 서진철이고요, 저 여자 남편이에요. 애 아빠고요. 저 여자가 요즘 좀 이상해요. 밤마다 죽은 자기 아버지 옷을 들고 돌아다녀요. 그래서 걱정돼서 그래요. 그 셔츠, 장인어른 거예요. 번호만 알려 주세요. 연락이 안 돼서 그래요.”
정우는 그 말을 듣는 동안 한 가지만 생각했다. 장인어른 거예요. 창고의 셔츠. 열네 해. 정우의 손바닥 밑 접수대가 차가웠다.
“번호는 없습니다.”
“여기 적잖아요. 뒷자리.”
“뒷자리 네 개로는 전화 못 거세요.”
“그러니까 앞자리까지 적었을 거 아니에요. 명부 있잖아요, 세탁소는.”
남자의 눈이 접수대 밑으로 갔다. 서랍. 화요일 밤 정우가 잠근 서랍. 남자가 손을 뻗었다. 서랍 손잡이 쪽으로. 정우가 먼저 그 손목을 잡았다.
잡고 나서 정우는 자기가 무엇을 잡았는지 알았다. 남의 손목. 서른셋 평생 싸운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한 번 맞은 적은 있다. 때린 적은 없다. 지금 잡은 손목은 굵었다. 힘줄이 손바닥 안에서 꿈틀거렸다. 남자가 손을 뺐다. 정우가 놓치지 않았다. 둘은 접수대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삼 초쯤 있었다. 다리미 받침에서 스팀이 한 번 올라왔다가 흩어졌다.
“놓으세요.”
남자가 낮게 말했다.
“서랍에서 손 떼세요.”
정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떨리는 건 손이었다. 남자가 그 떨림을 느꼈을 것이다.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때 문종이 울렸다.
“정우야, 시루떡 식기 전에.”
미숙이었다. 한 손에 접시, 한 손에 비닐봉지. 미숙은 문턱에서 멈췄다. 접수대 위 두 사람의 손을 봤다. 삼 초.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손님 계셨네. 손님도 떡 드세요. 오늘 쑥이 좋아서.”
미숙은 접시를 두 사람 손 바로 옆, 접수대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김이 올랐다. 쑥 냄새가 스팀 냄새를 밀어냈다. 남자가 손을 뺐다. 이번에는 정우가 놓았다.
“괜찮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괜찮긴. 얼굴이 허옇네. 저녁 안 드셨죠? 떡은 배로 가요.”
미숙은 떡 한 조각을 집어 비닐봉지에 넣고 입구를 묶어 남자 손에 쥐여 줬다. 남자는 얼떨결에 받았다. 떡이 든 봉지를 든 채로 남자는 정우를 봤다. 미숙을 봤다. 그러고는 떡을 든 손을 들어 보였다. 화요일과 같은 몸짓.
“화요일에 봬요.”
남자가 나갔다. 문종이 오래 흔들렸다.
미숙이 접수대에 기대섰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떡 하나 날렸네.”
“누나.”
“알아. 봤어. 손목.”
“떡은 왜 줬어요.”
“손에 뭐 쥐여 주면 사람은 일단 나가. 그 손으로 딴 걸 못 쥐니까. 우리 엄마가 떡집 하면서 술 취한 손님 그렇게 내보냈어.”
정우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참고 나니 다리가 풀렸다. 접수대 뒤 의자에 앉았다. 앉자마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미숙이 떡을 한 조각 집어 정우 손에 쥐여 줬다. 따뜻했다. 떡 한 조각의 무게. 손바닥 안에서 떨림이 조금씩 줄었다.
“누나, 저 사람이 남편이래요.”
“전 남편.”
미숙이 말했다.
“그 아가씨가 나한테 그러더라. 떡 사면서. 헤어진 지 일 년 됐대. 애는 저쪽이 키우고. 법원에서 저 사람 접근하지 말라고 했대.”
“그럼 신고를.”
“했대. 몇 번. 경찰이 오면 저 사람은 없대. 역 앞에 서 있는 건 죄가 아니래.”
미숙은 그 말을 하고 떡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오래 씹었다.
“죄가 아니면 뭐예요.”
“몰라. 경찰 아저씨 말로는 증거래. 서 있는 거 말고 다가온 증거. 백 미터 안으로 들어온 증거. 근데 저 사람 딱 백일 미터에 서 있대. 줄자 들고 다니나 봐.”
정우는 줄자라는 말에 다리미 옆 서랍을 봤다. 세탁소에도 줄자가 있다. 소매 길이 잴 때 쓰는 천 줄자. 백 미터를 잴 수는 없다.
금요일 밤, 정우는 결국 두 셔츠를 나란히 놓았다. 가게 불을 반만 켜고 다림판 위에. 왼쪽에 열네 해 된 셔츠, 오른쪽에 이번 주 셔츠. 목깃을 나란히 뒤집었다. J.H. 두 개. 같은 실, 같은 손. J의 끝이 둘 다 왼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정우는 두 셔츠를 한 손씩 들어 봤다. 열네 해 된 쪽이 조금 더 무거웠다. 이십 그램쯤. 면은 오래 걸려 있으면 공기 중의 물을 먹는다. 먼지도 먹는다. 열네 해가 이십 그램이었다. 정우는 그 이십 그램을 한참 들고 있었다. 셔츠 주인은 이 셔츠를 맡기고 찾으러 오지 못했다. 그 딸이 지금 주인의 셔츠를 한 장씩 들고 매주 화요일 이 가게에 온다. 그리고 딸은 모른다. 제 아버지 셔츠 한 장이 이 가게 창고에 열네 해 걸려 있다는 걸. 아니면 안다. 알고도 묻지 못하는 것이다. 정우처럼.
그다음 화요일, 시월 십삼일. 여덟 시 사십 분에 정우는 앞쪽 형광등 옆, 평소 안 켜는 진열장 등까지 켰다. 문을 반쯤 열어 고무 받침으로 괴어 두었다. 가게 불빛이 골목으로 조금 더 멀리 나갔다. 두 뼘쯤. 여덟 시 오십 분.
문이 열렸다. 윤서였다. 정우는 아직 그 이름을 몰랐다. 흰 셔츠, 걷어 올린 소매. 종이봉투. 손님은 들어오면서 옷걸이 맨 앞을 봤다. 지난주 셔츠. 그걸 보고 조금 웃었다. 늘 거기 있어서 안심하는 얼굴이었다.
정우는 그 셔츠를 내리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준비한 문장이 아니었다. 사흘 동안 준비했는데 준비한 건 다 날아갔다.
“목요일에 누가 이거 찾으러 왔었어요.”
손님의 얼굴에서 웃음이 빠졌다. 빠지는 속도가 보였다.
“회색 점퍼요. 서진철이라고.”
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종이봉투를 든 손이 봉투를 조금 구겼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봤다. 유리문. 골목. 가로등 아래.
“안 드렸어요. 번호도 안 알려 줬어요. 접수증도 서랍에 넣고 잠갔어요.”
손님이 정우를 봤다. 오래.
“잠그셨어요?”
“칠 년 만에요.”
손님이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길게. 그러고는 종이봉투에서 이번 주 셔츠를 꺼냈다. 흰색. 줄무늬가 희미한. 목깃 안에 J.H.
“맡길게요.”
“네.”
정우는 셔츠를 받았다. 주머니를 확인했다. 세탁 전에 주머니를 확인하는 건 기본이다. 볼펜 하나가 세탁조 전체를 망친다. 왼쪽 가슴 주머니에 종이가 있었다. 네 번 접힌. 정우는 그걸 꺼내서 손님한테 내밀었다.
“주머니에.”
손님이 종이를 봤다. 받지 않았다.
“그거, 버려 주세요.”
“네?”
“맨날 써서 넣어 두는데 줄 데가 없어요. 버려 주세요. 오늘은 제가 못 버리겠어요.”
손님은 그 말을 하고 지난주 셔츠를 받아 나갔다. 가로등 아래에서 이번에는 역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빠르게 주택가 쪽으로 걸었다. 정우는 문 앞에 서서 그 뒷모습이 가로등 불빛 밖으로 나가는 것을 봤다. 불빛 밖으로 나가자 흰 셔츠가 금방 안 보였다.
정우는 종이를 버리지 않았다. 버리라는 걸 버리지 못하는 건 세탁소 사람의 병이다. 주머니에서 나온 건 봉투에 넣어 돌려준다. 칠 년 동안 그렇게 했다. 종이는 눅눅했다. 여러 번 접었다 편 자국이 있었다. 불빛에 비치니 글씨가 보였다. 정우는 펴지 않으려고 했다. 비친 글씨는 본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이미 읽었다.
은채야. 미안해. 오늘도 못 갔어. 다음 주에는 꼭. 엄마가.
정우는 그 종이를 다림판 위에 올렸다. 눅눅한 종이는 그대로 두면 접힌 자리가 찢어진다. 다리미를 가장 낮은 온도로 내리고, 흰 면 손수건을 위아래로 한 장씩 덮었다. 스팀은 껐다. 손수건 위로 다리미를 천천히 지나갔다. 누르지 않고 무게만 얹었다. 이 킬로그램 사백이 종이 한 장 위를 지나갔다. 한 번, 두 번. 손수건을 걷자 종이가 펴져 있었다. 접힌 자국은 남았다. 자국은 다림질로 못 지운다. 글씨는 번지지 않았다. 은채야. 정우는 그 이름을 소리 내지 않고 한 번 읽었다. 손님 이름은 석 달 동안 몰랐는데, 손님 딸 이름을 먼저 알았다.
정우는 펴진 종이를 흰 봉투에 넣었다. 봉투를 이번 주 셔츠 옷걸이에 클립으로 달았다. 버려 달라고 한 것을 버리지 않았다. 다음 주에 돌려줄 것이다. 돌려줄 때 무슨 말을 할지는 아직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