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46자) · 열세 번째 화요일

팔 시 오십 분

석 달째 이름을 못 물은 단골 · 오세림

여덟 시 사십오 분에 건호는 계산기를 껐다.

파란세탁의 마감에는 순서가 있다. 계산기, 다림판 전원, 앞쪽 형광등 두 개, 그리고 마지막에 문 앞 매트. 아버지가 서른네 해 동안 그 순서로 닫았고, 건호는 열아홉 살부터 옆에서 그걸 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일곱 해 동안 혼자 닫으면서 순서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순서를 지키면 하루가 끝난다. 순서를 어기면 하루가 안 끝난 것 같다.

다림판 전원을 뽑기 전에 건호는 스팀다리미를 받침에 세웠다. 이 킬로그램 사백. 칠 년 동안 들었다 놓았다 한 무게라서 이제 손목이 먼저 안다. 아침에 처음 들 때는 무겁고, 오후 세 시쯤이면 손의 일부가 되고, 여덟 시 사십오 분이면 다시 무거워진다. 하루가 다 됐다는 걸 다리미가 먼저 알려 준다.

솔빛동 골목은 역에서 걸어서 팔 분이다. 가게가 열넷. 떡집, 치킨집, 편의점, 열쇠집, 약국, 반찬가게, 미용실, 문 닫은 지 이 년 된 비디오 가게 자리. 여덟 시가 넘으면 하나씩 닫는다. 떡집이 제일 먼저, 약국이 그다음. 치킨집은 열한 시까지 배달만 하고 홀 불은 끈다. 편의점은 밤새 열지만 골목 입구 쪽이라 안쪽까지 빛이 안 온다. 여덟 시 사십 분이면 골목 안쪽에서 불 켜진 데가 파란세탁 하나 남는다. 건호는 그걸 셔터 소리로 안다. 여덟 시 떡집, 여덟 시 이십 분 약국, 여덟 시 반 반찬가게. 무거운 셔터와 가벼운 셔터는 소리가 다르다.

앞쪽 형광등을 끄려고 손을 뻗었을 때 문이 열렸다. 문에 달린 종이 한 번 울렸다.

“안녕하세요.”

건호는 손을 내렸다. 벽시계를 볼 필요가 없었다. 여덟 시 오십 분. 칠월 중순부터 매주 화요일, 이 시각이었다. 오늘이 열세 번째였다.

“오셨어요.”

“네.”

손님은 종이봉투에서 셔츠를 꺼냈다. 흰색. 면. 목깃이 조금 낡은 남자 셔츠. 손님이 입기에는 어깨가 한 뼘 넓은 셔츠였다. 건호는 받았다. 받는 순간 무게로 안다. 면 백 퍼센트 셔츠는 이백 그램 남짓. 혼방은 그보다 가볍고, 오래 입은 면은 조금 더 무겁다. 물을 많이 먹은 옷은 섬유가 굵어진다. 이 셔츠는 오래 입은 쪽이었다. 목깃 안쪽에 실로 수놓은 두 글자가 있었다.

J.H.

열세 장 전부 같은 글자였다. 셔츠는 매번 달랐다. 단추 모양이 다르고, 소매 길이가 다르고, 어떤 건 줄무늬가 희미하게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목깃 안의 두 글자는 같은 사람 손이 수놓은 것처럼 획이 같았다. J의 끝이 왼쪽으로 조금 말려 올라갔다.

그리고 왼쪽 소매 안쪽에 푸른 잉크가 번져 있었다. 이것도 매번이었다. 왼손으로 글씨를 많이 쓰는 사람의 소매는 종이에 쓸린다. 이 셔츠 주인이 아니라, 이 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의 흔적이었다. 건호는 그걸 열세 번 봤고 열세 번 알코올로 두드려 옅게 만들었다. 한 번은 손님이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냥 두세요. 그다음부터는 두었다.

“목요일부터 찾으실 수 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찾을게요.”

늘 그랬다. 맡긴 셔츠는 다음 화요일에 찾아가고, 그 자리에서 다음 셔츠를 맡긴다. 파란세탁 옷걸이에는 이 손님 셔츠가 늘 한 장씩 걸려 있었다.

건호는 접수증을 썼다. 날짜, 품목, 금액. 전화번호 뒷자리 네 개. 이름 칸은 비워 두었다. 파란세탁 접수증에는 이름 칸이 있지만 아버지 때부터 거기에 이름을 적은 적이 거의 없다. 아버지는 이름을 적으면 손님이 부담스러워한다고 했다. 건호는 그 말을 핑계로 석 달 동안 이 손님 이름을 묻지 못했다.

손님은 접수증을 받아 반으로 두 번 접었다. 셔츠 왼쪽 주머니에 넣었다. 입고 있는 셔츠도 흰 남자 셔츠였다. 소매를 두 번 걷어 올린.

“저기.”

건호가 말했다. 손님이 고개를 들었다. 건호는 이어서 할 말을 준비하지 않았다. 석 달 동안 물어봐야지 생각만 했지, 어떻게 물을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조심히 가세요.”

“네.”

손님이 문으로 갔다.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고는 멈췄다.

“사장님, 두 달 뒤에 닫으신다면서요.”

건호는 다림판 쪽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떡집 사장님이요. 지난주에 떡 사러 갔다가.”

미숙이었다. 옆 가게. 이 골목에서 미숙이 모르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뿐이다.

“십일월 말이요.”

“그러면 제 셔츠는 몇 번 더 맡길 수 있어요?”

건호는 셌다. 오늘부터 십일월 말까지 화요일.

“오늘까지 여덟 번이요.”

“그럼 여덟 번 다 채울게요.”

손님이 나갔다. 문종이 한 번 울렸다. 건호는 유리문 너머로 그 사람을 봤다. 손님은 가게 앞 가로등 아래에서 멈췄다. 역 쪽을 한 번 돌아봤다. 오래 보지는 않았다. 삼 초쯤. 그러고는 골목 반대쪽, 주택가 쪽으로 걸어갔다. 빠르게. 골목의 가을바람이 세제 냄새를 조금 밀고 나갔다. 건호는 받은 셔츠를 접수대 위에 한참 두었다. 이백 그램이 그날따라 조금 무거웠다.

형광등을 끄려고 다시 손을 뻗었을 때, 문종이 또 울렸다.

여덟 시 오십오 분. 남자였다. 서른 중반. 회색 점퍼에 목에 사원증 줄이 걸려 있었다. 사원증은 점퍼 안으로 뒤집혀 들어가 있었다. 남자는 들어오면서 가게 안을 한 바퀴 훑었다. 옷걸이, 다림판, 접수대. 그리고 접수대 위의 흰 셔츠에서 눈이 멈췄다.

“죄송한데, 마감하셨어요?”

“오 분 남았습니다.”

“아, 맡길 건 아니고요.”

남자가 웃었다. 사람 좋은 웃음이었다. 건호는 그 웃음이 너무 빨리 나왔다고 생각했다.

“방금 나간 여자분 있잖아요. 흰 셔츠 입은. 제 아내예요. 휴대폰을 놓고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몰라서요. 혹시 주소나 번호 남긴 거 있으면.”

건호는 접수대 위에 손을 올렸다. 셔츠 위에.

“손님 정보는 말씀 못 드립니다.”

“아내라니까요.”

“그럼 댁으로 가시면 되겠네요.”

남자의 웃음이 한 번 멈췄다가 다시 붙었다. 붙는 데 일 초쯤 걸렸다.

“요즘 좀 따로 지내서요. 아시잖아요, 부부가 그럴 때.”

“모릅니다. 결혼을 안 해서요.”

남자가 접수대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 전체로. 나무 접수대가 조금 삐걱거렸다. 아버지가 짠 접수대였다. 서른네 해 동안 옷 보따리를 받았지만 사람 손이 그렇게 내리누른 적은 드물었을 것이다. 남자가 건호를 봤다. 처음으로 똑바로. 그러고는 접수대 옆, 접수증 뭉치가 꽂힌 나무 통을 봤다. 건호는 그 시선을 따라가다가 셔츠 위에 올린 손에 힘을 줬다. 아무 일도 없는데 손바닥에 땀이 뱄다.

“목요일에 찾으러 오겠네요, 저거.”

남자가 셔츠를 턱으로 가리켰다.

“영업 끝났습니다.”

건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칠 년 동안 손님한테 영업 끝났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아홉 시 전에는.

남자는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알았다는 몸짓. 그러고는 나갔다. 문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오래 흔들렸다. 문을 세게 닫아서가 아니라 너무 천천히 닫아서였다.

건호는 형광등을 끄지 않았다. 매트도 들여놓지 않았다. 문 앞으로 나갔다. 골목은 어두웠다. 아홉 시가 되면 이 골목 가로등 셋 가운데 둘이 꺼진다. 구청이 정한 시간이다. 남는 하나는 파란세탁 앞에 있다. 건호는 칠 년 동안 그게 왜 하필 여기인지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떡집 앞에 미숙이 서 있었다. 셔터를 반쯤 내린 채 앞치마를 벗고 있었다. 쉰넷. 이 골목에서 스무 해 떡을 쪘다. 다음 달이면 시장 안쪽 새 자리로 옮긴다.

“봤어요?”

미숙이 먼저 물었다.

“뭘요.”

“방금 그 남자. 회색 점퍼.”

“봤어요.”

“저 사람, 석 달 전부터 화요일마다 역 앞에 서 있어. 이 번 출구. 여덟 시 반부터.”

건호는 미숙을 봤다. 미숙은 앞치마를 둘둘 말았다.

“나 화요일마다 역 앞 은행 가거든. 마감 돈 넣으러. 그때마다 있어. 담배 피우면서 출구만 봐. 그러다 저 흰 셔츠 아가씨 나오면, 한참 떨어져서 따라와.”

“그걸 왜 이제.”

“물어봤어야지. 너는 아무것도 안 묻잖아. 이름도 안 묻고.”

“누나는 알아요? 이름.”

“알지.”

“뭔데요.”

“안 가르쳐 줘.”

“왜요.”

“석 달 동안 떡 사 가면서 나한테는 이름 말해 줬거든. 너한테는 안 말했고. 그럼 너는 네가 물어야지. 남의 가게 떡값으로 얻은 이름을 공짜로 줄 수는 없잖아.”

미숙은 그렇게 말하고 혼자 웃었다. 건호는 웃지 않았다. 떡값이 얼마였는지 물어볼 뻔했다.

미숙은 그 말을 하고 셔터를 마저 내렸다. 쇠 긁히는 소리가 골목을 한 번 채웠다가 끊겼다. 셔터 앞에서 미숙이 돌아섰다.

“건호야, 그 아가씨가 왜 여덟 시 오십 분에 오는지 생각해 봤어?”

건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홉 시에 가로등 꺼지잖아. 이 골목에 아홉 시 넘어서 불 켜진 데가 너희 집 하나야.”

아홉 시. 건호 뒤에서 가로등 두 개가 꺼졌다. 탁, 탁. 골목이 한꺼번에 어두워지고 파란세탁 앞 하나만 남았다. 불빛이 아스팔트에 동그랗게 떨어졌다. 그 안에 건호와 미숙이 서 있었다. 미숙이 동그란 불빛 가장자리를 발끝으로 짚었다. 여기까지가 밝은 데라는 듯이. 한 발짝 밖은 캄캄했다. 건호는 그 한 발짝이 얼마나 되는지 셈해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처음 생각했다. 역에서 여기까지 팔 분. 그중에 불빛 안을 걷는 시간은 몇 초인가.

가게로 들어와서 건호는 접수증 통을 봤다. 나무 통. 그 안에 이번 주 접수증 사본이 꽂혀 있다. 날짜, 품목, 금액, 그리고 전화번호 뒷자리 네 개. 남자가 봤을까. 그 자리에서 네 자리를 읽을 수 있었을까. 건호는 통을 들어 접수대 밑 서랍에 넣었다. 서랍을 닫고 열쇠를 돌렸다. 칠 년 동안 한 번도 잠근 적 없는 서랍이었다. 열쇠가 뻑뻑해서 두 번 만에 돌아갔다.

그날 밤 건호는 늦게까지 가게에 있었다. 셔츠를 빨고, 탈수하고, 널었다. 물을 먹은 셔츠는 무겁다. 이백 그램이 오백 그램이 된다. 그 무게가 빠지는 동안 건호는 가게 안쪽 창고 문을 열었다.

창고 맨 안쪽, 벽에 박은 못에 셔츠 한 장이 걸려 있었다. 비닐을 두 번 씌운. 비닐이 누렇게 바랬다. 건호가 열아홉 살이던 해 봄에 누군가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셔츠. 아버지는 그걸 일곱 해 동안 가게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버리자고 할 때마다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건호는 그걸 버리지 못하고 창고로 옮겼다. 또 일곱 해. 열네 해.

건호는 비닐을 벗겼다. 오래된 면 냄새가 났다. 먼지와 햇빛을 못 본 옷의 냄새. 목깃을 뒤집었다.

J.H.

J의 끝이 왼쪽으로 조금 말려 올라가 있었다.

건호는 그 셔츠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손에 얹힌 무게가 이백 그램이 아니었다. 열네 해만큼 무거웠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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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림작가2026.10.09· 1화

    작가 오세림입니다. 아홉 시에 가로등이 꺼져도 늦은 손님을 받아 주는 세탁소 이야기입니다. 1화의 화요일 여덟 시 오십 분 손님에게 여러분이라면 이름을 물으셨을까요?

  • 일곱줄2026.05.10· 1화

    이 장면 묘사가 오래 남습니다. 특히 마지막 두 줄이요.

    • 오세림작가2026.05.11

      말씀하신 부분은 다음 회차에서 조금 더 풀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