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38자)

헤드 세터

클라이밍 짐 회원이 실종됐다 · 류시안

화요일 아침 일곱 시⁠, 태하는 오버행 셔터를 올리고 코치 셋이 출근하기를 기다렸다⁠. 일곱 시 반에 셋이 한꺼번에 계단을 올라왔다⁠. 어제 문호를 배웅하던 얼굴 그대로였다⁠. 태하는 데스크 앞에서 말했다⁠.

“⁠오늘부터 성수 가요⁠. 축제 개막 문제 짜러요⁠. 헤드 세터로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 굽은 코치가 먼저 신발을 벗고 매트에 올라섰다⁠. 굽은 검지로 초크 주머니 끈을 풀면서 말했다⁠.

“⁠회장 밑으로 가냐⁠?⁠”

“⁠네⁠.⁠”

“⁠대표님은 어제 경찰서 가서 밤 열 시에 나왔다⁠. 세빈이는 오늘 고소장 받는다⁠. 너는 성수 가고⁠.⁠” 코치는 초크를 손에 묻혔다⁠. 하얀 가루가 굽은 손가락 마디에 쌓였다⁠. “⁠잘 어울린다⁠. 회장님이 사람 볼 줄 아네⁠.⁠”

허리 나간 코치는 말없이 태하를 지나 리드벽으로 갔다⁠. 발목 나간 코치는 태하의 어깨를 한 번 쳤다⁠. 세게도 약하게도 아니었다⁠. 어깨를 친 손이 어깨에서 떨어지기까지 한참 걸렸다⁠.

태하는 까닭을 말하지 않았다⁠. 엄팔용은 토요일 밤 주차장에 있었고⁠, 짐 어디에 귀가 있는지 태하는 알지 못했다⁠. 까닭을 아는 사람이 늘면 주아의 방문에도 자물쇠가 하나씩 는다고⁠, 태하는 생각했다⁠.

여덟 시 반에 나롱이 왔다⁠. 태하를 보더니 목도리를 풀지 않고 데스크 의자에 앉았다⁠. 휴대전화만 보았다⁠.

“⁠나롱아⁠.⁠”

“⁠쌤⁠, 저 오늘 바빠요⁠. 단톡방 공지 써야 돼요⁠. 「⁠리뉴얼로 금요일 밤 휴관합니다⁠」⁠” 나롱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근데 쌤⁠. 성수에서 일하면 시급 얼마예요⁠? 제가 계산해 보니까 쌤이 저 다섯 달 치를 한 주에 버시던데요⁠.⁠”

태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롱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었다⁠.

“⁠영상 하나 남길게요⁠. 「⁠우리 세터 쌤 마지막 출근⁠」 조회수 안 나와도 올릴 거예요⁠.⁠”

나롱은 휴대전화를 들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태하의 휴대전화가 떨렸다⁠. 문호였다⁠. 어제 경찰서에서 돌아와 처음 보내는 문자였다⁠. 「⁠잘 갔다 와라⁠. 홀드만 봐라⁠. 사람은 이제 내가 못 본다⁠.⁠」 곧이어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세빈이었다⁠. 「⁠형 진짜예요⁠?⁠? 저 고소장 받았어요⁠. 봉투가 생각보다 얇아요⁠. 고소장도 프리미엄 아닌가 봐요⁠」

*

성수 플래그십은 옛 정미소 자리를 헐고 지은 유리 건물이었다⁠. 1층부터 지붕까지 한가운데가 뚫려 있었고⁠, 뚫린 공간 한 면을 18미터 벽이 차지했다⁠. 벽은 유리로 둘러싸여 있어서 바깥 거리에서도 오르는 사람이 보였다⁠. 아침 해가 유리를 통과해 벽에 쏟아졌다⁠. 벽 표면은 아직 비어 있었다⁠. 볼트 구멍만 수천 개⁠, 바둑판처럼 박혀 있었다⁠.

벽 맞은편 12미터 높이에 유리 난간이 둘린 라운지가 튀어나와 있었다⁠. 「⁠VIP 라운지⁠」 라운지에서는 벽을 오르는 사람과 눈높이가 같아졌다⁠. 휘준이 축제 날 손님을 맞을 자리였다⁠.

1층 벽면마다 화면이 돌았다⁠. 「⁠한 번뿐인 벽 VIP 체험 — 오십만 원⁠」 「⁠프라이빗 야간 등반 — 하룻밤 이백만 원⁠」 「⁠앰버서더와 함께 오르는 한 시간 — 매진⁠」 마지막 화면 속에서 주아가 웃고 있었다⁠. 첫 완등 영상에서 잘라 낸 얼굴이었다⁠.

세팅 팀장이 태하를 맞았다⁠. 서른 중반쯤이었고⁠, 보라색 바람막이 가슴에 「⁠HEAD OF SETTING⁠」이라는 자수가 있었다⁠. 오늘부터 팀장 위에 헤드 세터가 하나 더 생겼다⁠.

“⁠공태하 씨⁠. 영상 봤어요⁠. 「⁠유턴⁠」 좋더라고요⁠.⁠” 팀장은 악수를 하지 않았다⁠. “⁠근데 여기는 오버행이 아니에요⁠. 본사 방침이 있어요⁠. 홀드는 전부 한번그립⁠.⁠”

팀장 뒤로 보라색 상자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오버행 세팅실의 열 배였다⁠.

*

태하는 상자를 열었다⁠. 오전 내내 바닥에 앉아 홀드를 하나씩 손바닥에 올렸다⁠. 두 손으로 끼우고⁠, 벽에 매달린 몸무게처럼 비틀었다⁠. 금 간 것을 왼편에⁠, 멀쩡한 것을 오른편에 놓았다⁠. 점심때가 되자 왼편이 무릎 높이까지 쌓였다⁠.

팀장이 다가와 왼편 더미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다 뭐예요⁠?⁠”

“⁠볼트 구멍에 금 간 거요⁠.⁠”

“⁠안 보이는데요⁠.⁠”

“⁠손으로 보세요⁠.⁠”

팀장이 더미에서 핀치 하나를 집어 불빛에 비췄다⁠. 보이지 않았다⁠. 손톱으로 볼트 구멍을 긁어 보았다⁠. 걸리는 게 없다는 얼굴이었다⁠.

“⁠협회 인증 받은 거예요⁠. 공태하 씨가 손 좋은 건 알겠는데요⁠, 손 느낌으로 홀드 절반을 버리자고 하면 본사에서 저를 버려요⁠.⁠”

태하는 팀장 손에서 핀치를 받아 들었다⁠. 두 손바닥 사이에 끼우고 천천히 힘을 주었다⁠. 한쪽으로 비틀었다⁠. 팔뚝에 핏줄이 섰다⁠. 수술한 어깨 안쪽이 당겼다⁠.

딱⁠.

작은 소리였다⁠. 핀치 볼트 구멍 언저리에서 손톱만 한 조각이 떨어져 바닥에 굴렀다⁠. 깨진 단면이 희끗하고 거칠었다⁠. 「⁠대전 1022⁠」 조각과 같은 단면이었다⁠.

팀장은 바닥의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말이 없었다⁠.

“⁠사람이 매달리면 이것보다 세게 비틀어요⁠.⁠” 태하가 말했다⁠. “⁠떨어지면서 홀드를 손에 쥐고 있으면⁠, 이렇게 깨져요⁠.⁠”

“⁠…회장님한테 전화할게요⁠.⁠”

팀장은 조각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멀어졌다⁠. 십 분 뒤에 돌아왔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회장님이 공태하 씨 원하는 대로 하시래요⁠. 대신 사진에 잡히는 자리⁠, 라운지에서 보이는 자리는 한번그립⁠. 로고가 보여야 한다고요⁠.⁠”

“⁠라운지에서 보이는 자리가 어딘데요⁠.⁠”

팀장이 12미터 라운지를 올려다보았다⁠. 유리 난간 너머로 소파와 꽃병이 보였다⁠.

“⁠전부요⁠.⁠”

*

점심이 지나고 태하는 오버행에 전화를 걸었다⁠. 데스크 전화를 받은 것은 나롱이었다⁠.

“⁠쌤⁠?⁠”

“⁠나롱아⁠. 세팅실 벽 끝에 밀어 둔 낡은 홀드 통 있지⁠. 파란 거 네 개⁠. 그거 퀵으로 보내 줘⁠. 성수로⁠.⁠”

“⁠그거 리뉴얼 때 다 버린다던데요⁠.⁠”

“⁠버리기 전에 보내 줘⁠.⁠”

나롱은 한참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철공소 사장이 짱돌⁠,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이 두 번째 홀드에서 또 떨어진 모양이었다⁠.

“⁠쌤⁠. 그거 보내면 쌤 문제에 오버행 홀드 쓰는 거예요⁠?⁠”

“⁠응⁠.⁠”

“⁠그럼 퀵비는 쌤이 내요⁠. 저는 다섯 달 치 모으는 중이라서요⁠.⁠” 나롱의 목소리가 조금 풀렸다⁠. “⁠그리고 쌤 마지막 출근 영상⁠, 아직 안 올렸어요⁠.⁠”

*

네 시⁠, 출입문 앞에 오토바이 한 대가 멈췄다⁠. 퀵 기사 뒷자리에서 누가 내렸다⁠. 파란 홀드 통 두 개를 양팔에 끼고⁠, 등에 하나를 더 멘 채였다⁠. 헬멧을 벗자 세빈이었다⁠. 기사가 남은 통 하나를 내려 주고 손을 흔들며 떠났다⁠.

“⁠퀵비 아끼려고 같이 탔어요⁠.⁠” 세빈이 말했다⁠. 바람에 얼굴이 빨갰다⁠. “⁠통 네 개는 짐칸에 다 안 들어간대서요⁠. 제가 짐칸이 됐어요⁠.⁠”

“⁠고소장 받았다며⁠.⁠”

“⁠받았어요⁠. 받고 할 일이 없어서요⁠.⁠” 세빈은 통을 매트에 내려놓고 목을 돌렸다⁠. “⁠형이 헤드 세터면 조수 한 명은 데려와도 되잖아요⁠. 저 손 빨라요⁠. 정직하진 않아도⁠.⁠”

세팅 팀장이 다가왔다⁠. 세빈의 얼굴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오버행 리뉴얼 회의 이야기가 본사에 이미 돌았다⁠.

“⁠외부인은 세팅 구역에 못 들어와요⁠. 이분 오버행에서 잘린 분 아니에요⁠?⁠”

“⁠제 조수예요⁠.⁠” 태하가 말했다⁠. “⁠헤드 세터가 조수 하나 못 둬요⁠?⁠”

팀장은 태하와 세빈과 바닥의 파란 통을 차례로 보았다⁠. 주머니 속에 넣어 둔 깨진 조각을 손으로 만지는 것이 바람막이 너머로 보였다⁠.

“⁠회장님한테는 제가 말 안 할게요⁠. 들키면 저도 몰랐던 거예요⁠.⁠”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 말고요⁠.⁠” 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라운지에서 안 보이는 자리에는 진짜 괜찮은 홀드 쓰세요⁠. 우리 팀 애들도 저 벽 올라가요⁠. 축제 끝나면 매일요⁠.⁠”

팀장이 멀어지자 세빈이 통 뚜껑을 열었다⁠. 오버행 세팅실 냄새가 올라왔다⁠. 길게는 여덟 해 동안 회원들 손을 탄 홀드들이었다⁠. 색이 바래고 결이 닳았다⁠. 세빈이 홀드 하나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형⁠, 이거 철공소 사장님 손 냄새 나요⁠. 기름 냄새⁠.⁠”

“⁠그건 초록 거야⁠. 사장님 문제⁠.⁠”

“⁠여기 왜 넣었어요⁠?⁠”

“⁠사장님이 여기 오면 두 번째 홀드는 잡으실 거 아니야⁠.⁠”

세빈이 웃었다⁠. 오버행에서 잘린 뒤 처음 웃는 웃음이었다⁠. 둘은 바닥에 앉아 통 네 개를 쏟고 홀드를 하나씩 손바닥에 올렸다⁠. 금 간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해 질 녘⁠, 유리 벽 바깥 거리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몇몇이 걸음을 멈추고 빈 벽을 올려다보았다⁠. 태하는 사다리에 올라 볼트 구멍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 보고 있었다⁠. 문제의 길을 손으로 먼저 그려 보는 일이었다⁠. 어디서 몸을 틀고⁠, 어디서 숨을 쉬고⁠, 어디서 얼굴이 어디를 향하는지⁠.

12미터 높이의 볼트 구멍 하나에서 손이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라운지 유리 난간이 바로 눈앞이었다⁠. 소파에 앉은 사람과 벽에 매달린 사람의 얼굴이 사람 키 하나 거리로 마주 보는 자리였다⁠.

태하는 이 구멍에 분필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

일곱 시⁠, 1층 출입문이 열렸다⁠. 엄팔용이 먼저 들어왔고 주아가 뒤따랐다⁠.

회색 후드티에 하나로 묶은 머리였다⁠. 발에는 대여용 암벽화를 신었다⁠. 앞코가 해진 파란 신발이었다⁠. 주아는 벽 앞까지 걸어와 18미터를 올려다보았다⁠. 목이 뒤로 꺾였다⁠. 엄팔용은 세 걸음 뒤에서 멈췄다⁠. 태하는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대여화 처음 신어 봐요⁠.⁠” 주아가 먼저 말했다⁠. 발끝을 들어 보였다⁠. “⁠냄새가 서민적이에요⁠. 오만 명 발 냄새가 나네요⁠.⁠”

“⁠오만 명까지는 아니에요⁠. 한 오천 명⁠.⁠”

“⁠위로가 하나도 안 돼요⁠.⁠” 주아가 웃었다⁠. 웃음 끝에 숨을 들이켰다⁠. 평창동 거실에서와 같은 웃음이었다⁠. “⁠제 신발은요⁠?⁠”

“⁠형사님이 갖고 있어요⁠. 봉투에 넣어서요⁠.⁠”

“⁠그럼 축제 날 돌려받아야겠다⁠.⁠”

주아는 빈 벽에 손바닥을 댔다⁠. 볼트 구멍 사이의 매끈한 합판이었다⁠. 손가락을 펴고 눌렀다⁠. 엄팔용이 한 걸음 다가왔다가 멈췄다⁠. 주아는 손을 떼고 엄팔용을 돌아보며 웃었다⁠.

“⁠실장님⁠, 벽 만지는 것도 보고하세요⁠?⁠”

“⁠회장님이 다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적으세요⁠. 앰버서더가 벽을 만졌다⁠.⁠” 주아는 다시 태하를 보았다⁠. 목소리를 조금도 낮추지 않았다⁠. 엄팔용이 다 듣게 말했다⁠. “⁠세터님⁠. 스타트는 두 손이에요⁠?⁠”

“⁠네⁠.⁠”

“⁠고비는 어디쯤이에요⁠?⁠”

“⁠중간보다 조금 위요⁠. 큰 거 하나 달 거예요⁠. 손바닥 전체로 잡는 거⁠.⁠”

주아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손바닥 전체로 잡는 큰 홀드⁠. 주아는 눈을 깜빡이고 다시 웃었다⁠.

“⁠꼭대기에서는요⁠? 뛰어내려요⁠, 아니면 자동 확보기에 매달려 내려와요⁠?⁠”

“⁠그건 오르는 사람 마음이에요⁠.⁠”

“⁠아니요⁠.⁠” 주아가 고개를 저었다⁠. 「⁠유턴⁠」 첫 완등 날 저녁에도 주아는 이렇게 고개를 저었다⁠. 내려오는 게 더 어려워요⁠, 하고⁠. “⁠이번에는 세터님이 정해 주세요⁠. 내려오는 길을 짜 주세요⁠. 이번에는 세터님이 거꾸로 짜요⁠.⁠”

엄팔용이 시계를 보았다⁠. 주아는 대여화를 신은 발로 매트를 한 번 구르고⁠, 엄팔용을 따라 출입문으로 걸었다⁠. 문 앞에서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걸으면서 오른손을 허리 뒤로 돌려⁠, 손바닥을 펴서 태하에게 보였다⁠.

손바닥 한가운데에 초크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 빈 벽에 찍고 간 손자국과 같은 모양이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장연무2026.11.01· 9화

    코치 셋이 아무 대답도 안 할 때 소름 돋았어요. 헤드 세터가 그렇게 큰 자리예요?

    • 류시안작가2026.11.01

      대회 문제를 짜는 사람이라 벽 전체를 쥐는 자리예요. 그래서 아무도 쉽게 축하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