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92자)

리뉴얼

클라이밍 짐 회원이 실종됐다 · 류시안

일요일 저녁⁠, 문호는 하루만 달라고 했다⁠.

대표실 책상 위의 월급 봉투 다섯 개를 서랍에 도로 넣으면서였다⁠. 코치들한테는 내가 먼저 말하마⁠. 형사한테 가는 것도 내 발로 가마⁠. 하루만⁠. 문호는 태하를 보지 않고 서랍을 닫았다⁠. 태하는 대답 대신 원래 슬로퍼가 달린 「⁠유턴⁠」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하루를 주는 것도 빚이었다⁠. 태하는 이 빚을 졌다⁠.

월요일 아침 열 시⁠, 문호는 경찰서 대신 오버행 데스크 앞에 서 있었다⁠. 휘준이 리뉴얼 회의를 잡았다⁠. 문호가 정한 하루보다 휘준의 일정이 빨랐다⁠.

*

한번 사람들이 다섯 명 왔다⁠. 보라색 바람막이를 입은 세팅 팀 둘⁠, 태블릿을 든 마케팅 직원⁠, 변호사⁠, 그리고 엄팔용⁠. 휘준은 맨 마지막에 계단을 올라와 이번에도 구두를 먼저 벗었다⁠. 마케팅 직원이 벽마다 사진을 찍었다⁠. 찍을 때마다 태블릿에서 찰칵 소리가 났다⁠.

“⁠리뉴얼은 금요일 밤에 합니다⁠.⁠” 휘준이 매트 한가운데에서 말했다⁠. “⁠기존 홀드는 전부 떼고⁠, 한번그립으로 새로 답니다⁠. 토요일 축제 날 아침⁠, 오버행 by 한번 첫 영상을 올리고요⁠. 한번 가족 첫 짐이 축제 날 새 얼굴로 문을 엽니다⁠.⁠”

코치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손가락 굽은 코치가 입을 열려다 문호를 보고 다물었다⁠. 문호는 휘준 뒤에서 무릎을 짚고 있었다⁠.

“⁠전부요⁠?⁠” 태하가 물었다⁠.

“⁠전부요⁠. 회원분들 손에 닳은 낡은 홀드는 위생에도 안 좋아요⁠. 새것이 좋지요⁠.⁠” 휘준이 웃었다⁠. “⁠아⁠, 하나만 빼고요⁠.⁠”

휘준이 엄팔용을 돌아보았다⁠. 엄팔용이 45도 벽으로 걸어가 「⁠유턴⁠」의 가운데를 가리켰다⁠. 원래 슬로퍼였다⁠. 아홉 개 가운데 하나만 색이 바랜 홀드⁠.

“⁠지난주 수요일에 제가 봤을 때는 이 색이 아니었습니다⁠.⁠” 엄팔용이 말했다⁠. 짐에 와서 엄팔용이 가장 길게 한 말이었다⁠. “⁠토요일 밤 열한 시⁠, 편세빈 씨 차 트렁크에서 이 홀드가 나왔고요⁠.⁠”

세빈이 데스크 옆에서 굳었다⁠. 손에 든 바나나가 툭 떨어졌다⁠.

“⁠오버행 물건은 이제 저희 회사 물건이기도 합니다⁠.⁠” 변호사가 서류를 꺼냈다⁠. “⁠편세빈 씨가 회사 물건을 집에 가져간 일이 있었지요⁠. 회장님은 일을 키우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여기 확인서에 서명만 해 주시면 됩니다⁠.⁠”

변호사가 서류 한 장을 세빈 앞 데스크에 놓았다⁠. 한 장짜리였다⁠. 태하는 세빈의 어깨 너머로 읽었다⁠. 「⁠본인은 12월 6일 정기 세척을 위해 45도 벽 홀드 하나를 교체하였으며⁠, 교체 과정에서 홀드 안팎에 어떠한 물건도 발견하지 못하였음을 확인합니다⁠.⁠」 아래에 서명 칸이 있었다⁠.

“⁠서명하시면 홀드 건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안 하시면 업무상 횡령으로 고소합니다⁠. 금액은 작아도 기록은 남지요⁠. 세터 일 다시 하시기 어려우실 겁니다⁠.⁠”

세빈이 펜을 집었다⁠. 손이 떨려서 펜 끝이 종이에 닿을 때마다 작은 점이 찍혔다⁠.

*

계단에서 구두 소리가 올라왔다⁠. 해람이었다⁠. 태하가 아침 일곱 시에 보낸 문자를 받고 온 길이었다⁠. 해람은 신발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번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구두를 벗었다⁠. 새로 산 듯한 하얀 운동화를 가방에서 꺼내 신었다⁠.

“⁠매트용으로 샀어요⁠.⁠” 해람이 나롱에게 말했다⁠. “⁠넉 달 치 아니죠⁠?⁠”

“⁠형사님⁠, 그거 한정판이에요⁠. 다섯 달 치예요⁠.⁠”

해람은 운동화를 한 번 내려다보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데스크 위의 서류와 펜을 든 세빈을 보았다⁠. 변호사가 해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형사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회사 내부 일이라 금방 정리됩니다⁠.⁠”

“⁠정리하세요⁠. 저는 보기만 할게요⁠.⁠” 해람은 팔짱을 끼었다⁠. “⁠요즘 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공태하 씨가 손 말고 사람을 보라고 해서요⁠.⁠”

휘준이 세빈 곁으로 다가왔다⁠. 세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부드러운 손이었다⁠.

“⁠편세빈 씨⁠. 우리 딸이 그러더군요⁠. 오버행에 손 빠른 세터가 하나 더 있다고⁠. 축제 끝나면 성수 플래그십에 자리를 하나 드리지요⁠. 월세 걱정 없이요⁠. 이 서명 하나로 다 지나갑니다⁠.⁠”

세빈의 펜 끝이 서명 칸 위에서 멈췄다⁠.

태하는 말하지 않았다⁠. 세빈이 고를 일이었다⁠. 태하가 대신 고르면 세빈은 다음에도 남이 골라 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태하는 원래 슬로퍼를 올려다보았다⁠. 손바닥 두 개 크기의 둥근 보라색이 채광창 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세빈이 펜을 내려놓았다⁠.

“⁠카드 있었어요⁠.⁠”

목소리가 작았다⁠. 세빈은 침을 삼키고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짐 끝의 리드벽 아래 회원까지 들릴 만큼 컸다⁠.

“⁠홀드 안에 메모리 카드가 있었어요⁠. 투명 테이프로 붙어 있었어요⁠. 테이프에 주아 씨 초크 손가락 자국까지 찍혀 있었어요⁠. 제가 떼어서 대표님 드렸어요⁠. 대표님이 삼백 주셨어요⁠. 이 서류는 거짓말이에요⁠.⁠”

해람이 팔짱을 풀었다⁠. 수첩을 꺼냈다⁠.

변호사가 휘준을 보았다⁠. 휘준은 세빈의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 손바닥을 바지에 한 번 문질렀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닦는 손이었다⁠.

“⁠지 대표님⁠.⁠” 휘준이 문호를 불렀다⁠. “⁠이 친구 말이 맞습니까⁠?⁠”

모두가 문호를 보았다⁠. 문호는 무릎을 짚은 손을 떼지 않았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하루만⁠, 하고 어젯밤 문호가 말했다⁠.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호는 휘준을 보고⁠, 코치들을 보고⁠, 맨 마지막에 태하를 보았다⁠.

“⁠제가 드릴 말씀은 오늘 경찰서에서 드리겠습니다⁠.⁠”

휘준이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그렇군요⁠.⁠” 휘준이 세빈에게 돌아섰다⁠. “⁠편세빈 씨는 오늘부로 오버행 세터 일을 그만두시는 걸로 하지요⁠. 확인서는 안 쓰셔도 됩니다⁠. 고소장은 제가 쓰겠습니다⁠.⁠”

세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하지 않았다⁠. 떨어뜨린 바나나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

해람은 세팅실 구석에서 세빈의 진술을 받았다⁠. 태하가 2027년에 찍힌 새 슬로퍼를 비닐에 싸서 내밀었다⁠. 해람이 비닐 너머로 홀드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이게 바꿔 단 거고⁠, 원래 건 저 벽에 있고요⁠.⁠”

“⁠원래 것도 가져가세요⁠. 안쪽에 테이프 자국이랑 지문이 있어요⁠.⁠”

“⁠벽에서 떼면 문제가 망가지잖아요⁠.⁠”

“⁠괜찮아요⁠. 다시 달면 돼요⁠.⁠”

해람이 수첩을 덮었다⁠. 세빈의 진술을 받는 동안 해람은 세빈에게 바나나를 두 번 권했고⁠, 세빈은 두 번 다 받아먹었다⁠.

“⁠이걸로 카드가 있었다는 건 돼요⁠. 카드를 누가 받았는지도 지 대표님이 오늘 오시면 되고요⁠.⁠” 해람은 홀드를 내려놓았다⁠. “⁠근데 카드는 없어요⁠. 회장님이 카드를 받았다고 인정하겠어요⁠?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는 주아 씨 입에서만 나와요⁠. 주아 씨는 괜찮다고 하고요⁠.⁠”

“⁠평창동에서 못 나오잖아요⁠.⁠”

“⁠나오게 할 방법이 있어야죠⁠.⁠” 해람이 말했다⁠. “⁠아빠 집 안방 문을 형사가 발로 차고 들어가려면 판사가 허락해 줘야 해요⁠. 판사는 무릎 누르는 걸로 허락 안 해 줘요⁠.⁠”

*

점심때 나롱이 데스크 아래로 태하를 끌어당겼다⁠.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한번 공식 계정 — 오버행 첫 완등 영상 다시 보기⁠」 나롱이 찍은 주아의 첫 완등 영상이었다⁠. 나롱의 계정에서는 내려갔는데⁠, 한번 공식 계정에 다시 올라와 있었다⁠. 조회수는 벌써 오십만이었다⁠. 영상 끝의 대화가 잘려 있었다⁠. 「⁠내일 아침 일곱 시에 이거 같이 한 번 봐 줄래요⁠?⁠」 하는 대목부터 없었다⁠. 영상 아래 글이 붙어 있었다⁠. 「⁠탁주아 앰버서더⁠, 12월 18일 한 번뿐인 벽 개막 등반⁠」

“⁠제 영상이 회사 영상이 됐어요⁠.⁠” 나롱이 말했다⁠. “⁠제 목소리도 잘렸어요⁠. 마지막에 제가 꺄 하는 거요⁠. 그게 제일 웃긴 부분인데⁠.⁠”

“⁠앰버서더⁠.⁠”

“⁠광고 모델이요⁠. 쌤⁠, 주아 언니 지금 갇혀 있다면서요⁠. 갇힌 사람이 광고 모델을 해요⁠?⁠”

태하는 영상을 다시 틀었다⁠. 매트로 뛰어내린 주아가 초크 묻은 손으로 앞머리를 넘기고 태하에게 걸어오다 영상이 끝났다⁠. 하려던 말이 시작되기 직전에서 잘린 얼굴이었다⁠.

*

두 시⁠, 세빈은 라커를 비웠다⁠. 짐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갔다⁠. 초크 주머니⁠, 렌치 세트⁠, 테이프⁠, 낡은 암벽화 두 켤레⁠, 그리고 바나나 한 송이⁠. 계단을 내려가는 세빈을 철공소 사장이 붙잡았다⁠. 사장은 철공소 셔터 앞에 철판을 깔고 가스 불을 켜 놓은 참이었다⁠. 철판 위에서 삼겹살이 지글거렸다⁠.

“⁠잘렸다며⁠. 먹고 가⁠.⁠”

“⁠사장님⁠, 이거 공장 철판이잖아요⁠.⁠”

“⁠쇠 깎던 판이라 불이 고르게 들어⁠. 우리 공장 최고의 프리미엄이야⁠.⁠” 사장은 집게로 고기를 뒤집었다⁠. “⁠잘린 날은 고기를 먹는 거다⁠. 나도 열아홉에 처음 잘렸을 때 사장님이 이 판에 고기를 구워 줬어⁠. 그 사장님이 우리 아버지야⁠.⁠”

세빈이 철판 앞에 쪼그려 앉았다⁠. 태하도 계단을 내려와 옆에 앉았다⁠. 사장이 둘에게 상추를 한 장씩 쥐여 주었다⁠. 쇠 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여 골목에 퍼졌다⁠.

“⁠사장님은 왜 십 년째 같은 문제에서 떨어지세요⁠?⁠” 세빈이 고기를 씹으며 물었다⁠.

“⁠올라가면 내려와야 되잖아⁠. 내려오는 게 무서워⁠.⁠” 사장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두 번째 홀드에서 떨어지면 매트가 가까워⁠. 그게 좋아⁠.⁠”

태하는 상추를 쥔 채 사장을 보았다⁠. 사장은 고기만 보고 있었다⁠.

“⁠태하야⁠, 니 문제 이름이 뭐랬지⁠? 유턴⁠?⁠”

“⁠네⁠.⁠”

“⁠이름 잘 지었다⁠. 다들 올라갈 줄만 알지⁠. 내려오는 문제를 짜는 놈은 처음 봤어⁠.⁠”

세빈이 고기를 상추에 싸서 태하에게 내밀었다⁠. 이번에는 태하가 받았다⁠.

오후 네 시⁠, 문호가 혼자 계단을 내려갔다⁠. 코치들은 데스크 앞에 나란히 서서 문호를 보냈다⁠. 허리 나간 코치가 문호에게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고 문호의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려 주었다⁠. 문호는 철공소 골목으로 나가 큰길 쪽으로 걸었다⁠. 무릎을 끄는 걸음이 골목 끝에서 꺾였다⁠.

다섯 시⁠, 휘준이 태하를 45도 벽 앞으로 불렀다⁠. 회의가 끝나고도 휘준은 돌아가지 않았다⁠. 대표실에서 혼자 한 시간 넘게 전화를 했다⁠. 엄팔용이 대표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지 대표님이 경찰서에 가셨더군요⁠.⁠” 휘준이 말했다⁠. “⁠공태하 씨가 보내셨지요⁠.⁠”

“⁠제 발로 가셨어요⁠.⁠”

“⁠그래요⁠.⁠” 휘준은 「⁠유턴⁠」의 원래 슬로퍼를 올려다보았다⁠. 해람이 떼어 가겠다고 한 홀드는 아직 벽에 있었다⁠. 해람이 증거물 상자를 가지러 경찰서에 다녀오는 사이였다⁠. “⁠공태하 씨⁠, 저는 딸을 지키는 중입니다⁠. 딸이 가져간 서류가 세상에 나가면 직원 팔백 명이 다칩니다⁠. 대전점 그 친구한테는 할 만큼 했고요⁠. 딸은 그걸 모릅니다⁠. 스물넷이에요⁠. 정의롭고 싶은 나이지요⁠. 아버지는 정의보다 오래 살아야 하고요⁠.⁠”

“⁠주아 씨를 축제에 세우신다고요⁠.⁠”

“⁠딸이 원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그러더군요⁠. 앰버서더를 하겠다고⁠. 대신 조건이 하나 있었어요⁠.⁠” 휘준이 태하를 보았다⁠. “⁠개막 문제는 공태하 씨가 짠 문제로 오르겠다고요⁠. 다른 세터 문제는 안 오르겠답니다⁠.⁠”

태하의 손바닥이 저릿했다⁠.

“⁠제가 안 짜면요⁠.⁠”

“⁠딸은 개막 무대에 서지 않겠지요⁠. 그럼 축제가 끝나는 날 딸은 스위스에 있는 요양 병원으로 갑니다⁠. 쉬러요⁠. 오래⁠.⁠” 휘준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편세빈 씨 고소장은 내일 아침 접수되고요⁠. 지 대표님 일은 경찰이 알아서 하겠지요⁠.⁠”

휘준은 손을 내밀었다⁠. 굳은살 없는 마른 손바닥이 위를 향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 성수 플래그십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헤드 세터님⁠.⁠”

태하는 손을 잡지 않았다⁠. 휘준은 손을 거두지도 않았다⁠. 둘 사이에서 휘준의 손바닥이 한참 허공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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