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26자)

영상 편지

클라이밍 짐 회원이 실종됐다 · 류시안

수요일 오전 열 시⁠, 검은 차 두 대가 철공소 골목에 들어왔다⁠. 골목은 차 두 대가 나란히 서기엔 좁아서⁠, 앞차가 멈추자 뒤차는 용접 불꽃이 튀는 철공소 앞에 엉거주춤 멈췄다⁠. 철공소 사장이 용접 마스크를 올리고 차 앞유리를 노려보았다⁠. 운전석에서 덩치 큰 남자가 내려 사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귀에 꼬불꼬불한 줄이 꽂혀 있었다⁠.

데스크 창으로 골목을 내려다보던 나롱이 속삭였다⁠.

“⁠쌤⁠. 귀에 그거 진짜 꽂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드라마에서만 꽂는 줄 알았어요⁠.⁠”

“⁠조용히 해⁠.⁠”

“⁠저 사람 정장 한 벌이 제 몇 달 치일까요⁠?⁠”

태하는 대답하지 않고 손바닥의 초크를 바지에 문질렀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는 셋이었다⁠. 하나는 무겁고⁠, 하나는 가볍게 서둘렀고⁠, 하나는 느리고 고르게 한 칸씩 밟았다⁠.

탁휘준은 남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반백의 머리를 단정하게 넘겼고⁠, 눈매가 주아와 같았다⁠. 뒤에 서류 가방을 든 변호사와⁠, 골목에서 본 덩치가 섰다⁠. 덩치는 계단 끝에서 멈춰 짐 안을 한 바퀴 훑었다⁠. 출입문⁠, 데스크⁠, 대표실⁠, 뒷문⁠. 마지막에 태하를 보았다⁠.

휘준은 신발장 앞에서 구두를 벗었다⁠. 누가 말하기도 전이었다⁠. 양말 바람으로 매트 가장자리를 밟고 데스크까지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공태하 씨⁠. 전화로 실례했습니다⁠.⁠”

태하는 손을 잡았다⁠. 마른 손이었다⁠. 손바닥이 부드럽고 굳은살이 한 군데도 없었다⁠. 펜과 휴대전화 말고는 쥐어 본 것이 없는 손이었다⁠. 휘준은 태하의 손에 묻어 있던 초크가 제 손바닥에 옮은 것을 내려다보고 웃었다⁠.

“⁠우리 딸 손도 맨날 이랬어요⁠. 식탁에 하얀 자국을 남겨서 집사람한테 혼났지요⁠.⁠”

휘준은 손수건을 꺼내 손바닥을 닦지 않았다⁠. 하얀 가루가 묻은 손을 그대로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

대표실에는 의자가 넷뿐이었다⁠. 휘준과 변호사가 앉고⁠, 문호가 책상 뒤에 앉았다⁠. 태하는 문 옆 벽에 기대 섰다⁠. 덩치는 문밖을 지켰다⁠. 문호가 소개했다⁠. 회장님 곁을 지키는 엄팔용 실장님⁠. 엄팔용은 고개를 한 번 까딱했다⁠.

조금 뒤 계단을 올라온 금해람이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휘준이 일어나 해람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형사님도 같이 보시는 게 좋겠다 싶어서 제가 불렀습니다⁠.⁠”

해람은 앉지 않았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서 말했다⁠.

“⁠보여 주실 게 있다고요⁠.⁠”

변호사가 태블릿을 책상에 세웠다⁠. 화면 속에 주아가 있었다⁠.

흰 방이었다⁠. 주아는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회색 후드티를 입었고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화면 가장자리에 벽이 보였다⁠. 나무로 깎은 작은 홀드가 천장까지 촘촘히 박힌 벽이었다⁠. 주아가 카메라를 보고 입을 열었다⁠.

“⁠아빠⁠. 나 좀 쉴게요⁠. 요즘 너무 정신이 없었어⁠. 오버행 사람들한테도 미안하고요⁠. 신발 거기 두고 와서 죄송해요⁠. 찾지 마세요⁠. 나 괜찮아⁠.⁠”

주아는 웃었다⁠. 웃는 얼굴로 오른손을 무릎에 올렸다⁠. 손가락을 활짝 펴서 무릎을 눌렀다⁠.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손을 거두기 전에 손가락 끝을 오므렸다⁠. 얇은 크림프를 첫 마디로 집을 때의 모양이었다⁠.

영상은 일 분이 안 됐다⁠. 화면이 멈췄다⁠. 휘준이 해람을 보았다⁠.

“⁠어제 저녁에 찍었습니다⁠. 날짜가 화면에 나와 있어요⁠. 우리 딸은 지금 쉬고 있고⁠, 본인이 그걸 원합니다⁠. 성인이고요⁠.⁠”

“⁠직접 만나서 확인해야 합니다⁠.⁠” 해람이 말했다⁠.

“⁠딸이 원하지 않습니다⁠. 형사님⁠. 아버지가 딸을 집에 두는 게 범죄입니까⁠?⁠”

“⁠아버님 집에 있다는 말씀이세요⁠?⁠”

휘준은 웃었다⁠. 대답은 변호사가 했다⁠.

“⁠어디서 쉬는지는 따님의 사생활입니다⁠. 본인이 영상으로 의사를 밝혔고⁠, 실종 신고는 어머님이 하셨지요⁠. 어머님과 회장님은 열두 해 전에 이혼하셨습니다⁠. 이 영상 원본은 오늘 오후에 경찰서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해람은 태블릿을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 휘준에게 고개를 숙였다⁠. 짧고 각진 인사였다⁠.

“⁠원본 받겠습니다⁠.⁠”

해람이 나가면서 문 옆의 태하를 지나쳤다⁠. 지나치는 순간 아주 작게⁠,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무릎⁠.

태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끄덕이지 않아도 해람은 알았다⁠.

*

해람이 가자 휘준이 다리를 꼬고 문호를 보았다⁠. 문호는 책상 위의 서류를 휘준 앞으로 밀었다⁠. 도장이 찍혀 있었다⁠. 오늘 아침 일곱 시⁠, 태하가 문을 열기 전에 찍은 도장이었다⁠.

“⁠직원분들 다 모아 주시겠어요⁠?⁠” 휘준이 말했다⁠. “⁠좋은 소식이니까요⁠.⁠”

데스크 앞에 다시 모두가 모였다⁠. 코치 셋⁠, 세빈⁠, 나롱⁠, 태하⁠. 회원 몇이 벽에 매달린 채 고개를 돌렸다⁠. 휘준은 매트 한가운데에 양말 바람으로 서서⁠, 박수라도 받을 사람처럼 두 손을 모았다⁠.

“⁠오버행이 오늘부터 한번 가족이 됩니다⁠. 제가 드린 대출을 지분으로 바꿨습니다⁠. 오십일 퍼센트예요⁠. 지 대표님은 대표로 그대로 계시고⁠, 여러분 자리도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좋아질 겁니다⁠. 홀드도 새로 들이고⁠, 회원 관리도 앱으로 하고요⁠.⁠”

코치 하나가 손을 들었다⁠. 손가락 인대가 끊어져 검지가 반쯤 굽은 코치였다⁠.

“⁠회원비는요⁠?⁠”

“⁠프리미엄 회원제로 갑니다⁠. 지금 회원분들은 반년 동안 지금 가격 그대로고요⁠.⁠”

“⁠반년 뒤에는요⁠?⁠”

“⁠반년 뒤에 다시 말씀드리지요⁠.⁠”

휘준은 웃었다⁠. 웃음 끝에 아무것도 붙이지 않았다⁠. 문호는 휘준의 등 뒤에서 무릎을 짚고 있었다⁠. 직원들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단톡방은 점심 전에 터졌다⁠. 「⁠오버행 한번이 먹음⁠」 「⁠회원비 두 배설⁠」 「⁠프리미엄이 뭔데 V2도 프리미엄 받아 줌⁠?⁠」 마지막 말은 철공소 사장이었다⁠. 사장은 이어서 한 줄을 더 보냈다⁠. 「⁠쇠 깎는 사람이 무슨 프리미엄이냐 짱돌이나 잡게 해 줘라⁠」 나롱이 이 말을 화면 캡처해서 태하에게 보여 주며 울상을 지었다⁠.

“⁠쌤⁠, 저 앱으로 회원 관리하면 데스크 알바 필요 없잖아요⁠.⁠”

“⁠아직 몰라⁠.⁠”

“⁠제 계정 삼십만도 이제 회사 거래요⁠. 아까 실장님이 영상 원본 달래요⁠.⁠”

*

휘준은 돌아가기 전에 태하를 45도 벽 앞으로 불렀다⁠. 엄팔용이 몇 걸음 뒤에 섰다⁠. 휘준은 「⁠유턴⁠」을 올려다보며 손을 뒷짐 졌다⁠.

“⁠이게 그 문제군요⁠. 딸이 첫 번에 올랐다는⁠.⁠”

“⁠네⁠.⁠”

“⁠좋은 문제를 짜셨어요⁠. 다음 주 토요일⁠, 성수 플래그십에서 축제를 엽니다⁠. 「⁠한 번뿐인 벽⁠」 18미터 유리 벽이에요⁠. 개막 문제를 공태하 씨가 짜 주셨으면 합니다⁠. 헤드 세터로요⁠. 지금 받으시는 것의 세 배를 드리지요⁠.⁠”

태하는 「⁠유턴⁠」의 슬로퍼를 보았다⁠.

“⁠주아 씨를 만나게 해 주세요⁠.⁠”

“⁠딸은 쉬는 중이에요⁠.⁠”

“⁠영상에서 주아 씨가 무릎을 눌렀어요⁠. 손바닥을 펴서 두 번요⁠.⁠”

휘준이 고개를 돌려 태하를 보았다⁠. 눈이 웃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버릇이에요⁠. 긴장하면 무릎을 눌러요⁠. 아빠니까 압니다⁠.⁠”

“⁠그건 제가 가르친 거예요⁠. 지난달에요⁠. 볼트 조이고 나서 홀드가 안 도는지 보는 거예요⁠.⁠”

엄팔용이 한 걸음 다가왔다⁠. 휘준이 손을 조금 들어 엄팔용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공태하 씨⁠. 우리 딸이 공태하 씨 얘기를 자주 했어요⁠. 손이 정직한 사람이라고요⁠. 정직한 손으로 좋은 문제를 짜 주세요⁠. 딸이 좋아할 겁니다⁠.⁠”

“⁠거절할게요⁠.⁠”

“⁠그래요⁠.⁠” 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짐에서 일하실 이유도 없겠네요⁠. 지분을 정리하면서 세터 자리도 하나씩 다시 볼 거예요⁠. 천천히 생각하세요⁠. 토요일까지 열흘 있습니다⁠.⁠”

휘준은 구두를 신고 계단을 내려갔다⁠. 엄팔용은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유턴⁠」의 슬로퍼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짐에 들어와서 엄팔용이 벽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저녁 여덟 시⁠, 대표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문호는 책상에 식은 짜장면 그릇을 두고 젓가락만 들고 있었다⁠. 면이 불어서 그릇 모양대로 굳어 있었다⁠. 태하가 문을 두드리지 않고 들어가자 문호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도장⁠, 아침 일곱 시에 찍으셨어요⁠?⁠”

“⁠여섯 시 반⁠.⁠”

“⁠제가 형사님한테 영상 보여 준 다음 날이네요⁠.⁠”

“⁠네가 보여 주기 전부터 정해진 일이다⁠.⁠” 문호는 그릇을 옆으로 밀었다⁠. “⁠회장님은 몇 달 전부터 지분을 원했어⁠. 내가 버틴 거야⁠. 네가 형사 앞에서 판을 흔드니까 더 못 버틴 거고⁠.⁠”

“⁠그럼 제 탓이에요⁠?⁠”

“⁠누구 탓이 중요하냐⁠? 결과가 중요하지⁠.⁠” 문호는 무릎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비 오기 전날마다 하던 동작이었다⁠. “⁠이제 회장님이 주인이다⁠. 주인 딸 일에 직원이 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너 하나 나가는 걸로 안 끝나⁠. 세빈이도⁠, 코치들도⁠.⁠”

“⁠주아 씨 영상 보셨잖아요⁠. 손이요⁠.⁠”

“⁠나는 손 같은 거 몰라⁠.⁠” 문호가 고개를 들었다⁠. 눈 밑이 검었다⁠. “⁠태하야⁠. 나는 홀드 하나 볼 줄 모르는 대표야⁠. 사람 먹고사는 거나 보지⁠. 네 수술비 낼 때도 그랬어⁠. 홀드 보는 놈이 다치면 누가 대신 벽을 짜⁠? 그래서 낸 거다⁠.⁠”

태하는 대답할 말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수술비 이야기가 나오면 태하는 늘 할 말이 없어졌다⁠. 문호도 그것을 알았다⁠. 알고 꺼낸 말이었다⁠.

“⁠퇴근해라⁠.⁠” 문호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슬로퍼는 그만 만져⁠.⁠”

태하는 문고리를 잡은 채 멈췄다⁠. 슬로퍼 이야기를 문호 앞에서 한 적은 없었다⁠.

*

밤 열한 시 반⁠, 태하는 공구함에서 남은 4밀리 렌치를 꺼냈다⁠. 사다리를 벽에 대고 올라가 보라 슬로퍼의 볼트에 렌치를 끼웠다⁠. 손으로 먼저 돌렸다⁠. 볼트는 쉽게 풀렸다⁠. 쉽게 풀리는 볼트는 최근에 누가 조였다가 푼 볼트였다⁠.

슬로퍼를 벽에서 떼어 냈다⁠. 사다리 위에서 홀드를 뒤집었다⁠. 속이 빈 큰 홀드라 뒷면이 그릇처럼 파여 있었다⁠. 그릇 안쪽은 하얗고 깨끗했다⁠. 초크 한 점⁠, 먼지 한 점 없었다⁠. 태하의 슬로퍼는 세 해 동안 세척 통을 들락거리며 안쪽까지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그릇 바닥에 공장에서 찍힌 글자가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태하는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었다⁠. 「⁠2027⁠.11⁠」 지난달에 찍어 낸 홀드였다⁠. 같은 모델⁠, 같은 보라색이었다⁠.

태하가 산 슬로퍼는 2024년 것이었다⁠. 세 해 전 봄⁠, 첫 월급으로 직접 고른 홀드였다⁠.

손바닥으로 그릇 안을 쓸었다⁠. 매끄러웠다⁠. 태하는 볼트를 들어 와셔를 보았다⁠. 둥근 쇠 와셔 가장자리에 손톱만 한 투명한 것이 붙어 있었다⁠. 손끝으로 떼어 냈다⁠. 접힌 테이프 조각이었다⁠. 한쪽 끝이 찢겨 있었고⁠, 접힌 안쪽에 초크 가루가 묻어 있었다⁠.

벽에 붙어 있던 것을 누가 떼어 가면서 와셔에 한 귀퉁이를 흘린 자국이었다⁠.

태하는 사다리 위에서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채광창 너머로 골목 가로등이 깜빡였다⁠. 아래층 철공소는 캄캄했다⁠. 월요일 낮에 떼어 닦았다는 세빈의 말이 떠올랐다⁠. 새 솔로 박박 닦았더니 결이 살아났다는 말⁠. 손목 스냅이 좋다며 털어 보이던 손⁠.

태하는 새 슬로퍼를 제자리에 대고 볼트를 손으로 돌려 끼웠다⁠. 렌치로 조였다⁠. 손바닥을 펴서 눌렀다⁠. 홀드는 돌지 않았다⁠. 손바닥 밑의 결이 여전히 날을 세우고 있었다⁠.

테이프 조각은 휴대전화 케이스 안쪽에 끼워 넣었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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