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27자)
곰이 왔다
꼴찌 소환사가 부른 건 용이 아니라 닭이었다 · 문가온
초소 마당에서 이졸데가 단검을 뽑았다. 볼코의 경비대원들이 일제히 손을 칼자루로 가져갔지만, 이졸데는 단검을 사람에게 겨누지 않았다. 짐마차로 걸어가서 피오의 손목에 감긴 밧줄을 끊었다.
“크레인.”
볼코가 낮게 불렀다. 하얀 왼눈이 이졸데에게 박혀 있었다.
“묶인 놈은 묶인 채로 학교에 돌려보낸다. 그게 초소 규칙이다.”
“곰이 마차보다 빨라요. 마차는 하루 반 걸리고, 곰은 밤에 걸어요. 오늘 밤에 학교에 닿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기마병을 보낸다.”
“기마병이 곰을 어떻게 막아요? 경비대장님 늑대들도 저 굴 앞에 백 년 동안 못 갔잖아요.”
볼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졸데가 밧줄 토막을 땅에 던졌다.
“이 닭이 지친 용을 재웠어요. 지친 곰도 재울지 몰라요. 미끼로 데려가는 거예요. 책임은 크레인 가문이 져요.”
“네 아비가 그 말을 들으면 좋아하겠군.”
“아버지는 이 자리에 없어요.”
이졸데는 세라프의 등에 올랐다. 그리고 피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피오는 그 손을 잡기 전에 짐마차의 짐승들을 돌아보았다. 꽥이 쉿거렸고, 뿔이가 발을 굴렀고, 마구간 쪽에서 끄덕이가 울었다. 제레드가 짐마차 옆으로 와서 꽥을 안아 올렸다.
“내가 데려갈게. 마차로. 거위가 날 물면 네 탓이다.”
“꽥은 바스틴 가문 사람 안 물어요.”
“진짜?”
“모르겠어요.”
*
그리핀 등은 생각보다 넓었고, 생각보다 높았다. 세라프가 날개를 한 번 칠 때마다 피오의 위장이 목까지 올라왔다. 꼬끼는 피오의 외투 안에 머리만 내밀고 있었는데, 바람에 볏이 뒤로 납작하게 눌렸다. 꼬끼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꾸르르 소리를 냈다.
“꽉 잡아.”
이졸데가 앞에서 외쳤다. 피오는 세라프의 깃털을 잡았다가 세라프가 몸을 비트는 바람에 놓쳤고, 다음엔 이졸데의 허리를 잡았다.
“거기 말고.”
“그럼 어디요?”
“허리띠. 허리띠를 잡아. 손이 너무 위야.”
피오는 손을 내렸다. 얼굴이 뜨거웠다. 바람이 차서 다행이었다. 이졸데의 목덜미도 붉었는데, 그건 바람 탓일지도 몰랐다. 둘은 그 뒤로 한참 말이 없었다. 발아래로 자작나무 숲과 밀밭이 흘러갔다. 큰곰이 지나간 자리는 하늘에서도 보였다. 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넓은 고랑, 쓰러진 울타리, 짓밟힌 볏짚 더미. 고랑은 곧게 남쪽으로 뻗어 있었다.
“왜 곧장 학교로 가는 걸까요?”
피오가 바람 속에서 물었다. 이졸데는 대답하지 않다가 한참 뒤에 말했다.
“네 닭이 거기서 울었으니까.”
해가 기울 무렵 벨모어의 첨탑이 보였다. 세라프는 교장실 탑 옆 테라스에 내려앉았다. 이졸데와 피오가 교장실 문을 두드린 것은 저녁 종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교장 알브레히트는 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찻잔을 내려놓고, 수염을 쓰다듬고, 웃었다.
“큰곰이라. 백 년 잔 짐승이 하루에 그 길을 내려온다고? 크레인 양, 자네답지 않군. 경비대장 볼코는 예전부터 겁이 많은 사람이었네.”
“밭에 난 고랑을 직접 봤습니다.”
“멧돼지 떼였겠지.”
“교장 선생님.”
피오가 말했다. 교장의 눈이 피오에게로 왔다.
“북쪽 담 밑 돌에 금이 간 거 아시잖아요. 은물 부으셨잖아요.”
교장의 손이 찻잔 손잡이에 걸린 채 멈췄다. 이번에는 오래 멈췄다. 그러고는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해즈 군, 통금 시간에 북쪽 담을 돌아다닌 건 자네 닭이었지. 근신이 아직 모자랐나?”
*
곰은 자정이 조금 지나 왔다.
먼저 땅이 울렸다. 기숙사 침대가 한 번 흔들렸고, 창틀에 놓인 잉크병이 떨어져 깨졌다. 두 번째 울림에 북쪽 담이 무너졌다. 돌 무너지는 소리가 탑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 소리 끝에, 담 밑에 박혀 있던 큰 돌이 두 동강 나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피오는 닭장에서 뛰어나왔다. 무너진 담의 먼지 사이로 큰곰이 들어서고 있었다. 키가 기숙사 2층 창문에 닿았다. 털은 잿빛 이끼와 엉켜 있었고, 등에는 백 년 동안 쌓인 낙엽과 흙이 붙어 있었다.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잠이 덜 깬 눈이었다. 그런데 배가 고팠다. 그 냄새가 났다. 비어 있는 큰 위장에서 올라오는 시큼하고 들척지근한 냄새였다.
곰은 가장 먼저 식당 쪽으로 갔다. 식당 뒷문을 앞발로 뜯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낼 귀리죽 솥에 머리를 처박았다. 솥이 통째로 들렸다. 곰은 솥을 뒤집어쓴 채로 귀리죽을 핥았다.
“내 솥! 그거 내 솥이야!”
식당 요리장이 국자를 들고 뛰어나오다가 곰과 눈이 마주치고 그대로 돌아서 뛰어 들어갔다. 학교에 남아 있던 2학년과 3학년들이 소환수를 데리고 쏟아져 나왔다. 용 셋이 불을 뿜었다. 불길이 곰의 털에 닿자 이끼가 지글거리며 탔는데, 곰은 솥을 벗어 던지고 그쪽으로 몸을 돌렸을 뿐이었다. 앞발 하나가 휘둘렸다. 용 한 마리가 숙사 지붕까지 날아갔다.
세라프가 위에서 내리꽂혔다. 발톱이 곰의 어깨를 긁었다. 곰이 몸을 비틀며 팔을 휘둘렀고, 그 팔이 세라프의 오른쪽 날개를 쳤다. 그리핀이 비명을 지르며 땅에 떨어졌다. 이졸데가 달려가 그 날개를 감쌌다. 날개깃이 반쯤 꺾여 있었다.
곰이 기숙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기숙사 현관에는 잠옷 차림의 저학년 몇이 겁에 질려 서 있었다. 사감 버트가 그 앞으로 뛰어나왔다. 잠자리 모자를 쓴 채로, 맨손으로, 팔을 벌리고.
“들어가! 다들 들어가라고!”
곰의 앞발이 버트를 쳤다. 버트는 현관 계단 아래로 굴렀다.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비명이 짧게 끊겼다. 잠자리 모자가 계단에 떨어졌다.
그때 바우가 왔다. 쇠띠로 묶은 날개를 단 채로, 닭장에서 기숙사 현관까지 땅을 울리며 뛰어왔다. 바우는 곰의 팔을 붙잡았다. 돌과 털이 부딪혔다. 곰이 팔을 흔들자 바우가 끌려갔지만 놓지 않았다. 바우의 어깨에서 금이 번지는 소리가 났다.
피오는 꼬끼를 안고 곰 앞으로 나갔다.
“이쪽이야!”
꼬끼가 피오의 품에서 목을 빼고 꾸르르 울었다. 곰의 반쯤 감긴 눈이 꼬끼에게로 돌아왔다. 콧구멍이 벌어졌다. 냄새를 맡았다. 곰은 바우의 손을 털어 내고 피오 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피오는 뛰었다. 탑 정원 쪽으로.
*
회양목 미로는 학년 대항전 때 부러진 울타리가 아직 다 고쳐지지 않은 채였다. 피오는 그 길을 알았다. 꽥이 깃발 아래서 쉿거리던 자리, 뿔이가 기어오른 정자, 바우가 떨어진 바닥. 피오는 왼쪽 둘째 길로 꺾었고, 곰이 울타리를 통째로 밀고 따라왔다. 회양목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곰의 숨소리가 등 뒤에 바짝 붙었다.
옆에서 발소리가 따라붙었다. 이졸데였다. 세라프는 날지 못하고 땅에서 사자처럼 뛰었다.
“정신 나갔어? 혼자 저걸 끌고 다녀?”
“지치게 해야 돼요. 실습장에서처럼요.”
“저건 용이 아니야!”
“알아요! 그러니까 같이 뛰어요!”
이졸데가 욕을 했다. 피오가 처음 듣는 이졸데의 욕이었다. 시골 장터에서도 잘 안 쓰는 욕이었다. 그러고는 방향을 틀어 곰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세라프가 곰의 뒷다리를 물었다가 놓고 빠졌다. 곰이 몸을 돌리면 피오가 꼬끼를 들어 울음을 흘렸고, 곰이 다시 피오에게로 돌아오면 이졸데가 옆을 쳤다.
분수대를 돌았다. 해시계를 돌았다. 정자를 돌고, 다시 분수대. 피오의 다리가 납처럼 무거워졌다. 폐가 불에 덴 것처럼 아팠다. 몇 번 넘어졌고, 그때마다 이졸데가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이졸데의 이마에도 땀과 피가 섞여 흘렀다.
곰의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한 것은 탑 시계가 네 시를 친 뒤였다. 앞발을 디딜 때마다 무릎이 휘청했고, 숨이 거칠어졌다. 반쯤 감겼던 눈이 더 감겼다. 백 년 동안 굶은 몸으로 밤새 뛴 짐승이었다.
“지금이야?”
이졸데가 헐떡이며 물었다.
“아직요. 다섯 시가 제일 멀리 가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모르겠어요. 마르타 할머니가 그랬어요.”
이졸데가 또 욕을 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다섯 시를 알리는 탑 종이 울리기 직전, 피오는 분수대 위로 올라섰다. 다리가 후들거려 떨어질 뻔했고, 이졸데가 뒤에서 허리띠를 잡아 주었다. 곰이 분수대 앞에 멈춰 섰다. 머리가 피오의 눈높이였다. 시큼한 숨이 얼굴을 덮었다.
꼬끼가 가슴을 부풀렸다.
“꼬오오오오끼이이이오오오오오.”
피오가 들은 꼬끼의 울음 가운데 가장 길었다. 소리가 탑 정원을 넘고, 무너진 북쪽 담을 넘어 북쪽으로 날아갔다.
곰이 하품을 했다. 송곳니가 피오의 팔뚝만 했다. 하품이 끝나기도 전에 곰의 무릎이 꺾였다. 앞발이 분수대 테두리에 걸쳐졌고, 그 위에 머리가 놓였다. 눈이 감겼다. 코 고는 소리가 땅을 울렸다.
*
교장 알브레히트가 교수 넷을 데리고 정원으로 내려온 것은 그로부터 십 분 뒤였다. 교수들 손에 은빛 병이 들려 있었다. 교장은 잠든 곰을 한 바퀴 돌아보고, 피오와 이졸데 앞에 섰다.
“수고했네. 이제 비켜 주게.”
“뭐 하시려고요?”
피오가 물었다. 목이 쉬어서 소리가 갈라졌다.
“다시 재울 수 없으면 끝내야지. 자는 동안. 깨면 또 담을 부수네.”
교수들이 병마개를 열었다. 은물 냄새가 났다. 쇠 냄새에 잠 냄새가 섞인, 꼬끼가 쪼았다가 뱉었다는 그 냄새였다. 피오는 곰의 머리 앞에 섰다. 다리가 떨려서 분수대 테두리를 짚어야 했다.
“안 비켜요.”
“해즈 군.”
“국경에서도 안 비키려고 했어요. 그때는 밀려났고요.”
교장의 눈이 이졸데에게로 갔다.
“크레인 양, 학생을 데리고 물러서게.”
이졸데는 움직이지 않았다. 피오는 이졸데가 자기 팔을 잡아당길 거라고 생각했다. 국경에서처럼. 그런데 이졸데는 피오의 옆으로 와서 섰다. 곰의 머리를 등지고, 교장을 마주 보았다. 세라프가 꺾인 날개를 끌며 그 옆에 엎드렸다.
“저도 안 비켜요.”
교장의 눈썹이 올라갔다.
“자네 아버지가 들으면 뭐라 하겠나?”
“모르겠어요. 아마 약하다고 하시겠죠.”
이졸데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다. 그래도 끝까지 말했다.
“그 멧돼지 소리를 또 듣고 싶지 않아요. 오빠가 죽던 날 무슨 소리를 들었을지, 그날 밤 내내 생각했어요. 그 소리였을 것 같아요. 이번엔 안 들을 거예요.”
피오는 이졸데의 옆얼굴을 보았다. 이졸데는 피오를 보지 않았다. 손등으로 이마의 피를 한 번 훔쳤을 뿐이었다. 피오는 무릎에 힘을 주어 똑바로 섰다. 둘의 어깨가 거의 닿았다.
교장은 한참 둘을 보았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교장이 교수들에게 손을 저었다. 병마개가 닫혔다.
해가 탑 정원 회양목 위로 올라왔을 때 곰이 눈을 떴다. 이번엔 반쯤이 아니었다. 눈이 완전히 열려 있었다. 맑은 갈색이었다. 곰은 천천히 머리를 들어 분수대 위의 꼬끼를 보고, 피오를 보았다. 그리고 머리를 숙였다. 이마가 피오의 가슴 높이까지 내려왔다.
피오는 손바닥을 곰의 이마에 댔다. 털이 거칠고 따뜻했다. 이끼 냄새와 흙냄새가 났다. 손목 안쪽이 따끔했고, 깃털 자국이 여섯이 되었다.
교장이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가 멈추고,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축제 예선은 사흘 뒤네, 해즈 군. 예선이 끝난 밤에 내 방으로 오게.”
교장의 목소리는 다시 부드러워져 있었다.
“자네 동생 리나 양 이야기를 좀 하지. 손가락이 몇 개째 굳었다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