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55자)
백 년 전의 울음
꼴찌 소환사가 부른 건 용이 아니라 닭이었다 · 문가온
밤 열한 시 반, 서쪽 기숙사 1층 복도에는 사감 버트의 코 고는 소리가 깔려 있었다. 사감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버트는 의자에 앉은 채 잠자리 모자를 눈까지 내려쓰고 있었다. 배 위에 펼쳐 놓은 책이 숨을 쉴 때마다 오르내렸다. 그 앞을 지나야 뒷문이었다.
“내가 시선을 끌게.”
제레드가 속삭였다. 피오가 무엇을 하려는지 묻지도 않고 따라 내려온 참이었다. 붉은 목도리를 잠옷 위에 두르고 있었다.
“어떻게요?”
“불씨가 요즘 잘 자거든. 그러니까 지금은 안 쓰고.”
제레드는 사감실 문 앞으로 걸어가 일부러 크게 하품을 했다. 버트가 모자를 들어 올렸다. 제레드는 배를 움켜쥐고 신음을 냈다.
“사감님, 저 식당 수프가 이상했나 봐요. 배가, 아이고, 배가.”
“바스틴? 또 너냐? 지난주엔 머리가 아프다더니.”
“이번엔 진짜예요. 머리는 거짓말이었고요.”
버트가 투덜거리며 일어나 약상자를 뒤지는 동안 피오는 벽에 붙어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등 뒤에서 버트가 이 쓴 걸 다 마시라고 소리쳤고, 제레드가 그걸 마시고 진짜로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
자정의 사육장 뒤편은 짐승 냄새가 짙었다. 마른 풀과 축축한 털과 고기 썩는 냄새가 담 안쪽에서 넘어왔고, 어디선가 커다란 것이 잠결에 코를 고는 소리가 담을 타고 울렸다. 물통 놓는 자리 옆에 판잣집 한 채가 붙어 있었다. 창 하나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피오는 꼬끼만 품에 넣고 왔다. 바우는 닭장에 두고 왔고, 꽥도 두고 왔다. 꽥은 피오가 닭장 문을 닫을 때 쉿쉿 소리를 내며 항의했는데, 그 소리가 기숙사 뒷마당 끝까지 들렸다.
마르타가 판잣집 문을 열었다. 안은 좁았다. 침대 하나, 약초 다발이 거꾸로 매달린 천장, 짐승 발굽을 다듬는 줄과 칼이 걸린 벽. 노인은 피오를 침대 끝에 앉히고, 침대 밑에서 녹슨 양철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 물건이 둘 있었다. 하나는 붉은 깃털 한 묶음이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랬는데, 묶은 실만은 새것이었다. 마르타가 몇 해에 한 번씩 실을 갈아 묶은 것 같았다. 다른 하나는 손바닥만 한 청동 장식이었다. 닭 볏 모양으로 두드려 편 청동판에 작은 핀이 붙어 있었다. 옷깃에 꽂는 장식이었다.
“할머니 거다. 에다 할머니. 저 볏을 옷깃에 꽂고 다녔어. 때알림 소환사들은 다 그랬대.”
“때알림이요?”
“닭을 부르는 소환사. 옛날엔 그렇게 불렀어. 봄에 들판을 깨우고, 겨울잠 든 곰이 너무 일찍 나오면 도로 재우고. 마을마다 한 집씩은 있었다더라.”
마르타가 청동 볏을 촛불 쪽으로 기울였다. 볏 가장자리에 손때가 까맣게 배어 있었다. 피오는 그 볏을 보다가 꼬끼를 보았다. 꼬끼는 피오의 품에서 고개를 빼고 청동 볏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기보다 붉은 볏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그 울음은 시계가 아니야.”
마르타가 말했다.
“다섯 시에 운다고 시계가 아니라고. 듣는 놈한테 제 때를 알려 주는 소리야. 잘 만큼 잔 놈은 깨우고, 지칠 만큼 지친 놈은 재워. 네 석상은 백 년을 잤으니 깼고, 그 새끼 용은 반나절을 미쳐 날뛰었으니 잤지.”
피오는 실습장의 모래밭을 떠올렸다. 열네 번째 불이 연기로만 나오던 순간, 그리고 꼬리를 말던 불씨.
“그럼 왜 금지됐어요?”
마르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촛불 심지를 손가락으로 집어 길이를 맞추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백 년 전에 북쪽 숲에서 마수들이 내려왔다. 잿빛잠 숲. 그땐 그냥 북쪽 숲이라고 불렀다지. 국경 마을이 여럿 불탔어. 왕국 소환사들이 모여서 숲을 통째로 재웠다. 숲 둘레에 돌을 박아서 잠을 붙잡아 두는 의식이었는데, 그 의식을 앞에서 이끈 집안이 하일 가문이야.”
“교장 선생님 집안이요?”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쯤.”
마르타가 깃털 묶음을 쓰다듬었다.
“숲을 재우고 나니 때알림 소환사들이 문제였지. 그 사람들 닭이 새벽에 울면 잠이 풀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왕국이 정했다. 닭을 부르는 원은 그리지 마라. 이미 계약한 놈은 돌려보내라. 할머니는 닭을 돌려보내던 날 이 깃털을 뽑아서 남겼대. 그다음엔 원을 한 번도 안 그렸어. 사육장에서 남의 짐승 밥만 주다 죽었지. 나처럼.”
판잣집 벽 너머에서 짐승 하나가 몸을 뒤척였다. 바닥이 미세하게 울렸다.
“할머니한테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더라. 국경 마을로 시집가서 소식이 끊겼다고.”
마르타는 그 말을 하고 피오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피오는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북쪽 국경 마을 사람, 새벽에 우는 닭은 함부로 잡지 말라던 사람. 마르타는 더 묻지 않았고, 피오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럼 숲은요? 꼬끼가 계속 울면.”
“백 년이면 잘 만큼 잤지.”
*
판잣집 문이 밖에서 열렸다. 등불 빛이 바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졸데 크레인이 등불을 든 채 서 있었고, 그 뒤에 세라프가 은빛 날개를 반쯤 펴고 있었다.
“통금 세 시간 지났어, 해즈.”
이졸데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문간에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았다. 등불을 든 손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수석은 야간 순찰을 돌아. 닭장이 비어 있길래 따라왔어. 거위가 아주 시끄럽게 알려 주더라.”
피오는 꽥을 데려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니, 데려왔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얼마나 들었어요?”
“충분히.”
이졸데가 판잣집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등불이 청동 볏을 비추었다. 이졸데는 그것을 보고, 마르타를 보았다.
“사육사님, 금지된 계통 이야기를 1학년한테 하는 건 교칙 문제가 아니에요. 왕국 법 문제예요.”
“그래서 고발하게?”
“그래야죠.”
마르타는 코웃음을 쳤다. 이졸데는 피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들었지? 네 닭이 울 때마다 국경 숲의 잠이 풀린다는 거야. 그런데도 계속 울릴 거야?”
“바우가 깼다고 누가 다쳤어요?”
“아직은.”
“불씨가 잤다고 누가 다쳤어요?”
“아직은이라고 했어.”
이졸데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세라프가 그 뒤를 따라 문간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순간 판잣집 밖에서 쉿, 하는 소리가 났다. 꽥이었다. 닭장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 모르지만, 거위는 자정의 어둠을 가로질러 여기까지 와 있었다. 꽥은 세라프의 사자 꼬리 끝을 정확히 물었다.
그리핀이 비명을 질렀다. 독수리 소리와 고양이 소리를 섞은 것 같은 비명이었다. 세라프가 펄쩍 뛰는 바람에 날개가 문틀에 걸렸고, 판잣집 천장에 매달린 약초 다발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졸데의 머리 위로 마른 쑥과 박하가 쏟아졌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졸데가 머리카락 사이에서 박하 잎을 하나 집어 냈다. 마르타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피오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어깨가 떨렸다.
“근신 일주일.”
이졸데가 말했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없었다.
“내일부터 수업 끝나면 교내 목장 노역. 사육사님은 교장실에 보고 올라갈 거예요. 거위는.”
이졸데는 꽥을 내려다보았다. 꽥이 목을 길게 빼고 이졸데를 마주 보았다.
“거위는 내가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할게. 세라프 체면이 있으니까.”
*
기숙사까지는 이졸데가 따라왔다. 근신 처분을 받은 학생을 방까지 데려다주는 것도 순찰의 일이었다. 둘은 북쪽 담을 따라 걸었고, 세라프가 조금 떨어져서 따라오며 가끔 꼬리 끝을 핥았다. 꽥은 피오의 팔에 안겨 있었다. 가을밤 공기가 차서 숨이 하얗게 나왔다.
“우리 오빠 이름은 루카스였어.”
이졸데가 먼저 말을 꺼냈다. 피오는 걸음을 늦췄다.
“입학 시험에서 여우를 불렀어. 붉은여우. 크레인 가문에서 그리핀이 아닌 걸 부른 사람은 오빠가 처음이었대. 아버지가 일 년 동안 오빠랑 말을 안 했어. 오빠는 그래도 웃었어. 여우가 귀엽다고.”
이졸데의 등불이 담벼락에 둥근 빛을 그리며 따라 흘렀다.
“졸업하고 국경 경비대로 갔어. 다들 그러니까. 두 해 전 겨울에, 숲 가장자리에서 잠이 덜 든 늑대곰 한 마리가 나왔어. 백 년 잠이라도 가장자리는 얕대. 가끔 잠결에 걸어 나오는 놈이 있어. 다른 경비대원들은 늑대랑 곰을 데리고 있었는데, 오빠는 여우였어. 여우가 먼저 막으러 갔대. 오빠가 여우를 따라갔고.”
이졸데는 거기서 잠깐 멈췄다가 걸음을 다시 옮겼다.
“나는 그해 1학년이었어. 장례식에서 아버지가 그랬어. 루카스는 착해서 죽은 게 아니라 약해서 죽었다고. 그 말이 맞아. 그래서 나는 약한 소환수가 국경에 가는 걸 막을 거야. 네가 착한 건 알겠어. 그래서 더 싫어.”
피오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닭이 늑대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었다. 지금은 그랬다.
“여우 이름이 뭐였어요?”
이졸데가 걸음을 멈췄다. 피오를 돌아보는 얼굴이 등불 아래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무언가를 물을 줄 몰랐던 사람의 얼굴이었다.
“단풍.”
이졸데는 그 이름을 아주 작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걸었다. 등불이 조금 흔들렸다.
“아무도 그걸 안 물었어. 장례식에서도.”
기숙사 뒷마당에 닿을 때까지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 닭장 앞에서 이졸데가 돌아섰다.
“근신은 근신이야. 내일부터 목장. 늦으면 하루 더.”
*
새벽 네 시 반에 피오는 닭장 짚 위에서 눈을 떴다. 손에 청동 볏이 쥐어져 있었다. 판잣집을 나서기 전에 마르타가 피오의 손에 쥐여 주었다. 내가 갖고 있어 봐야 녹만 슨다고,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꼬끼가 지붕에 올라갔다. 피오는 꼬끼를 남쪽으로 돌려 앉히려고 했다. 꼬끼는 피오의 손가락을 쪼고 다시 북쪽을 보았다. 세 번 돌려 앉혔고, 세 번 쪼였다. 피오는 손가락을 빨며 포기했다. 바우는 닭장 옆에서 짚을 덮은 채 머리만 들어 북쪽을 보았고, 꽥은 바우의 앞발 사이에 끼어 앉아 날개 밑에 부리를 묻고 있었다. 밤사이 서리가 내려 닭장 지붕 판자가 하얗게 젖어 있었다. 손끝이 시려서 피오는 청동 볏을 쥔 손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다섯 시.
“꼬오오오끼이이오오오오.”
울음이 끝나기 전에 피오의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청동 볏이었다. 처음엔 체온 정도였는데, 숨 두 번 쉬는 사이에 화롯불 옆에 둔 쇠처럼 달아올랐다. 피오는 볏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을 오므렸다. 손금 사이로 열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북쪽, 담 너머 아주 먼 곳에서 소리가 왔다. 큰 나무가 뿌리째 넘어갈 때 나는 소리 같았다. 땅속에서 먼저 울리고, 나중에 공기로 왔다. 사육장 안의 짐승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온실의 거북이 잠결에 길게 숨을 토했다.
피오는 손을 폈다. 청동 볏의 가장자리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마르타의 판잣집 쪽에서 창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하나 깼다.”
노인의 목소리가 어둠을 건너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