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90자)
모자 위의 닭
꼴찌 소환사가 부른 건 용이 아니라 닭이었다 · 문가온
벨모어 교장실은 본관에서 가장 높은 탑 꼭대기에 있었다. 나선 계단이 이백 칸이 넘었고, 피오는 백 칸째에서 꼬끼를 안고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꼬끼는 피오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혼자 계단을 올랐다. 한 칸 오를 때마다 날개를 반쯤 펴서 균형을 잡았고, 백오십 칸째쯤에서는 피오를 내려다보며 기다렸다. 피오는 그 눈길이 비웃음처럼 느껴졌다.
탑 꼭대기 방은 둥글었고 창이 사방으로 나 있었다. 벽을 따라 책이 천장까지 꽂혀 있었고, 책장 사이사이에 박제된 짐승 머리가 걸려 있었다. 늑대, 큰 뿔 사슴, 이름을 알 수 없는 비늘 달린 것. 방 안에는 오래된 종이와 밀랍과 계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북쪽 창으로 학교의 북쪽 담과 그 너머 사육장의 유리 지붕이 보였고, 그보다 훨씬 먼 지평선에 검푸른 띠 같은 숲이 걸려 있었다.
교장 알브레히트 폰 하일은 창가 책상에 앉아 차를 따르고 있었다. 보랏빛 모자는 책상 옆 모자걸이에 걸려 있었다.
꼬끼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날아올랐다. 피오가 붙잡을 틈도 없었다. 꼬끼는 모자걸이 꼭대기, 보랏빛 모자 위에 정확히 내려앉았고, 모자가 걸이째 기우뚱했다.
“역시 그 자리로군.”
교장은 놀라지도 않았다. 차를 한 잔 더 따라 피오 앞으로 밀었다.
“앉게, 해즈 군. 그 녀석은 거기 두고. 내 모자는 오래 써서 이제 닭 한 마리쯤은 견딜 걸세.”
피오는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쳤다. 찻잔에서 꿀 냄새가 났다. 교장은 피오가 한 모금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꺼냈다.
“어제 대결 이야기는 들었네. 용이 잤다더군. 소환학 교수가 아침 내내 웃더라고. 그 사람이 웃는 걸 십 년 만에 봤네.”
“감사합니다.”
“고맙긴. 그래서 자네한테 줄 게 있어.”
교장이 서랍에서 서류 한 장과 작은 은 고리 하나를 꺼냈다. 고리는 손가락 한 마디만 했고, 안쪽에 잔글씨가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창에서 들어온 햇빛이 그 글씨 위에서 미끄러졌다.
“특대 장학금이네. 소환수 사료비 전액, 숙사 배정, 학년 끝까지. 닭장 말고 남쪽 숙사의 볕 잘 드는 칸을 주지. 그 석상도 같이 들어갈 수 있는 넓은 칸으로.”
피오는 서류를 보았다. 금액이 적힌 줄에서 눈이 멈췄다. 고향 양계장이 한 해 동안 버는 돈보다 많았다.
“조건이 있네. 아주 작은 거야.”
교장이 은 고리를 손바닥에 올려 피오 쪽으로 내밀었다.
“새벽 다섯 시에만 이걸 그 녀석 부리에 채워 주게. 울음이 안 나오게. 낮에는 풀어도 좋아. 대결할 때도. 다섯 시, 딱 그때만.”
피오는 고리를 받지 않았다.
“왜요?”
“늙은이는 아침잠이 귀하다네. 탑 꼭대기까지 그 소리가 올라와.”
“여기까지 올라온다고요?”
“올라오지. 생각보다 멀리 가는 소리야.”
교장은 웃고 있었다. 수염 아래 입꼬리가 부드러웠다. 그런데 눈은 꼬끼를 보고 있지 않았다. 북쪽 창을 보고 있었다. 피오는 그 시선을 따라갔다. 지평선의 검푸른 띠. 마르타가 북쪽 담 쪽으로는 울리지 말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새벽에 울면 깨는 게 있어요. 바우가 그렇게 깼어요. 어제 불씨는 그 소리에 잤고요. 그게 뭔지 알려 주시면 생각해 볼게요.”
교장의 손이 찻잔 위에서 잠깐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차를 저었다.
“해즈 군, 외가는 어디 사람인가?”
갑자기 나온 물음이었다. 피오는 대답하기 전에 눈을 깜빡였다.
“외할머니가 북쪽 국경 마을 출신이었어요. 제가 열 살 때 돌아가셨고요.”
“무슨 말씀을 남기셨나?”
“새벽에 우는 닭은 함부로 잡지 말라고요. 그 말만 자주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 집은 늙은 수탉도 안 잡아먹었어요. 아버지가 그걸로 늘 투덜거리셨고요.”
교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은 고리를 손바닥 위에서 한 바퀴 굴렸다.
“생각해 볼 필요는 없네. 받든지 말든지.”
“그럼 안 받을게요.”
“그렇군.”
교장이 고리를 서랍에 넣고 서류를 반으로 접었다. 접는 손이 느렸다. 피오는 일어나서 모자걸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꼬끼가 그 손을 한 번 쪼고 나서야 피오의 팔로 옮겨 왔다.
“해즈 군.”
문간에서 교장이 불렀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닭 퇴출 청원은 다음 달 그믐에 교수회 표결로 간다네. 교수회는 대체로 내 말을 잘 듣는 편이야. 대체로.”
피오는 문고리를 쥔 채로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꼬끼는 한 번도 피오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
토요일, 학원 도시 아랫벨모어의 장터는 북쪽 담 바로 아래 비탈에 섰다. 학생들이 쓰는 잉크와 양초 가게 사이에 채소 수레와 가축 우리가 뒤섞여 있었다. 피오는 주머니를 뒤집어 보았다. 은화 세 닢과 동전 몇 개. 마르타가 준 자루는 벌써 반이 비었고, 바우가 깔고 잘 짚도 사야 했다. 장학금 서류를 접던 교장의 느린 손이 자꾸 생각났다.
장터 한쪽 가금 가게의 여주인 할다는 팔뚝이 피오 허벅지만 했다. 피오가 일거리를 묻자 할다는 피오의 손을 한 번 보고 곡식 자루가 쌓인 수레를 턱으로 가리켰다.
“해 질 때까지 저거 다 창고로. 은화 두 닢.”
피오는 자루를 어깨에 메고 창고와 수레 사이를 오갔다. 자루마다 보리 먼지가 목 뒤로 흘러 들어가 땀과 섞였다. 꼬끼는 수레 위에 앉아 터진 자루에서 흘러나온 낟알을 주워 먹었고, 할다가 그걸 보고도 모른 척했다. 바우는 따라오지 못했다. 학교 정문을 지키는 경비가 학교 재산은 담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막았다. 바우는 정문 안쪽에서 무릎을 모으고 앉아 피오가 돌아올 쪽을 보고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가게 뒤쪽 우리에서 비명이 터졌다.
거위 한 마리가 우리 문을 머리로 밀어 젖히고 튀어나왔다. 하얀 깃털에 주황빛 부리, 목이 유난히 길고 굵었다. 거위는 날개를 펴고 쉿쉿 소리를 내며 장터 한가운데로 돌진했다. 채소 수레가 넘어갔고 양배추가 비탈을 굴러 내려갔다. 양초 가게 주인이 의자 위로 뛰어올랐다.
“저놈 또! 저놈 사흘 동안 셋을 물었어! 내일 정육점에 넘긴다니까!”
할다가 앞치마를 벗어 휘두르며 뛰었다. 거위는 할다를 피해 방향을 틀더니, 마침 잉크 가게 앞에 서 있던 남색 망토의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청년은 덩치가 크고 목이 굵었으며, 망토 가슴에 은빛 학 문장이 박혀 있었다. 크레인 가문의 문장이었다. 청년이 돌아서는 순간 거위가 그 엉덩이를 물었다.
청년의 비명은 거위의 소리보다 높았다.
장터가 웃음으로 무너졌다. 청년은 엉덩이를 붙잡고 한 바퀴 돌았고, 거위는 망토 자락을 문 채로 끌려 돌았다. 피오는 자루를 내려놓고 달려갔다. 꼬끼가 먼저 도착했다.
꼬끼는 거위 앞에 내려섰다. 거위가 꼬끼보다 두 배는 컸다. 거위가 망토를 놓고 목을 낮게 뻗어 쉿 소리를 냈다. 꼬끼는 물러서지 않고 볏을 세웠고, 목털이 부채처럼 펼쳐졌다. 둘은 한동안 그렇게 마주 보았다. 장터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꼬끼가 거위의 부리 끝을 쪼았다. 딱, 한 번.
거위가 목을 거두었다. 날개를 접고, 주저앉았다. 꼬끼 쪽으로 고개를 한 번 기울이고, 그다음에 피오를 보았다.
피오는 흙바닥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분필이 없었다. 손가락 끝에 흙이 끼었다. 바깥 원, 부름 글자 일곱 개, 마지막 획. 거위는 뒤뚱거리며 원 안으로 걸어 들어와 피오의 무릎 앞에 앉았다. 손목 안쪽이 따끔했다. 깃털 자국이 셋이 되었다.
“너 이 자식.”
엉덩이를 문지르며 다가온 청년이 피오의 멱살을 잡았다. 숨에서 맥주 냄새가 났다.
“네가 그 닭 놈이지. 내가 누군 줄 알아? 볼드윈 크레인이다. 3학년. 이졸데가 내 사촌이야. 그 거위 지금 당장 목 비틀어. 안 그러면 너도 같이 비틀어 줄 테니까.”
“이제 제 소환수예요. 소환수 해치는 건 학칙 위반이고요.”
볼드윈의 얼굴이 붉어졌다. 멱살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거위가 다시 일어나 볼드윈의 장화 끝을 물었다. 볼드윈이 손을 놓고 펄쩍 뛰었다. 장터가 또 웃었다.
“계약 축제에서 보자, 닭 놈. 내 멧돼지가 네 닭이랑 거위를 같이 밟아 줄 테니까.”
볼드윈이 절뚝이며 사라진 뒤 할다가 팔짱을 끼고 피오 앞에 섰다.
“그 거위, 정육점에 은화 두 닢 받기로 했던 건데.”
피오는 오늘 품삯으로 받기로 한 은화 두 닢을 생각했다. 할다는 피오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품삯이랑 바꾸자. 대신 다음 주 토요일에도 와. 자루가 또 들어와.”
피오는 거위에게 「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터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듣고 또 웃었다.
*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피오는 정문 대신 북쪽 담을 따라 걸었다. 바우는 정문에서 피오를 보자마자 일어나 따라붙었고, 꽥은 바우의 발등에 올라타고 싶어 했다. 꼬끼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북쪽 담 한가운데에 왕실 마수 사육장의 쇠문이 있었다. 문살마다 왕실 문장이 박혀 있었고, 자물쇠는 피오의 주먹보다 컸다. 문살 사이로 안이 보였다. 넓은 풀밭과 돌로 쌓은 우리들, 그 끝의 유리 온실. 온실 안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등껍질이 언덕만 한 거북이었다. 거북이 숨을 내쉴 때마다 온실 유리가 안쪽부터 뿌옇게 흐려졌다가 맑아졌다.
그 숨이 닿는 자리에 풀이 자라 있었다. 해가 진 뒤라 주변이 어두웠는데, 그 풀만은 스스로 빛을 냈다. 푸른빛이었다. 달빛보다 차고, 촛불보다 고요했다.
새벽초였다.
피오는 문살을 잡았다. 쇠가 차가웠다. 리나가 처음 손가락이 굳었다고 말한 날을 떠올렸다. 장에 갔다 돌아온 피오에게 리나는 웃으면서 숟가락을 왼손으로 바꿔 들어 보였다. 이거 봐, 오빠. 왼손으로도 먹어. 그날 피오는 닭장 뒤에 가서 오래 앉아 있었다. 문살 사이로 보이는 푸른빛이 그날 닭장 뒤에서 본 저녁 하늘과 같은 색이었다.
“열쇠는 나도 없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마르타가 빈 물통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문 안쪽에서 밥만 줘. 이 쇠문 열쇠는 왕실 문지기가 갖고 있고, 축제에서 우승한 사람한테만 하나가 더 나와.”
“알아요.”
마르타는 꽥을 보고 눈썹을 올렸다가, 꼬끼를 보고, 다시 피오를 보았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교장한테 불려 갔다며. 은 고리 내밀었지?”
피오가 놀라서 돌아보았다. 마르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 닭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으면 내일 밤 자정에 사육장 뒤 물통 놓는 자리로 와. 혼자. 교장한테는 말하지 말고.”
노인은 물통을 고쳐 들고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온실 안에서 거북이 숨을 내쉬었고, 유리가 다시 뿌옇게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