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97자)

용이 잤다

꼴찌 소환사가 부른 건 용이 아니라 닭이었다 · 문가온

대결 날 아침, 4층 창문에 까마귀 한 마리가 부리를 두드렸다. 발목에 은빛 고리를 찬 전령 까마귀였다. 바스틴 가문의 문장이 찍힌 고리였다. 제레드는 이불 속에서 손만 뻗어 창문을 열었고, 까마귀는 방 안으로 들어와 책상 위에 편지를 떨어뜨린 뒤 불씨를 한 번 노려보고 나갔다.

“아버지다.”

제레드는 편지를 펼치지 않고 한참 들고 있었다. 피오는 장화 끈을 매다 말고 그 손을 보았다. 손가락 끝이 하얬다.

“읽어 줄까요?”

“아니. 내가 읽어. 내가 읽어야 덜 무서워.”

제레드는 헛기침을 하고, 아버지 흉내를 내며 굵은 목소리로 읽었다.

“바스틴은 용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닭에게 지면 집에 오지 마라. 추신, 네 어머니가 목도리를 보냈다.”

목소리가 마지막 줄에서 제 목소리로 돌아왔다. 편지 봉투 안에서 털실 목도리가 반쯤 삐져나와 있었다. 짙은 붉은색이었고, 끝에 어설프게 꿰맨 용 모양 자수가 있었다. 용이라기보다는 도마뱀 같았다.

“추신이 본문보다 무서운 집안이야, 우리가.”

제레드가 웃으려다 말았다. 목도리를 목에 감고, 피오를 보지 않고 말했다.

“미안하다. 난 이겨야 돼.”

“알아요.”

“진짜 미안해서 하는 말이야. 이기고 나서 너 짐 싸는 거 도와줄게.”

“그건 안 미안해도 돼요. 제가 이길 거라서.”

제레드가 그제야 피오를 돌아보았다. 피오는 장화 끈을 다 매고 일어섰다. 이틀 동안 피오는 실습장 울타리 뒤에 숨어 제레드가 불씨와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불씨는 한 번 흥분하면 불을 뿜고, 뿜고, 또 뿜었다. 열두 번째 불을 뿜고 나면 날갯짓이 느려졌고, 열다섯 번째가 지나면 꼬리 끝이 땅에 끌렸다. 그런데도 불씨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법을 모르는 짐승이었다.

*

동쪽 실습장은 둥근 모래밭이었다. 모래 둘레에 말뚝으로 원을 박고, 원 밖으로 계단식 나무 관람석이 세 겹 둘러섰다. 1학년 백여 명이 그 관람석을 채웠다. 교수 세 사람이 맨 앞줄에 앉았고, 소환학 개론의 늙은 교수도 거기 있었다. 정오의 햇볕이 모래를 데워서 장화 바닥으로 열이 올라왔다.

규칙은 단순했다. 소환수는 하나만 쓴다. 소환사는 원 밖에 선다. 소환수가 원 밖으로 밀려나거나, 쓰러져서 열을 셀 동안 일어나지 못하면 진다. 바우는 울타리 밖에 앉아 있어야 했다. 가고일은 울타리 기둥 옆에 무릎을 모으고 앉았는데, 그 무게에 기둥이 조금 기울었다.

이졸데가 심판 자리에 섰다. 은빛 그리핀 세라프가 그 뒤에 날개를 접고 있었다.

“첫 경기. 제레드 바스틴, 붉은 용 불씨. 피오 해즈, 닭 꼬끼.”

「닭」이라는 말에서 관람석이 먼저 웃었다. 꼬끼가 모래 위에 내려서서 관람석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웃음소리가 큰 쪽을 골라 그쪽으로 볏을 한 번 털었다. 그쪽 웃음이 더 커졌다.

제레드와 피오는 원의 양쪽 끝에 섰다. 모래밭을 사이에 두고 열 걸음쯤 떨어져 있었다. 제레드가 목도리를 한 번 고쳐 매고, 관람석에 들리지 않을 만큼만 목소리를 낮췄다.

“너 이틀 동안 울타리 뒤에 숨어서 우리 연습 봤지. 다 보였어. 바우가 울타리 뒤에 같이 앉아 있었으니까.”

피오는 할 말이 없어서 귀를 긁었다. 그렇게 큰 돌을 데리고 숨었으니 안 보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처음부터 크게 간다. 불씨한테 세 번 안에 끝내라고 했어. 열네 번까지 안 가.”

“세 번이요?”

“세 번.”

제레드의 눈은 진지했다. 불씨는 그 발치에서 꼬리를 탁탁 치며 꼬끼를 노려보고 있었다. 꼬끼는 그 눈길을 받아 주지 않고, 모래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부리로 헤집었다. 마른 보리 낟알 하나가 나왔다. 꼬끼는 그것을 삼키고 나서야 불씨를 보았다.

“시작.”

불씨가 먼저 움직였다. 날개를 펼치고 짧게 날아올라, 첫 불을 뿜었다. 주먹만 한 불덩이가 모래에 떨어져 검은 자국을 남겼다. 꼬끼는 그 자리에 없었다. 옆으로 세 걸음, 뒤로 두 걸음, 닭이 모이를 쫓을 때처럼 갈지자로 뛰어 불씨의 꼬리 쪽으로 돌아갔다.

“쫓아! 불씨, 쫓아!”

제레드가 원 밖에서 외쳤다. 불씨가 몸을 돌려 두 번째, 세 번째 불을 뿜었다. 꼬끼는 그때마다 반 박자 먼저 옆으로 빠졌다. 피오는 원 밖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소리를 내면 꼬끼가 돌아볼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계장에서 매가 내려올 때 닭들이 하는 걸음이었다. 매는 한 번에 덮치려 하고, 닭은 한 번에 잡히지 않으려 한다.

여섯 번째 불이 빗나가 심판 쪽으로 날아갔다. 이졸데가 몸을 비켰지만 망토 자락 끝에 불똥이 붙었다. 이졸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장화로 망토 끝을 두 번 밟아 껐다. 관람석에서 누가 휘파람을 불었다. 이졸데가 그쪽을 한 번 보자 휘파람이 멎었다.

여덟 번째, 아홉 번째. 꼬끼가 불씨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 뿔 사이를 한 번 쪼고 내려왔다. 불씨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꼬리를 물려고 했다. 관람석이 이번에는 꼬끼 쪽으로 웃었다.

열두 번째 불이 나왔을 때 불덩이가 주먹만 하지 않았다. 달걀만 했다. 불씨의 날갯짓이 느려졌다. 열네 번째는 연기만 나왔다. 불씨는 모래 위에 내려앉아 옆구리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고, 혀가 입 밖으로 반쯤 늘어졌다. 모래밭에 탄 냄새와 뜨거운 비늘 냄새가 가득했다.

“일어나, 불씨! 한 번만 더!”

불씨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입을 벌렸다. 피오는 그때 처음으로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파람을 불었다. 짧게 두 번. 양계장에서 해 질 녘 닭들을 닭장으로 불러들일 때 쓰던 소리였다.

꼬끼가 모래밭 한가운데에 섰다. 가슴을 부풀리고, 목을 길게 뺐다.

“꼬오오끼이이오오오.”

새벽만큼 길지는 않았다. 그래도 관람석 맨 위까지 닿았다. 소리가 지나간 자리에서 사람들의 웃음이 뚝 그쳤다. 불씨는 입을 벌린 채로 멈췄다. 그러고는 불 대신 하품을 했다. 아주 길고, 아주 큰 하품이었다. 송곳니가 다 드러나고 눈꼬리에 물기가 맺혔다.

불씨가 몸을 웅크렸다. 꼬리를 앞으로 말아 코끝에 붙이고, 날개를 접고, 눈을 감았다. 꼬끼가 다가가 그 머리를 한 번 쪼았다. 불씨는 꼬리를 조금 더 말았을 뿐 눈을 뜨지 않았다. 작은 콧구멍에서 규칙적인 숨소리가 났다. 코를 고는 소리였다.

이졸데가 셌다. 하나, 둘, 셋.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아홉, 열.

“승자, 피오 해즈.”

관람석은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다 맨 앞줄의 늙은 교수가 무릎을 치며 웃었고, 그 웃음이 백 명에게 번졌다. 누군가 “용이 잤다!” 하고 외쳤다. 그 말이 관람석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몇 번이나 되풀이되며 굴러다녔다.

제레드는 원 밖에서 붉은 목도리를 쥔 채 서 있었다.

*

이졸데는 승패를 선언하자마자 교수석으로 걸어갔다.

“이의를 올립니다. 마지막 울음은 상대 소환수의 정신에 작용하는 기술입니다. 1학년 실습 대결에서 정신 작용은 금지입니다.”

늙은 교수가 안경을 닦으며 대답했다.

“크레인 양, 늑대가 우는 걸 정신 작용이라고 하나?”

“아닙니다.”

“그럼 닭이 우는 것도 아니지. 그건 저 짐승이 원래 내는 소리야. 이의는 기각하네.”

이졸데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울타리 앞에서 피오와 마주쳤다. 피오는 잠든 불씨를 안아 들고 나오던 참이었다. 용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몸이 따뜻했다. 이졸데가 길을 막았다.

“지치게 했지. 일부러.”

“네.”

“시골 꾀야. 쓸 만은 해.”

이졸데는 피오의 품에서 코를 고는 새끼 용을 내려다보았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국경의 마수는 기다려 주지 않아. 지칠 때까지 열네 번 뿜어 주지 않는다고. 한 번이면 끝나.”

“그럼 기다려 주게 만들면 되죠.”

“닭으로?”

“닭으로요.”

이졸데가 처음으로 피오를 똑바로 보았다. 그 눈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피오는 알 수 없었다. 이졸데가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약속은 지킬게. 교수회에서 찬성 발언은 안 해. 그런데 청원은 가. 서명이 이백 명을 넘었어. 다음 대결 상대는 지친 용이 아닐 거야.”

*

그날 저녁 식당에서 제레드는 혼자 구석 자리에 앉았다. 지나가는 2학년들이 그 등 뒤에서 일부러 들리게 말했다. 닭한테 진 바스틴. 용 소환 가문이 닭한테. 제레드는 수프를 한 숟가락도 뜨지 않고 일어났다.

방에 들어갔을 때 제레드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쓰고 누워 있었다. 피오는 문간에 서 있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요 한 장만 챙겨 닭장으로 내려갔다. 짚 위에 담요를 깔고 누우니 바우가 그 옆으로 와 등을 붙이고 앉았다. 돌에서 낮 동안 머금은 햇볕의 온기가 올라왔다. 꼬끼는 피오의 가슴 위에 올라와 앉았다. 무거웠다.

자정이 넘어 닭장 문이 삐걱 열렸다. 제레드였다. 한 손에 담요를, 다른 손에 싸구려 포도주 병을 들고 있었다.

“여기 바닥 차다며. 사감이 그러더라. 닭장에 누가 산다고.”

제레드는 피오 옆에 담요를 던지고 털썩 앉았다. 병마개를 이로 뽑아 한 모금 마시고 피오에게 건넸다. 포도주는 시고 떫었다. 고향 장터에서 파는 것보다 맛이 없었다.

“이거 얼마짜리예요?”

“묻지 마. 기숙사 매점 제일 싼 거야. 아버지 돈 쓰기 싫어서.”

둘은 한동안 병을 주고받았다. 바우의 호박색 눈이 어둠 속에서 둘을 번갈아 보았다. 제레드가 병을 내려놓고 말했다.

“불씨가 아직 자.”

“아직이요?”

“정오부터 지금까지. 깨지도 않고. 코 골면서.”

제레드는 자기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얘가 알에서 나온 지 일곱 달이야. 일곱 달 동안 한 번도 안 잤어. 밤새 불똥 튀기고, 낮에도 쉬지 않고, 수의사가 이런 용은 오래 못 산다고 했어. 근데 오늘 저녁에 방에 들어갔더니 걔가 내 베개 위에서 자고 있더라. 입을 조금 벌리고. 침도 흘리고.”

제레드의 목소리가 거기서 잠깐 막혔다. 다시 이어졌을 때는 조금 떨렸다.

“자는 얼굴을 처음 봤어. 생각보다 못생겼더라.”

피오는 웃었다. 제레드도 웃었다. 웃다가 제레드가 손등으로 눈가를 한 번 훔쳤다. 피오는 그걸 못 본 척 짚을 한 줌 쥐어 바우 등에 덮어 주었다.

“아버지한테 답장 안 할 거야. 아직은.”

“목도리는 하고 다녀요. 어머니가 꿰맨 거잖아요.”

“이 도마뱀? 하고 다닐 거야. 너도 이거 보고 웃으면 쫀다.”

“꼬끼가요?”

“내가.”

새벽 네 시 반, 피오가 눈을 떴을 때 제레드는 짚 속에 반쯤 묻혀 자고 있었고, 꼬끼는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꼬끼가 다섯 시에 울었고, 제레드는 욕을 하며 깨어났다. 피오가 닭장 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에 검은 제복을 입은 하인이 서 있었다. 하인은 보랏빛 봉랍이 찍힌 쪽지를 내밀었다.

「해즈 군, 아침 식사 전에 교장실로 오게. 묻고 싶은 게 있네. 그 닭은 매일 몇 시에 우나?」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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