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80자)

고개 숙인 돌

꼴찌 소환사가 부른 건 용이 아니라 닭이었다 · 문가온

돌이 계단을 올라오는 데 십오 분이 걸렸다. 한 칸을 오를 때마다 발톱이 대리석 모서리를 긁었고, 긁힌 자리에서 흰 가루가 피어올랐다. 피오는 닭장 앞에 선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도망치는 게 맞는지 맞이하는 게 맞는지 몸이 정하지 못했다. 꼬끼만 지붕 위에서 내려와 피오의 발등에 올라서더니, 계단 입구를 보고 목을 쭉 뺐다.

가고일은 사람보다 한 뼘쯤 컸다. 박쥐 같은 돌 날개를 등 뒤에 접고, 이마에서 뿔 두 개가 뒤로 휘어져 있었다. 백 년 동안 회랑의 습기를 먹은 몸에서는 축축한 이끼 냄새가 났고, 마지막 계단을 올라설 때 무릎 관절에서 맷돌 도는 소리가 났다.

기숙사 창문이 하나둘 열렸다. 잠옷 차림의 학생들이 머리를 내밀었다가, 계단 입구의 석상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비명이 다른 창문을 깨웠다.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서쪽 기숙사 뒤뜰은 잠옷과 맨발과 반쯤 불러낸 소환수들로 가득 찼다. 누군가의 늑대가 이빨을 드러냈고, 누군가의 올빼미는 겁을 먹고 주인 머리 위에 앉아 털을 부풀렸다.

“비켜! 비켜라, 이것들아! 사감이다!”

사감 버트가 등불을 들고 뛰어왔다. 배가 앞으로 둥글게 나온 중년 사내였는데, 잠자리 모자를 쓴 채였고 모자 끝의 방울이 뛸 때마다 콧등을 때렸다. 버트는 석상을 보더니 등불을 떨어뜨릴 뻔했다.

“저, 저건 학교 재산이다! 창립 때부터 있던 수호 석상이야! 누가 깨웠어? 누가!”

수십 개의 눈이 동시에 피오의 발등에 선 닭을 보았다.

가고일이 움직였다. 늑대 쪽도 올빼미 쪽도 사감 쪽도 보지 않았다. 무거운 발로 뒤뜰을 가로질러 닭장 앞까지 왔고, 피오와 한 걸음 거리에서 멈췄다. 피오는 숨을 멈췄다. 돌 얼굴이 가까웠다. 눈구멍 안에 희미한 호박색 빛이 고여 있었다.

꼬끼가 피오의 발등에서 뛰어내려 가고일의 발가락을 쪼았다.

딱. 딱. 딱.

뒤뜰의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다. 가고일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발가락이 아니라 피오 쪽이었다. 무릎이 꺾였고, 돌 무릎이 흙에 닿을 때 땅이 한 번 울렸다. 이마가 피오의 가슴 높이까지 내려왔다.

피오는 아버지가 처음 송아지를 받던 날을 떠올렸다. 짐승이 머리를 내밀면 손을 얹어야 한다고, 그건 사람이 먼저 거두면 안 되는 거라고 했다. 피오는 손바닥을 가고일의 이마에 댔다. 돌이 생각보다 따뜻했다. 오른쪽 손목 안쪽이 따끔했고, 내려다보니 깃털 모양 자국이 두 개 나란히 떠 있었다. 하나는 어제 꼬끼와 계약할 때 생겼다.

“이, 이름.”

사감 버트가 더듬었다.

“계약을 했으면 이름을 붙여야지. 부를 이름은 있어야 할 거 아니냐. 학교 재산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라고.”

“바우요.”

“바우?”

“바위니까요.”

뒤뜰 어딘가에서 누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제레드였다. 제레드는 이불을 망토처럼 두르고 4층 창문에서 몸을 반쯤 내민 채 박수를 쳤고, 그 옆에서 불씨가 덩달아 연기를 뿜었다.

*

아침 첫 수업은 소환학 개론이었다. 바우는 피오를 따라 본관까지 왔고, 강의실 문 앞에서 멈췄다. 문틀이 돌 날개보다 좁았다. 바우는 고개를 숙이고 한 번, 어깨를 비틀고 또 한 번 들어오려다가 문틀 위쪽 석회를 한 줌 긁어 냈다. 강의실 안의 학생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석상. 복도에서 기다려라.”

늙은 교수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바우는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문 옆 벽에 등을 붙이고 섰다. 수업 내내 강의실 문 유리창 너머로 호박색 눈 두 개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교수가 칠판에 「소환수는 소환사의 울림에 응답한다」고 적다가 그 눈과 마주쳤고, 분필이 두 번 부러졌다.

수업이 끝나자 교수는 피오를 불러 세웠다.

“해즈 군, 저 녀석 밥은 뭘 먹나?”

“모르겠어요.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그럼 됐네. 돌이 먹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오게.”

*

점심 무렵 식당 입구 게시판에 새 종이가 붙었다. 「닭 퇴출 청원 · 서쪽 기숙사 뒤 닭장의 소환수가 수업과 학생 안전을 해치므로, 소환수 퇴출과 소환사의 학적 정리를 교수회에 청함 · 발의 3학년 수석 이졸데 크레인」. 종이 아래에 서명하려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 줄은 식당 문을 지나 복도까지 이어졌다.

피오는 귀리죽 그릇을 든 채로 그 줄을 보았다. 아침에 신발을 던진 학생들이 앞쪽에 있었다. 그 뒤로 시험장에서 웃었던 얼굴들이 있었다. 맨 끝에서 제레드가 줄에 서 있다가 피오와 눈이 마주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줄 밖으로 나와 피오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 서명하려던 거 아니다.”

“줄 서 있었잖아요.”

“줄이 길면 뭔가 좋은 게 있는 줄 알았지. 습관이야.”

이졸데는 식당 창가 긴 탁자에 3학년들과 앉아 있었다. 그리핀 세라프가 탁자 옆에 엎드려 있었고, 은빛 깃털 사이로 식당의 촛불 그림자가 흔들렸다. 피오는 귀리죽을 내려놓고 그 탁자로 걸어갔다. 식당의 숟가락 소리가 하나둘 멎었다.

“청원, 봤어요.”

“읽을 줄도 아네.”

“바우는 학교 재산이 아니에요. 걔가 고른 거예요.”

이졸데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3학년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 석상이 몇 년 동안 회랑에 서 있었는지 알아? 창립 때부터 백 년. 아무도 깨운 적이 없어. 깨울 수 있다는 기록도 없어. 넌 네가 뭘 깨운 건지 몰라. 다음에 깨는 게 그 석상처럼 무릎을 꿇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럼 보장을 하면 되잖아요.”

“어떻게?”

피오는 대답하기 전에 자기 손목을 한 번 보았다. 깃털 자국 두 개가 셔츠 소매 끝에서 반쯤 보였다.

“사흘 뒤에 1학년 첫 실습 대결이 있다고 들었어요. 꼬끼가 거기서 지면 교수회까지 갈 것 없이 제가 짐 싸서 나갈게요. 꼬끼 데리고요.”

식당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이졸데는 피오를 오래 보았다. 세라프가 엎드린 채 고개만 들어 꼬끼 냄새를 맡으려는 듯 코를 벌름거렸다. 꼬끼는 피오의 외투 주머니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다가, 그리핀과 눈이 마주치자 볏을 흔들었다.

“이기면?”

“청원 걷어 주세요.”

“안 걷어. 청원은 교수회로 가. 그건 내 마음대로 거둘 수 있는 게 아니야.”

이졸데는 접시 옆에 놓인 냅킨을 접었다가 다시 펴고 말을 이었다.

“대신 이기면 내가 교수회에서 찬성 발언은 안 할게. 그 정도.”

“그 정도면 돼요.”

“상대는 내가 정해. 1학년 실습 대결 편성은 조교 몫이니까.”

“네.”

피오가 돌아섰을 때 이졸데가 덧붙였다.

“해즈. 짐은 미리 싸 둬. 사흘이면 생각보다 짧아.”

피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식당 입구에서 서명 줄이 아까보다 길어져 있었다.

*

해가 기울 무렵 닭장 앞에 낯선 노인이 서 있었다. 키가 작고 등이 조금 굽었고, 회색 머리를 수건으로 질끈 묶었다. 앞치마에는 오래된 얼룩이 겹겹이 배어 있었는데, 어떤 것은 짐승 피였고 어떤 것은 약초 즙이었다. 노인은 바닥에 흩어진 모이를 발끝으로 밀어 보다가 혀를 찼다.

“이걸 닭한테 먹인다고? 이건 참새 밥이야.”

피오가 닭장 문을 닫다 말고 돌아섰다.

“누구세요?”

“마르타. 이 학교 짐승들 밥 주는 사람. 숙사 쪽도, 북쪽 사육장 쪽도.”

노인은 등에 지고 온 자루를 내려놓았다. 자루 끈을 풀자 귀리와 말린 벌레와 조개껍데기 가루 냄새가 올라왔다. 피오네 양계장에서 알 낳는 철에만 먹이던 비싼 배합이었다. 꼬끼가 그 냄새를 맡고 피오 어깨에서 뛰어내려 자루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거 비싼 건데요.”

“숙사 남은 거야. 버리느니.”

마르타의 눈이 닭장 옆에 앉아 있는 바우에게 갔다. 가고일은 아침부터 거기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큰 개처럼 앞발을 모으고, 꼬끼가 모이를 쪼는 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채였다. 마르타는 바우를 한참 보고, 꼬끼를 보고, 마지막으로 피오의 손을 보았다.

“손 좀 보자.”

피오가 손을 내밀자 마르타는 손바닥을 뒤집어 굳은살을 엄지로 눌렀다. 쇠스랑 자루가 닿는 자리, 물통 손잡이가 닿는 자리, 철망을 고치다 긁힌 오래된 흉터.

“양계장?”

“네. 시골이요.”

“닭 키운 손이네. 원 그리는 손은 아니고.”

마르타가 손을 놓았다. 그 순간 꼬끼가 자루에서 머리를 들고 목을 낮게 울렸다. 꾸르르, 하고 배 속에서 굴리는 소리였다. 피오에게는 매일 듣던 소리였다. 닭이 먹이를 찾았을 때 동료를 부르는 소리.

마르타의 얼굴이 굳었다. 노인은 그 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듣는 사람처럼, 꼬끼를 내려다보며 앞치마 끝을 쥐었다. 손등의 핏줄이 섰다.

“할머니가 저 소리를 냈었지.”

“네?”

“닭이. 할머니 닭이.”

마르타는 말을 멈추고 앞치마를 털었다. 털어 낼 것이 없는데도 두 번 털었다. 피오는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저녁 바람이 짚 부스러기를 닭장 안쪽으로 몰아넣었다. 노인은 고개를 들어 북쪽을 보았다. 기숙사 지붕 너머로 학교의 북쪽 담이 검게 이어져 있었고, 그 너머는 이미 어두웠다.

“새벽에 울릴 때 북쪽 담 쪽으로는 울리지 마라.”

“닭이 어디 보고 울지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서요.”

“그럼 닭장 문을 남쪽으로 내.”

마르타는 빈 자루를 접어 겨드랑이에 끼고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가 고개만 돌렸다.

“그 돌 녀석, 밤에 춥다. 짚 좀 깔아 줘.”

“돌인데요?”

“백 년 서 있었으면 돌도 춥지.”

*

밤 열 시, 4층 방문이 벌컥 열렸다. 제레드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너, 너 이거 봤어?”

종이에는 이졸데의 반듯한 글씨가 있었다. 「1학년 첫 실습 대결 편성 · 사흘 뒤 정오 · 동쪽 실습장 · 첫 경기 피오 해즈 대 제레드 바스틴」.

“나야.”

제레드가 종이를 침대에 내던지고 그 위에 털썩 앉았다. 불씨가 놀라서 베개 밑으로 기어들어 갔고, 베개 밑에서 연기가 새어 나왔다.

“왜 하필 나야? 1학년에 용이 다섯인데. 크레인 그 여자, 일부러 이런 거야. 내가 너랑 한방 쓰는 거 알고.”

피오는 종이를 집어 들어 다시 읽었다. 정오. 동쪽 실습장. 첫 경기. 글씨 끝이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

“지면 넌 짐 싸고, 이기면 난 닭한테 진 용 소환사가 되는 거야. 우리 아버지가 그걸 들으면.”

제레드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침대 끝에 앉은 채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피오는 베개 밑에서 새어 나오는 연기를 보았다. 불씨는 어젯밤에도 새벽까지 눈을 뜨고 있었고, 아침에도 점심에도 쉬지 않고 불똥을 튀겼다. 저렇게 하루 종일 불을 뿜고도 지치지 않는 짐승이 있을까? 양계장의 어린 수평아리들은 낮에 실컷 뛰어다니면 해가 지기도 전에 횃대에서 꾸벅거렸다. 창밖 닭장 쪽에서 바우가 짚을 끌어당기는 소리가 났다.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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