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285자)
그리고 닭
꼴찌 소환사가 부른 건 용이 아니라 닭이었다 · 문가온
왕국력 312년 가을 학기 첫날 아침, 왕립 소환 아카데미 벨모어의 원형 강당은 향유 냄새와 비싼 가죽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피오 해즈는 그 냄새 사이에서 자기 외투 소매를 코에 대 보았다. 마른 짚과 닭똥과 어머니가 빨래에 넣는 쑥 냄새가 아직 빠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성인 특별 전형은 맨 끝입니다. 거기, 줄 밖으로 나온 분, 안으로.”
진행을 맡은 교수가 지팡이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피오는 반 걸음 들어갔다. 앞줄의 귀족 자제들은 대부분 예과에서 네 해 동안 원 그리는 법을 배우고 올라온 사람들이었고, 다들 같은 재봉사가 지은 듯한 남색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피오의 외투는 형이 입던 것을 줄인 갈색이었다. 팔꿈치에 덧댄 천만 색이 조금 더 짙었다.
강당 한가운데 흰 대리석 바닥에 원이 하나씩 그려질 때마다 공기가 달라졌다. 첫 번째 학생이 분필을 내려놓자 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왔고, 붉은 비늘의 새끼 용이 날개를 접은 채 웅크리고 나타났다. 관람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두 번째도 용이었다. 세 번째는 잿빛 늑대였는데, 늑대가 고개를 들고 길게 울자 강당 천장의 유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피오는 손가락을 꼽아 셌다. 용 다섯, 늑대 열둘, 그리고 이름 모를 비늘 달린 것이 셋, 커다란 올빼미가 하나. 꼽던 손가락이 모자라 다른 손으로 넘어갔을 때 바로 앞의 학생이 원 안으로 들어섰다.
“제레드 바스틴. 바스틴 가문.”
키가 크고 머리를 뒤로 넘긴 청년이 피오를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처음 보는 사이였다. 청년은 분필을 손끝으로 돌리다가 두 번 떨어뜨렸고, 세 번째에 겨우 원을 이었다. 그 원에서 손바닥 두 개만 한 붉은 새끼 용이 튀어나와 재채기를 했다. 불똥이 진행 교수의 수염 끝에 붙었다. 교수가 수염을 두드려 끄는 동안 관람석이 웃음과 박수를 같이 쏟았다.
“봤어? 용이야. 작아도 용이야.”
제레드가 내려오면서 피오의 어깨를 쳤다. 숨에서 아침에 마신 포도주 냄새가 났다.
“다음. 피오 해즈. 성인 특별 전형.”
강당이 잠깐 조용해졌다가, 뒤쪽 어딘가에서 누가 일부러 크게 코를 킁킁거렸다. 몇이 웃었다. 피오는 외투 안쪽 주머니를 한 번 눌렀다. 동생 리나가 보낸 편지가 거기 접혀 있었고, 그 옆에 어머니가 기워 준 모이 주머니가 있었다. 낡은 삼베 주머니에는 한쪽 모서리를 두 번 꿰맨 자국이 있었다. 피오가 여덟 살 때 닭장 철망에 걸려 찢어 먹은 자리였다.
원 옆에 은빛 그리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독수리 머리에 사자 몸통을 한 그 짐승은 깃털 끝이 아침 햇빛을 받아 칼날처럼 빛났고, 옆에 선 여자가 시험 조교 완장을 차고 있었다. 짧게 묶은 검은 머리, 남색 망토 위에 은실로 수놓은 수석 표식. 3학년 수석 이졸데 크레인이었다. 여자는 피오의 신발에 묻은 마른 흙을 먼저 보고 얼굴을 보았다.
“원 그릴 줄은 알아?”
“압니다. 책으로 배웠어요.”
“책으로.”
이졸데가 그 말을 따라 하자 관람석 앞줄이 또 웃었다. 피오는 무릎을 꿇고 분필을 바닥에 댔다. 대리석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집에서 연습할 때는 늘 짚단을 깔아 놓은 헛간 바닥에 원을 그렸다. 시험 전날 밤에도 백 번을 그렸고, 그때마다 닭들이 원을 밟고 지나가서 다시 그렸다. 바깥 원을 돌리고, 안쪽에 부름 글자 일곱 개를 넣고, 마지막 획을 이었다.
원이 숨을 들이쉬듯 한 번 오그라들었다.
먼저 온 것은 냄새였다. 앞서 나온 용들이 끌고 온 쇳내도 아니고 늑대들의 젖은 털 냄새도 아니었다. 피오가 스무 해 동안 아침마다 맡던 냄새, 햇볕에 마른 깃털과 흙과 모이 부스러기 냄새였다. 원 한가운데에서 붉은 깃털 하나가 튀어 올랐고, 그다음에 볏이 올라왔다.
수탉이었다.
크지도 않았다. 피오네 양계장에 있는 수탉들보다 오히려 반 뼘쯤 작았다. 볏은 유난히 붉었고 꼬리 깃털은 검은 바탕에 녹색 윤기가 돌았다. 닭은 원 밖으로 한 발을 내딛더니, 고개를 갸웃하고 강당을 한 바퀴 훑었다.
정적이 길지 않았다. 관람석 맨 위에서 누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이 계단을 타고 굴러 내려와 강당 전체를 덮었다. 몇은 의자를 두드렸다. 누군가 “꼬끼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닭이 그 소리 나는 쪽을 노려보았다.
진행 교수가 기록판을 들고 다가왔다. 교수는 지팡이 끝으로 닭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하려고 했는데, 닭이 그 지팡이 끝을 정확히 쪼았다. 딱, 하는 소리가 강당에 울렸다. 교수가 지팡이를 뒤로 뺐다. 닭이 한 걸음 따라붙어 한 번 더 쪼았다. 교수가 두 걸음 물러났다.
“이, 이건 통제가 안 되는…….”
닭은 날개를 퍼덕이며 교수의 어깨를 밟고 뛰어올랐다. 닭이 날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는데, 그 닭은 관람석 난간을 두 번 디디고 맨 위 귀빈석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 앉아 있던 흰 수염의 노인, 교장 알브레히트 폰 하일의 보랏빛 모자 꼭대기에 내려앉았다.
강당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교장은 모자 위의 무게를 느꼈는지 눈썹을 한 번 올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 닭을 쫓는 대신 수염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이런, 높은 자리를 좋아하는 녀석이로군. 해즈 군, 이 친구 이름이 뭔가?”
피오는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닭이 모자 위에서 목을 길게 뺐다.
“꼬끼입니다.”
입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양계장에서 막내 수탉을 부르던 소리 그대로였다. 교장이 다시 웃었고, 강당의 웃음도 조심스럽게 되살아났다.
*
꼬끼를 품에 안고 원 앞으로 돌아왔을 때 이졸데가 그리핀과 함께 피오의 길을 막아섰다. 그리핀이 머리를 낮추고 꼬끼를 내려다보았다. 꼬끼는 피오의 팔 안에서 목털을 세웠다.
“지금 돌려보내.”
이졸데가 낮게 말했다. 관람석에는 들리지 않을 만큼의 목소리였다.
“입학 첫날엔 한 번 봐주는 관례가 있어. 지금 돌려보내면 학적은 남지 않지만 기록에도 안 남아. 내년에 다시 시험 봐. 그때 다른 걸 불러.”
“얘가 온 건 얘가 온 거예요. 다시 불러도 또 얘가 와요.”
“그럼 오지 마.”
이졸데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피오는 그 눈이 꼬끼가 아니라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학교 졸업생은 삼 년 뒤에 국경으로 가. 잿빛잠 숲. 거기서 마수가 깨면 소환수가 먼저 막고 사람이 뒤에서 버텨. 닭이 뭘 막지? 넌 얘 때문에 죽어.”
“그건 삼 년 뒤 얘기잖아요.”
“삼 년은 금방 와.”
피오는 꼬끼를 고쳐 안았다. 꼬끼의 심장이 손바닥 아래서 빠르게 뛰었다. 품 안의 편지가 바스락거렸다. 리나는 편지 끝에 손가락이 또 굳었다고 썼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이제 숟가락을 왼손으로 든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오빠는 걱정하지 말라고. 글씨는 끝으로 갈수록 삐뚤어졌다.
“안 돌려보내요.”
이졸데는 한동안 피오를 보다가 기록판을 든 교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이 응시자는 시험 규정상 합격선에 있습니다. 소환 자체는 성공했으니까요. 순위만 매겨 주시면 됩니다.”
교수가 꼬끼를 곁눈질하며 기록판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날 오후 강당 앞 게시판에 붙은 합격자 순위의 맨 아래, 삼백열여덟 번째 줄에 피오의 이름이 있었다. 이름 옆에는 「소환수 숙사 배정 불가 · 서쪽 기숙사 뒤 닭장 사용」이라는 글씨가 작게 적혀 있었다.
*
서쪽 기숙사 뒤의 닭장은 지붕 판자가 세 장 빠져 있었다. 피오는 저녁 내내 판자를 주워다 못 대신 철사로 묶었다. 꼬끼는 그 옆에서 피오가 떨어뜨린 철사 토막을 하나씩 쪼아 보다가, 먹을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성질을 내며 차 버렸다.
방은 4층 끝이었다. 문을 열자 제레드 바스틴이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어? 닭 형씨.”
“피오요.”
“알아, 알아. 피오. 오늘 제일 유명한 사람이랑 한방을 쓰게 될 줄이야. 우리 아버지가 들으면 기절하시겠다.”
제레드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침대 머리맡에서 새끼 용 불씨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눈이 말똥말똥했다. 용이 하품을 할 때마다 작은 불똥이 베개에 떨어졌고, 제레드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젖은 수건을 덮었다. 방 안에 탄 깃털 냄새가 희미하게 돌았다.
“얘가 잠을 못 자. 태어날 때부터. 밤새 저래. 덕분에 나도 못 자.”
피오는 짐을 풀다가 벽에 붙은 종이 한 장을 보았다. 「왕국력 312년 계약 축제 · 학년말 첫눈 무렵 · 우승자에게 왕실 마수 사육장 열쇠를 수여함」.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사육장에서 자라는 약초 이름이 몇 개 나열되어 있었다. 피오는 그 가운데 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벽초. 마수의 숨으로만 자라는 푸른 풀. 몸이 돌처럼 굳는 병에 듣는다고, 고향 약방 노인이 말했었다. 왕국 안에서 그 풀이 자라는 곳은 왕실 사육장 하나뿐이었다.
“그거 노려?”
제레드가 몸을 일으켰다.
“너 진짜 웃긴다. 닭으로 축제를? 거긴 3학년 크레인이 이 년째 결승까지 갔다가 아쉽게 진 데야. 올해는 걔가 먹는다고 다들 그래.”
“그럼 걔를 이겨야겠네요.”
“닭으로?”
“닭으로요.”
제레드가 한참 웃다가 웃음을 멈추고 피오를 다시 보았다. 피오가 웃지 않고 있었다.
*
새벽 네 시 반에 피오의 눈이 저절로 떠졌다. 스무 해 동안 이 시간에 일어나 닭장 문을 열었다. 몸이 그것을 기억했다. 창밖은 아직 검었고, 제레드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코를 골았다. 불씨만 눈을 뜨고 있다가 피오를 보고 작은 연기를 뿜었다.
닭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지하 회랑을 지나야 했다. 회랑 양쪽에는 날개 달린 석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백 년 전 학교를 지을 때부터 있었다는 가고일들이었다. 돌 표면에 이끼가 끼어 있었고, 차가운 습기가 목덜미에 닿았다. 피오는 발소리를 죽이고 지나갔다.
꼬끼는 이미 깨어 있었다. 피오가 묶어 놓은 지붕 판자 위에 올라가서, 북쪽 하늘을 보고 있었다. 동쪽이 아니라 북쪽이었다.
“거기 해 안 떠.”
꼬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피오는 모이 주머니를 열어 한 줌을 뿌렸다. 꼬끼는 그것도 쳐다보지 않았다. 목이 조금씩 길어지고, 가슴이 부풀었다.
다섯 시였다.
“꼬오오오끼이이오오오오.”
피오가 아는 어떤 닭의 울음보다 길었다. 소리가 기숙사 벽에 부딪혀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발밑의 흙이 아주 조금 울렸다. 기숙사 창문 몇 개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신발을 던졌고, 신발이 닭장 지붕에 맞고 굴러떨어졌다.
피오가 신발을 줍느라 허리를 숙였을 때였다.
발밑, 지하 회랑 쪽에서 무거운 것이 끌리는 소리가 났다. 돌이 돌에 긁히는 소리. 한 번,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또 한 번. 회랑 계단 입구에서 차가운 바람이 올라왔다. 이끼 냄새와, 오래 닫혀 있던 방에서 나는 먼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
피오는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눈을 떴다. 돌 눈꺼풀이 열리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